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제에는 누룩과 꿀을 금지했는데, 오순절과 초실절에 누룩과 꿀을 허락하신 이유는?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성경 레위기 2장 11절을 보면 소제의 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그런데 오순절에는 “누룩에 넣어서 구운”(레 23:17) 두 개의 떡을 드렸다. 왜 소제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아야만 했는데, 오순절에는 누룩을 사용해도 되고,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에 꿀을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누룩은 성경 전체에서 부정한 의미로만 사용되었는가? 아니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사례도 있는가?
1. 소제에서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고 한 이유
1) 누룩은 외식과 죄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고전 5:8)에 대해 말한다.
2) 꿀은 부패와 육체의 정욕의 상징이다.
꿀은 누룩과 마찬가지로 발효시키는 데 사용하였고, 특히 식초를 만들 때 그러했다. 주석가들은 일반적으로 꿀을 육체의 정욕과 관련시키는데, 그것은 사실 기분에는 좋지만 부패의 요소를 함유하고 있어 영적 생명을 파멸시킨다.
3) 소제는 제물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강조하려는 제사였기 때문에 부정적인 누룩과 꿀을 금지했다.
4) 성경 전체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단 두 번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2. 오순절에 누룩이 들어간 빵을 드리도록 규정한 이유
1) 오순절은 첫 열매의 감사절
누룩이 포함된 빵을 드리는 것은 특별한 축제와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순절은 첫 열매의 감사절로, 이 때는 추수의 기쁨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꿀과 누룩이 제단에서 살라지지는 않았지만, 누룩을 첫 열매로 가져오도록 분명히 지시하였다(레 23: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레 23:17). 오순절은 첫 열매의 감사절로 지켰기 때문에 화목제와 같이 감사제로 드리는 제사였다. 성경에 단 두 번의 기록 중 오순절에 사용한 누룩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오순절에 사용된 누룩은 성령을 상징한다.
2) 오순절의 특수성
반면, 오순절(유대교에서는 샤부옷)에는 누룩을 넣은 두 개의 떡을 드리는 것이 규정되어 있다(레위기 23:17).
a. 초실절과의 연관성: 오순절은 추수의 절기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다. 이때 드리는 떡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고와 풍성한 추수를 상징한다. 누룩을 넣은 떡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적인 삶과 현실을 반영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과 모든 활동을 받으신다는 의미일 수 있다.
b.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통합: 누룩을 넣은 떡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순절에 누룩을 허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그들을 받아들이시고 축복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도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은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c. 구약의 예표: 오순절에 누룩이 허용된 것은 장차 올 성령 강림과 신약 시대의 교회를 예표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성령 강림 후의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여전히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소제에서 누룩과 꿀을 금지한 것은 제물의 순수성과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오순절에 누룩을 허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불완전함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상징적 행위와 더불어 초기교회 오순절 때 성령이 임할 것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3) 신약에서 누룩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유일한 구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이 비유에서 천국은 누룩으로 표현되었다. 겨자씨의 비유가 천국의 수적(數的) 성장을 나타낸다면, 누룩의 비유는 천국의 개개인 구성원들의 철저한 질적 성장을 나타낸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실제로 그 당시 비천한 갈릴리 출신의 추종자들은 단지 불학무식한 농부들과 어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거의 희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적인 구경꾼들은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간과한 것이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의 모든 부분에 퍼지듯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대로 변화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생애에 스며들 것이다. 구약 시대에 누룩은 악의 상징이었다. 누룩은 죄를 상징했기 때문에, 유월절 제사 전에 모든 누룩의 흔적이 모든 사람의 집에서 제거되어야 하였다(레 23:6). 그리스도 자신도 이러한 의미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라고 말씀했다(마 16:6, 12; 고전 5:6~8).
그러나 마태복음 13장 33절의 누룩의 비유에서 언급된 누룩이 죄를 상징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온 반죽에 누룩이 다 퍼지게 되”었다고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그의 나라가 완전히 악으로 물들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떡”은 파멸될 것이다. 더욱이, 똑같은 상징은 언제나 똑같은 뜻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예를 들어, 사탄(벧전 5:8)과 그리스도(계 5:5) 둘 다 사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옛 뱀(계 12:9)은 사탄을 상징한다. 놋뱀(민 21:9)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3장 33절의 누룩의 비유에서 언급된 누룩은 무엇을 상징할까?
엘렌 G. 화잇은 『실물교훈』에서 누룩을 “사람을 변화 시키는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때때로 누룩을 죄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유월절이 되면 사람들은 저희의 마음속에서 죄를 없이 하듯이 저희 집에서 모든 누룩을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고 경고하셨다. 사도 바울은 누룩에 대하여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고전 5:8)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주의 비유 가운데서는 누룩이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영혼을 소생시키고 동화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예시하고 있다.
이 능력이 역사할 수 없을 만큼 그처럼 극악하고 타락하고 저속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는 사람 속에는 새로운 생명소가 심어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써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능력을 갖지 못했다. 전적으로 밖에 있는 누룩을 가루에 넣어 섞지 아니하면 기대하는 변화가 생길 수 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죄인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차원 높은 모든 교양과 교육을 가지고도 죄인을 하늘의 자녀로 변화시킬 수 없다. 갱생시키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다.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은 성령의 역사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루 속에 넣은 누룩이 속에서부터 부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점차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역사도 먼저 마음속이 새로워짐으로 이루어진다. 외적인 개선만으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이런 악습, 저런 악습을 교정함으로 품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먼저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마음속에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이 먼저 변화되고 성화되어야 한다.”(실물, 95~97).
4) 히스기야가 드린 첫 열매들 가운데 꿀이 포함되어 있었다(대하 31: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대하 31:5)
역대하 31장 5절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에 관해 민수기 19장 12~18절과 신명기 18장 4절에 이렇게 나온다. 민수기 19장 12절의 “제일 좋은”은 문자적으로는 “기름”이다. 기름진 것은 음식이나 제물에서 부요함의 상징이었다(신 32:14; 시 63:5; 출 23:18; 29:13, 22; 삼상 2:15~16). 이것은 또한 한 나라의 가장 우수한 생산품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다(창 45:18). 여기서는 사용을 위해 가공되기 전에, 들에서 갓 나온 소산물들을 언급하고 있다. “첫 소산”은 아마도 시간적으로 처음 익은 농작물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나 이 말은 품질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성경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고 말한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는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은 첫 열매 중에서 “제일 좋은” 것(민 18:12) 혹은 “처음 익은”(민 18:13) 열매를 의미한다. “토지”의 수확 중 첫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처럼, 그리스도는 자신을 부활의 첫 열매로 아버지께 드렸다(요 20:17; 고전 15:20~23).
이제 민수기 19장 12~18절과 신명기 18장 4절을 함께 읽어보자.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서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처음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처음 태어난 부정한 짐승도 대속할 것이며 그 사람을 대속할 때에는 난 지 한 달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니라 오직 처음 태어난 소나 처음 태어난 양이나 처음 태어난 염소는 대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며 그 고기는 네게 돌릴지니 흔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같이 네게 돌릴 것이니라”(민 18:12~18).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신 18:4)
3. 결론
소제의 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레 2:11). 오순절에는 누룩을 사용해도 되고,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에 꿀을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상반된 규정은 그 목적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제나 번제나 속죄제에서는 제물의 순수성과 부패 방지가 강조되지만, 감사제(화목제)와 같이 축제의 의미를 지닌 제사에서는 풍요와 감사의 의미가 더 부각된다. 따라서 누룩과 꿀을 사용하여 특별한 의미와 감사의 표시로 드리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오순절은 첫 열매의 감사절로 지켰기 때문에 화목제와 같이 감사제로 드리는 제사였다. 성경에 단 두 번의 기록 중 오순절에 사용한 누룩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오순절에 사용된 누룩은 성령을 상징한다. 신약에서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 누룩의 비유를 사용하셨는데 그 누룩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한다(실물, 95~97).
요약하면 레위기에서 누룩과 꿀을 포함하는 이유는 제사의 종류와 그 목적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누룩과 꿀은 일반적인 제사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특정한 감사제(화목제)나 축제의 경우에는 풍요와 감사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오순절과 누룩의 비유에서 사용된 누룩은 성령을 상징한다.
성경연구 방법
1. 최소한 5개 이상의 역본을 비교 대조해 본다.
2. 성구사전이나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성경 구절에 나온 단어를 다 검색해 본다(예. 누룩, 꿀-긍정젓, 부정적인 면을 살펴본다).
3. 채널21을 통해 검증해 본다.
4. 엘렌 G. 화잇의 예언의 선물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 및 검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