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初歸故園/ 고향에 처음으로 돌아와서
里 閭 蕭 索 人 多 換 (이려소색인다환) 마을은 쓸쓸하며 사람들은 많이 바뀌고
墻 屋 傾 頹 草 半 荒 (장옥경퇴초반황) 집은 기울고 담장 무너져 잡초만 우거져
唯 有 門 前 石 井 水 (유유문전석정수) 오직 문앞의 돌우물은 그대로 남아 있어
依 然 不 改 舊 甘 涼 (의연불개구감량) 옛날의 달고 시원한 맛 변하지 않았구나
(지은 이)
오늘 소개하는 시는 고려 조의 '최유청 (崔有淸)이라는 분의 시이다. 선생께서는 학문에도 뛰어났지만
한평생을 벼슬 길에서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이다. 이미 과거 시험에 급제하고 나서도 자신의
학문이 아직 부족하다 여기고, 더욱 학업에 정진했던 일화를 지닌 분이기도 하다.
최유청(崔惟淸, 1095-1174) 선생의 자는 直哉(직재), 시호는 문숙(文淑).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고려
예종때 과거에 급제후 조정에 나아갔으나, 이자겸에 의해 박해를 받았으며 이자겸이 몰락한 후에서야
좌사간(左司諫)과 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게 되었다.
인종 10년(1132년)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1142년에는 북방의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
언행으로 금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에 정중부의 난을 만났으나 일부 무신
(武臣)들의 보호를 받아 화를 면하였다.
그후로도 벼슬길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중서시랑평장사, 집현전대제학, 판예부사(判禮部事) 등을 역임
하였다. 오늘 소개한 시는 시인이 벼슬길에 나서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가 느낀 소감을 읊은
칠언절구이다. 모처럼 고향에 돌아 가보니 많은 것들이 변했고, 낯설기만 하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요즘
우리의 농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선생께서는 유학의 여러 경전에 해박함은 물론 불경에도 조예가 깊었고, 글씨도 명필이었다 한다.
또한, 선생은 남도집(南都集) 등 여러 저술들을 남긴 분으로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은 이분의 5세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