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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민주당, 코로나 빌미로 금권정치 門 열어젖히나
“서울시장이 되면 1호 결재로 서울시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블록체인 기반의 KS서울디지털화폐로 지급되는 보편적 재난지원 계획에 서명하겠다.”
3월 19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평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무슨 ‘막걸리 고무신 선거’를 연상케 하는 소리일까.
이 발언은 박영선 혼자만의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여당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또한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지난 3월 18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와 유튜브 채널 ‘이동형 TV’에 출연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민들에게 10만원씩 나눠 주겠다’는 것이었다. 축제 비용, 전시행정 비용, 불용액 등을 모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지도 않았는데 5차 재난지원금을 논의한다. 차등 지급으로 준비 중인 4차 재난지원금과 달리 5차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 지급도 가능하다고 운을 띄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재보선)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맥락상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없다.
더 놀라운 건 민주당 측에서 ‘10만원 매표 발언’에 대해 어떤 해명이나 변명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종의 ‘여당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치가 밥 먹여준다’ 같은 상투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매표 행위에 나서는 게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투표 거래에 반대하는 논증 3가지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가덕신공항특위 위원장이 3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 기술자문단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투표 거래가 잘못된 행위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정치인은 특히 그렇다. 정치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선거법과 국회법만은 통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매표 행위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돼있는 공직선거법 230조를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불법이니까 나쁘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 말이다. 표를 사고파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왜’ 나쁜가? 그렇게 본질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답을 찾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치만은 않다. 이 또한 나름 중요한 법적·정치적·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로스쿨 교수인 리처드 하센(Richard L. Hasen)은 2000년 발표한 논문 ‘투표 거래(Vote Buying)’에서 그 문제를 본격 탐구했다. 그에 따르면 투표 거래를 반대하는 논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불공정성. 투표 거래가 허용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게 표를 팔아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제도를 바꾸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져서 계속 표를 팔아야 한다.
둘째, 비효율성. 남의 표를 사서 투표권을 더 행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더 추구하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의 효용을 증가시킨다는 관점에서 볼 때, 누군가 남의 투표권을 구입하여 대신 행사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효용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표를 산 사람은 그렇게 얻은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보조금 등 사회 공공 자원을 오직 자신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양도불가능성. 투표권이 애초에 양도할 수도 매매할 수도 없는 권리라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투표는 금전적으로 환산 가능한 개인적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투표의 개념 정의 자체가 이미 ‘공적 행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투표권을 매매하는 순간 그것은 공적 행위에서 벗나버린다. 누군가가 투표권을 사고파는 것은 ‘투표’가 아닌 ‘투표의 왜곡’일 뿐이다.
가난한 이의 자유가 줄어든다!
▲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 정문에서 인근 주민센터 관계자들이 부산시장 보궐선거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뉴스1]
하센이 논문에서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세 가지 논증은 마치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에 대한 서양 철학의 관점을 자유주의, 공리주의, 공동체주의로 분류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주의자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타인의 자유 역시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가난한 이가 부자에게 투표권을 판매하는 일이 허용된다면 가난한 이의 자유는 한없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매표 행위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공리주의자에게 정의란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투표 매매를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여기 다른 사람의 투표권을 굳이 돈을 줘서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 설령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남의 투표권을 샀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결국 ‘초심’을 잃고 공공의 이익을 해치며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만다. 공리주의의 눈으로 보더라도 매표는 용납될 수 행위다.
공동체주의자는 정의와 도덕을 공동체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그런 면에서 투표권의 양도불가능성을 이유로 투표 거래를 금지하는 입장은 공동체주의와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투표 행위 자체가 공동체의 의사 결정일 뿐 개인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공동체주의를 전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쉽지 않은 내용이므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투표 거래는 나쁘다. 왜 나쁜가? 첫째,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을 더욱 가난하고 힘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투표 거래는 평등을 해친다. 둘째, 부유한 사람이 권력을 동원해 사회 전체의 부를 갉아먹으며 자신의 주머니를 챙기게 되므로 나쁘다. 투표 거래는 풍요를 해친다. 셋째, 투표라는 행위가 갖고 있는 본질적 속성,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숭고한 의식적 측면을 망가뜨린다. 투표 거래는 공동체를 해친다. 이렇듯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투표 거래는 허용될 수 없는 행위다.
역사적으로 투표라는 제도가 생긴 이래 투표 거래는 늘 존재해왔다. 앞으로도 완벽하게 근절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발 이번만은 ‘XX당’을 찍어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회유하고 읍소하고 다니는 그 모든 행위가 넓은 의미의 투표 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 어떤 공약이나 복지 혜택 등을 내거는 것 역시 투표 거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다. 가령 어떤 후보자가 누구에게 혜택이 될지 뻔히 짐작 가능한 법안이나 정책을 내세우면서 당선된다면 그것은 매표 행위라고 보아야 할까?
유의미한 약속과 매표 행위 사이198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브라운 대 해틀래지(Brown v. Hartlage) 사건에서 그 문제를 다뤘다. 판결문을 작성한 브래넌 대법관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이익을 안겨주겠노라는 공약을 투표 거래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고 봤다.
투표 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돼야 할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연방대법원은 “투표 거래는 사적 이익을 위한 불법 거래의 속성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그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공약을 내걸고 지키는 행위 자체를 법원에서 선제적으로 판단하고 금지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센의 논문에 인용된 판결문을 좀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후보자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공약을 내거는 행위에 대한 주 정부의 제한에 헌법적 한계가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공약은 합법적인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존재한다. 공약은 실로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을 끝까지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유지하는 것은 적법한 수단에 의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정부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 우리 헌법 체계의 근본적 원칙 중 하나다.’”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용이 아무리 황당해도 대중에 공공연히 발표된 공약이라면 상대 후보자에 의해 검증, 비판받을 수 있다. 따라서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명백히 유리한 공약을 내세운다는 이유만으로 매표 행위로 판단할 수는 없다. 법원·경찰 등이 먼저 나서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면 선거가 안 된다.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경찰 등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자, 현재 권력을 지닌 자가 훨씬 유리해진다는 뜻도 된다.
물론 모든 공약이 정당한 선거 행위이며 투표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투표 거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공약이 엄연히 존재한다.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사회 전체의 부와 풍요를 해치며,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그런 공약을 정치인들은 오직 당선을 위해 내걸곤 한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명백한 불법선거, 금권선거는 법의 힘으로 차단해야 마땅하다. 막걸리 나눠주고 고무신 돌리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5일 서울 장한평역 사거리에 서울시장 출마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하지만 선거 후보자나 정당이 제시하는 공약을 두고 매표 행위 여부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고 단속하기 시작하면 선거 제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공약의 탈을 쓴 투표 거래를 차단하는 것은 불법과 합법의 회색지대에 있다.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얼토당토않은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며 표를 구걸하는 이들을 상대방 후보자나 정당이 비판해야 한다. 유권자인 시민들은 그런 정치적 토론에 귀를 기울이고 현명하게 판단하며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공약이 유의미한 약속이 될지 아니면 평등과 풍요, 공동체를 해치는 매표 행위가 될지, 그 최종 결정권은 시민의 손에 쥐어져 있다.
‘If … then …’ 조건문 형식 현금 지원?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실망과 우려가 겹친다. 부산시장 재보선은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으로 사퇴하면서 치러지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은 박원순 전 시장이 성폭력을 저지른 후 경찰 조사도 해명도 없이 목숨을 끊어버린 탓에 치러지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박원순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나, 경찰 수사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 등을 놓고 볼 때 박 전 시장이 파렴치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만들었던 당헌대로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기어이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진지한 반성의 뜻을 밝히고, 또 권력을 쥐더라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의식적 변화를 논해야 마땅했다. 그것이 ‘제도화된 공론장’으로 선거를 올바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자신들에게 원죄가 있는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는 은근슬쩍 넘어간다. 대신 점점 더 나빠지는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선심성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면서까지 힘을 실어준, 심지어 국회에서 졸속으로 특별법을 통과시킨 가덕도 신공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표 거래를 비판하는 세 가지 논증에 따라 가덕도 신공항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가덕도 신공항은 10조원 이상의 정부 예산을 투입해 짓는 거대 공항이다. 그러나 경북 지역은 공약의 수혜지에서 벗어난다. 평등의 차원에서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미 해외 연구 용역을 통해 확인됐다시피 가덕도를 매립해 공항을 짓는 것은 예산의 효율적 활용과 거리가 멀다.
정부·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고 사전타당성 조사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담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유대감과 판단의 기준마저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이 또한 선거 공약이니만큼 단순한 불법 매표 행위와 동일시할 수야 없다.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이들, 혹은 신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을 테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좋은 공약’의 사례로 기억될 수는 없다.
“서울시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블록체인 기반의 KS서울디지털화폐로 지급되는 보편적 재난지원 계획에 서명하겠다”는 박영선의 발언은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을 입은 계층을 지원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경우라면 정확한 판단 근거와 목적에 따라 합리적으로 예산이 집행돼야 한다. 적어도 박영선이라는 후보자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는지 여부가 재정 정책의 실행 여부와 연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서울시장이 되면 10만원씩 주겠다’고, ‘If … then …’의 조건문 형식으로 현금 지원을 약속하는 행위를 투표 거래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야당의 헛발질문제는 결국 정치다. ‘어차피 선거용 공약이니까’, ‘내 지역구의 표심을 지켜야 하니까’라는 식의 핑계를 대며 민주당이 가덕도 특별법을 밀어붙일 때 동참했던 야당 의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코로나 위로금이나 재난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여야가 앞 다퉈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양상까지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박영선과 이해찬의 ‘투표 거래성 발언’이 중요한 토론 거리로 떠오르는 모양새도 아니다. 야당이 야당다운 기능을 못하다보니 여당 정치인들이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무릅써가며 돈을 뿌리고 표를 사려 드는 것이다.
민주당은 코로나를 빌미로 금권정치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유권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저 눈치만 보고 있는 듯하다. 정치가 이런 식이니 선거에 나오는 공약과 저질스러운 투표 거래의 구분마저 날로 희미해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국민 스스로의 선택뿐이다. 나와 이웃의 자유를 지키고, 사회 전체의 부와 풍요를 극대화하며, 공동체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함양하기 위해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까. 어떤 정당과 정치세력을 응징해야 할까. 최종적인 판단은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노정태 /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신동아 202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