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김형진
동네 앞들 논배미마다 벼이삭이 넘실거렸다. 이제 막 노랑방울이 든 벼이삭들이 한들거렸다. 이맘때쯤 참새들은 배가 고프다. 여름 타작은 끝이 난 지 오래고, 가을 타작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닭에게 주는 모이를 눈치껏 몇 알 훔쳐 먹다가 날카로운 부리에 쫒기고, 개밥구덩이를 넘보다가 우악스런 아가리에 혼쭐이 나 도망치기에도 신물이 났다. 황소의 콧바람을 피해가며 소구유의 찌꺼기 쪼기로는 감질이 났다. 그래서 참새들은 배가 고프다.
이때 쉽게 눈에 드는 것은 들에 그득한 벼이삭. 아직 다 여물지 않아 말랑말랑한 벼 낟알들이 넘쳐났다. 부리로 대강 훑기만 하면 입 안 가득 괴는 신선한 먹이. 그 먹이를 모른 체하기엔 참새들은 배가 너무나 고프다.
바야흐로 들은 사람들과 참새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의 '우여 우여', 잰걸음 치는 어른들의 '워― 워―', '쾅쾅쾅' , '딱 딱 딱' 소리에 귀청이 멍멍하고, 팔매채가 뿜어내는 흙덩이는 공중에서 난무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형편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멍석을 이루어 내놓고 논배미를 점령하려 하고, 한두 마리는 도둑처럼 숨어들어 이삭 훑을 기회를 노렸다. 사람이 방심하면 한 해 농사가 반 쭉정이가 될 판이요, 참새가 포기하면 쫄쫄 곯아 배에서 나는 '꼬로록' 소리를 못 면할 판이다. 그래서 초가을 들판에서는 앗기지 않으려는 사람과 앗으려는 참새 사이에 끈질긴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참새는 야생조류 중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사는 새이다. 둥지는 사람이 사는 초가 처마나 사람이 쌓아놓은 짚더미 속에 짓는다. 먹이도 타작마당에 흘린 낟알 위주이다. 닭이나 오리는 사람들이 모이를 주어 기르지만 참새는 사람 곁에 살면서도 늘 야생이다.
사람이 참새를 기르지 않는 것은 닭이나 오리보다 움직임이 잽싸고 몸집이 작아서일 것이다. 잡아 기르기도 사나울 뿐더러 설령 기른다 해도 채산이 맞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참새를 무시한다. 특별한 때가 아니면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른 체한다. 그러나 참새는 사람 곁에서 늘 명랑하다. 똥그란 눈, 매끈한 몸매, 포르르, 포르르 작은 날개, 그리고 종종종 피아노 소리가 날 듯한 모둠발걸음…. 이른 아침에는 빨랫줄에 모여 앉아 짹짹 맑은 소리로 사람들의 잠을 깨워주기까지 했다.
사람들도 참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채산이 맞지 않아 기르지 않고, 낟알 몇을 앗기지 않으려고 쫓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그 고기를 탐낸다. 봄이 사람들의 궁기窮期라면 겨울은 참새들의 궁기이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덮였을 때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을 쓸고 낟알을 뿌려놓은 암반 밑으로 들어간다.
한 손에 소주잔, 또 한 손에 참새통구이를 든 술꾼이 너스레를 떨었다.
"황소 머리에 앉은 참새가 소를 내려다보며 소리친데, 니 고기 열 점하고 내 고기 한 점하고 안 바꾸지."
옆에 앉아 잉걸불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참새를 들여다보며 꾼은 군침을 삼켰다.
아버지는 참새통구이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초가을 들판에서 참새들과 사람들의 싸움이 한창일 때에도 새보는 일을 게을리했다. 피땀 흘려 지어놓은 농사를 참새 떼가 다 앗아가는데도 게으름만 피운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떠밀려 들에 나갔다가도 아침나절 새참 때가 못 되어 들어오곤 했다.
참새들의 끼니때도 사람들 끼니때와 비슷한가 보았다. 자고 일어나 해가 뜰 무렵에는 아침끼니를, 해가 질 즈음이면 저녁끼니를 챙겼다. 사람과 다른 것은 점심을 챙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저녁에는 떼로 몰려든 새들과 사람들이 싸움을 벌여 야단법석이던 들판이 끼니때가 지나면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끼니를 미처 챙기지 못한 몇 마리 도둑 새가 슬그머니 숨어들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막을 지어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날도 아침에 들에 나간 아버지가 아침나절 새참 때가 못 되어 들어왔다. 집에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들어온 것이었다.
"도둑 새 입정이 얼마나 무선디, 그러고도 밥 안 굶는 게 참 용허요."
어머니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한 마디 던졌다.
"참새가 농사지었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