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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2권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3. 초품 중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를 총괄해서 풀이함
이제부터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라는 것을 통틀어서 말하리라.
【문】 부처님들은 온갖 지혜[一切智]를 갖추신 분들이라 자연히 스승이 없으시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앉으며,
다른 이의 법을 받지 않으며, 다른 이의 법을 쓰지 않으며, 남으로부터 듣고서 법을 설하지 않으시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들었다 하는가?
【답】 그대의 말과 같이 부처님은 온갖 지혜를 갖춘 사람이어서 자연히 스승이 없으니,
다른 이에게 법을 듣고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불법은 부처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만이 아니라
온갖 세간의 모든 진실하고 착한 말씀이나 미묘하고 좋은 말씀은 모두가 부처님의 법에서 나온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니(毘尼) 가운데 “어떤 것이 불법인가?
불법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말씀하신 것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께서 직접 입으로 말씀하신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이요,
셋째는 선인(仙人)이 말씀하신 것이요,
넷째는 모든 하늘이 말씀하신 것이요,
다섯째는 변화한 사람[化人]이 말씀하신 것이니라”고 하셨다.
또한 『석제환인득도경(釋提桓因得道經)』1)에서 부처님께서 “교시가(憍尸迦)2)야,
세간의 진실하고 착한 말과 미묘하고 좋은 말은 모두가 나의 법에서 나왔느니라”고 하셨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모든 세간의 착한 말씀은
모두가 불법에서 나왔으니
잘 말씀하여 실수 없고 허물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라네.
착하고 허물없는 말씀이
다른 곳에도 있기는 하지만
일체가 모두
불법의 나머지라네.
외도들의 법에도
좋은 말씀이 있기는 하나
벌레가 나뭇잎을 먹다가
우연히 글자를 이룬 것과 같다네.
처음과 중간과 나중의 법들이
서로 부수고 있어3)
무쇠에서 금을 내려 함과 같으니
누가 능히 믿으랴.
냄새 나는 이란(伊蘭)4) 가운데
우두전단(牛頭栴檀)5) 같고
쓴 과일 가운데
맛과 빛깔 좋은 과일과도 같다네.
설령 믿는다 하여도
이 사람은 곧 믿기를
그렇게 좋은 말씀이
외도의 경전에서 나온다 하리라.
온갖 좋고 진실한 말은
모두가 부처님에게서 나왔나니
마치 전단향(栴檀香)이
마리산(摩梨山)6)에서 나옴과 같다네.
마리산 밖에서는
전단이 나오지 않듯
부처님을 제하고는
진실한 말씀을 할 이가 없다네.
또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함은
아난(阿難) 등 부처님의 큰 제자들의 말씀이지만 부처님의 법상이 들어 있기에 불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드실 때에 구이나갈국(俱夷那竭國)7)의 살라쌍수(薩羅雙樹)8)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하시고 누어서 열반에 드시려 했다.
그때 아난은 친척으로서의 애착을 아직 제거하지 못하고 욕망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마음이 근심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지 못했다.
이때 아니로두(阿泥盧豆)9) 장로가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부처님의 법의 창고[法藏]10)를 지킬 사람이다.
범부들과 같이 스스로가 근심의 바다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온갖 유위의 법은 모두가 무상한 모습이니, 그대는 너무 우울해 하지 말라.
또한 부처님께서 손수 그대에게 법을 전해 주셨거늘 그대가 지금 근심에 빠져버리면 맡은 바 소임을 잃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부처님께 이렇게 물으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우리들은 어떻게 도를 행해야 합니까?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욕을 잘 하는 차닉(車匿)11)과는 어떻게 함께 삽니까?
불경 첫머리에 무슨 말을 두어야 합니까?’
이렇듯 갖가지 미래의 일을 부처님께 물으라.”
아난이 이 말씀을 듣고 번민의 마음에서 조금 깨어나서 도력(道力)의 도움을 억념하고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누우신 평상 곁에 기대서서 위의 일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살아 있을 때나 내가 간 뒤에는 스스로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어떤 것을 비구가 스스로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는가?
여기에서 비구는 안의 몸을 관해 항상 한결같은 마음과 지혜로써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여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 밖의 몸이나 안팎의 몸을 관찰함도 또한 이와 같으며, 느낌ㆍ마음ㆍ법의 염처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비구가 스스로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고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오늘부터는 『해탈계경(解脫戒經)』12)이 큰 스승이니,
『해탈계경』에서 말씀하듯이 몸과 입의 업을 응당 이와 같이 행해야 하느니라.
차닉 비구는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범법(梵法)13)으로 다스리거라.
만일 마음이 누그러져 굴복하거든 『산타가전연경(刪陀迦旃延經)』14)을 가르쳐 주거라. 그러면 곧 도를 얻으리라.
또한 내가 3아승기겁(阿僧祇劫)15) 동안에 모은
법보장(法寶藏)16)은
그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어느 쪽,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의 숲 속에 계시면서’라고 이와 같이 하거라.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경 첫머리에도 모두 이런 말씀을 두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경 첫머리에도 모두 이런 말씀을 둘 것이며,
현재의 여러 부처님들께서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에도 이런 말씀을 하는 까닭이니라.
내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든 뒤에도 경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어느 때’라고 하거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로서
부처님께서 직접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하신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온갖 지혜를 갖추신 사람인지라 자연히 스승이 없는 까닭에
‘내가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스스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말씀하셨다면
아직 알지 못하신 바가 있는 것이 되므로 이는 힐난을 받게 된다.
아난이 부처님께 물으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말한 바로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함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불법을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마하가섭 장로 등 아라한들이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최초에 어디서 설법을 하셨는가? 어떤 법을 말씀하셨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국(波羅捺國)17) 선인들이 사는 사슴 숲[仙人鹿林]18)에 계시면서
다섯 비구들에게 고성제(苦聖諦)를 말씀하시니, 내가 본래부터 다른 이에게는 들은 적이 없는 법이었다.
가르침에 바르게 억념하노라니, 눈과 지혜가 밝아져 깨달음을 얻었다.”
이 경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여야 되겠으나 『집법경(集法經)』에서 이렇게 자세히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적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19)하고, 모든 강이 거꾸로 흐르고,
폭풍이 갑자기 일고,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모진 우레가 번개를 일으키고,
우박과 소나기가 다급히 떨어지고, 곳곳에 별이 떨어지고, 사자와 모진 짐승들이 포효하고,
하늘과 인간의 무리가 모두 크게 울부짖으면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심은 어찌 그리 빠르십니까?세간의 눈이 꺼졌도다’라고 말했다.”
이때 온갖 초목과 약수(藥樹)의 꽃과 잎이 일시에 찢어지고, 모든 수미산왕이 모두 기울어 흔들리고,
바닷물에는 파도가 솟구치고, 땅은 크게 진동하고, 산과 벼랑이 무너져 떨어지고,
모든 나무가 다급히 부러지고, 사방에서 연기가 일어나서 몹시 두려웠다.
둑과 강이 모두 흔들려 탁해지고, 혜성(彗星)이 낮에도 나타났으니,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고, 모든 하늘이 수심에 잠기고,
모든 천녀(天女)들이 두드러지게 오열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모든 학인들이 묵연히 침통해 하였고,
모든 무학(無學) 지위의 사람들은 유위의 법은 일체가 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하늘ㆍ사람ㆍ야차(夜叉)20)ㆍ나찰(羅刹)21)ㆍ건달바(犍闥婆)22)ㆍ견다라(甄陀羅)23)ㆍ마후라가(摩睺羅伽)24) 및
용 등이 모두 큰 근심에 빠졌으며, 아라한들은 늙음ㆍ병듦ㆍ죽음의 바다를 건너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미 범부가 애착[恩愛]하는 대하를 건너
노ㆍ병ㆍ사의 문서를 찢어버렸네.
이 몸은 4대(大)라는 뱀이 담긴 광주리
이제 무여멸열반(無餘滅涅槃)25)에 들리라.
모든 큰 아라한들이 제각기 마음대로 산ㆍ숲ㆍ개울ㆍ골짜기 등 곳곳에서 몸을 버리어 열반에 들었고,
그 밖의 아라한들은 허공을 날아서 사라져 갔다. 마치 기러기왕과 같았으니, 종종의 신통력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 한 뒤에 열반에 들었다.
이때 6욕천(欲天)26)에서 변정천(遍淨天)27)에 이르기까지의 무리들은 모든 아라한들이
다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부처의 해[佛日]도 사라졌고, 갖가지 선정ㆍ해탈ㆍ지혜를 갖춘 제자들의 광채도 사라졌다.
이 중생들에게 갖가지 음욕[淫]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의 병이 있는데 이 법의 약사들이
다 사라졌으니, 이제 누가 그들을 고쳐 주겠는가. 한량없는 지혜의 큰 바다에 피어난 제자 연꽃도
이미 말라 버렸고 법의 나무도 꺾어졌으며 법의 구름도 흩어져 사라졌다. 큰 지혜의 코끼리왕이
떠나자 아기 코끼리까지 따라 갔고, 법의 상인(商人)이 이미 떠났으니, 누구에게서 법의 보배를 구하리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했다.
부처님이 이미 영원한 열반에 드셨고
모든 번뇌를 멸한 무리들도 역시 사라졌다.
세계가 이렇게 텅 비어 지혜로운 이 없으니
어리석음이 늘어나고 지혜의 등불도 꺼지리.
그때 신들이 마하가섭의 발에 절하면서 게송으로 말했다.
어른께선 욕심ㆍ성냄ㆍ교만 모두 제하시고
그 형상은 자색의 황금 기둥[紫金柱] 같으시네.
위와 아래 단정하여 묘함이 견줄 이 없으시고
그 눈은 맑고 밝아 연꽃에다 견주리다.
이렇게 찬탄하고는 대가섭(大迦葉)28)에게 말했다.
“대덕 가섭이시여, 그대는 아십니까? 법의 배가 깨어지려 하고,
법의 성이 무너지려 하고, 법의 바다가 고갈되려 하고,
법의 깃대가 부러지려 하고, 법의 등불이 꺼지려 하고,
법을 연설하는 사람이 떠나려 하며,
도를 행하는 사람이 차츰 적어지고 악한 사람의 힘이 더욱 극성스러워지려 합니다.
마땅히 큰 자비를 베풀어 불법을 바로 세우셔야 합니다.”
이때 대가섭은 마음이 바다같이 맑아져서 요동함이 없이 한참을 있다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잘 이야기했다. 진실로 그대들의 말과 같다. 세간은 머지않아 어리석고 어두워질 것이다.”
여기에서 대가섭은 침묵으로 청을 받아들이니,
신들은 그의 발에 절하고 홀연히 사라져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대가섭은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찌하여야 이 3아승기겁에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법을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일을 알고 있다.
마땅히 수투로(修妒路)29)와 아비담(阿毘曇)과 비니(毘尼)를 결집30)해서 삼장(三藏)을 지어야 하리라.
그러면 불법이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을 것이며, 미래세의 사람들이 받들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세세(世世)에 애써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이 법을 배워 얻으시고
또한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셨기에 우리들도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선양하고 펼쳐야 되겠기 때문이다.’
이때 대가섭은 이런 생각을 마치자 바로 수미산 꼭대기에서 구리판[銅揵稚]31)을 치면서 게송으로 말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여,
부처님을 생각하신다면
그의 은혜에 보답할지언정
열반에 들려 하지 마시오.
이 판 소리와 대가섭의 말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울려 퍼져서
모두가 듣고 알 수 있었으며 신통을 얻은 모든 제자들은 모두 대가섭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이때 대가섭이 대중에게 고했다.
“불법이 멸하려 한다. 부처님은 3아승기겁 동안 갖가지로 애쓰면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을 배워서 얻으셨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그의 제자들로서 법을 알고,
법을 지키고, 법을 외우는 이들도 모두 부처님을 따라
열반에 들려 한다면 미래의 중생들이 매우 가엾다.
지혜의 눈을 잃어 어리석은 소경이 되리라.
부처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셨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해 모름지기
경장이 완전히 결집되기를 기다립시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의사를 좇아 멸도 하도록 합시다.”
모여든 대중들은 모두 분부를 받고 머물러 있었다.
그때 대가섭이 천 사람을 선정하니,
아난을 제하고는 모두가 아라한으로 6신통을 얻었고 공해탈(共解脫)32)과
무애해탈(無礙解脫)33)을 얻었다. 모두 3명(明)34)을 얻고 선정이 자재로우니,
거꾸로 들거나 혹은 순서대로 드는 등 모든 삼매를 행함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다.35)
삼장을 읽어 외우고 안팎의 경서를 알아 외도들의 열여덟 가지 대경(大經)도
모두 읽어서 알았으며, 모두 토론으로써 외도[異學]들을 다 항복시켰다.
【문】 그런데 이와 같은 아라한이 무수히 많았거늘 어찌하여 천 사람만을 선정하고 더 선정하지 않았는가?
【답】 빈바사라36)왕(頻婆娑羅王)이 도를 얻었을 때 8만 4천의 관속(官屬)들도 각각 도를 얻었다.
이때 왕은 궁중에다 칙령을 내려 항상 밥을 마련해 놓고 천 사람에게 음식을 공양했는데
아사세(阿闍貰)37) 왕도 이 법을 끊지 않고 시행했다.
이때 대가섭이 생각했다.
‘우리들이 항상 걸식만 하다가는 외도가 와서 억지 질문을 펴서 법사(法事)38)를 폐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왕사성(王舍城)에서 항상 밥을 베풀어 천 사람에게 공양하고 있으니,
여기에 머물면서 경장(經藏)을 결집하면 되리라.’
이 때문에 천 사람만을 선정하고 더 선정하지 않았다.
이때 대가섭은 천명의 사람이 함께 왕사성 기사굴산(耆闍崛山)39)으로 와서 아사세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밥을 날마다 보내 주시오. 우리들은 지금부터 경장을 결집하므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안거(夏安居)40)에 들기를 석 달,
첫째 달 보름날 계를 설할 때에 화합승이 다 모이니,
대가섭이 선정에 들어가서 천안(天眼)으로써
이 대중 안에 번뇌가 다하지 못해서 쫓아내야 할 자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니,
오직 아난 한 사람만이 다하지 못했고 나머지 999명은 모든 누가 이미 다하여 청정무구(淸淨無垢)했다.
대가섭은 선정에서 일어나서 대중 가운데서 손수 아난을 끌어내면서 말했다.
“이제 청정한 대중이 모여서 경장을 결집하려는데 그대는 번뇌[結]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니,
여기에 머무르지 말라.”
그때 아난은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25년 동안 세존을 따라다니면서 좌우에서 시봉을 했어도
이러한 괴로움을 당한 적은 없었다. 부처님은 실로 대덕(大德)이시니, 자비롭고 인자하셨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는 대가섭에게 말했다.
“내가 도를 얻을 힘을 갖춘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부처님들의 법에 아라한이 된 이는
좌우에서 심부름을 하는 시봉을 시킬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번뇌를 남겨 두고 다 끊지 않았을 뿐입니다.”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그대에게는 또한 죄가 있다.
부처님의 뜻에는 여자의 출가를 허락하실 생각이 없었는데 그대가 간곡히 권해서 도에 들어오도록 했다.
그 까닭에 부처님의 정법은 5백 년으로 쇠미(衰微)해지니,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突吉羅)41) 죄이다.”
아난이 말했다.
“나는 구담미(瞿曇彌)42)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3세의 부처님 법에 모두 가까이하중(部衆)43)이 있는데
어찌 석가모니부처님[釋迦文佛]44)에게만 없을 수 있겠습니까?”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구이나갈성(俱夷那竭城)45) 근처에서 등창[脊痛]이 나셔서
구다라승(漚多羅僧)46)을 네 겹으로 포개고 누워서 그대에게 물을 달라 하셨는데 그대는 드리지 않았다.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 죄이다.”
아난이 대답했다.
“그때에 5백 대의 수레가 물을 건너면서 물을 흐렸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뜨지 못했습니다.”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설사 물이 흐렸더라도 부처님은 큰 신통력이 있으셔서 큰 바다의 탁함이라도 맑힐 수 있으시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떠다 드리지 않았는가? 이것이 그대의 죄이다. 그대는 가서 돌길라죄를 참회하는 의식을 하라.”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그대에게 ‘어떤 사람이 4신족(神足)47)을 잘 닦는다면 수명을 한 겁 동안 머물게 하거나
혹은 한 겁을 줄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4신족을 잘 닦으신 분이기에 수명을 한 겁 동안 머물게 하거나
혹은 한 겁을 줄이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48) 그대는 묵묵히 대답치 않았다.
이렇게 세 차례나 거듭 말씀하시었거늘 그대는 세 차례 다 묵묵히 대답치 않았다.
그대가 만일 부처님께 대답했다면 부처님께서는 4신족을 잘 닦은 분이시니
틀림없이 한 겁 동안 머무셨거나 혹은 한 겁을 줄이셨을 것이다.
그대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찍 열반에 드셨으니,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죄이다.”
아난이 말했다.
“마(魔)가 저의 마음을 가렸기에 말하지 않았던 것이지 나쁜 생각 때문에 부처님께 대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그대가 부처님의 승가리를 개어 드릴 때 발로 그 위를 밟았으니,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죄이다.”
아난이 말했다.
“그때 큰 바람이 불었는데 아무도 내가 옷 개는 일을 돕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때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와서 내 발 밑에 떨어진 것이지 제가 공경하지 않기에 부처님의 옷을 밟은 것은 아닙니다.”
대가섭이 또한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음부의 모습[陰藏相]을 여자들에게 보였으니,
이게 무슨 창피한 짓인가? 이것이 그대의 돌길라죄이다.”
아난이 말했다.
“그때 내가 만약에 여자들이 부처님의 음장상을 본다면
문득 자신들의 여자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자로 태어나기를 원해
부처님의 상호를 닦아 복덕의 뿌리를 심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여자들에게 보였을 뿐이지 창피한 줄 몰라서 계법을 파한 것이 아닙니다.”
대가섭이 다시 말했다.
“그대에게는 여섯 가지 돌길라죄가 있다. 모두를 대중에게 참회하라.”
아난은 승낙을 하고 대가섭 장로와 대중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때 아난이 무릎을 끊고 합장한 채 오른 어깨를 걷어 올리고 신을 벗었다.
그리고 여섯 가지 돌길라죄를 참회하니,
대가섭이 대중 가운데서 손수 아난을 끌어내면서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누(漏)49)를 다 끊은 뒤에야 들어오라.
번뇌[結]를 다 끊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는 손수 문을 닫아 버렸다.
이때에 아라한들이 의논했다.
“누가 비니(毘尼) 법장(法藏)을 결집할 수 있을까?”
아니로두 장로가 대답했다.
“사리불(舍利弗)은 제2의 부처님으로서 훌륭한 제자가 있으니
이름이 교범파제50)(憍梵波提)진나라 말로는 우사(牛呞)이다 로,
부드럽고 온화하고 우아하며 항상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하고 비니법장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천상의 시리사수(尸利沙樹)51) 동산에 계시니 사람을 시켜 그를 청해 오십시오.”
대가섭이 아래에 앉아 있던[下座] 비구에게 분부했다.
“그대가 대중의 심부름을 하라.”
아래에 앉아 있던 비구가 물었다.
“무슨 심부름입니까?”
대가섭이 말했다.
“그대는 천상의 시리사수 동산에 계시는 교범파제 아라한이 계신 곳으로 가거라.”
그 비구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대중의 칙명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대가섭에게 물었다.
“제가 교범파제 아라한에게 가서 무엇이라 하오리까?”
대가섭이 말했다.
“가거든 교범파제에게 ‘대가섭 등 누가 다한 아라한들이 모두 염부제에 모였다.
대중에 큰 법사(法事)가 있으니 그대는 속히 이리로 오라’고 하라.”
그 아래에 앉아 있던 비구는 고개를 숙여 대중의 발에 대어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더니
마치 금시조(金翅鳥)52)처럼 허공을 날아서 교범파제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머리 숙여 절하며 교범파제에게 말했다.
“부드럽고도 착하신 대덕이시여, 욕심 적으시고 만족함을 아시면서 항상 선정에 계시는군요.
대가섭께서 문안하시고 또한 말씀을 전하시되 ‘지금 대중에 큰 불사가 있으니 속히 내려오셔서
뭇 보물의 무더기를 보라’고 하십니다.”
이때 교범파제는 궁금한 생각이 일어나 그 비구에게 물었다.
“대중의 싸움을 그치려 나를 오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가?
혹은 승단을 파괴하는 자가 생겼거나,
혹은 태양과 같은 부처님[佛日]께서 열반에 드시어 멸도하신 것은 아닌가?”
그 비구가 대답했다.
“실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대사(大師)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미 멸도하셨습니다.”
교범파제가 말했다.
“부처님의 열반은 너무나 빠르시구나. 세간의 눈이 꺼졌도다.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리시던 장수인 나의 화상(和上)53) 사리불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벌써 열반에 드셨습니다.”
교범파제가 말했다.
“법장(法將)이신 대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계시니 어찌하랴.
마하목건련54)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 비구가 대답했다.
“역시 멸도 하셨습니다.”
교범파제가 말했다.
“불법이 흩어지려는가. 큰 사람이 떠나버렸구나. 중생들이 불쌍하도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아난 장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비구가 대답했다.
“장로55) 아난께서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시자 슬픔과 근심으로
눈물 흘리며 미혹한 채 번민할 뿐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56)
교범파제가 말했다.
“아난이 오뇌하는 것은 애착의 번뇌가 남아 있어서
이별에 따라 생기는 괴로움이다. 라후라(羅睺羅)57)는 어찌되었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라후라는 아라한의 경지를 얻은 까닭에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오직 모든 법의 무상한 모습만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교범파제가 말했다.
“끊기 어려운 애욕을 이미 끊었으니,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이다.”
교범파제는 다시 말했다.
“나는 애욕을 여읜 스승을 잃었는데 이 시리묘수 동산에 머물러 무엇 하겠는가.
나의 화상이나 큰 스승께서 모두 멸도 하셨으니,
나는 이제 다시 염부제로 내려갈 수도 없다. 차라리 여기에 머물며 완전한 열반에 들자구나.”
이와 같이 말하고는 바로 선정에 들어 허공 속으로 몸을 솟구쳐 광명을 뿜었다.
또한 물ㆍ불을 내뿜거나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기도 하는 등 갖가지 신변을 드러내고
마음으로 불을 내어 몸을 태웠다. 그리고는 몸에서 물을 내어 사방으로 흘려보내니
대가섭이 있는 곳에까지 이르렀다. 물속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울려 나왔다.
교범발제(憍梵鉢提)는 머리를 조아려
묘한 대중, 으뜸가는 대덕승께 예배합니다.
부처님의 멸도를 듣고 나 또한 따라가오니
마치 큰 코끼리가 떠나자 새끼도 따라가듯 하나이다.
그때 아래 비구는 교범파제의 의발(衣鉢)을 거두어 대중에게로 돌아왔는데
그동안 아난은 모든 법의 실상을 생각하면서 남은 번뇌가 다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날 밤 좌선하고 경행하면서 간절히 도를 구하였으나,
아난은 지혜는 많으나 선정의 힘[定力]이 적었기 때문에 당장에 도를 얻지 못했다.
선정과 지혜가 균등한 자만이 신속히 도를 얻는 것이다. 늦은 밤[後夜]에 피로가 극심하여
잠시 누우려고 머리를 베개에 대려는 찰나에 활짝 깨달으니, 마치 번갯불에 소경이 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아난은 이와 같이 금강정(金剛定)에 들어가서 온갖 번뇌의 산을 무너뜨리고,
3명(明)58)과 6신통과 공해탈59)을 얻어 큰 힘을 지닌 아라한이 되었다.
그날 밤 승당으로 가서 승당문을 두드리면서 부르니,
대가섭이 물었다.
“문을 두드리는 이가 누구시오?”
아난이 대답했다.
“아난입니다.”
대가섭이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왔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나는 오늘 밤에 모든 누가 다하였습니다.”
대가섭이 말했다.
“그대에게 문을 열어 주지는 않겠다. 그대가 열쇠구멍[鑰孔]으로 들어오라.”
아난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신통력으로 열쇠구멍을 통해 들어가서 대중[僧]의 발아래 절하고 참회하면서 말했다.
“대가섭이시여, 더 이상 질책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대가섭은 손수 아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짐짓 그대를 위해, 그대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하고자 했느니라.
그대는 나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나 역시 그대가 증득한 바와 같으니,
마치 손으로 허공을 만지는 것 같아서 집착할 바가 없다.
아라한의 마음도 그러하여서 모든 법에 집착할 바가 없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라.”
이때 대중들이 다시 의논했다.
교범파제는 이미 멸도 했으니, 다시 누가 법장을 결집할 수 있을까?”
아니로두 장로가 말했다.
“이 아난 장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설법을 들어 잘 지니었으므로 부처님께서도 항상 칭찬하셨다. 이 아난이 경장을 결집하리라.”60)
이때 장로인 대가섭이 아난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법장을 지니라고 위촉하셨으니,
그대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라.
부처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면서 설법을 하셨는가?
부처님의 큰 제자들로서 법장을 수호할 만한 이는 모두 멸도 하셨다.
이제 오직 그대 한 사람뿐이니,
그대는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뜻에서 부처님의 법장을 결집하라.”
이때 아난이 대중에게 절하고 나서
사자좌[師子床]61)에 앉으니,
대가섭은 이렇게 게송으로 말했다.
부처님은 거룩하신 사자왕이시고
아난은 부처님의 아드님으로
사자좌에 올라 앉아 있으나
대중을 살펴봐도 부처님은 계시지 않네.
이와 같은 대덕의 무리도
부처님이 없으시매 위신력을 잃었도다.
마치 허공에 달이 없을 때
별만으로는 장엄스럽지 못함과 같구나.
그대의 대지인(大智人)께서 하신 말씀
그대 부처의 아들이여 연설하시라.
부처님이 어디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셨는지
이제 그대는 마땅히 드러내 보이라.
이때 장로 아난은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쪽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최초에 설법하신 때
그때에 나는 보지 못하였거니와
이와 같이 전해들은 바로는
부처님께서 바라내(波羅柰)에 계시면서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최초로 감로의 문을 여시어
4제(諦)의 법을 연설하시니,
고ㆍ집ㆍ멸ㆍ도62)의 진리라네.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63)가
최초로 견도(見道)를 얻었고
8만의 하늘 무리들까지도
모두가 도적(道跡)64)에 들어갔다네.
이때 모였던 천 명의 아라한들은 이 말을 듣자
허공으로 날아 일곱 개의 다라수(多羅樹)65) 높이까지 올라가더니 입을 모아 말했다.
“애달프다. 무상(無常)의 힘이 크구나.
우리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눈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내가 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했다.
내가 부처님의 몸매를 뵈오니
마치 자줏빛 금산[紫金山] 같더라.
묘한 상호ㆍ뭇 공덕이 사라지시고
오직 이름만이 오롯이 남아 계신다.
그러므로 방편을 써서
삼계66)를 벗어나기 소원하여라.
모든 선근 부지런히 모아야 하니
열반은 가장 즐거운 일이라네.
그때 아니로두 장로가 게송으로 말했다.
애달프다, 세간은 무상하여서
물속의 달 같고 파초와 같도다.
공덕이 삼계에 가득하시더니
무상의 바람결에 파괴되었네.
그때 대가섭이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무상의 힘이 매우 커서
어리석건 지혜롭건 가난하건 부귀하건
도를 얻었건 아직 얻지 못했건
아무도 면할 길 없어라.
교묘한 말재주가 묘한 보배 아니요.
속임수나 힘으로 다툴 바도 아니니,
불이 만물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무상의 모습은 언제나 그러하다네.
대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전법륜경(轉法輪經)』67)에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68)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아서 네 가지 아함(阿含)을 지으니,
『증일아함(增一阿含)』ㆍ
『중아함(中阿含)』ㆍ
『장아함(長阿含)』ㆍ
『상응아함(相應阿含)』69)입니다.
이것을 수투로법장(修妒路法藏)70)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아라한들이 다시 물었다.
“누가 명료히 비니(毘尼) 법장을 결집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대답했다.
“장로 우파리(憂婆離)71)는 5백 아라한 가운데서 지계제일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그를 청합시다.”
그리고는 곧 우파리에게 청했다.
“그대는 일어나 사자좌에 앉아 설하도록 하십시오.
부처님은 어디에서 처음으로 비니결계(毘尼結戒)를 말씀하셨습니까?”
우파리가 대중의 청[敎]을 받고 사자좌에 앉아서 말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72)에 계셨다.
그때에 가란타(迦蘭陀)73) 장자의 아들인 수제나(須提那)74)가 처음으로 음행을 저질렀는데,
이 인연으로 처음으로 대죄(大罪)가 결정되었다.
250계를 3부(部)로 나누어
7법(法)ㆍ
8법(法)ㆍ
비구니의 비니증일(毘尼增一)ㆍ
우바리문(憂婆利問)75)ㆍ
잡부(雜部)ㆍ
선부(善部)가 만들어지니,
이와 같이 해서 80부의 비니장(毘尼藏)이 만들어졌다.”76)
아라한들이 다시 생각했다.
‘누가 명료히 아비담장(阿毘曇藏)을 결집할 수 있을까?’
그들은 다시 생각했다.
‘장로 아난은 5백 아라한 가운데서 수투로(修妒路)77)의 이치를 이해하는데 제일이다.
우리들은 지금 그를 청하리라.’그리고는 청해 말했다.
“일어나서 사자좌에 앉으십시오.
부처님은 어디에서 최초의 아비담을 말씀하셨습니까?”
아난은 대중의 청을 받고 사자좌에 앉아서 말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바제성(舍婆提城)78)에 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과 다섯 가지 죄[五罪]와 다섯 가지 원망[五怨]이 있으니,
이를 제거하고 멸하지 않으면 이 까닭에 이 생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후세에는 악도(惡道)79) 가운데 떨어진다.
모든 유의 이러한 다섯 가지 두려움ㆍ
다섯 가지 죄ㆍ
다섯 가지 원망이 없으면
이로 인해 금생에서 몸과 마음으로 갖가지
즐거움을 받고후세에는 천상의 즐거운 곳에 태어난다.
무엇이 멀리 여의어야 할 다섯 가지 두려움인가?
첫째는 살생이요,
둘째는 훔치는 일이요,
셋째는 삿된 음행이요,
넷째는 망어요,
다섯째는 음주이다.”
이러한 것들을 아비담장이라 한다.
세 법장을 결집해 마치니,
하늘ㆍ귀신ㆍ용ㆍ천녀 등이 갖가지로 공양하고,
하늘의 꽃ㆍ향ㆍ번기ㆍ일산ㆍ하늘옷을 내렸으니,
법에 공양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하리라.
세간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삼장을 결집해 마치노라.
10력(力)과 일체지(一切智)께서 말씀하신 지혜는 무명의 등불이라네.
【문】 8건도아비담(犍度阿毘曇)80)과 6분아비담(分阿毘曇)81) 등은 어디서 나왔는가?
【답】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법을 어기거나 등지는 일[違錯]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처음으로 법을 결집할 때 역시 부처님 생존 시와 같았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100년 만에 아수가(阿輸迦)82)라는 왕이 있어
반사우금대회(般闍于瑟大會)83)를 열었는데, 이때 모인 여러 대법사들의 논의에 의해 다른 부(部)84)의 이름이 생겼다.
이로부터 차츰차츰 전해져서 가전연(迦旃延)85)이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도인에 이르렀다.
그는 지혜롭고 예리해 삼장과 안팎의 경서를 모두 읽고는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발지경팔건도(發智經八揵度)』86)를 지으니, 초품(初品)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법이었다.
그 뒤에 여러 제자들이 『팔건도』를 다 알지 못하는 뒷사람들을 위해 『비바사(鞞婆娑)』87)를 지었다.
어떤 사람은 “6분아비담(分阿毘曇)88) 가운데
제3분(分)의 8품은「분별세처(分別世處)」[이것은 곧 『누탄경(樓炭經)』89)으로
여섯 구분 가운데 제3분을 이룬다.]라고 이름하는데,이것은 목건련이 지은 것이다.
6분 가운데 초분의 8품 중 4품은 바수밀(婆須蜜)90)보살이 지은 것이요,
나머지 4품은 계빈(罽賓)91)의 아라한이 지은 것이다.나머지 5분은 다른 논사들이 지은 것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 생존 시에 사리불이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아비담(阿毘曇)을 지었는데,
나중에 독자부의 도인[犢子道人]들이 읽고 외어 오늘에 이르면서 『사리불아비담(舍利弗阿毘曇)』92)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마하가전연93)이 부처님 생존 시에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곤륵(昆勒)94
)[곤륵은 진나라 말로는 협장(篋藏)이다.]을 지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천축에 퍼지고 있으니,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이하기 위한 것이다.마치 5계(戒)를 설명함에 있어
몇은 색이 있고 몇은 색이 없으며,
몇은 볼 수 있고 몇은 볼 수 없으며,
몇은 대할 수 있고 몇은 대할 수 없으며,
몇은 유루(有漏)이고 몇은 무루(無漏)이며,
몇은 유위(有爲)이고 몇은 무위(無爲)이며,
몇은 과보가 있고 몇은 과보가 없으며,
몇은 착하고 몇은 착하지 않으며,
몇은 유기(有記)이고
몇은 무기(無記)95)이다라고 함과 같으니, 이러한 것들을 아비담이라 한다.”
또한 7사(使)란
욕염사(欲染使)ㆍ
진애사(瞋恚使)ㆍ
유애사(有愛使)ㆍ
교만사(憍慢使)ㆍ
무명사(無明使)ㆍ
견사(見使)ㆍ
의사(疑使)96)이니,
이 7사는 몇은 욕계의 번뇌[繫]이고
몇은 색계의 번뇌이고
몇은 무색계97)의 번뇌이며,
몇은 견도위에서 끊고[見諦斷]
몇은 수도위에서 끊고[思惟斷]
몇은 견고의 지위에서 끊고[見苦斷]
몇은 견집의 지위에서 끊고[見集斷
몇은 견진의 지위에서 끊고[見盡斷]
몇은 견도의 지위에서 끊으며[見道斷],
몇은 두루하는 번뇌이며 몇은 두루하지 않는 번뇌이다.
또한 10지(智)98)란
법지(法智)99)ㆍ
비지(比智)ㆍ
세지(世智)100)ㆍ
타심지(他心智)101)ㆍ
고지(苦智)102)ㆍ
집지(集智)103)ㆍ
멸지(滅智)104)ㆍ
도지(道智)105)ㆍ
진지(盡智)106)ㆍ
무생지(無生智)107)이다.
이 10지 가운데
몇은 유루이고
몇은 무루이며,
몇은 유위이고
몇은 무위이며,
몇은 유루의 연이고,
몇은 무루의 연이며,
몇은 유위의 연이고
몇은 무위의 연이며,
몇은 욕계의 연이고
몇은 색계의 연이고
몇은 무색계의 연이며,
몇은 얽매이지 않는 연이며,
몇은 무애도(無礙道)에서 닦고 몇은 해탈도에서 닦으며,
4과(果)108)를 닦을 때에 몇은 얻으나 몇은 잃는다.
이와 같이 온갖 법을 분별하는 것도 아비담이라 한다.
또한 아비담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아비담의 몸[身]과 이치[義]이니 32만 가지 말을 약설하고 있다.
둘째는 6분이니 36만 가지 말을 약설하며,
셋째는 곤륵(昆勒)이니 대략 32만 가지 말을 약설하고 있다.
곤륵에서는 모든 일을 널리 비교하여 같은 종류끼리 관련지어 놓았는데, 이는 아비담이 아니다.
이상으로써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의 총체적인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4. 초품 중 바가바(婆伽婆)를 풀이함
【經】 바가바(婆伽婆)께서
【論】 이제부터 설명하여 해석하리라. 어찌하여 바가바109)라 하는가? 바가바라고 할 때
바가(婆伽)110)는 덕(德)111)이요,112) 바(婆)113)는 있음[有]이니, 이를 유덕(有德)이라 부른다.
또한 바가는 분별(分別)114)이라 하고,
바는 교묘함[巧]115)이라 부른다.
모든 법의 전체적인 모습과 부분적인 모습을 교묘하게 잘 분별하기 때문에 바가바라 한다.
또한 바가는
명성(名聲)116)이라 하고 바는 있음이라 하니,
‘명성이 있는 분’이란 뜻이다.
아무도 부처님과 같이 명성을 얻은 이가 없으니,
전륜성왕(轉輪聖王)117)이나
석(釋)ㆍ범(梵)ㆍ호세(護世)118)도 부처님께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범부나 서민들이겠는가.
왜냐하면
전륜성왕은 번뇌[結]와 상응하지만
부처님은 이미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은 생ㆍ노ㆍ병ㆍ사의 수렁에 빠져 있지만
부처님은 이미 건너셨고,
전륜성왕은 은애(恩愛)의 노예이지만
부처님은 이미 영원히 여의었고,
전륜성왕은 세간이라는 광야(曠野)의 재앙 구덩이에 있지만
부처님은 이미 여의었고,
전륜성왕은 무명119)의 어두움 속에 있지만
부처님은 으뜸가는 밝음 가운데 계시고,
전륜성왕은 기껏 사천하를 거느리지만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계를 통솔하시고,
전륜성왕은 재물에 자재하지만
부처님은 마음에 자재하시고,
전륜성왕은 하늘의 즐거움을 탐하고 구하지만
부처님은 유정천(有頂天)의 즐거움조차 탐내지 않으시고,
전륜성왕은 남에게서 즐거움을 구하지만
부처님은 마음속에서 스스로 즐기신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은 전륜성왕보다 훌륭하시다.
그 밖의 석ㆍ범ㆍ호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들은 전륜성왕보다는 약간 수승할 따름이다.
또한 바가는 깨뜨린다[破]120)는 뜻이고 바는 능하다는 뜻이니,
이 분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깨뜨리기 때문에 바가바라 부른다.
【문】 아라한이나 벽지불들도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깨뜨리는데 부처님과 무엇이 다른가?
【답】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비록 3독(毒)121)을 깨뜨렸으나 그 기분(氣分)122)은 다하지 못했으니,
비유하건대 향 그릇에서 향을 이미 비웠으나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또한 풀ㆍ나무ㆍ섶을 불로 태워 연기가 났으나 숯과 재는 다하지 않은 것과 같나니,
불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3독이 영원히 다하여서 남음이 없나니,
비유하건대 겁(劫)123)이 다하여 불이 수미산을 몽땅 태우면 모두 타버려 연기도 숯도 없어지는 것과 같다.
사리불은 성내는 습기가 남았고,
난타(難陀)124)는 음욕의 습기가 남았고,
필릉가바차(必陵伽婆磋)125)는 교만한 습기가 남았으니,
비유하건대 사람이 오라에서 풀려나면 걷기는 하되 매우 불편한 것과 같다.
이때 부처님께서 선정에서 일어나셔서 경행을 하셨다.
라후라(羅睺羅)가 부처님을 따라 경행하니,
부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어째서 사람들은 여위고 약하겠느냐?”
라후라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기름을 먹으면 힘이 나고
소락[酥]을 먹으면 빛깔이 좋아지나
깻묵이나 채소만 먹으면 힘도 빛도 없나니
대덕 세존께서도 아실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라후라에게 물으셨다.
“이 대중 가운데 누가 상좌(上座)인가?”
라후라가 대답했다.
“화상(和上) 사리불이십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구나.”
이때 사리불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입안의 음식을 토해 내고는 스스로 맹세를 했다.
“이제부터는 결코 남의 청을 받지 않겠다.”126)
이때 바사닉127)왕(波斯匿王)과 수달다(須達多)128) 장자 등이 사리불께 와서 말했다.
“사리불이시여, 부처님께서도 까닭 없이 남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거늘,
대덕 사리불께서도 다시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저희들 속인들은 어떻게 큰 믿음이 청정해질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우리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다’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남의 공양 초청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때 바사닉왕 등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도 항상 남의 공양 초청을 받으시지 않으셨는데 사리불께서도 또한 공양 초청을 받지 않으시려 하니,
저희들은 어떻게 큰 믿음이 깨끗해지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다시 저희들의 초청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사람은 마음이 굳어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전생 인연129)을 들어 말씀하셨다.
“옛날에 어떤 국왕이 독사에게 물렸다.
이때 왕은 죽을 지경에서 울부짖으면서 모든 양의들을 불러 뱀독을 치료하게 했다.
이때 양의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리어 뱀으로 하여금 빨게 하면 독기가 다할 것입니다.’
이때 양의들이 제각기 주술(呪術)130)을 베푸니,131) 곧 왕을 문 뱀이 왕에게로 왔다.
그러자 의원들이 장작을 쌓아 불을 붙이고 명령하되 ‘너의 독기를 도로 빨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 불구덩이로 들어가라’ 하니, 독사는 ‘이미 내가 토해낸 독기를 어떻게 다시 빨겠는가.
이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마음을 정하고는 즉시 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독사가 지금의 사리불인데 여러 생을 지나면서 마음이 견고해져 움직일 수 없었다.
또한 필릉가바차 장로는 항상 눈병을 앓았는데,
그는 걸식을 나가 항하[恒水]를 건널 적마다 항하 강에 이르러 손가락을 튀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 것아, 강물을 멈추어 흐르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물이 두 토막으로 끊겨 지나가서 걸식을 할 수 있었다.
이에 항하의 신[恒神]이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제자인 필릉가바차께서 항상 나를 모욕하여 ‘어린 것아,
강물을 멈추어 흐르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필릉가바차에게 말씀하셨다.
“항하 신에게 참회하라.”
이때 필릉가바차가 곧 합장하고 항하 신에게 말했다.
“어린 것아, 성내지 말라. 이제 그대에게 참회하노라.”
이때 대중들이 웃으며 말했다.
“어찌 참회 사과하면서 도리어 꾸짖는가?”
부처님께서 항하 신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필릉가바차가 합장하고 참회 사과하는 것을 보았는가?
참회하고 사과함에 거만한 생각이 없으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악한 마음에서가 아님을 알라.
이 사람이 5백 생 동안 항상 바라문의 집에 태어났는데 항상 자신을 교만하고 귀하게 여기고
다른 이는 멸시했다. 본래 익힌 말투일 뿐이요, 마음에 교만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아라한들은 비록 결사(結使)132)를 끊었으나 아직도 남은 습기133)가 있다.
하지만 불세존 같은 분들은 가령 어떤 사람이 칼을 들어 한쪽 팔을 끊고,
어떤 사람은 전단향을 한쪽 팔에 발라 주더라도 마치 좌우의 눈과 같아서 마음에 애증이 없다.
그러므로 영원히 습기가 남지 않는다.
전사(栴闍)134) 바라문의 딸이 나무통[木杅]을 배에 감추고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을 비방했다.
“그대는 나를 임신시키고도 어째서 나에게 옷과 먹을 것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대는 수치를 모르는구나.”
이때 5백 명의 바라문 스승[師]들이 모두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다, 우리들은 벌써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딴 빛이 없으시고, 또한 부끄러운 빛도 없으셨다.
이 일은 곧 거짓임이 밝혀졌으니, 땅이 크게 진동하고, 하늘 무리들이 갖가지 꽃을 흩어 공양하고,
갖가지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했으나 부처님은 기뻐하는 빛이 없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마맥(馬麥)을 잡수셔도 슬퍼하지 않고
천왕(天王)이 온갖 맛이 구족한 음식을 올려도 기뻐하지 않아 한마음뿐이요 두 마음이 없었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음식ㆍ의복ㆍ와구로 찬탄하거나 나무라거나 멸시하거나 공경하는 등
갖가지 일에 대하여 달라지는 일이 없었다. 마치 순금은 달구고 연마하고 두드려도 전혀 늘거나 주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아라한은 비록 번뇌를 끊고 도를 얻었더라도 여전히 습기가 남아 있으므로 바가바라 부르지 못한다.
【문】 바가바는 단지 이 한 이름뿐인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가?
【답】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이 없다면 명호 역시 한량이 없다.
이 이름은 그 중에서 큰 것만을 취하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135) 등이다.
어찌하여 다타아가타라 하는가?
법의 모양과 같이 알고 법의 모양과 같이 말하며,
부처님들이 편안한 길에서 오신 것같이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오셔서 다시는 후유(後有) 가운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타아가타라 한다.
또한 아라가(阿羅呵)136)라고 부른다. 어찌하여 아라가라 하는가?
아라(阿羅)는 적(敵)137)이요가(呵)는 살(殺)138)이니, 곧 살적(殺敵)이라 한다.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부처님은 인욕으로 투구를 삼고
정진으로 갑옷을 삼고
지계로써 큰 말을 삼고
선정으로 활을 삼고
지혜로써 좋은 화살을 삼아
겉으로는 마왕의 군대를 깨뜨리고
안으로는 번뇌의 도적을 무찌르니
이를 아라가라 한다네.
또한 아(阿)는 불(不)이요,
라가(羅呵)는 생(生)이니,139) 불생(不生)이라 한다.
부처님의 마음 종자가 뒷세상의 밭에서 생겨나지 않아 무명의 쭉정이를 벗기 때문이다.
또한 아라가는 공양(供養)을 받을 만한 분이라 하니,
부처님은 모든 번뇌가 모두 다하고 온갖 지혜를 얻었으므로 일체 천지의 중생들의 공양을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아라가라 한다.
또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140)라 한다. 어찌하여 삼먁삼불타라 하는가?
삼먁은 정(正)이요
삼은 변(遍)이요
불타는 지(知)이니,
‘일체법을 바르고 두루 아는 분’이라 한다.
【문】 어떻게 바르고 두루 아는가?
【답】 괴로움을 괴로움의 모습같이 알고쌓임을 쌓임의 모습같이 알고
사라짐을 사라짐의 모습같이 알고도를 도와 같이 안다.이것을 삼먁삼불타라 한다.
또한 온갖 법이 진실로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어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라 하는가? 마음으로 행할 곳이 사라지고
언어의 길이 끊어져 모든 법을 초월해 마치 열반의 모습 그대로 요동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먁삼불타라 한다.
또한 온갖 시방세계의 명호(名號)와 6도(道)에 속하는 중생들의 명호와 중생들의 전생 인연과 미래 세상에 태어날 곳과
시방의 온갖 중생들의 갖가지 심상(心相)과 모든 번뇌와 모든 선근과 모든 벗어나는 길 등 이러한 온갖 법을 다 아나니,
이를 삼먁삼불타라 한다.
또한 비치차라나삼반나(鞞侈遮羅那三般那)141)라고도 하나니,
중국[秦] 말로는 명행구족(明行具足)이라 한다.
어찌하여 명행구족이라 하는가?
숙명(宿命)142)과
천안(天眼)143)과
누진(漏盡)144)을 3명(明)이라 한다.
【문】 신통(神通)과 명(明)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 과거 전생의 일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과거의 인연과 행업까지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여기에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행의 인연은 이어지고 만나서[際會] 어긋나지 않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번뇌[結使]가 다하지만 다시 생겨날지 아닐지 모르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번뇌가 다하여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을 똑똑히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이것이 3명이니,
이 3명은 큰 아라한이나 큰 벽지불들이 얻는 것이다.
【문】 그렇다면 부처님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답】 그들은 비록 3명을 얻었으나 명이 만족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모두가 만족하시니 이것이 다른 점이다.
【문】 무엇을 만족하다 하고, 무엇을 만족하지 못하다 하는가?
【답】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의 숙명지는 자기의 일과 다른 이의 일을 알지만 두루하지 못하다.
아라한은 한 세상ㆍ두 세상ㆍ세 세상, 혹은 십ㆍ백ㆍ천ㆍ만 겁 내지 8만 겁을 알지만 이를 지나면 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안명에 만족하지 못한다.145) 미래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한 생각 동안에
나고
머무르고
멸하는 때와
모든 번뇌의 부분[分]이 생겨날 때와 모든 결사가 이처럼
나고
머물고
멸할 때를 아시니,
이와 같은 고법인(苦法忍)146)ㆍ고법지(苦法智)147)에서 끊어야 할 번뇌를 모두 분명히 아신다.
이와 같이 해서 번뇌에서 해탈할 때에 거기에 맞는 유위법의 해탈을 얻으며,
거기에 맞는 무위법의 해탈 내지 도비인(道比忍)148)을 얻는다.
이는 견제도(見諦道)149)의 15심(心)150) 가운데 있는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깨달아 알지 못하는 바이니,
시간이 짧고 빠르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과거 중생의 인연과 번뇌가 다하였음을 알며,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명행구족이라 한다.
행(行)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뜻하는 말이나 오직 부처님만이 신구업을 구족하시고
나머지는 모두가 잃게 되기에 명행구족이라 한다.
또한 수가타(修伽陀)151)라고도 한다.
수(修)는 진나라에서는 ‘좋다[好]’고 하고,
가타는 ‘간다[去],’ 혹은 ‘말한다[說]’고 한다. 그러므로 ‘잘 가시고 잘 말한 분’이라 하나니,
‘잘 간다’고 함은 갖가지 깊은 삼매와 한량없는 모든 큰 지혜로 간다는 뜻이다.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부처님은 일체지를 큰 수레로 삼고
8정도를 행해 열반에 드신다네.
이것이 ‘잘 간다[好去]’는 뜻이다.
‘잘 말한다[好說]’ 함은
모든 법을 실상 그대로 말하되 법애(法愛)에 집착하지 않으며,
말할 때에는 제자들의 지혜의 힘을 관찰하는 것이다.
곧 ‘이 사람은 설사 온갖 방편과 신통과 지혜의 힘을 다하여 교화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으니 신속하리라,’
‘이 사람은 더딜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곳에서 제도해야 된다,’
‘이 사람에게는 보시를 말해 주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계행을 말해주고,
이 사람에게는 열반을 말해 주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5중(衆)ㆍ12인연152)ㆍ4제(諦)153)등의 가르침을 말해 주어야 도에 들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갖가지로 제자들의 지혜의 힘을 알아서 법을 말해 주는 것을 ‘잘 말한다’ 하는 것이다.
또한 노가비(路迦憊)154)라고도 한다.
노가(路迦)155)는 진나라에서는 세간[世]이라고 하고
비(憊)156)는 알다[知]라 하니, 이는 ‘세간을 아는 분’이 된다.
【문】 어떻게 세간을 아는가?
【답】 두 가지 세간을 아나니,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비중생이다.
나아가 실상 그대로 세간과 세간의 원인을 알며, 세간의 멸과 출세간의 도를 안다.
‘세간을 안다’ 함은
세속의 알음알이 같은 것은 아니며,
또한 외도의 알음알이도 아니다.
세간은 무상한 까닭에 고이며,
고인 까닭에 무아라고 아는 것이다.
세간의 모습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며,
끝이 있음도 아니고 끝이 없음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모습에도 집착되지 않고 청정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허공과 같다고 아는 것이다.이것을 ‘세간을 안다’ 하는 것이다.
또한 아뇩다라(阿耨多羅)[진나라 말로는 ‘위없다(無上)’이다.]157)라고도 한다.
【문】 무엇이 위가 없는가?
【답】 열반의 법이 위가 없다. 부처님은 스스로가 이 열반을 아셔서 남에게 들은 적이 없으시며,
또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시는데, 모든 법 가운데서 열반이 위가 없듯이 중생 가운데서 부처님도 위가 없으시다.
또한 지계ㆍ선정ㆍ지혜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아무도 같을 이가 없거늘 하물며 그를 지날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없는 분’이라 한다.
또한
아(阿)를 ‘없음[無]’이라 하고
욕다라(耨多羅)158)를 ‘대답하다[答]’라고 하니,
‘대답할 자 없는 분[無答]’이 된다. 온갖 외도의 법은 대답할 수 있고 부술 수가 있으니,
진실이 아니요 청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은 대답할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다.
온갖 언어의 길을 뛰어넘었으니, 진실하고도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답할 자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159)라 한다.
진나라 말로 부루사160)는 ‘장부(丈夫)’이고,
담먁161)은 ‘교화할 수 있다[可化]’이며,
바라제162)는 ‘길들이는 이[調御師]’이니,
이는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 된다.
부처님은 큰 자비와 큰 지혜로써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때로는 간절한 말로,
때로는 잡된 말로 길들여서 도를 잃지 않게 하시는 까닭이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불법은 수레요 제자는 말이며
참된 법보의 주인이신 부처님은 길들이는 분이시니,
말이 길을 벗어나서 바른 제도 잃으면
이럴 때에 다스려서 조복시켜 주신다.
협소해서 길들일 수 없으면 가벼운 법으로 다스리고
즐겨 선행 이루어 세우면 최상의 도에 들게 하며
다스리기 어려운 자는 그대로 버려두니
그러기에 조어사이고 위없는 분이라 하노라.
또한 조어사에 다섯 종류163)가 있다.
처음은 부모ㆍ형제ㆍ자매ㆍ친척[親里]이요,
중간은 관청의 법이요,
나중은 스승의 법이다.
이 세상에서는 이 세 가지 법으로 다스리고,
뒷세상에서는 염라왕(閻羅王)164)의 법으로 다스린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즐거움과 뒷세상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으로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스승[師上]이라 한다.
부처님의 법을 제외한 네 가지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면
오래지 않아서 무너져서 항상 참되게 성취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사람을 세 가지 도리로써 이루어서 항상 도를 따라 잃지 않게 한다.
이는 마치 불이 자상(自相)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기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법을 얻게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버리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을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라 한다.
【문】 부처님은 여자도 교화하여 도를 얻게 하셨거늘 어찌하여 장부만을 이야기하는가?
【답】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는 남자를 좇기 때문이며,
남자는 사업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전륜왕ㆍ
제석천왕ㆍ
마천왕(魔天王)ㆍ
범천왕ㆍ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또한 만일 부처님이 여자 조어사165)라고 말한다면
존중하지 못하지만 장부라 말한다면 온갖 것을 모두 포섭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왕이 오면 혼자 오지 않고 반드시 시종이 따르는 것과 같으니,
장부라 하면 양성인 자[二根]나
성을 구별할 수 없는 자[無根] 및 여자가 모두 포섭된다. 그러므로 장부라 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을 ‘장부를 교화해 길들이는 분’이라 한다.
또한 사다제바마누사남(舍多提婆魔㝹舍喃)166)이라고도 한다.
사다(舍多)167)는 진나라에서는 스승[敎師]이라 하고
제바(提婆)168)는 하늘[天]이라 하며
마누사남(魔㝹舍喃)169)은 인간[人]이라 하니, 이는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 하는가?
부처님은 보여주고 인도하시되
‘이는 해야 한다,’
‘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착하다,’
‘이는 착하지 못하다’고 하시니,
이렇게 인도받은 사람은 가르침을 따라 행하여
도법을 버리지 않으므로 번뇌에서 해탈하는 과보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 부른다.
【문】 부처님은 용이나 귀신 등 다른 길에 떨어진 중생들도 제도하시거늘 어찌하여 하늘과 인간의 스승만을 말하는가?
【답】 다른 길에 태어난 중생을 제도한 일은 적고, 인간과 하늘을 제도한 일은 많기 때문이다.
마치 얼굴빛이 흰 사람에게 검은 사마귀가 있다고 해서 흑인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검은빛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세상에서는 번뇌[結使]가 얇아서 싫어할 생각을 내기 쉬우며 하늘 세상은 지혜가 예리하다.
이런 까닭에 두 곳에서는 도를 얻기가 쉬우나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하늘이라 말하면 온갖 신들을 모두 포섭하고 사람이라 말하면 땅 위의 모든 생명 있는 것을 포섭한다.
왜냐하면 하늘 위에서는 하늘이 어른이요. 땅 위에서는 인간이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라 하면 하늘 위가 모두 포섭되고 인간이라 말하면 땅 위의 모든 것을 포섭한다.
또한 인간 세상에서는 계나 율의(律儀)를 받아 지니어
견제도(見諦道)와
사유도(思惟道) 및 그 밖의 도과(道果)를 얻을 수 있다.
혹 어떤 사람은 “다른 길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대개는 얻는 것이 적지만, 하늘과 인간에서는 쉽게 얻고 많이 얻는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은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또한 인간 세계에는 즐거움의 원인을 행하는 자가 많고 하늘에는 즐거운 과보가 많다.
착한 법은 즐거움의 원인이요 즐거움은 착한 법의 과보인데, 다른 길에는 착한 원인과 과보가 적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을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 한다.
또한 불타(佛陀)170)라고도 한다. 진나라에서는 ‘아는 자(知者)라고 한다. 어떠한 법을 아는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중생의 수효와 비중생의 수효와 항상함과 무상함 등 온갖 법을 안다는 것이다.
또한 보리수171) 밑에서 분명하게 깨달아 아셨으므로 불타라 한다.
【문】 다른 사람들도 온갖 법을 안다.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172)진나라 말로는 대자재(大自在)라고 한다.
은 여덟 팔, 세 눈으로 흰 소를 탔고, 위뉴천(韋紐天)173)진나라 말로는 변민(遍悶)이다.
은 네 팔로 소라[貝]를 쥐고 바퀴를 잡고서 금시조를 탔으며,
구마라천(鳩摩羅天)174)진나라 말로는 동자(童子)이다.
은 닭을 높이 들어 올리고 요령을 잡고 붉은 번기를 쥐고서 공작을 탔다.
이들은 모두가 하늘의 대장들이다. 이러한 신들에 대해서도 각각 ‘크다’ 하며, 모두 일체지(一切智)라 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제자가 되어서 그의 경서를 배우거나 그의 법을 받는다면 그를 일체지(一切智)라고 한다.
【답】 이들은 일체지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냄과 교만에 마음이 집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게송이 있다.
채색으로 그려낸 상(像)이거나 진흙으로 빚은 상이거나
경[聞經] 속의 하늘이거나 하늘을 찬탄하는 자이거나
이와 같은 네 종류의 하늘들은
각기 손에 온갖 무기[兵仗]을 쥐고 있으니
힘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면 그를 두려워하고
마음이 착하지 못하면 그를 겁내하네.
이 하늘이 반드시 남을 두렵게 한다지만
힘이 적은 까닭에 남의 두려움을 받는다.
이 하늘은 모든 이가 항상 두려워하지만
쇠퇴하는 괴로움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누군가가 받들어 섬기고 공경한다 하여도
이 세상의 근심 걱정 면하지 못하니
누군가가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않아도
이 세상의 복락을 받기에는 방해됨이 없다네.
거짓이란 진실함이 없는 것임을 알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하늘에 속하지 않으니
세간의 중생들은
업의 인연으로 고리 돌듯 하네.
복덕의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나고
잡된 업의 인연으로 인간에 태어나니
세간의 행과 업은 인연에 달린 것
그렇기에 지혜로운 이는 하늘에 의존치 않는다네.
또한 이 세 하늘은 사랑하면 온갖 소원을 이루어 주려하고, 미워하면 7세(世)를 멸망시키려 한다.
부처님은 그렇지 않으시니, 보살의 지위에 계실 때 원수가 와서 죽이려 하여도 오히려 자신의 몸과
살과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로써 공양하였거늘 하물며 부처님이 되신 뒤에 목숨을 아끼지 않을 때이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만 부처라는 명호를 받을 수 있고, 부처님에게만 귀명하고 부처님만을 스승으로 삼을지언정
하늘을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대공덕신통력(大功德神通力)이요,
둘째는 제일가는 맑은 마음으로 모든 번뇌를 멸하는 것[第一淨心諸結使滅]이다.
하늘들은 복덕과 신통력은 있으나 결사가 다하지 못했으므로 마음이 청정치 못하며,
마음이 청정치 못하므로 신통력도 적다.
성문과 벽지불들은 번뇌가 다하여 비록 마음은 청정하나 복덕이 얇기 때문에 그 세력이 적다.
부처님은 두 가지 법을 충족하는 까닭에 일체의 사람을 이긴다고 일컫는다.
다른 사람은 일체의 사람을 이긴다고 하지 못한다.
바가바(婆伽婆)는 ‘덕을 지닌 분(有德)175)’이라 함은 이미 설명했다.
또한 아바마(阿婆磨)176)라 한다.
진나라 말로는 ‘같을 이 없는 분(無等)이다.
또한 아바마바마(阿婆摩婆摩)177)라 한다.
진나라 말로는 ‘등등함이 없는 분(無等等)’이라 한다.
또한 노가나타(路迦那他)라 한다
.진나라 말로는 ‘세상에서 존귀한 분(世尊)’이라 한다.
또한 바라가(波羅伽)178)라 한다.
진나라 말로는 ‘피안으로 건너가신 분(度彼岸)이다.
또한 바단타(婆檀陀)179)라 한다.
진나라 말로는 ‘큰 덕을 지닌 분(大德)’이라 한다.
또한 시리가나(尸梨伽那)180)라 하다
.진나라 말로는 ‘후덕하신 분(厚德)’이라 한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명호가 있지만 부모가 주신 이름은 실달타(悉達陀)181)이다.
진나라 말로는 ‘이로움을 성취한 자(成利)’라 한다 도를 얻으셨을 때에 모든 법을 알았으므로
부처님이라 불렀다. 또한 하늘과 세간 사람의 공양을 받아 마땅했다.
이와 같이 해서 ‘큰 덕이 있는 분,’ ‘후덕한 분’이라 불리게 되었느니, 이처럼 갖가지 덕에 따라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문】 그대는 찰리종(刹利種)182)을 사랑하기에
정반왕의 아들의 이름이 실달다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크게 칭찬해 일체지라 하지만, 일체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답】 그렇지 않다. 그대는 악하고 삿된 나머지 부처님을 질투하고 미워하여 망어를 한다. 실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온갖 중생 가운데서 몸빛과 얼굴 모양이 단정하여 견줄 이가 없고, 공덕이 밝아서 온갖 사람을 능가한다.
작은 사람이 부처님의 몸 모습을 보아도 역시 일체지를 갖춘 분임을 알거늘 하물며 큰 사람이 모르겠는가.
『방우비유경(放牛譬喩經)』183)에 이런 얘기가 있다.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가 부처님과 그 5백 제자들을 석 달 동안 청해서 공양드리고자 했다.
왕은 신선한 우유[乳]184)와 연유[酥]185)ㆍ타락[酪]186)을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 공양하고 싶었다.
왕은 소먹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까운 곳에 와서 살면서 날마다 신선한 우유와 연유와 타락을 보내 달라.”
석 달이 지난 뒤에 왕은 이 소 먹이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가서 부처님을 뵙고 와서 다시 소를 먹여라.”
소먹이는 사람들이 부처님께로 가다가 도중에서 이렇게 상의했다.
“듣건대 ‘부처님은 온갖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라고 하건만,
우리들은 천한 소인이거늘 어떻게 온갖 지혜를 갖춘 사람을 구별해서 알 수 있겠는가.
바라문들은 소락을 좋아하는 까닭에 항상 소먹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왕래해 친숙해져 있다.
소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바라문들의 갖가지 경서나 이름ㆍ문자를 들으니,
4위타경(違陀經)187)에는
병 고치는 법,
전쟁하는 법,
성수(星宿)을 보는 법,
하늘에 제사하는 법,
노래하고 춤추는 법,
토론하고 따지는 법 등 64종의 세간의 기예를 말하고 있다.
정반왕의 아들은 널리 배우고 아는 것이 많으시니
이 4위타경의 일들은 아시겠기에 질문할 거리가 되지 못할 테지만,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소를 먹이지 않았으니
우리들은 그에게 소먹이는 비법을 가지고 질문하도록 하자.
그가 만일 이해하고 있다면 그는 실로 일체지를 갖춘 분이리라.”
이렇게 논의하고는 앞으로 나아가 죽림(竹林)188)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광명이 숲 사이에 빛나는 것을 보고 다시 나아가서 마침내는 부처님을 뵈니,
그 분은 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그 행상은 마치 금산(金山)189)과 같으셨으니,
마치 버터[酥]를 불에 던져 넣으면 그 불꽃이 매우 밝은 것과 같고,
또한 녹인 금물을 죽림 사이에 뿌려 놓아 자줏빛 나는 금빛 광명을 내 뿜는듯했했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마음이 크게 환희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석씨 사자에게
일체지가 없을 리 있으랴.
보면 기뻐하지 않는 이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네.190)
광명은 으뜸가게 비추시고
얼굴 모습은 심히 귀중하시며
몸의 모습은 위덕을 갖추었으니
부처님이란 명칭에 매우 알맞네.
모습마다 모두 분명하시고
위신력도 만족하시며
복덕은 저절로 갖추어지니[纏絡]
보는 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그 몸은 원만한 광채로 빛나고
보는 이 싫증나지 않으니
온갖 지혜를 얻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공덕 있으리.
온갖 채색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보배로 꾸미고 장엄한 상(像)일지라도
이 묘한 몸에 견주려 한다면
도저히 비할 바 없으리라.
보는 이들을 능히 만족시키고
으뜸가는 즐거움을 얻게 하며
보기만 해도 맑은 믿음 내나니
반드시 온갖 지혜 갖추신 분이리.
이렇게 생각한 뒤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물었다.
“소를 먹이는 사람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소 떼가 번식하며,
몇 가지 법을 성취하지 못하면 소 떼가 번식하지 못하고 편안치 못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열한 가지 법이 있어 소먹이는 사람은 소 떼를 번식시킨다. 무엇이 열한 가지인가?
색을 알고,
모습을 알고,
괄쇄(刮刷)를 알고,
상처[瘡]를 덮어 줌을 알고,
연기 피우는 일을 알고,
좋은 길을 알고,
소의 원하는 바를 알고,
잘 건널 곳을 알고,
안온함을 알고,
젖을 남겨두는 일을 알고,
소의 우두머리를 기르는 법을 아는 일이다.
만일 소먹이는 사람이 이 열한 가지를 알면 소떼를 번식시키게 된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열한 가지 법을 알면 착한 법을 자라게 한다.
무엇이 색을 아는 것인가?
검은색과 흰색과 섞인 색을 아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온갖 색은 모두가 4대(大)191)이며,
4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
무엇이 모습을 안다는 것인가?
소가 건강한 모습인지 건강하지 못한 모습인지를 아는 일이니,
다른 무리와 섞여 있을지라도 모양을 보고 곧 판별하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착한 업의 모습을 보고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나쁜 업의 모습을 보고는 어리석은 사람임을 안다.
무엇이 괄쇄를 안다는 것인가?
온갖 벌레가 붙어서 피를 빨면 부스럼[瘡]이 커지지만 괄쇄질을 잘 하면 피해를 없앤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나쁘고 삿된 잡념[覺觀]의 벌레가 선근(善根)192)의 피를 빨면
마음의 부스럼이 커지거니와 이를 제거하면 곧 안온해진다.
무엇이 상처를 덮어 주는 일인가?
천이나 풀이나 풀잎으로 모기와 등에의 나쁜 침해를 막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바른 관찰법을 생각하여 6정(情)193)의 부스럼을 덮어서
번뇌ㆍ탐욕ㆍ성냄 등 나쁜 벌레나 가시의 침해를 막는다.
무엇이 연기를 피우는 일인가?
연기를 피우면 모기나 등에가 제거되며,
소들이 멀리서 그 연기를 보면 우사로 향하게 된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들은 대로 말하여 모든 번뇌의 모기와 등에를 제거해 주며,
법의 연기(緣起)194)를 연설해서
중생들을
무아(無我)ㆍ
실상(實相)ㆍ
공(空)의 우사로 인도한다.
무엇이 길을 안다는 것인가?
소가 다니기에 좋은 길과 나쁜 길을 아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8성도(聖道)195)를 알아서
열반에 들고 단상(斷想)의 삿된 길을 여의게 된다.
무엇이 원하는 바를 안다는 것인가?
소를 잘 번식시키고 병을 적게 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법을 연설할 때에
듣는 이로 하여금 청정한 법의 기쁨을 얻게 하고 선근을 늘어나게 한다.
무엇이 잘 건널 곳을 안다는 것인가?
들어가기 쉬운 곳을 알고 건너기 쉽고 물살이 거칠지 않고
해로운 벌레가 없는 곳을 아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많이 아는 비구에게 가서 법을 물으면
법을 연설하는 사람은 묻는 사람의 마음이 영리하고 둔함과
번뇌의 가볍고 무거움을 잘 알아서 건너기 좋은 곳으로 인도해서 편안히 열반을 얻게 한다.
무엇이 안온함을 안다는 것인가?
머물고 있는 곳에 호랑이나 사자, 해로운 벌레나 독한 짐승 따위가 없는 줄 아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4념처(念處)는 편안하여 번뇌의 악마나 독한 짐승이 없음을 안다.
비구가 여기에 들면 안온하여 근심이 없는 것이다.
무엇이 젖을 남겨둠을 안다는 것인가?
어미 소는 송아지를 사랑하기에 젖을 먹인다.
젖을 짜고 나서 남은 젖을 남겨 두면 어미 소가 좋아하고 송아지도 목마르는 일이 없다.
결국 소 주인이나 소먹이는 사람도 날마다 이익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거사(居士)196)나 속인이 의식을 공양하면 절제와 분량을 알아서
시주의 재물이 다하지 않게 함으로써 보시하는 이[檀越]197)를 기쁘게 하고
신심이 끊이지 않게 하며, 받는 이가 궁핍함이 없게 한다.
무엇이 소의 우두머리를 기를 줄 안다는 것인가?
큰 소들은 소 떼를 잘 보호하기 때문에
잘 길러서 여위지 않게 하니,
기름[麻油]을 마시게 하고,
영락으로 꾸며 주고,
무쇠 뿔로써 표식을 해 주고,
솔로 쓸어 주고, 칭찬해 준다.
비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중 가운데 위덕이 있는 큰 사람은 불법을 보호해서 이익되게 하고,
외도를 굴복시켜 8중(衆)198)들로 하여금 선근을 얻게 하니, 그가 원하는 바를 따라 공경 받고 공양 받게 하는 것이다.”
소먹이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씀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은 셋이나 네 가지에 지나지 않고,
우리들을 가르치는 이들조차 다섯이나 여섯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말씀을 들으니 일찍이 없었던 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을 이렇게 잘 아신다면 나머지 일들도 그러할 것이다. 진실로 이 분은 일체지를 갖춘 분이시다.’
이 경에서는 이에 대해 상세히 말씀하셨으니, 이것으로써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 세상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답】 그렇지 않다. 보지 못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보지 못했다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첫째는 실제로 있으나 인연에 가리어진 까닭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사람들의 성바지의 시초나 설산(雪山)199)의 무게나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있으나 알 수가 없다.
둘째는 실제로 없는 것이니,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다. 마치 둘째 머리와 셋째 손 같은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가리어진 인연은 없으나 볼 수가 없다.마찬가지로 그대는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인연에 가리어진 까닭에 보지 못할 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가리어진 인연인가?
네 가지 믿음[四信]을 얻지 못한 채 마음이 삿된 것에 집착되는 것이다.
그대들은 이 인연의 가리움 때문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문】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도 다 알 수 없거늘 하물며
어찌 한 사람이 다 알겠는가. 그러므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없다.
【답】 모든 법이 끝이 한량없듯이 지혜 역시 한량없고 셀 수 없고 끝이 없다.
마치 함(函)이 크면 뚜껑도 크고 함이 작으면 뚜껑도 작은 것과 같다.
【문】 부처님은 스스로 부처의 가르침만을 말씀하시나 다른 경서[經]에서처럼
약 짓는 법[藥方]200)ㆍ천문ㆍ수학이나 세속의 경건 등을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만일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가르침들을 무슨 이유로 말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아닌 줄 알 수 있다.
【답】 비록 온갖 법을 알지만 필요하기에 말하고, 필요하지 않기에 말하지 않는다.
묻는 이가 있기 때문에 말하고 묻는 이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온갖 법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위법(有爲法)이요,
둘째는 무위법(無爲法)이요,
셋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不可說法]이다. 이것들이 일체법을 포섭한다.
【문】 열네 가지 난문[難]201)에 대답하지 않으셨으니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열네 가지인가? ‘
세계와 나는 항상한가?’
‘세계와 나는 무상한가?’
‘세계와 나는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세계와 나는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가?’
‘세계와 나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한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닌가?’
‘죽은 뒤 영혼[神]은 뒷세상으로 가는가?’
‘뒷세상으로 가지 않는가?’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하는가?’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몸이 곧 영혼인가?’
‘몸과 영혼은 서로 다른가?’ 등이니,
만약에 부처님이 일체지를 갖춘 분이라면
이 열네 가지 난문에 어째서 대답하지 않으셨는가?
【답】 이 일들은 진실이 없기 때문에 대답치 않으셨다.
모든 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모든 법이 단절된다는 것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는 마치 쇠뿔을 짠다면 몇 되의 젖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는 따위의 물음과 같으니,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계는 끝이 없어 마치 수레바퀴와 같으니, 처음도 나중도 없다.
또한 이런 물음에 답하게 되면 이득은 없고 잃어버리는 것만 있어서 사악함 가운데 빠질 뿐이다.
부처님은 이 열네 가지 난문이 항상 4제(諦)와 모든 법의 실상을 가리움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202)
건너려는 곳에 해로운 벌레들이 있는 물이라면 사람들을 건너가라고 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해야 사람들을 건너게 하는 것과 같다.
다시 어떤 사람은 “이 일은 온갖 지혜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한다” 하는데,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까닭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또한 어떤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하여 있다 하거나,
있는 것에 대하여 없다 한다면 이는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일체지를 갖춘 사람은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한다.
부처님은 있는 것을 없다고 하지 않으며,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말씀하시거늘 어찌 일체지를 갖춘 분이라고 말하지 않으랴.
마치 해가 높은 곳이나 낮은 곳만을 위하거나 평지만을 위하는 일도 없이 골고루 비추는 것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을 없게 하지도 않고 없는 것을 있게 하지도 않는다.
항상 진실한 지혜를 말씀하여 지혜와 광명으로 모든 법을 비추시니, 마치 한 길[一道]과 같으시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물었다.
“대덕이시여, 12인연(因緣)은 부처님이 지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가 지은 것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12인연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이가 지은 것도 아니니라.”
부처님이 계시건 계시지 않건 태어남은 늙고 죽음의 원인이 된다는 이 법은 항상 결정되어 머무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태어남은 늙고 죽음의 인연이 되며 나아가 무명(無明)203)이 모든 행(行)의 인연이 됨을 말씀하셨다.
또한 이 열네 가지 난문에 대해 대답을 하게 되면 허물이 생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석녀(石女)204)나 황문(黃門)205)의
아들이 큰가 작은가 예쁜가 미운가를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대답을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열네 가지 난문은 삿된 소견이요, 진실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참되고 진실된 것만을 가지고 말씀하시니,
그러므로 대답하지 않으신 채 그대로 두신 것이다.
또한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것이 곧 대답이 된다.
네 가지 대답이 있다.
첫째는 결정된 대답이니 ‘부처님은 제일가는 열반이자 안온이다’라고 함이요,
둘째는 뜻을 풀이해 대답함이요,
셋째는 되물어 대답함이요,
넷째는 그대로 두어 대답함이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그대로 두어 대답하신 것이다.
그대가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말은 있으되 뜻[義]이 없으니 크게 망령된 말이다.
실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은 있다. 왜냐하면 10력(力)을 얻었기 때문이다.206)
또한 바른 곳[處]과 바르지 않은 곳[非處]을 알기 때문이며,
인연과 업보를 알기 때문이며, 선정과 해탈을 알기 때문이며,
중생 근기의 착하고 악함을 알기 때문이며,
갖가지 욕심과 견해를 알기 때문이며,
갖가지 세간의 한량없는 성품을 알기 때문이며,
온갖 것이 마침내 이르는 길을 알기 때문이며,
전생에서 행한 곳을 알기 때문이며,
천안(天眼)을 분명히 얻었기 때문이며,
온갖 누(漏)가 다했음을 알기 때문이며,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온갖 세계에서 상품의 법을 말씀하기 때문이며,
감로의 맛207)을 얻었기 때문이며,
중도(中道)의 법을 얻었기 때문이며,
온갖 법의 유위와 무위의 실상을 알기 때문이며,
삼계(三界)의 욕심을 영원히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부처님은 일체지를 갖춘 분이시다.
【문】 일체지를 갖춘 분이란 어떤 사람인가?
【답】 으뜸가는 어른이며 삼계의 존귀하신 분이니, 부처님이라 부른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정생전륜왕(頂生轉輪王)208)께서는
해와 달과 등불의 광명 같으니
석가족의 귀하신 종족이며
정반왕의 태자님이시었네.
태어나실 때엔 삼천세계의
수미산과 바닷물이 진동했으니
늙음과 죽음을 부수기 위하여
애민하시는 까닭에 세상에 나셨네.
나면서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광명이 시방에 가득 차고
사방을 보면서 크게 외치되 말하셨네
‘내가 모태에 나는 일은 다했노라.’
부처를 이루고는 묘한 법 설해
큰 소리로 법의 북 울리니
이로써 중생과 세간의
무명의 잠을 깨워 주셨네.
이 같은 갖가지 희유한 일들
이미 나타내시니
하늘과 세상 사람들
이를 보고 모두 환희하더라.
부처님의 장엄하신 몸
큰 광채, 보름달 같은 얼굴
남자나 여자나 어느 누구도
이를 보아 싫증내는 일 없네.
태어나신 몸을 젖먹이여 키운 힘
만 억 마리의 코끼리보다 세며
신통의 힘이 위가 없으시고
지혜의 힘 한량없으셨네.
부처님 몸의 큰 광명
불신(佛身)의 바깥을 밝게 비추니
부처님이 광명 속에 계심이
달이 광명 복판에 든 것 같도다.
갖가지 욕설로 부처님을 훼방해도
부처님은 싫어하는 생각 조금도 없고
갖가지 좋은 말로 칭찬하여도
부처님은 기뻐하는 생각 없어라.
거룩하신 자비로 일체를 보시고
원수도 친척도 균등하게 여기니
일체의 의식 있는 무리들
모두 다 이 일을 알고 있도다.
인욕과 자비의 힘 있기에
능히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중생을 건지기 위하여
세세(世世)에 애써 고통을 받으시네.
그 마음 항상 일정하시어
중생을 위해 이로운 일 하시니
지혜의 힘은 열 가지요
두려움 없음의 힘은 네 가지라.
함께하지 않는 특성이 열여덟이니
한량없는 공덕의 무더기라네.
이렇듯 헤아릴 수도 없는
희유한 공덕의 힘 갖추셨네.
사자가 두려움 없듯이
모든 외도의 법을 무찌르고
위없는 청정한 바퀴를 굴리시어
삼계의 중생을 건져 주시네.
이것을 일컬어 바가바라고 한다. 바가바의 뜻은 한량이 없으니,
자세히 풀이하자면 다른 일을 폐해야 되겠기에 이로써 그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