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de the forest : 2024. 02. 17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한 대목, 떠나버린 님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한용운님의 시를 논할 위치는 아닙니다만, 단풍나무 숲 사이, 작은 길을 향해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경어체를 써서 그런지, 그 절절함이 극대화되고 절제된 슬픔마저 묻어나는듯합니다.
정맥-길의 즐거움, 이 또한 산-꾼들 인성이 커가는 한 계기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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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구간에 만나는 백월산은 393.6m, 지난구간에 만났던 백월산(570m)에 비해 현저히 낮은 산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비교로 급을 나누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봐야합니다. 바닷가 가까이 있는 산군들, 섬지방의 산들이 군락자체는 길지 않지만 해발고도는 제로(100m 이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산들의 연속, 그만큼 훼손 정도도 심합니다만 정맥-꾼들은 발걸음 가벼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쉽다는 표현은 아닙니다.
엊그제는 집근처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상단산성 연못에서도 역시 들었다는 분들 계시더군요.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바짝 와 있는듯하더니, 갑자기..?
산행시작, 들머리 논밭들은 얼어 있었습니다. 시린 손발을 열심히 움직여 열을 내야했습니다. 간만에 선·후미가 한데 뒤섞여 걷습니다. 앞서가던 선두팀들 작은 알바(?) 횟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늘어선 축사 사이로 마을길을 지나고, 불과 7~80m의 작은 야산 소로를 다닙니다. 이번구간도 지난구간과 마찬가지로 ‘산’이나 ‘봉’ 이름보다는 ‘고개’나 ‘재’ 이름이 더 많이 눈에 뜁니다. 그만큼 낮은 산들로 이루어진 구간이라는 뜻입니다.
▲ 마을길과 야산 (?) 을 지나는 대원들 모습 (2024. 2. 17)
낮은 산일망정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삼각점들도 있고 이정표들도 있습니다. 삼각점, 이정표의 의미? 그것은 바로 우리는 옳게 정맥-길을 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발바닥이 아플 지경이에요.’ 저를 비롯한 몇몇 대원들의 호소입니다. 콘크리트, 시멘트가 입혀진 길들 때문인데요. 역시 산-꾼들은 흙바닥을 밟아야 제격인가 봅니다.
▲ 백월산 (393.6m) 정상에서 보는 풍경 (2024. 2. 17)
백월산(393.6m)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서쪽으로는 멀리 태안반도가 보이고 가야산 가야봉(678m)이 보입니다. 물론 홍성 시내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난구간 후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금북정맥은 이제 금강의 수계를 버리고 북서진하는 중입니다.
“이후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금강과 상관없는 홍성과 서산을 지나 태안반도 안흥진으로 빠지는 산맥, 우리가 함께 가고자하는 길입니다.
- 금북정맥 9구간 후기 중에서“
백월산(393.6m), 금북정맥이 북서진을 시작하고 산다운 산으로 처음 만난듯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정맥-길 옆으로는 정상을 100여 미터 앞둔 지점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합니다. 사방이 트여 일몰과 일출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 예상 경로도와 트랭글 기록 ( 무봉님 트랭글 )
신풍고개, 생미고개, 아홉고개, 꽃조개고개, 하고개, 까치고개.. 등등, 산 이름이나 봉 이름은 없고 맨 고개이름들만 즐비합니다. 그렇다고 불만은 아닙니다. 하나하나 고개나 재를 지날 때마다 볼거리 또한 함께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꽃조개고개’를 지나면서 만나는 한용운선생의 생가와 동상인데요. 동상 앞 석판에 새겨진 ‘님의 침묵’ 시 한편, 감상할만합니다.
‘여기 소나무들은 이상해요.’ 듬직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묻던 어느 대원님, 그분께 ‘소나무 품종’이 어떻고 품종간의 교잡, ‘자연분화’는 어떻게 이어나고.. 자상히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나보다는 이번구간에서 만나는 장항선 철로, 도로를 지나면서 만나는 생태통로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이유, 정맥-길 종주는 알게 모르게 인간이 자연에게 저지른 폭력(?)의 상처들을 소상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예상 경로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남산(221m)을 지나면서 백월산(393.6m) 구간만 삐죽합니다. 룰루랄라 가다가 막판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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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역시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으로 마무리합니다. 요즘 연락이 통 안 되는 대원님이 계시다는 총무(화창한걸)님의 걱정, ‘큰일이야 있을까..?’ 내색은 않습니다만 공감 가는 부분 많습니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한용운 선생이 내다본 이별이 슬픈 이유입니다. 언제나 갑작스러움이 문제입니다. 연락두절, 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정맥-길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은 않습니다. 그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지기를 희망합니다(제가 아는 산우님들 전부..)
나머지 산행 기록은 영상으로 감상 바랍니다. 오늘은 갑작스런 연락 두절 대원님, 그리고 백두 산우님들을 위한 선곡입니다.^^
첫댓글 침묵이
또 연락두절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멋진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락두절 -> 침묵 -> 아프다는 소식...ㅜㅠㅠ
이케 될까봐 겁납니다.
ㅎㅎ, 괜한 노파심이죠???
@동가국산 아프다는 소식
이건 안해야할텐데... ㅎ
격무로(?)^^ 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산행으로 충전하여 빗방울 듣는 한 주일이 산뜻합니다. 정맥길에서 만난 인물 중 누구는 나라를 구하고 누구는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삶을 살다 갔는데 나는 무엇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 중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오래도록 산꾼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산행을 음미하게 해주시는 글쟁이님과 대원분들이 걱정하는 바가 우려에 지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시기입니다.
글쟁이 ᆢㅋ
산꾼이고 싶으신분들 공통적으로 건강하지요^^
격무(?)에 시달리고 산 타느라 시달리고ᆢ
피부관리 잘~ 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