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2. 13.
- 中 소비시장 폭발 일보 직전… 韓 기업은 점유율 하락·철수
- 여성·건강·환경이 3대 키워드… 비싸도 팔리는 제품 내놔야
개혁 개방 첫해이던 1978년 중국 경제 규모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였으나 지난해에는 68%까지 올라갔다. 중국 정부는 작년 10월 19차 공산당 대회를 계기로 각종 회의와 보고서에서 경제 수치 목표를 적지 않고 있다. 이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 체질과 삶의 질(質) 개선에 주력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문화·오락·양로·관광 등 서비스 산업을 본격 키운다는 방침을 중국 국무원은 최근 정했다. 이처럼 올해부터 시작된 시진핑 2기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밥(食)' 아닌 '소비(消)'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진입을 목전에 둔 중국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집(부동산)을 마련한 다음 승용차를 사고, 이어 고급 의류와 패션·와인 등을 구입하는 소비의 가치 사슬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중국에선 지금 매년 약 1900만 명의 인구가 도시로 진입하는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아직 도시화율이 58% 수준이다 보니 매년 750만~1000만 가구씩 주택을 지어도 공급은 만성 부족이고, 대도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연간 2888만 대를 구입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 시장이다. 여기에다 1억2000만 명의 중국 관광객들은 전 세계 명품(名品)의 46%를 사들이고 세계 면세점 매출의 절반을 소비한다.
중국은 이렇게 소비 중심 경제로 이동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추풍낙엽 신세다. 세계 1위 휴대폰 판매 기업인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7%에 그쳤다. 점유율이 1% 미만인 LG전자는 지난해 프리미엄은 물론 중저가 스마트폰까지 중국 시장에선 출시조차 하지 않았다.
▲ 중국 창저우에 있는 현대차 공장 생산라인 모습.
높은 가성비(價性比)로 베이징 시내 택시 시장을 싹쓸이하며 한때 중국 내 10%대 점유율을 기록했던 한국 자동차의 최근 점유율은 4%대로 떨어졌다. 이마트·롯데마트와 한국 홈쇼핑·유통 기업들은 중국에서 철수했거나 청산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화장품 같은 소비재도 흔들리는 조짐이 보인다. 13억 명이 넘는 중국 휴대전화 가입자들이 전 세계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을 실시간(實時間)으로 따져가며 쇼핑하는 데 속수무책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 최근 고전(苦戰)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40년 만에 확 바뀐 중국의 정책과 소비자 변화를 못 따라가는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문제의 본질이다.
지금 중국 사회의 3대 화두는 여성·건강·환경이다. 중국 여성은 한 자녀 갖기 40년 만에 밥상 권력과 출산 권력, 통장 권력을 모두 장악한 최고 권력자가 됐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 상승으로 건강과 환경 관련 산업도 급성장로에 들어섰다.
우리의 중국 시장 공략법은 달라져야 한다. 화장품이라면 기초나 색조화장품 등 전통적 접근만 고집해선 안 된다. 시장을 더 세분화해 부유한 중장년 여성을 겨냥한 친(親)환경과 천연 재료 제품, 피부 노화를 막는 안티에이징에 제약과 화장품을 결합한 코스메디컬 제품처럼 중국에 없는 새 제품과 브랜드를 내놓아야 한다.
승용차도 택시보다는 초원을 바람같이 달리는 천리마 느낌을 주는 럭셔리한 이미지의 차가 먹힌다. 한 가구 2자녀 출산을 허용한 중국에선 5인승 승용차보다 7인승 SUV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다. 중국은 더 이상 '가성비'가 좌우하는 시장이 아니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중국인들이 반드시 사게끔 그들의 마음을 잡는 '가심비(價心比)'로 승부해야 한다.
전병서 /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