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역
김덕남
지하계단 들어서면 해자가 깡말랐다
임진에 멈춰버린 탄화된 저 목숨들
엉겁결 얽히고설켜 뼈와 뼈로 누웠다
상주조차 묻혀버려, 곡소리도 묻혀버려
사백 년 하루같이 부릅뜬 캄캄한 밤
흥건한 울음을 딛고 침묵들이 달린다
<시작 노트>
2005년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 공사 부지에서 동래읍성 해자가 발견됨으로써 400여 년 전의 임란의 처참한 광경을 우리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칼에 베이거나 둔기에 맞아 함몰된 두개골 등 인골 100여구가 발굴되었던 것이다. 조선판 킬링필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임진왜란 17년 후 동래 부사로 온 이안눌의 「동래 맹하 유감(東萊孟夏有感)」이란 시 중에 잘 나타나 있다. 즉 4월 14일 저녁에 집집마다 곡소리가 나서 향리에게 물으니, 바로 이 날이 임진년 동래성이 함락된 날이란 것이었다. “온 고을 사람들 한꺼번에 피로 물들고/ 시체더미 쌓인 아래 투신하여/ 백명, 천명에 한명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더 기막히고 슬픈 것은 “칼날 아래 모두 죽어 곡할 사람도 없는 집이 얼마이리” 하고 읊었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래부 백성들은 왜적의 총칼에 무참히 학살되었고 그들의 주검조차 거둘 사람이 없었기에 차디찬 해자 속에 내버려졌던 것이다.
400년 후 우리는 뻘 속에 버려진 그들의 주검 위에 빌딩을 지어 잠을 자며 지하철로 도로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잊고 어찌 오늘이 있으며 미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참혹했던 역사(歷史)를 수안역사(驛舍)에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을 개관하여 전시하고 있다. 가슴이 먹먹하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묵념한 후 그날의 참상을 시조로 옮겼다.
- 《부산시조》 2020. 하반기호 (통권 제48호), 우리 부산 그곳을 노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