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아무나 쪽쪽 빨아먹다
버려진 여인이라고
그 말이 길을 막아버렸지
쉬운 길의 어려움을 항변하는
가냘픈 꽃의 엉덩이가 슬퍼
가을엔 초미세 아픔까지도 사랑하게 되지
골목을 배회하는 바람은
낯선 곳을 더듬는 재미로 살아가지
아주 각별한 순간
남자와 여자가 빠르게 몸을 섞으며
쟁인 시간 속에 절여질 때
날개를 괸 꽃은 철없는 열매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저녁은 핏방울들의 춤
축제의 내면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그녀가 누군가의 허기진 영혼을 달랠 때
적요한 실내에서 우린
한 자루 모나미 볼펜과 씨름하지
꽃은 속수무책의 달인
초원의 갈비뼈를 지나 고통의 횡격막을 관통하는
꽃은 피나는 기억
백지白紙 위로 산발적인 어둠이 찾아오면
서둘러 창을 열지
아무것도 아닌 삶이 단단해지는 순간이 있지
사랑은 패배를 위한 싸움
그 무엇도 받지 말되
아낌없이 빼앗길 것
지더라도 결코 패배하지 말 것
그녀를 쪽쪽 빨아먹는 것은
꽃의 영혼을 지키는 일
백지에게 희롱당하며
영혼을 빨리며
사루비아는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지
이재린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흥 문학상 대상
바다 문학상 대상
<시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카페 게시글
신갈나무방
사루비아 / 이재린
pe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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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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