어머니 나의 어머니
양상태
곱게 잠들어 계실 어머니를 깨우자니 송구합니다.
나의 어머니는 시골이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를 마쳤다. “계집애들은 많이 배우면 연애질하게 되고 나중에 시집가서도 친정에 편지질이나 한다.”라는 어머니 백부의 극심한 만류로 중학교 시험에 합격하고도 진학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것이 평생 한이 되어서인지 어머니는 꿈속에서 “자주 중학생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곤 한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재봉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동네의 대소사 한복은 거의 맡아서 지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네 어머니 음식을, 고향의 토속음식을 최고라고 엄지 ‘척’ 하지만 우리 어머니 음식을 드셔보신 분은 한결같이 빼어난 음식 솜씨를 인정했다.
밭농사 한번 지어보지도 않은 규수가 맞선 한번 없이 부모님이 맺어주신 인연으로 당시 고등학교 선생이던 아버지를 만나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십 중반에 일찍 세상을 멀리하셨다. 홀로 우리 네 남매를 길러 모두 대학 교육까지 시켰으니 여러 면에서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한다.
전주‘문화촌’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수돗물이 따뜻할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날, 러닝셔츠만 입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오후였다. 먼저 샤워를 하고 나서 어머니께 하시라고 재촉하여도 “괜찮다”라며 피했다. 억지로 옷을 벗겨드리니, 어쩜, 내가 입다가 놓아둔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그게 꺼림칙했나 보았다.
어머니는 잠자리에서도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독자 개발한 스트레칭을 20여 분을 하고서야 일어날 정도로 건강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둘째 아이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고 있어 간병을 해주려고 오셨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차에 내리면서 “서울에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네 집 하나 없다니” 하면서 마음 아파했다. 둘째 아이의 치료 경과가 좋아져 퇴원하고 집으로 병석을 옮겼다.
고스톱은 아마 둘째가라면 서운했을 것이다. 두 손으로 섞는 것이며 바닥에 깔아 놓는 모습이며 화투판의 흐름을 잘 읽었던 것 같다
시간이 여유로워지면서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경로당으로 출근하시어 고스톱으로 지갑을 살찌우시고 상가에 들러 저녁 반찬거리를 사 오셨다. 그 정도로 내공을 쌓았던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를 닮으셨는지 조크는 우리 일상생활을 늘 즐겁게 행복으로 이끄는 활력소였다. 스포츠 중에서는 단연코 야구를 최고로 꼽으셨다. 지역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야구 시합이 있는 날, 중계방송을 할 때는 밥상을 차려주지 않을 정도로 흠뻑 빠졌다. 지금도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프로 야구 삼매경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면에서 여유를 가지고 삶을 즐기고 궁금하게 될 미래를 설계해 볼 즈음. 어느 날부터 정신이 맑았다가 흐려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인지검사, 문진, 사진을 찍어 본 결과 알츠하이머성 치매라 했다. 여기저기에서 들어는 봤으나 어머니의 친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원해 있다 집으로 모셨다가 하기를 여러 차례. 병원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입원이 불가능하여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ㅇㅇ병원 재활센터에 계실 때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데 말씀을 못 하시니까 눈 양옆으로 눈물만 주르륵 흘리셨다. 그러나 나는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미안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입을 꼭 담으신 모습에서는 어떻게든지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또렷했다. 말씀은 못 해도 듣기는 하는 것 같았다. 자존감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하시던 분인데도 병 앞에서는 그리도 무기력한 것인지 나는 늘 현실 앞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승을 떠나는 두려움보다 남겨질 자식들이 못내 아쉬워 생명이라는 질기고도 긴 끈을 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혼이 있다면 영혼이라도 돌아오셨을 어머니.
첫댓글 어머니의 그리움이 절절한 시인님의 어머니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어머니이십니다.
훌륭하신 어머니의 훈육이 우리를 성장케 했고 정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자리 누가 대체할 수 있을까요?
여름을 안고 가신 어머니. 엄마가 와락 보고싶어집니다.
어머니는 신이요 종교입니다.
우리가 버젓이 현재를 누리는 것도 어머니라는 위대한 존재 덕이지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웠기에 그 사랑은 내리사랑이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이 사회는 올곧게 돌아가려는 근원적 힘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한 시대적 상황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공감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뚱글마치님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