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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시집 『만남과 헤어짐 사이』는 배한조裵漢祚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1부 〈가야산 소리 길〉에 20편, 2부 〈한일병원〉에 18편, 3부 〈이제는〉에 17편, 4부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19편 등 총 4부에 9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실린 시들은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시인의 예술적 감각을 통해 오래 익은 사유들이 은유로 표출된 것들이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표현된 시 세계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역사와 전통, 존재론적 의미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질문, 생명의 윤기와 희망, 순환적 시간과 존재론적 사고, 끝없는 내면의 성찰,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 삶의 복잡성과 상실, 그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 희망적 메시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 출판사 서평
배한조 시인의 『만남과 헤어짐 사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유교적 사상과 불교적 사상을 융합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서정시라고 말할 수 있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실린 시들은 대단히 서정적이면서도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시인의 시 정신은 쉽게 써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에 있다. 시인은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유교적 가르침의 세계와 불교적 깨달음이나 자아와 세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특히 존재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강조하고, 풍부한 상상과 심도 있는 투시력을 통해 깊은 경지의 시 세계를 보여준다. 배한조 시인의 『만남과 헤어짐 사이』는 자연의 생명력, 생명과 죽음,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및 인간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고독과 덧없음을 묘사한다. 시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압축미와 상징, 은유적 표현을 잘 버무려 시인 자신의 내면적인 깨달음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시적 완성도가 높은 시집이다.
■ |차례|
시인의 말 •5
제1부 가야산 소리길
가야산 소리길•13
산다는 것 1 •14
산다는 것 2 •16
산다는 것 3 •18
산다는 것 4 •19
모란이 피었군요 •20
아이야 •21
수염 •22
소요산 자재암 •24
자목련 꽃잎이 되어 •26
콩나물 같이 •28
방학천의 봄 스케치 •30
낙산사의 봄 •32
봄비가 내리면 •33
봄이 오는 것은 •34
4월 어느 오후 •36
춘설春雪 •39
비비추의 봄 •40
서향동백이 질 때 •42
백목련 •44
제2부 한일병원 뒷길
사랑 •47
오수 •48
도봉산 마당바위 •50
다 그렇다 •50
오월의 비 •53
부처님 오신 날에 •54
황사 •55
맹개의 아침 •56
두더지 게임 •58
우체국 여자 •59
임이여 임이시여! •60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62
솔밭공원의 사연 •64
한일병원 뒷길 •66
빗속 우이천을 걸으면 •68
탁족濯足 •70
늦여름 아침의 단상 •72
우이봉 가는 길 •74
제3부 이제는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 •77
모기 •78
똥 푸는 아침의 자화상 •80
나팔꽃 1 •82
나팔꽃 2 •83
복귀 •85
막 핀 장미꽃 •86
입추 •87
가을의 사색 •88
부탄가스 •89
토착화 •90
가을은 가고 •92
이제는 •93
담쟁이가 단풍 드는 때 •94
갈대꽃이 지면 •95
화살나무의 향수鄕愁 •96
마지막 잎새 •97
제4부 만남과 헤어짐 사이
조고각하照顧脚下 •101
역지사지易地思之 •102
만남과 헤어짐 사이 •103
잠 못 드는 밤에도 새벽은 오고 •104
영점 조정 •106
연산군묘 앞에서 •108
이름은 이름일 뿐 •110
염치廉恥 •112
사우나에서 •113
석모도 마애불 •114
백로야 잘 잤니 •115
비 오는 날의 단상 •116
짤순이 •117
겨울나무 •118
예순아홉 번째 첫눈 •119
제야除夜 •120
눈 •122
그 남자의 봄 •123
부활 신고 •124
|시평|
읽을 수 있어서 좋아 •129
■ 본문
세상에서 가장 공손하다는
철로 침목 사이에 사는
이름 모를 풀이 있다.
고개 들면
기적 소리와 함께
낙엽처럼 날아가는 목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
기차가 지나간 자리에서
언제나
고개 숙여 살고 있다.
파랗게 질린 풀이
짧은 몸으로
공손히도 살고 있다
- 「산다는 것 3」 전문
이 시는 존재의 겸손함과 생명력,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공손하다는/ 철로 침목 사이에 사는/ 이름 모를 풀”은 겸손함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는 자연의 순응적인 자세를 나타내며, 인간 존재와 대조되는 자연의 생명력을 강조한다. 풀은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자아 중심적인 사고와 비교된다. 이러한 대비는 불교적 관점에서의 ‘무아’와 연결될 수 있으며, 자아를 내려놓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기차가 지나간 자리에서/ 언제나/ 고개 숙여 살고 있다”라는 표현은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는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기차는 현대 문명의 상징으로, 빠르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풀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표현은 생명체가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적 맥락에서 ‘존재에 대한 수용’과 ‘고통의 수용’을 나타낸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와 무관심을 비추는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다.
“파랗게 질린 풀이/ 짧은 몸으로/ 공손히도 살고 있다”는 구절은 비록 환경이 열악하고 생존이 힘든 상황에서도, 풀은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끊임없이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자연의 회복력'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며, 인간이 자연에서 배우고 나아가야 할 점을 고민하게 만든다. “기적 소리와 함께/ 낙엽처럼 날아가는 목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라는 구절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적의 순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은 쉽게 인지되지 않고, 종종 잊히게 된다. 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종종 간과되는 일상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의 작은 기적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일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는 기차와 풀꽃이라는 대비를 통해 생명과 생존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풀꽃이 기차에 치일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는 이미지는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와 생명력의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기서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혜이자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이다.
이 시는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인간 존재와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기차는 현대 사회의 상징으로, 빠르고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풀꽃은 작고 연약하지만,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지닌 존재로 대조된다. 이 시는 현대인의 삶과 마주하는 여러 가지 도전과 난관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며, 생존을 위한 지혜로운 선택을 강조한다. “낙엽처럼 날아가는 목”이라는 표현은 생명에 대한 위협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풀꽃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다양한 위기와 맞설 때 필요한 전략적 선택을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생존을 위한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적으로 이 시는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특히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풀꽃은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생존을 이어간다. 이는 인간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또한,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전통적인 가치인 겸손과 수용을 반영한다. 삶의 어려움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때로는 물러서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동양 철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유연함’과 ‘적응’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궁극적으로 이 시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여러 도전에서, 때로는 강하게 맞서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삶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지혜로운 선택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유도하며,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태도와 자세를 고민하게 만든다.
겨울 산을 벗어나 거리를 유영하는 사람들
꽃분홍 진달래꽃으로 피더니, 오늘은 벚꽃이 되었다.
어느새 마지막 남은 자목련 꽃잎 하나가
가지 끝에서 떨어질까 말까,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슬아슬한 저울질을 하고 있다.
매화꽃이 스러져 가던 날 아버지는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세상사 겉치레는 다 벗어 버리고
온몸에 새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명줄을 잡을까 놓을까
흐릿한 안갯속으로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자목련 꽃잎이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액은
가는 비닐관을 타고 저승사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황태처럼 건조해지는 혀, 말라가는 의식,
애타게 그리는, 하소연 들어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
꿈결같이 지나치는 백의의 사자들은
물 한 방울의 자비도 바랄 수 없는
로봇처럼 딱딱하고 차디찬 피부를 가졌다.
황태 입속에도
순한 바람과 속살처럼 따스한 봄비라도 내려 준다면,
그 비에 토담집은 허물어져도
촉촉이 젖은 미소 띤 자목련 꽃비로 내려
고개 돌려 뒤돌아보지 않고
저 대지 어느 곳에 고요히 스며들 텐데.
* 중환자실 아버지, 코로나19로 면회도 금지되어 간신히 한 번 면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간절하게 목마름을 호소하는데도, 물 한 방울 드릴 수 없었다. 그 순간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자목련 꽃잎*이 되어」 전문.
이 시는 자목련 꽃잎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병환을 배경으로 한 개인적 경험을 통해 고통과 애통함, 자연의 순환을 연결하고 있다. 시의 시작 부분에서 자목련 꽃잎이 되어 “겨울 산을 벗어나 거리를 유영하는” 모습은 자연의 순환과 삶의 변화를 상징한다. 자목련 꽃잎은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나타내며, 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암시한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은 삶의 끝을 의미하며, 세상의 변화 속에서 개인의 고통을 더욱 부각시킨다. “아버지는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라는 구절은 개인적이고 절박한 상황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병환은 삶의 불확실성과 고통을 상징하며, 시인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낀다. “세상사 겉치레는 다 벗어 버리고”라는 표현은 삶의 본질적이고 진정한 모습에 대한 회귀를 나타내며, 고통의 순간에 인간 존재의 본질이 드러남을 보여준다. “저승사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와”라는 구절은 병원의 기계적이고 냉정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수액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죽음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러한 대비는 시인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을 강조하며, 생명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시인은 “말라가는 의식, 애타게 그리는”이라는 구절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아버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며 느끼는 무력감은 읽는 이에게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하소연 들어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라는 부분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강조하며, 이러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고독을 드러낸다. “황태처럼 건조해지는 혀”와 “물 한 방울의 자비도 바랄 수 없는” 구절은 환자가 느끼는 갈증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아버지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드러내며, 인간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순한 바람과 속살처럼 따스한 봄비”의 비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치유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이 시는 특히 개인의 고통과 자연의 순환을 통해 삶과 죽음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아버지의 병환을 통해 느끼는 무력감과 상실감은 자목련 꽃잎의 덧없음과 맞물려,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깊이 있게 묘사한다. 시인은 이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며, 삶의 의미와 고통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이러한 감정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시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마스크 속에서 산다는 것은
세상을 차단하고
내 속의 우주를 만드는 자폐 같은 것
진화했던 인간의 표정은
하얗게 가려져 날로 퇴화하고
눈짓만 남았다.
너를 안다는 것은
네 눈빛을 가로질러
그 깊은 가슴을 파헤치고
심연의 실상을
기억장치 판독하듯 읽어 내야만
한다는 것
까만 점 두 개 찍힌
하얀 얼굴로 진화된 인간은
쇳조각처럼 차디차다.
이성理性은 마비되고 사지는 뒤틀려
어미가 새끼를 죽이고
새끼가 아비를 죽이는, 가면 속에서
나는 떨고 있다.
우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극소의 바이러스로,
끝없이 추락하며
절망 속에 허우적대는 인간
찬 공기를 피해 들어온 모기 한 마리
마지막 힘을 다해 비행하다가,
새까만 두 눈으로
웅크린 나를 보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어둠 속의 두 그림자
- 「모기」 전문.
제3부에 실려 있는 이 시는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와 인간관계의 복잡함, 그리고 소외감을 심도 있게 탐구하고 있다. 이 시의 기법과 구조적 특징으로는 메타포와 상징을 들 수 있다. “마스크”는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상징한다. 이는 개인이 사회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내면의 우주를 구성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자폐적인 삶은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모습을 비유한다. “까만 점 두 개 찍힌 하얀 얼굴”은 인간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이미지에서는 인간의 표정과 감정이 가려지고, 본래의 자신이 왜곡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는 대조를 통한 긴장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성은 마비되고 사지는 뒤틀려”라는 구절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서로 충돌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됨을 나타낸다. 이는 현대 사회의 혼란과 부조리를 드러내며, 인간의 본성이 퇴화해 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시의 후반부에서 “우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극소의 바이러스로”라는 표현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이 시는 또한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그리고 인간 본성의 퇴화를 탐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는 자아를 더욱 고립시키고, 그로 인해 인간은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고립감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가진 사회적 존재로서의 특성을 부정하게 된다. 이 시에서는 서정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끝없이 추락하며 절망 속에 허우적대는 인간”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고뇌와 불안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는 독자가 시인의 감정을 공감하게 하며, 동시에 인류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한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어둠 속의 두 그림자”라는 구절은 상호 소통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그 소통이 어둡고 불확실한 상태임을 나타낸다. 이 시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와 절망, 그리고 인간 본성의 퇴화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다양한 상징과 대조, 우주적 관점을 통해 시인은 독자가 인간 존재의 의미와 관계의 중요성을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시는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드러내며,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세상을 보고, 세상 소리를 들으니 가슴은 끓다 못해 시꺼멓게 탄다. 저들은 할 말 못할 말에, 세상을 우롱하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고, 들통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가릴 필요도 없고, 염치도 없고, 도덕도 없고, 법도 팽개쳤다. 쓰레기만 가득해 매립장 분출 가스보다 더 독하다. 그런데도, 매립장에 세운 하늘공원에 핀 꽃처럼 화려하게 국회의원 꽃도 피운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는 악취 진동하는 쓰레기가 되어, 파리 새끼가 되어, 쓰레기 더미 위에서 막살아야 하는가 보다. 그러면 비로소 훌륭한 똥파리가 되어 추앙받는가 보다.
오늘은 나도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그동안 차마 하지 못한 것을 시원스레 배설하고 끓는 가슴이나 식혀 보자.
에이, 참! 거시기한 것들!
여전히 가슴은 열받은 압력밥솥 같다. 아무도, 특권 없는 나에게는 국회로 가라고 하지도 않는다. 입만 버렸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입술에 붙는다.
에이, 탁! 불이 난다.
세상 너머에서 죽림칠현같이 살아야겠다.
- 「복귀」 전문.
이 시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정치적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강렬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시인은 세상을 보고 느끼는 분노와 실망을 통해, 도덕과 법이 무시당하고,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세상을 우롱하는 모습을 고발한다. 구조는 일관된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감정의 고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연에서 “가슴은 끓다 못해 시꺼멓게 탄다”라는 표현은 화자가 느끼는 극도의 분노와 실망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감정의 강렬한 투사가 시의 시작을 장식하며, 독자는 즉시 화자의 심정에 공감하게 된다.
시의 구조적 특징은 반복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한 점이다. “쓰레기만 가득해”와 같은 구절은 사회의 부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매립장 분출 가스보다 더 독하다”라는 비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시에서 사용된 비유와 은유는 매우 강력하다. “국회의원 꽃”이라는 표현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화려한 외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얼마나 기만적이며 부패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이는 정치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막살아야 하는가 보다”라는 구절은 자조적인 느낌을 주며, 화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표현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는 정치적 비판을 넘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비로소 훌륭한 똥파리가 되어 추앙받는가 보다”라는 구절은 현대 사회에서 비윤리적인 행동이 어떻게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이는 도덕적 기준이 흔들리는 현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제공한다. 또한, “입만 버렸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무력감과 사회 참여의 부재를 나타내며, 화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그 행동이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을 표현한다.
이 시는 현대 사회의 정치적 부조리와 비윤리적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기법과 표현의 강렬함, 반복적인 이미지의 사용은 독자에게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구조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시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를 넘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논의로 이어지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암벽을 다닥다닥 붙어
한 발 한 발 징 박으며 오른다.
끝에 다다르면 잔뿌리도 하나 없이
빨갛게 단풍 든 줄기를
발처럼 드리운다.
더 오를 곳 없을 때가
내려와야 하는 때.
산 정상에서 내려올 때나,
절정의 순간을 지난 섹스처럼
내려오는 길은 허탈하다.
끝이 저긴데
그리 숨차게 오를 게 뭔가
팔자걸음으로 쉬엄쉬엄 가야지.
더 오를 곳이 있을 때
산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지.
- 「담쟁이가 단풍 드는 때」
이 시는 담쟁이의 단풍이 드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과 그 끝, 그리고 내려오는 과정의 허탈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의 전반적인 주제는 ‘오름’과 ‘내려옴’이다. 이는 인생 여정에서 상승과 하강을 상징한다.
시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담쟁이가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묘사되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정상에 도달한 후의 허탈감과 내려오는 과정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은 시의 주제인 ‘삶의 여정’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담쟁이가 암벽을 오르며 “한 발 한 발 징 박으며”라는 표현은 힘겹고도 끈질긴 삶의 여정을 나타낸다. 여기서 ‘징 박다’는 구체적인 동작은 고난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인내를 비유적으로 전달한다. “더 오를 곳 없을 때가 내려와야 하는 때”라는 구절은 삶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허탈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하강은 단순한 퇴보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짚고 새로운 시각을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담쟁이와 단풍은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담쟁이는 끈질기게 오르는 존재로서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나타내며, 단풍은 삶의 아름다움과 함께 찾아오는 필연적인 종말을 상징한다. “빨갛게 단풍 든 줄기를 발처럼 드리운다”는 표현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가 쉽게 시각화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감각적 묘사는 독자에게 시의 정서적 깊이를 전달하며, 담쟁이의 생명력과 그 끝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오름과 내려옴, 정상과 허탈함의 대조는 시의 핵심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숨차게 오를 게 뭔가”라는 질문은 오름의 의미를 되묻고, “팔자걸음으로 쉬엄쉬엄 가야지”라는 구절은 내려옴의 여유를 나타낸다. 이러한 대조는 삶의 속도와 태도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 시는 단순히 자연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탐구한다. “끝이 저긴데”라는 표현은 삶의 정점을 향한 모든 노력이 무의미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더 오를 곳이 있을 때 산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지”라는 반전은, 삶의 가치가 단순히 목표 도달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자주 느끼는 불안과 허탈감을 표현하며, 그 속에서 성찰과 여유를 찾도록 유도한다.
이 시는 담쟁이의 생태적 특성과 인간의 삶을 연결짓는 독창적인 비유를 통해, 오름과 내려옴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구조적 전환과 감각적 묘사는 독자에게 깊은 감정을 유발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촉진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현대 시에서 시적 작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게 한다.
■ 저자 소개
배한조(시인)
경상북도 성주 출신(1957)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석사)
2016년 한국문작가회 시 부문 등단
시집 『저녁노을 바라보며(2018)』 『스페이스바(2020)』
경력 : 의정부공업고등학교 기계과 교사(39) 퇴임
현 牛耳書堂 詩·書·畵 연구실 운영
이메일: anigg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