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기행 3

능주 정암선생 적려유허지 탐방을 마치고 능주면 소재지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 능주면사무소 주변을 탐방하면서 봉서루(鳳棲樓)라는 누정에도 올라 보았다.2층 누각으로 올라가 보니 무더위 속에서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다. 현판에 걸린 한시 편액들을 둘러 보니, 정창손, 김종직, 성임 선생등의 시들과 함께 이 지역 출신 양팽손 선생의 시도 걸려 있었다.우리나라 정자가 어디든 유서깊은 곳일 수록 선인들의 한시가 갈려 있어 반갑다.  능주를 찾았으니 내가 오래전 부터 별렀던 가문의 시조할아버지 단소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단소(壇所)라 함은 산소를 잃어버렸을 경우에 산소 대신 제사를 드리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능성구문은 본관이 바로 이곳 능주이며, 시조(始祖)는 存裕(존유)이시다. 나는 이분으로 부터 26세 손이 된다.   나의 가문의 시조(始祖)이신 存자 裕자 할아버지께서는 고려 고종 조에 출사하셔서 삼한벽상공신이자 검교상장군(檢敎上將軍)으로 불려지시는 분이다. 할머니께서는 신안주씨 이신데 전에는 역시 능성주씨라고 하였다. 이 분은 중국 남송의 거유(巨儒)로 유명한 주희(朱熹) 선생의 고손녀가 되시는 분이다.남송이 금나라에 밀려 명맥을 유지하다가 몽고족이 세운 元에 의해 망하게 되면서 공의 증손인 청계공(淸溪公) 주잠(朱潛) 선생이 황해를 건너 고려로 망명하여 왔다고 한다. 시조 할머니께서는 이 어른의 따님이시니 주자 선생의 고손녀가 된다고 집안 어른들께서는 자부심을 갖고 어린 나에게 강조하시든 기억이 새롭다.  바로 이 두분의 단소가 있는 한천면 정리로 갔다. 날씨는 몹시 무더웠지만 난생 처음 찾아 뵙는 감회가 컸다. 한가위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인지 벌초가 이루어 지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대종회를 중심으로 이 지역을 정성스레 보살펴 왔기에 단소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 찾아 뵙는 단소앞에서 추모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두루 둘러보고 이곳을 관리하는 현지의 종인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사연을 들어 보았다. 나는 금일봉을 이 어른께(내게 형님벌이 되심) 드리고 재회를 기약하면서 작별하였다.  다음에 들린 곳이 인근에 있다는 쌍봉사였다. 동행한 최선생이 적극 추천한 사찰이다. 사찰 정문을 들어서니 마주치는 대웅전이 내 고향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 축소판 처럼 느껴졌다. 이 사찰에는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이 있고, 옆에는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 탑비가 서 있었다. 철감(澈鑑) 선사는 신라 원성왕 14년(서기 798년)에 출생하여 18세에 출가하엿고, 호는 쌍봉(雙峰) 속성(俗姓)은 박씨이다. 선사께서는 이 사찰과 인연이 깊은 분으로, 경문왕 8년 71세로 이 사찰에서 입적한 분이다. 사찰 경내를 둘러 보노라니 고려조의 시인 김극기 선생의 시가 소개되고 있다. 바로 상봉사 삼청각에서의 감회를 읊은 시였다. 橋堂別構大溪間 (구당별구대계간) 시내 사이로 멋드러진 다리 누각이여揭 號三淸快眼間 (게호삼청쾌안간) 삼청이라는 글씨에 눈이 상쾌하네月照潭心魚鏡淨 (월조담심어경정) 못에 비친 달은 고기들의 맑은 거울雲收嶺上鶴樓寬 (운수영상학루관) 구름 걷힌 산봉우리의 학은 둥지를 좋아해金園宿霧常呈瑞 (금원숙무상정서) 금빛 뜰에 머문 안개는 항상 상서롭고玉洞松風每送寒 (옥동송풍매송한) 옥빛 계곡에서 부는 솔바람은 언제나 차겁네憑欄更觀 簷 下水 (빙란경관첨하수) 난간에 기대 처마 아래 흐르는 물을 다시 보니落花有意逐微瀾 (낙화유의축미란) 낙화도 뜻이 있는지 잔물결 따라 좇아 가네  철감선사를 기리는 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가려니 군데 군데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대엽종인 차는 잘 자라지 못하니 아무래도 소엽종인 녹차나무로 보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찰에는 이런 차나무를 가꾸었을 것이다. 비단 이 사찰 뿐만 아니고 술이 세상을 호령(?)하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즐기는 곳이 바로 사찰의 스님들이니, 사찰에서 소요되는 차를 자급 자족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어 녹차를 즐겼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스님들 중에서도 차를 좋아하고, 차를 한시의 소재로 즐교 사용한 초의(草衣) 선사의 한시도 안내 간판에 소개되고 있었다. 5언 배율 형식으로 소개된 시의 제목은 "한가윗날 새벽에 앉아서" 이다. 題 : 八月十五日曉坐 惺起北窓眼 (성기북창안)  河傾遙夜 闌 (하경요야란)  四山 峭 且心 (사산초차심)  孤菴寂而閒 (고암적이한)皎皎月入 樓 (교교월입루)          風生欄 (     풍생란)  沈沈氣 막 樹 (침침기막 수)  零露流竹竿 (영로류죽간)儉素終違己 (검소종위기)  對此還苦顔 (대차환고안)  人不解意表 (인불해의표)  難超嫌疑間 (난초혐의간)胡不妨未然 (호불방미연)  履霜方惡寒 (이상방오한)  漸看東頭明 (점간동두명)  曉霞起前山 (효하기전산)  이 시는 초의선산(1786-1866)께서 22세때 한가윗날에 철감선사 사리탑으로 가는 대나무 숲길을 걸으며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 보고 이를 진솔하게 고백한 시라고 안내판에 소개하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이 무렵에 쌍봉사 금담선사께 참선을 익히던 시절이라고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