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
1) 반드시 실천 방법을 찾아라.
“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읽히는 것은 자신이 나아갈 방향과 목적지를 분명히 아는 것과 같고, 나무에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결실을 맺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근사록에는 자기를 향상하는 것이라야 진정한 학문이지, 이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학문은 邪道(사도:올바르지 못한 길이나 도리)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학문은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밖으로는 통찰력을 높이고, 안으로는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학문을 해야 함을 충고하고 있다.
또한 학문하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학문의 목적을 알려면 모름지기 책을 읽으라, 책은 반드시 많이 읽어야 좋은 것은 아니다. 그 槪要(간결하게 추려낸 주요 내용)를 알면 그만이다. 많이 읽고도 그 槪要(개요)를 알지 못하면 한낱 書士일 뿐이다. 책 읽은 방법은 한 권의 책에 몰입하여 그 主旨(주지: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① 반드시 聖人의 언어로써 玩味(완미)하여 마음속에 깊이 새겨넣은 후 이를 힘써 행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 얻는 바가 있다.
성인의 언어란 고전이나, 경전, 성경 등이 모두 성인의 언어라고 볼 수 있다. 玩味 하라는 말은 그냥 대충 넘어가지 말고 뜻을 잘 생각하고 새겨서, 음식을 맛보면 몸에서 맛을 느끼듯이 마음 깊이 느끼게 하라는 말이다.
② 마음을 하나로 묶어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뚫어질 듯 생각하고(이치를 궁리) 또 깊이 빠져서, 그 주제를 풀이하여 매 구절마다에서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일 입으로만 읽거나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몸으로 행동하지 못한 채 글과 나가 따로 분리되어 깨우침이 없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설파하고 있다. 독서할 때는 반드시 한 권의 책을 깊이 읽어서 그 뜻을 모두 알도록 통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율곡 이이는 독서하는 학생은 반드시 단정하고 바르게 앉아서 공경스럽게 책을 읽을 것을 제시하면서, 위의 ② 와 같이 설파하고 있다. 이는 몸과 마음과 정신이 一體가 되도록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渾然一體(혼연일체)가 되도록 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율곡은 배우고⋅깨닫고⋅실천하는 행위 전체를 학문으로 여겼다.
2) 의(義)를 실천할 수 있는 학문을 하라.
義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적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며, 인류의 사회활동과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최고의 원칙이며,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볼 수 있다. 묵자는 학습은‘행동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 말은 예를 들면,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고 내용을 이해했다고 끝마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율곡 이이의 매 구절마다에서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독서를 어떻게 해 왔는지를 되돌아봐야 하는 대목이다. 독서를 잘못했으면, 이제부터는 위의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에 따라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또한 묵자는 배우는 것도 義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가르치는 것도 義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세상을 위해 진정으로 도의를 실천하며,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해로운 일은 제거하기 위한 교육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방도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덕행과 재능을 겸비하고⋅ 언행이 일치하며⋅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어려움을 이겨내고 분발하는 인재로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궁극적으로, 학생과 스승 모두가 사심 없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헌하는 정신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다.
우리나라도 이런 점을 참고하여, 초등학교에서부터 義(의)를 실천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젊은 세대들의 호국 사상을 고취시기는 것이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돤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국가에서 시행 방침이 마련되어야하고, 가르치는 교사 역시 이런 정신에 부합하는 기본 바탕이 갖추어진 인재 혹은 걸맞은 양성 교육에 의해 새로이 교육 체제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보통 독서하고 난 다음에는 내용만 어느 정도 이해하면 책을 덮어 버리고 끝낸다. 독서 방법이 잘못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에 선인들은 독서를 올바로 해야 제대로 된 인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남에게 알리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自己完成에 목표를 두었다.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공부를 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B.C.770-453) 역시 스스로를 닦아 사람다움에 이르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를 강조했음을 할 수 있다.
爲人之學은 자신을 닦는 공부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쓰임을 받기 위한 공부로, 정당화의 근거가 자기 밖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외재적 목적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취직도 잘 되고 봉급도 많이 받고,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식의 공부다. 이것이 爲人之學의 공부다.
이미 1,500년 전에도 공자는 자신을 닦는 공부보다는 세상에 나아가 인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움을 안타깝게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는 爲人之學의 공부에 치우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의 논리에 따른다면 전자는 내재적 목적(爲己之學)에, 후자는 외재적 목적(爲人之學)에 해당한다. 우리가 공자의 문제의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 교육에도 공자의 이상과 같은 교육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를 깊이 반성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자신을 닦은 공부라기보다는 세상에 나아가 인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다.
그래서 요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많이 배웠으나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인격 없는 지식인이다. 이런 경우는 사회의 큰 문제 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인재 양성을 위한 爲己之學의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나라의 장래와 후세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덕성을 갖춘 지성인들이 모여 이에 걸맞은 로드맵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국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공부를 강조했을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름을 알리기 위한 공부는 利(이)를 추구하는 존재가 되어 욕망의 노예로 전략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義(의)를 추구하는 존재라야 사람다운 사람, 즉 군자의 길을 갈 수 있고, 나라의 재목으로 쓰일 수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의(義)를 실천할 수 있는 학문을 하라. 는 것이 바로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익숙해질 때까지 읽고 다시읽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역사서를 단순히 읽어서 기억만 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편안함과 위태로움, 興亡과 盛衰(흥망과 성쇠), 존속과 멸망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교훈으로 삼아 사유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터득한 진정한 독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의 눈이 없으면 소신 없이 남의 말에 끌려다니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정의에 반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몰고 가게 되고, 불의한 민심과 부패한 권력이 중심이 되어 종국에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반대로 국민이 현명하고 지혜로우면 그 흐름을 지헤로운 눈으로 명확히 관찰하고 진단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일반 국민들이 事理와 道理에 밝으면 현상을 보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煽動者(선동자) 들의 권모술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이 권모술수를 부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을 현실에 맞게 적용해 본다면, 나라의 지도자 혹은 리더가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일 때 국민들의 귀감이 되어 지도자나 리더들을 신뢰하고 따르게 된다. 또한 이렇게 할 때 지도자의 모범적인 행동은 국민들의 풍속을 바꿀 수 있고 성인의 가르침은 천하 만백성에게 두루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문화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부인하고,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반성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대중에 영합하여 편 가르기(흑 아니면 백), 가짜 여론 조작으로 민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을 올바르지 못한, 자신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자들이 판을 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젊은 후세들이 배울 점이 전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잘못된 엉클어진 암흑 속의 정치 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올바르게 끌어 나가는 것도 바로 국민들의 몫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들도 위에 기술한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철저히 읽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