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사람
1판 1쇄 발행 2015년 7월 1일
4쇄
펴낸 곳 달 출판사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 것인지를 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고 우리가 관여 할 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날 은 얼마나 많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그 힘으로 살아도 될 그런 날들이, 그 힘으로 더 좋은 것들을 자꾸 부르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아마도 당신 아버지가 당신에게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어 반가운 목소리로 저녁을 먹자고 하면 당신은 당신이 더이상 이곳에 없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멀리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당신 옆에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있는 거라 똑바로 말하라고 속삭일 것이다. 전화를 끊고 삐딱한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잇달아 날개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원래의 우리 인간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비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 옆에서 만큼은 비겁하게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사랑은 그랬다
매일
기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황흡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그 어떤 꽃도 피율 수 있다는 것도 황홀입니다.
우리가 기대는 것은 왜 사람이어야 할까요. 왜 사람을 거쳐서 성장하고 우리는 완성되어야 할까요. 혼자여서 불안한 것은 마땅히 이해되는 불안이지만 옆에 아무도 없어서 불안한 것은 왜 그토록 무서운가요. 나는 세상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풀려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간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별 것 아닌 풍경이고 시간이라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사람이 그래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같아서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사람.
나에게 그만큼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물이 닿은 글씨처럼 번져버릴까, 혹여 인연이 아닐까 나는 목이 마르고 안절부절입니다.
부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이 간절함으로 그래도 된다면 당신을 세상에 고소할 것이고, 나는 세상이 당신을 가둬놓은 아름다운 감옥으로 이사할 겁니다.
그러니 내가 밑줄 친 사람이 되어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그어놓은 그 밑줄을 길게길게 이어갈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거의 모든 일은 일어납니다.
우리로서는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지만 시간은끈임없이 우리가 살아가야 한 방향을 수화로 일러줍니다. 그래서 시간은 우리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과, 우리 몸에 바싹 붙어 지내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흠씬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시간은 또 선택하게 합니다. 그 힘겨운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음도 알게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이 오고,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내가 만든 감정인데 그 감정은 문득 나를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허무는 일입니다.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게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든 낫는다는 것입니다. 일 년이 걸리든 십 년이 걸리든 우리는 그 아품을 영원히 붙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러울 패는 그 고통을 잘 넘기라고 언덕을 보여줍니다. 힘이 들 때는 이제 곧 바닥이니 잘 넘기라고 바닥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순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