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보는 강주리 해바라기
해바리기 시모음첨가
<해바라기 시 모음> 어느 사형수의 ´해바라기 꽃으로´ 외
+ 해바라기 꽃으로
혼신을 다해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랑 연못 위에 핀
작은 부용화처럼 정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울적함을 느낄 때마다 당신을 마주하는
해바라기 꽃으로 피게 하소서
나와 남이 다름을 늘 생각하고
항상 이웃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며 도우려는 고운 마음을
내려 주소서
울적함을 느낄 때마다 당신을 마주하는
해바라기 꽃으로 피게 하소서
행복감에 도취해 남의 고통을
못 볼까 두렵기만 합니다.
내가 행복할 때에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울적함을 느낄 때마다 당신을 마주하는
해바라기 꽃으로 피게 하소서
(어느 사형수)
+ 해바라기꽃
꽃밭도 텃밭도 아니다.
울가에 피는 해바라기,
모든 꽃들이 울안의 꽃밭을 연모할 때도
해바라기는
저 홀로 울 밖을 넘겨다본다.
푸른 하늘이 아니다.
빛나는 태양이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산과 들
그리고 지상의 인간,
신(神)은 머리 위에 있지만
인간은 항상 그 앞에 서 있다.
모든 꽃들이 다투어 위로 위로 꽃잎을
피워 올릴 때
앞을 향하여 꽃눈을 틔우는
해바라기,
흔히 꽃 같은 처녀라 하지만
해바라기는
인간이 피워 올리는 꽃이다.
(오세영·시인, 1942-)
+ 해바라기
자기 자신의 괴로움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원하지 않는 해바라기여
죽는 날까지
뱃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도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 해바라기여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 해바라기여
너 말라죽은 뒤에
누군가 잘못 알고
허리를 끊어가리라
너는 머리로 살지 않았으니
네 머리는 땅속에 있었으니
뱃속을 가득 채운 씨앗들이
너의 전철을 밟더라도
너의 고통을 답습하더라도
너는 평생 동안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먼 곳에
통증을 모셔놓고 살았으니
(이윤학·시인, 1965-)
+ 해바라기에게
해님의 얼굴은
보고 또 보아도
자꾸만 보고 싶어
어느새 키만 훌쩍 컸구나
해바라기야
해님의 음성은
듣고 또 들어도
자꾸만 듣고 싶어
귀를 너무 세우다가
머리까지 너무 무거워
고개를 떨구었구나
그래
옆 친구와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그리움이 하도 깊어
어느새 까맣게 가슴이 탔구나
해바라기야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해바라기 사랑
키를 높이 세워
발돋움하고
사랑을
그리움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늘 길 따라가는
너의 눈빛은
너의 얼굴은
태양의 얼굴조차 닮아 버린
태양의 빛깔조차 닮아 버린
그 뜨거운 사랑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한세월 바라보다 지쳐
애절하게 타 버린
너의 얼굴
눈빛과 눈빛의 사랑
빛의 입맞춤으로
그렇게 생을 끝내야 하는
하늘과 땅 사이
사랑은
너무나 먼 거리였구나
(박덕중·시인)
+ 해바라기의 시
사는 것이
지치고 힘겨울 때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한갓 안개 속의 풀잎처럼
숨고 싶어질 때에
어색한 변명도 위로도
내가 나를 설득할 수는 없고
불면의 밤만 깊어갈 때에
마음은 외딴 섬으로
망망대해를 부유할 때에
빗물은 차가운 뺨을 적시고
바람은 야위고 고단한 어깨를
이리저리 팽개칠 때에
당신의 얼굴만 바라보았어요
당신만 바라보았어요
아마 사랑이란 그런 것
내가 나에게 머물지 않는 것
마음은 진창을 밟고 있어도
시선은 태양을 향하는 그것
이보세요
눈물겨운 오늘도
당신 생각으로 저물어 가요
(홍수희·시인)
+ 해바라기집
詩를 써서, 만약에
돈을 벌게 되어 근교 어디쯤에 집을 사게 된다면
나는 마당에 뒤란에 담장 옆에
해바라기를 엄청나게 많이 심을 것이다 하여
이웃들이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잠깐 다니러 온 이들도 우리집을 보며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머리 희끗희끗한 내 처가 출퇴근하는 것을 보고는
논 건너 아랫마을 분이 ´저기 해바라기집 안사람이야´라고 소개하고
아들도 해바라기집 아들로 불리고
친정 나들이하는 딸도 해바라기집 딸로 불리고
가끔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외상 신세지는
동네구멍가게 장부에도 ´해바라기´로 적히도록
해바라기를 많이 아주 많이 심을 것이다
마당이 온통 노란 날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내 집에 처음 오는 이들도 버스기사에게
상갓집이라고 묻지 않고
해바라기집이 어디냐고 물을 수 있게
만약에 내가 詩를 써서 돈을 벌어…
(오철수·시인, 1958-)
+ 해바라기
아름다움만으로는 모자라
너는 그토록 많은 씨앗을 품고 있었구나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난해하다
신은 왜
태양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저렇듯 욕심 많은 여자로 만들어 놓았는지
해설핏한 가을 날
아름다움으로도
열매로도 온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쓸쓸한 논둑길을 혼자 걷고 있는 아내여
미안하다
약속인 듯 네 몸에 심어두었던
촘촘한 말들이 미안하다
(박남희·시인, 1956-)
+ 해바라기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
등 돌려 옆집 마당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말동무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내고 지주 세워주고는
이제나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린 터에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면서,
우리 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박성우·시인, 1971-)
+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가장 해에 가까울밖엔 없다.
둥둥 하늘 높이 홀로 솟아
일심으로 해만을 사모하는.
밤이면 말없이 돌아와 있다가도
첫 새벽빛을 받자마자
이미 해바라기는 시위를 떠난
화살, 땅 위엔 없다.
허지만 보라
서릿발 나린 시월 어느 아침
돌아온 해바라기 -
까맣게 타서, 여름의 종언인 양
땅 위에 깊숙이 드리운 결실.
그 황금의 햇살을 받아
온 여름내 해만을 사모하던 보람이 있어
씨마다 알알이 잉태한 해의
무게로 이렇게 떨어져 온 것이다.
해바라기의
고향은 하늘나라.
여름은 다시
땅에 묻히었던 씨 안의 해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시절.
밤이면 말없이 돌아와 있다가도
첫 새벽빛을 받자마자
이미 해바라기는
땅 위엔 없다.
(박희진·시인, 193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