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 부는 바람
이 산 저 산 넘어서
섬진강에 부는 봄바람
강물을 찰랑 놀리는데
이내 마음에 부는 봄바람
흔들려야 물 오르는 버들
실가지도 하나 못 흔드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섬진강에 오는 요 봄을
올똥말똥 저기 저 봄
바람만 살랑 산 넘어오네
이 산 저 산 넘어간 내 님
이 산 저 산 못 넘어오고
이 골짝 저 골짝 소쩍이며
소쩍새 소리만 넘어오네
꽃은 흔들며 산 밝혀놓고
꽃구경 오라 날 부르네
어서 오소 어서 오소
나는 못 가겠네, 어서 오소
보리밭 매다가 못 가겠네,
앞산 뒷산에 부는 바람아
보릿잎 살짝 눕히는 것같이
이 몸 눕히며 어서 오소
태산같이 넘어져 오소
이 몸 위로 넘어져 오소
=========
남북어로 한계선
배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네
바다는 여전히 파도가 치고
소문은 흉흉하게 날로 퍼지네
높새바람 불던 날 떠나간 배가
꽃이 피고 잎 돋아도 돌아오지 않네
그 사이 생긴 아들 첫돌 지났지만
책상 위에 걸어 놓은 그대 사진은
언제나 웃고 있지 말이 없다네
누가 기억하랴 우리들 한숨
노모의 근심 낀 깊은 침묵을
고기떼 물결 따라 오르내리고
갈매기들 해풍 따라 날아들지만
바다 위 그은 금 보이지 않지
배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네
북방어로 한계선에서 고기 잡던 배
알전등 밝게 켜진 언덕받이 집
온 식구 얼굴에 주름살 지고
배에 탄 어부들 돌아오지 않네
배에 탄 남편들 돌아오지 않네
낡은 선풍기
참 가련타 저 낡은 선풍기
가전제품 수리 전문점 앞에서
먼지를 백발처럼 뒤집어쓰고
깨진 프로펠러를 달고
구질구질한 내장을 다 내보이며
쓰러질 듯 술 취한 듯 비척거리며
겨우 고철 덩어리 냉장고에 기대어 서 있는
명예퇴직한 저 선풍기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는
저 낡은 선풍기 때문에
나, 눈물이 핑 돈다
머리 깎고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다달이 봉급에서 세금을 떼이지 않아도 되는
자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민방위 소집에 응하지 않아도 되는
기름 넣고 세차할 차 한 대도 없는
저 선풍기는 좋겠다
다시는 콘센트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찌릿찌릿 몸을 떨어야 할 필요도 없는
선풍기에 대한 예의
선풍기는 날개가 있지만
절대 날아가지 않고,
내 옆에만 앉은 듯 서서,
결단코 모서리 만들지 않고
둥글게만 돌아가는, 바람난 아내다.
미풍이면 미풍대로,
강풍이면 강풍대로,
약풍이면 약풍대로,
고정이면 고정대로,
회전이면 회전대로,
연속이면 연속대로,
시간이면 시간대로……
선풍기는 그렇게만 바람난다.
나는 이렇게 바람난 여자를 참 사랑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친구란 놈이,
시도 가끔 쓰는 분필쟁이 친구란 놈이
술 한 병 들고 집에 오더니
덥지도 않은데 덥다며
날 위해 바람난 선풍기를 발로 밟아
지맘대로 끄곤 에어컨 켜잔다.
이건 분명 겁탈이고 능멸이다.
개자식이다.
후레자식이다.
백정이다.
가지고 온 술병 들고나와,
대패 삼겹살 집에 가서
왕소금에 쐬주나 한잔 하자 했다.
그랬더니……?
그는 들고 온 술병, 깨고 갔다.
사랑하는 친구야,
선풍기 발로 밟아 끄지 마라
차라리 네모진
에어컨 발로 짓밟아 끄라
사랑하는 친구야,
바람난 아내 버리지 마라
오로지 네 둘레만
지쳐 맴돌다 바람났잖냐
수많은 시간이 지나가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아무리 흔들고 흔들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네처럼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언제든 힘이 들 땐 뒤를 봐요 난 그림자처럼 늘 그대 뒤에 있어요
바람이 되어 그대와 숨을 쉬고 구름이 되어 그대 곁을 맴돌고
비가 되어 그대 어깨를 적시고 난 이렇게 늘 그대 곁에 있어요
늘 그대 뒷모습만 익숙한 이 시간이 너무도 힘들지만
혹시 돌아볼까 봐 늘 그댈 바라만 봐요
야속한 바람에 흩어지고 앞산 위 먹구름 소나기 드리운다
작은 구름 큰 구름 눈으로 보면 여러 모양
가슴으로 보면 그리움 하나 뭉게뭉게 그대 생각할 때
수많은 시간이 지나가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아무리 흔들고 흔들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네처럼 내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언제든 힘이 들 땐 뒤를 봐요 난 그림자처럼 늘 그대 뒤에 있어요
바람이 되어 그대와 숨을 쉬고 구름이 되어 그대 곁을 맴돌고
비가 되어 그대 어깨를 적시고 난 이렇게 늘 그대 곁에 있어요
늘 그대 뒷모습만 익숙한 이 시간이 너무도 힘들지만
혹시 돌아볼까 봐 늘 그댈 바라만 봐요
노을
붉은 해 벌건 웃음 우리고 또 우리어
이윽고 홍조 띠며 발그레 웃고 있네
그대를 만나면 터질 것 같은 내 가슴
첫사랑 같은 그대의 붉은 부끄러움
서산에 물드는 저녁노을 그대 눈동자에 드리우면
꽃내음 안개처럼 자욱한 노을 속에 잠들고 싶어라
노을 그 자체이고 싶어라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사랑
멀리 있어 자주 볼 수 없는 대단한 너이기보다는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중요한 너이기보다는
그저 가까이에서 늘 볼 수 있는 소중한 너였으면 해
나, 언제나 너의 곁에서 너와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는 평범한 내가 되고 싶네
날마다 좋은 느낌 고운 향기로 만나는 그대와 나이지만
비가 내리면 빗물이 되어 촉촉하게 가슴을 적셔 주시고
바람이 불면 바람결에 훈훈한 사랑 보내 주시는
자연 닮은 아기의 미소처럼 순진무구한 그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습니다
하얀 그리움
기억의 뒤안길에서
밤하늘에 별을 보며
그리움의 젖은 마음
사랑은
하얀 물거품 되어
피었다 부서지고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꿈이었나요
그리워서 보고파서 한숨짓는 것들도
세월 앞에 서서히 부서져 내리며
희미한 흔적들만 가물가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