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꿰뚫다.
20.설일체유부의 번뇌론 10 -35
15.대념처경의 법념처와 구사의 법념주
대념처경의 법념처 수행에 대하여 정리해 보세요
→<대념처경>의 법념처 수행은 몸과 마음의 행복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심리적 장애(오장五章)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시작된다. 오장은 음욕, 진심, 혼침과 무기력, 들뜸과 후회, 의심 등이다.
음욕은 부정관으로 다스리고, 진심은 자애관, 혼침과 무기력은 광명상과 살핌으로, 들뜸과 후회는 수식관으로, 의심은 법에 대한 관찰로 다스린다. 법에 대한 관찰은 앞에 말한 18계의 무상, 고, 공, 무아를 관하는 것이다. 이들의 본질은 주로 사혜(思慧)이고 그 결과로 삼매를 성취하게 된다.
법념처
1. 다섯 장애[오온]에 대한 알아차림
2. 다섯 집착된 온[오취온]에 대한 알아차림
3. 여섯 터전[육입처]에 대한 알아차림
4. 일곱 깨달음 요소[칠각지]에 대한 알아차림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의 법에 대한 알아차림
법념처의 법
법념처에서 법은 5개, 5온, 6처, 7각지, 4성제를 의미한다.
5개(오온)란 다섯가지 장애로서, 탐욕, 성냄, 나태와 졸음, 동요와 걱정 및 의혹을 말한다. 5온이란 다섯가지 쌓임이라는 뜻으로, 색수상행식을 말한다. 육처란 여섯가지 안팎의 기관(육처)를 말한다. 각 기관인 안이비설신의와 그 기관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 각 기관과 기관의 대상에 의해 생겨나는 번뇌를 말한다. 7각지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뜻으로 염각지, 택법각지, 정진각지, 희각지, 경안각지, 정각지, 평등각지를 말한다. 4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고집멸도를 말한다. 4성제는 특히 불교에서 가르치는 주요한 진리(현상의 이치)로서 궁극적으로 4념처 명상에서 체험적으로 깨달아야 할 대상이다.
<네이버, 위키백과에서 발췌>
사띠의 개념과 기능에 대하여 정리해 보세요
→느낌(수受), 생각(상想) 욕망(행行)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임과 동시에 윤회의 고통 속에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수상행을 가라앉혀 청정한 아는 마음과 분리하고, 수상행의 일어남과 사람짐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것을 ‘사띠’라고 한다. 이 사띠의 수행은 오염된 감성들의 발생과 사라짐,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지 않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몰입삼매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지켜보는 것의 기능은 분리이다. 아는 마음과 알려진 대상의 철저한 분리인 것이다. 시비 분별을 하게 하는 것은 알려진 대상(심소)의 기능이고, 그것에 집중하게 되면 다시 고락의 업에 떨어지기 때문에 대상을 지켜보고 분리하되, 생하고 멸하는 것을 바라봐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무상을 관한다고 하고 이 생멸하는 것에 대해서 ‘생할 때 사라지기를, 멸할 때 생하기를’ 바라면 에너지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를 고통이라고 한다. 생하고 멸하는 것은 존재한 것의 속성이며 다만 인연 따라 생멸이 나타날 뿐이고, 인연을 벗어난 실재가 없음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무아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오장이 다스려지면 6종 선정 중의 하나를 경험한다. 위빠사나 수행자에게는 찰라 삼매, 사마타 수행자에게는 5선중의 하나인 몰입 삼매이다.
6종 선종 중의 하나에서 오온을 바라보는 순서를 교재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세요
→6종 선정 중의 하나에서 오온을 바라보면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생과 멸,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몸의 생과 멸, 또한 4대로 이루어진 물질적 대상의 생과 멸, 이들의 접촉에 의한 느낌(수)의 생과 멸, 그러한 느낌을 이로움과 해로움으로 분별하고, 옳다 그르다고 판단함의 생과 멸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서 안다. 좋은 느낌이나 이롭다고 판단한 대상에 대하여 욕구가 발생하면 발생임을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아는 식이 발생하면 발생함, 사라지면 사라짐이라 봐서 알아차린다. 만일 이 생멸하는 상태를 보고, 생할 때 사라지기를 바라고, 멸할 때 생하기를 바라면 에너지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를 고통이라고 한다.
유신견이 사라지는 과정을 설명해보세요
→생하고 멸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의 속성이며 다만 인연 따라 생멸이 나타날 뿐이고, 인연을 벗어난 실재가 없음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무아이다. 이처럼 이 오온의 안과 밖, 그 어디에도 실재하는 나가 없다는 것을 보면 유신견이 사라지게 된다. 오온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면 무아이고, 대상이 스스로 존재함이 없음을 보면 공이 된다.
이와 같이 오온의 생멸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며 지켜보아 무상, 고, 무아, 공을 아는 것이 바로 오온을 법으로 관하는 것이라 한다. 법이라 하는 것은 심소를 바라보기 때문이고, 심념처에서 마음만 바라보는 것에 대비해서 법념처인 것이다.
5온 12처 18계를 관찰함과 찰각지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오온을 관하는 것은 자아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알았다 해도 삶의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 상태인 사랑과 미움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이 사랑과 미움의 대상은 주로 밖에 있고, 이들은 6가지 감각 기관을 타고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감각 기관을 잘 단속해야 한다. 그것을 12처와 18계를 관하는 것이라 한다.
눈이 대상을 볼 때 그것을 지켜보고, 귀가 대상을 들을 때 그것을 지켜본다. 코가 냄새를 혀가 맛을, 몸이 촉감을 경험할 때도 역시 지켜보아야 한다. 마음은 이것들을 지켜보고 알지만 이들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은 이들이 개념이고 비실재임을 알아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은 공하다고 한다. 이러한 오장, 오온, 12처와 18계를 관하여 사띠가 계발되어지는 과정을 7각지라 하고, 그 결과로 4성제에 대한 깨달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 사유 발표 토론 질문]
사띠는 무엇이며 경험한 사띠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사띠: 마음챙김
깨어있고 매순간 알아차린다.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뜻.
마음을 그대로 깨어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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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더하기
[불교와 심리치유] <11> 사띠와 심신건강
불교 수행을 전하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대념처경>을 들 수 있다. <대념처경>은 ‘사띠 확립에 관한 큰 경’이라는 의미이다. 경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수행에 있어 사띠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사띠의 번역은 ‘새김’ ‘알아차림’ ‘마음챙김’ 등 다양하다. 영어로는 ‘mindfulness’와 ‘awareness’fh 주로 번역된다. 사띠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기에 본 글에서는 번역하지 않고 ‘사띠’라고 적는다. 위빠사나와 같은 단어도 번역하지 않아 그 의미가 더 정밀히 전달되기에, 사띠와 같은 다의어도 번역하지 않고 원어를 쓰는 것을 제안해 본다.
사띠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에서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입멸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오 비구들이여! 이제 참으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모든 조건 지워진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불방일(不放逸)로 할 일을 성취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불방일로 해야 할 일을 성취하라’는 말씀에서 불방일은 게으르지 말라는 것이다. 게으름 없이 근면히 수행대상에 사띠를 잘 지니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사띠확립’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띠의 확립 혹은 사띠를 지님은 불교 수행의 핵심이고 부처님이 가장 강조하신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사띠라는 말의 어원을 보자면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온 단어이지만, 여기서 기억은 과거와 관련하여 이것저것 기억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상에 마음을 잘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대념처경>에서 말하는 사띠확립은 ‘대상에 꿰뚫고 들어가 밀착하여 머묾’이라 할 수 있다. 수행에서 사띠확립의 의미에 관해서 마하시 사야도는 “생겨날 때의 물질과 정신들을 그 성품과 특성, 그리고 무상. 고. 무아의 모습으로 알도록 사띠와 지혜를 통해 집중해서 아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띠 개념은 수행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사띠 개념을 세간의 일상 언어로 풀어보자면, 우리가 정신없이 허둥대고 갈피를 못 잡을 때 어른들이 “정신 바짝 차려라” 혹은 “정신줄 놓지 마라”등으로 일러주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정신 차리는 것’이 사띠와 그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정신줄 놓지 않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가는 것, 이것이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띠확립이 될 것이다.
서양의 학자들은 사띠(mindfulness)의 설명을 ‘자신의 의식을 지금, 이 순간의 실재에 대해 깨어 있게 하는 것, 비판단적으로 순간순간으로 열려진 경험의 자각, 지속적인 흐름으로 내부와 외부의 자극이 일어날 때 그것에 대해 비판단적인 관찰’등으로 적고 있다. 서구 학자들의 정의가 불교 사띠 정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의 몇 측면은 현대적 언어로 잘 풀어내고 있기도 하다. 서양 학자들의 사띠와 관련된 해석에서 중심적 내용은 ‘현재 순간에 비판단적인 주의 기울임’이다. 이것은 사띠라는 정신적 요소가 지니는 중요 측면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앞서 사띠 개념을 ‘일상에서 정신 차리고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우선 쉽게 이해된다고 했지만 여기서 ‘정신을 차림’은 항시 긴장을 놓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행위자인 자신과 객관 대상에 대해서 온전히 깨어 있으면 된다. <대념처경>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사띠확립과 관련한 가르침을 간략히 적으면 “숨을 들이쉴 때 들이쉰다고 안다. 숨을 내쉴 때 내쉰다고 안다. 갈 때 간다고 안다. 설 때 선다고 안다. 먹을 때 먹는다고 안다. 어떠한 느낌을 느낄 때 느낀다고 안다. 애착이 생겨나면 애착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낼 때 성냄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떠한 법이 생겨나면 이것은 어떠한 법이라고 안다”라고 가르치신다.
사띠확립이 여러 가지로 많은 듯 보이지만 경전에서 부처님은 사띠확립의 장소로 네 곳을 드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몸, 느낌, 마음, 법’이다. 이 네 가지에 대해서 “몸에 대해서 몸이라고 관찰하고, 느낌에 대해서 느낌이라고 관찰하고, 마음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관찰하고, 법에 대해서 법이라고 관찰하며 지내라”라고 가르치신다. 현재 생겨나는 법들에 대해 거듭 거듭 사띠를 확립하라는 것이다.
현재 생겨나고 있는 물질과 정신의 법들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이 어떤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겠느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를 더듬어보고 미래를 궁리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현재 생겨나고 있는 법들에 머무르지 못하면 끊임없는 상념과 번뇌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생각 병’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묵묵히 현재 생겨나고 있는 법들에 잘 머무르는 것만으로 일상의 많은 일이 해결될 수 있다.
생략
사띠가 지닌 효능을 경전과 논에서 살펴보면 사띠는 불선 마음을 억압한다. <밀린다 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사띠가 생겨날 때 그는 선한 업과 불선한 업, 비도덕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저열하고 고귀한 것, 더럽고 깨끗한 것들과 같이 대응하는 법들을 헤아리고 조사한다”라고 이것이 사띠가 가지는 잘 헤아리는 특성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견지의 특성을 지닌다. “사띠가 생겨나면 유익하거나 유익하지 않은 법들에 대해서 ‘이것은 유익한 법이다. 이것은 유익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다.’라고 조사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유익하지 않은 법은 버리고 유익한 법들은 취한다.”
이처럼 사띠 확립은 불선한 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고 유익한 법들을 생겨나게 한다. 또한 사띠를 지니는 것은 감각기관을 단속하는 것이다. 감각기능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눈, 귀, 코, 혀, 몸, 마노의 감각기능을 말한다. 눈으로 형상을 볼 때 눈의 감각기능을 잘 제어하는 것이 바로 사띠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감각기능을 사띠로서 제어해야 하는가?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불선법들이 물밀 듯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띠확립의 실천은 이처럼 많은 이익이 있다. 이것을 수행으로 꾸준히 이어간다면 좋은 결실이 있겠지만, 현대인에게는 실제 작용에 있어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일상에서 작은 것 하나 즉, 마음이 과거나 미래도 떠돌지 않게 하고, 단지 이 순간에 잘 머물게 하는 것도 하나의 실천이라 할 것이다. 탐욕이 생기면 그 순간에 탐욕이 생겨났다고 알고, 분노가 생겨나면 나에게 분노가 생겼다고 아는 것 이것이 생활 속 부처님이 가르치신 사띠확립의 실천으로 많은 이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심신의 건강을 얻기를 발원해본다.
[불교신문 3764호/2023/4/18] <현암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강사>
——-2567년 9월 12일 혜연 무구행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