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사람, 혁신, 조화, 그리고 노무현’
- [두번째 열린인터뷰] 안희정 충남도지사... 회원과 파워블로거들이 함께 하다
‘노무현의 안희정, 충남도의 안희정’
- 도지사가 된 뒤 생활이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대통령을 모시는 동안에도 제 생활은 공직자와 다름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공직자여야 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국민들 역시 나나 주위 참모들의 어떠한 개인적 이익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공인으로서 제약이 많았죠. 그래서 도지사가 된 뒤 생활의 변화를 크게 체감하지는 않습니다.
도지사가 되고 나서 가장 큰 고민은 돌려야 될 접시가 너무나 많다는 점입니다. 저 혼자서는 다 돌릴 수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접시가 다 깨져버릴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이랄까요. 때론 초조하고 힘이 듭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요. 우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게 먼저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야겠죠.
- 다른 단체장들에 비해 트윗을 많이 이용하던데...
트윗을 하면서 온라인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팔로어가 약 3만3천명 정도 됩니다. 나이나 직업, 생각도 각양각색이죠. 당연히 항상 유쾌한 이야기만 오갈 수는 없습니다. 비판을 넘어 비난하는 글도 접하곤 합니다. 맹목적인 비난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트윗 같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서비스는 도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도청 앞마당에 농민들이 쌓아놓은 쌀가마니가 보기 언짢다”든지 도정운영에 대한 개인적 의견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가장 빠르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애용합니다. 네티즌이나 도민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의견이나 질문에 빠른 대답을 들을 수 있어서 좋고요.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는 누구나 ‘베스트’
- 2008년 <담금질> 출판기념회에서 소개된 노 대통령의 영상인터뷰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 때 자리에 없었어요. 쑥스러워서 슬쩍 자리를 피했지요. 대통령께서 좋은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강직하신 분이 눈물까지 보이시면서….
저는 20대 시절 대통령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어른들에게 “애들이 뭘 알아” 소리를 들을 나이였죠. 이광재 지사도 종종 말하는데, 당시 대통령께서는 우리들 기를 살려주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만약 대통령님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참모들이 잘못했을 때 면박을 주고 나무랐을 텐데, 당신께서는 절대 그러지 않으셨죠. ‘네가 아니면 안 된다’ ‘네가 제일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겁니다. 우리처럼 정치 선배들을 모셨던 동료나 다른 진영 사람들이 늘 부러워했던 부분입니다. 그 기대를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주 피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권한 아닌 권한이 생겼고, 좀 더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자리에서 수행비서를 굳이 옆자리에 앉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서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죠. ‘노무현의 비서’는 그 어떤 비서보다 ‘높은 비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 장점 가운데 많은 부분은 저의 재능이 아니라 ‘지휘관 노무현’이 준 탤런트라고 생각합니다.
- 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 대통령도 말씀하셨지만, 정치는 통합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부족이나 부락 공동체, 나아가 나라와 왕을 만든 것은 혼란을 피해 질서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욕구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회적 생활을 하다보면 싸움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힘센 자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릴 수 있습니다. 이때 권력이 정해진 질서 안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죠. 권력은 궁극적으로 평화와 통합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반면, ‘선거’라는 제도는 자신의 소신과 정치적 소재를 가지고 지지자를 긁어모으는 일입니다. 호와 불호, 찬반이 생기기 마련이죠. 거기서 생기는 갈등이 분란처럼 보이거나 실제로 분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는 자신을 반대하는 상대에 대해서 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게 쉽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노 대통령도 늘 ‘대화와 통합’의 기술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나라살림을 하는 사람도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를 반대하는 이들과 함께 하려면 통합적인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야말로 이런 덕목을 두루 갖춘 사람이어야 하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목표인데, 저 역시 누군가 비난을 하거나 반대 성명을 내면 마음이 부대낍니다. 흔히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마음을 갖기 쉬운데, 이럴 때 대응을 잘못하면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매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강경책을 씁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대처는 음계의 변화가 없는 꾸준하고 소신 있는 대응이죠.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은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 지난 선거 때 균형발전과 더불어 ‘지방행정 혁신’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안 지사께서 말하는 혁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혁신을 하려고 할까요? 기업이라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는 혁신을 꾀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떤 혁신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조직원들에게 열정을 부여하고, 둘째는 그 열정을 이용해 기업과 직원 스스로에게 신뢰라는 자산을 키워줘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혁신도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행정혁신의 본질은 정부와 공무원들 상호간에 신뢰를 쌓고, 이를 토대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혁신을 이야기하는데, 결과물만 보고 혁신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행정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정은 법과 제도를 다루는 일입니다. 법과 제도가 신뢰를 얻으려면 첫째, 공정해야 합니다. 이게 말은 참 쉽죠? 누구나 자신은 공정하게 일한다고 말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런가요? 아니죠. 왜냐, 공개와 투명의 원칙에 입각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고 투명하게만 해서 신뢰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보편적 정의감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약한 자에게는 힘을, 강한 자에게는 그 힘을 바르게 쓰도록” 해서 힘의 방종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의관에 입각해 법과 제도를 투명하게 실행한다고 해도 심판자의 자의성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는 순간 공정성은 훼손되기 마련이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참여형 민주주의’입니다.
세종시부터 구제역까지, 그 논란과 해법
구제역, 생명의 조화를 깬 대가
- 구제역이 재난을 넘어 재앙의 수준까지 치닫고 있는데, 도지사로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한 구제역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27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것이 50일을 넘긴 지금까지도 확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충남은 1월 1일 천안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고령과 합덕에 이어 예산에서도 발병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230여 곳에 초소를 두고 2천여 명이 상시 방역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백신접종을 하긴 했지만 완전한 치유책은 될 수 없습니다. 모기장을 치는 방역에서 모기파스를 발라주는 방역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일본은 미생물 효소를 이용한 방역 성공사례가 있지만, 이것 역시 체력 증진해 감기를 예방하는 정도라 완전한 처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살처분된 소와 돼지의 수가 10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또한 수십 일째 살처분을 반복해야만 하는 담당 직원들의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도 걱정입니다. 보상비도 1조 원이 넘었습니다. 축산업은 특용작물 제배와 더불어 농촌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입니다. 축산업의 붕괴가 농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구제역은 축산업을 하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만 그렇다고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큰 위기를 맞은 것은 치료 대비 경제성의 논리에 밀려 그동안 구제역 치료와 예방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제역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째는, 가축질병에 대한 국가방역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공존 가능한 발전,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있든 없든 서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좁은 우리에 가축을 가둬 키우는 밀실형 양돈장은 짐승에 대한 억압 이상의 생명의 조화를 깨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구제역은 조화를 파괴한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이번 사태를 그저 재앙으로만 보지 맙시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우리 축산업이 새롭게 진보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 승복할 것은 승복하자”
- 세종시를 두고 행정 중심이냐, 기업 중심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선 기업중심의 도시도 나쁘진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시 원안이 이 대통령의 소신과 다르니 흔쾌히 해달란 말은 못해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특별법을 무시하진 말아달라는 거죠. 법을 준수하고 따르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아닙니까. 적어도 이를 역행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해서 되겠습니까?
세종시는 추진을 하느냐 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단체장선거를 통해서도 전 국민의 핵심 이슈였던 사안이니까요.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관건입니다. 후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차기 대선 주자들도 세종시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 입장을 피력해야만 할 겁니다.
한나라당이든 그 누구든 법과 제도와 규칙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해 결론이 난 뒤에는 승복할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대강 사업도 예비 타당성, 문화재지표 조사, 환경영향 평가, 국회예산 심의 등 합당한 절차를 거쳤다면 반대할 일이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국민정서에 반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게 문제 아닙니까? 민주주의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합니다. 서울시와 마찰을 빚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도, 충남의 뜨거운 화두인 세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시의 본질은 국가균형발전, 다시 말해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한양 중심의 밀집된 도시와 인구를 전국으로 고루 분포시켜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세종시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도권 과밀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과밀화를 동시에 해결할 대안을 찾는 고민에서 나왔습니다. 충청도가 아니라 수도권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이죠. 기득권의 논리, 특정 계층의 논리로 세종시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력한 경고 보낼 터
-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충청권에 과학비지니스벨트 추진을 공약해 충청권의 지지율을 꽤 많이 끌어올렸는데, 지난해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는 세종시나 충청권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데요.
오늘날 한류열풍이 그저 우연히 이뤄진 것일까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처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그것을 끊임없는 투쟁으로 성공시킨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 그들의 자유로운 창의력이라는 내공이 쌓여 얻은 결과입니다.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조립가공에 치중하느라 기초과학 역량이 부족합니다. 참여정부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기초과학 연구단지입니다. 한 예로, 중이온가속기는 실험에 합당한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에 맞는 조건은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이 쉬운 곳이어야 하고, 학자와 연구단지가 많은 곳이어야 합니다. 충남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4만5천500여 명의 연구원이 있고, 연간 7조원의 예산이 투여됩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제 와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경쟁의 한복판에 가져다 지역끼리 한 번 싸워보라는 식은 정말 무책임한 것입니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충청도나 특정 지역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책사업임을 망각한 행동이죠. 도민들과 힘을 모아 대통령과 정부의 신의 없는 태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려고 합니다.
“도시를 통째로 맞춰드립니다”
-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디자인 르네상스’ 등 공공미술이나 도시 디자인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충남도에도 도시 디자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포 신도시의 청사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얼마 전 아내 손에 이끌려 오스트리아 미술가이자 환경보호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독일군의 공습을 피해 인적 없는 숲에 숨어서 마을 전경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는데, 어느 날 공습으로 마을이 부서져 내리는 것을 봤답니다. 전쟁의 가장 극렬한 폭력행위를 눈앞에서 목격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 자연과 생명의 조화, 평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건물 옥상과 마을 둔덕을 콘크리트로 하지 않았고, 사각의 벽도 유선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창틀에는 살아있는 식물을 결합시켰고요. 왜 그랬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 사람의 상상력에게 그렇게 하라고 호소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포 신도시나 세종시도 같은 개념입니다. 21세기 도시는 20세기가 따랐던 전봇대 문화에서 벗어나 무선, 녹색, 생명을 지향합니다. 2020년 인구 10만 명을 목표로 건설되는 내포 신도시는 여기에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하는 도시’를 지향합니다. 주민들과 같이 산책하고 바비큐도 구워먹으며 그들이 바라는 초등학교는 무엇인지, 상가는 어떤 형태로 이뤄지길 원하는지 토론을 거쳐 주민이 원하는 도시를 통째로 맞춰드리려고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차근차근 올바른 수순을 밟아갈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올봄 충남도는 물론 전국에 계신 들을 초대해 내포산 인근에서 둘레길 걷기 행사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21세기, 교육과 복지는 ‘꼭 필요한 생산적 투자’
- 논쟁이 한창인 무상급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장이냐 분배냐’는 식의 낡은 이분법적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토목이나 건설은 생산적 투자고, 노인 장기요양에 쓰면 ‘나눠쓰기’ 복지라고 하는 건 옳지 않아요. 두 가지 모두 생산적 투자입니다. 행복한 국민, 건강한 국민, 교육받고 훈련된 국민이 이어야 국가경쟁력이 살아난다, 이것이 복지정책의 핵심입니다. 여러 경제전략 보고서를 봐도 저마다 건강과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의료, 아동, 노인,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복지정책은 국가생산력에 꼭 필요한 밑바탕 투자입니다. 갖가지 복지혜택을 통해 교육받고 훈련된 노동력이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에 대한 투자를 어찌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할 수 있습니까?
-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타당하나 재정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의료보험료에 대한 개인부담 비중을 늘리는 것, 다시 말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세금에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마저도 그 능력에 따라 이뤄진다면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닙니까? 무상의료는 “능력에 따른 세금납부로 재원을 확보해 아픈 사람들이 부나 권력의 차등 없이 치료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도화하는 것은 토론과 합의를 통하면 됩니다. 무상의료는 의료수혜의 간극을 줄이는 일입니다.
“수혈 준비 없이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오르게는 안할 터”
- 몰입교육, 경쟁교육 등 구태의연한 교육정책으로는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저는 학창시절에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곧잘 듣긴 했지만 오히려 노래를 잘 하는 아이, 산에서 잘 뛰놀며 메추리알이나 곤충을 잘 잡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등 내게 없는 재주를 가진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초-중-고 12년 내내 아이들에게 서열의 굴레를 씌어 놓고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대학졸업장이나 대학이름 간판으로 사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도자는 시대를 변화시켜 거기에 어울리는 꽃이 필 수 있게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교육정책도 적대적 투쟁관에 기반한 생존철학, 그리고 아이들에게 뭐든 해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도 아이들을 영원히 뒷바라지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도록 존중해줘야 합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대안 없이 나서지 말아라”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괜히 흔들지 말아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수혈 준비도 하지 않고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리지 말라는 거죠. 준비 없이 의욕만으로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교육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한국사회에서 군대 다음으로 비민주적인 곳이 학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폭력 등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 기성세대들 대부분이 학창시절에 겪었던 일이고, 그래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면서도 여전히 학교 안에 폭력과 비합리적인 일이 판치는 현실이 유감입니다. 어른이 되고, 정치인이 되면 까먹게 되는 모양입니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불완전한 존재로만 규정해서 외적 압박을 가해 조절하는 것이 교육이라 보는 것이죠. 20세기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탓에 적자생존의 철학에 물들어 경쟁을 강요하고 가혹하게 가르치려 합니다. 구타를 ‘사랑의 매’라고 합리하는 것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구타는 구타일 뿐입니다. 기성세대는 물론 교육계마저도 여전히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충남도는 현재 교육청과 함께 교육발전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조례안을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도의회에서 여러 가지 쟁점이 논의되겠지만, 조례안이 잘 통과하면 교육청에 좀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서 학생의 인권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는 교사와 학생, 학부형, 지역사회가 동참해 함께 노력하고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농업혁신, ‘신토불이’보다 상품성으로 승부하자”
- 우리나라 삼농(농촌·농업·농민)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충남 12만여 호 농가 중에서 60세 이상인 곳이 80%가 넘습니다. 참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와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죠. 그들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12년 우루과이 관세 유예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할지 분명한 준비와 대책이 서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막걸리도 중국에서 값싼 찐쌀을 들여와 만든 것이 많습니다.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값싼 원료를 쓰려고 하죠. 그들에게서 애국과 신토불이의 정신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회개혁이든 정신혁명이 뒤따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동조와 정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농촌과 농민도 혁신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농민이 갑과 을이 아닌, 동업자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충남도에서는 농민들과 동지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3개 농민단체와 공직자, 유관단체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농민들이 소비자에게 “최고의 생산물을 드리겠다”는 자신감과 신뢰를 심어주려 합니다.
소고기의 경우를 보십시오. 수입산이 아무리 밀려 들어와도 소고기는 한우가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 않습니까? 농민들은 소비자들에게 좀더 높은 가격으로 상품을 소비하게끔 요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시장의 가격정책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성공하려면 농민은 공급자로서의 혁신, 정부는 식량안보와 주권의 차원에서 혁신을 해야 합니다.
안희정이 말하는 안희정, 그리고 진보의 미래
- 이광재, 김두관 도지사를 자주 만나실 텐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십니까?
사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이광재 지사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다니고 있고, 김두관 지사는 가끔 만나기는 해도 각종 현안이나 문제점 등 시도지사협의회의 틀에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를 할 짬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냥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고 힘이 되는 사람. 존재감만으로 격려와 용기를 주고받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들 임기 중에 서로 협력하고 연대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여러분들이 기대하고 사랑해주시는 것처럼 서로 힘을 합쳐 좋은 결과를 이뤄내도록 하겠습니다.
- 여성 지지자,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 이유가 있겠죠(웃음). 정치적 견해가 분명하고 철학과 소신이 분명하다면 같은 사람도 뭔가 남다르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아이를 꾸짖다가도 항상 철부지로만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가지고 대들면, 순간 당황해 멈칫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대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또 정치인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을 모시고 소신과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이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도지사를 지내려면 다양한 분야에 지식이 필요한데, 평소 책을 읽는 습관은 어떻습니까?
2004년 감옥에서 클린턴의 <마이라이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클린턴이 딸 첼시 졸업식장에 갈 때의 일화가 기억납니다. 딸아이 졸업식에서 학부형으로서 연설을 맡게 된 클린턴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끝에 딸 친구를 찾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너라면, 졸업식에 친구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 좋은 연설이야말로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소신을 어떻게 매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신 꽤 세심하게 고르고 정독을 합니다. 읽으면서 노트를 써내려 가는데, 책 한 권을 읽으면 보통 두 권의 노트가 만들어집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하나하나 기록을 하죠.
- 문성근의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든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정치적 소신이나 논리를 떠나서 그 열정의 바탕이 민주주의에 대한 희생과 헌신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문성근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란으로 베지를 달려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리 열정적일 수 있을까요? 그가 존경스럽고 참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를 좋아합니다. 공주에 내려왔을 때 찬조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도지사로서 제약이 많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싶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시대
- 보수와 진보 등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 필요한 때입니다. 21세기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의 집안 다툼 같은 무의미한 싸움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충청남도의 16개 시-군을 다니면서 이에 대한 질문과 답에 대해서 여러 번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첫째, 어떠한 보수라도 식민지와 쿠데타 역사를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에 이유나 다른 핑계를 가져다 놓고 결코 이를 미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진보라 부르든 좌파라 부르든 그들이 20세기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모든 투쟁에 대해 대화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의 역사관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20세기에서 벗어나 21세기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앞서 진보세력이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국민의 화두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 국민의 고통이 무엇인지 집중해야 합니다. 도지사 되고 나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 역시 모든 정책은 정파의 눈으로 보지 말고 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2011년의 핵심 과제는 ‘통합’입니다. 논란이 되었던 피자나 치킨의 경우를 봅시다. 대기업이 엄청난 물량과 자본으로 동네 구멍가게까지 망하게 해서 되겠습니까? 상생의 방법을 고민해야죠.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조정하거나 점령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공황을 맞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산업과 산업, 지역과 지역,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갈등은 통합의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금야말로 통합의 기술이 가장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영-호남, 빈부, 남과 북 모두를 만족시킬 통합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