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마음의 확장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세 가지 의문>이라는 단편이 있다.
내용은 한 왕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그 의문이란
“모든 일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어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일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이 세 가지였다.
왕은 국사를 행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의문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데 자신이 없었다.
많은 학자들과 신하들이 갖가지 해답을 제시했으나,
마음을 흡족케 할 답은 없었다.
급기야 왕은 성자로 잘 알려진 산골의 은자를 찾아가 답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밭만 가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숲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년이 달려 나왔다.
왕은 자기의 옷을 찢어서 청년의 상처를 싸매 주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신하 중 하나였다.
그는 왕의 간호에 감격해 원한을 잊고 더 충성스런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다시 왕은 은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은자는 이미 해답이 나왔다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지막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은 베푸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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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었습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때나 사람이나 일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누리고 감사하기
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탐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만들어 가면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겁니다.
행복은 향수와 같다고도 말합니다.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멋진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되십시오.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 줍니다.
잘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습니다.
대단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줍니다.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생길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화합
야곱은 일생 도망자로 살다가 형 에서를 만나 용서를 받는다.
창세기 33장의 내용은 기적이다.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장면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탕자의 귀가’ 이야기와 맞먹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에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탈취한 동생 야곱을 20년 동안,
찾아다녔다.
그는 장정 400명을 데리고 동생을 죽일 작정이었다.
두 형제가 정작 얼굴과 얼굴을 맞대니, 미움은 사라지고 서로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웅켜 안고 엉엉 운다.
눈물은 용감한 자들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
야곱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 그의 발뒤꿈치를 잡아당기고 있는
죄의식이 햇볕 아래에서 눈이 녹듯 사라진다.
그는 그 전날 압복나루에서 과거의 자신과 밤새도록 분투하며,
허벅지가 부러진다.
씨름에서는 졌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자기발견을
위한 간절함에서 승리한다.
제2의 자아, 천사, 혹은 야곱의 무의식 속에서 소환되기만을
기다렸던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바꾼다.
그는 이제 ‘야곱’ 즉 타인, 특히 가족이나 친구의 발뒤꿈치를
잡아당기는 사기꾼이 아니라
‘이스라엘’ 즉 ‘신과 씨름하여 이긴 자’가 되었다.
야곱이 자신 안에 있는 과거의 야곱과 씨름하여 이겼기 때문에,
형 에서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만사가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변은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며, 심지어 야곱의 자녀들이 일생의 골치 덩어리들이다.
매일 매일 크고 작은, 특히 예상하지 못한 불행들의 연속이다.
유일한 행복은 그 문제들을 하나씩 풀려는 노력이며,
실패는 달걀과 같은 자신이 유일한 세계를 깨는 작업이다.
야곱은 승리는 패배로 가는 과정이며,
패배는 승리를 위한 준비라는 인생의 법칙을 이제 본격적으로
배운다.
이스라엘의 족장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각각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은유다.
아브라함은 안락한 고향을 떠나라는 소리에 복종한 인물로
‘소명召命’이다.
소명이란, 숨겨진 자신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민첩이며,
그 목소리에 복종하는 대담이다.
이삭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3일 동안 자신을 불사를
장작을 매고 산에 오른 인물이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두 번째 덕목인 ‘헌신獻身’이다.
헌신이란, 대의를 위해 자신의 정성을 바치는 행위다.
이삭을 통해 인간됨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이타심을 배울 수
있다.
유물론자들은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 유전자까지 철저하게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타적인 행위를,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계산하는 ‘호혜적 이타주의’라고 폄하한다.
이삭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 모습의 원형이다.
예수도, 인간에겐 구원이 있다면,
자신의 오래된 자아를 매달 십자가를 매일 다듬는 목수가 되어,
자신의 최선을 발휘하기 위해 감히 십자가에 스스로 달리는
일이다.
야곱은 소명과 헌신을 위한 신체, 마음, 영혼의 깨우침인 ‘각성覺醒’을 상징이다.
각성이란 잠자고 있는 정신을 일깨우는 운동이고, 존재한 줄로
모르는 영혼을 자신의 삶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와야 할 장소로 다시 오는 행위다.
야곱이 깨우쳤다고 영원한 지속적인 심신의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날 때보다 더 힘든 시련을 겪는다.
그 시련은 집안에서 온다.
인생에선 시련만이 평온과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이 선택한 야곱,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난 야곱의 삶을
한마디로 ‘파란만장波瀾萬丈’이다.
‘파란만장’이란 파도의 높이가 만장이란 뜻이다.
파도의 높이가 5미터가 넘으면 태풍주의보가 울린다.
한 장이 3미터니, 만장은 30킬로미터다.
우리가 탄 인생이란 조그만 배를 집어삼키려는 파도를 해쳐나갈
방안은 무엇인가?
그 파고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하는가?
작은 물고기가 아니라 큰 물고기가 변모해야한다.
대붕大鵬이 되어 파란만장을 딛고 일어나 궁극의 장소 저
남쪽에 있다는 푸른 바다로 갈 수 있다.
야곱의 파란만장한 삶은 라헬을 통해 얻은 자식인 요셉의 파란만장을 통해 펼쳐진다.
야곱은 다른 자식들로부터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들짐승에
잡아먹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셉이 파란만장한 삶은 야곱 이야기를 통해 완성된다.
야곱의 파란만장 이야기는 <창세기> 34장에 등장한다.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의 딸인 디나가 세겜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을 도시에서 드러내 거의 창녀처럼 돌아다니다,
세겜의 왕이 그녀를 눈여겨보고 겁탈한다.
세겜은 진실로 디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과 그녀의 오빠에게로 가서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게 허락해달라고 정식 청혼한다.
그 때 디나의 오빠들은 세겜의 젊은이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수술을 받는다면,
그들이 한 겨레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세겜은 디나를 진실로 사랑했기 때문에, 하몰과 세겜은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설득하여 할례 수술을 받게 만든다.
그때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수술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고 앓고 있는 세겜 젊은이들을 모두 처단한다.
이 일로 야곱은 가나안땅에서 입지가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파기하고 악의로 집단살인을 저지른 가문으로
낙인찍혔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미래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