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웅산이라는 째 즈 여가수의 방송 대담을 듣다가, " 심봉사가 젖동냥을 다닌다 " 는 한 마디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가슴에 쿵하는 충격을 받듯 놀랐습니다.
심청전.
우리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fiction - 假想의 효녀 이야기이지만, 어미를 잃은 갖난 딸아기를 목마르게,
굶길 수 없어 마을의 아기 엄마들을 찾아다니며 젖동냥을 하다.
번개 치는 순간에도 저의 생각은 ' 가난하여 대책이 없을 눈먼 홀아비가 핏덩이 같은 딸아기를 먹일 우유나 요즘 같은 분유를 살 능력이 전무하였을 터이고 그 옛날 무슨 구멍가게가 있을 리도 없었겠지.
때가 되면 울고 보챘을 아이를 안고 동네 출산부들을 찾아다니며 동냥을 구하면 부인들은 차마 거절을 못하고 몇몇 여인들이 며칠이나 하루, 이틀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젖을 물려주었겠구먼요.
아니 이것은 픽션인데 왜 이리 처절한 실감으로 술픔, 좌절과 감사가 복합적, 순간적으로 교차하나.
그렇게 눈먼 아버지의 젖동냥으로 성장한 심청이는 아버지의 깊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뱃사람들에게 바다 귀신을 달랠 投身 값으로 얼마를 받고 검은 바다로 뛰어든다.
아비의 눈을 뜨게 하고자.
누가 지은 스토리인지 모르지만 부녀간의 살신성인 애틋한 이 劇作을 뮤지컬, 오페라나 수준 높은 영상으로 제작할 사람들이 왜 없을까.
요즘은 오스카 상을 수상할 만큼 수준 높은 영상 제작자나
음향, 음악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는데.
세계가 놀랄만한 두어 시간짜리 大作 ! .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