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26장 하나님 앞에서는 더 높은 자리 더 낮은 자리도 없습니다.
역대상26장은 짐을 나르는 사람들과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물건 감시자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 가운데 특별한 이름들이 발견 되는데 바로 고라의 자손들이다. 고라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광야 역사에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반역자의 이름에 올랐던 이름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아들들이 다시 여기에 등장할 수 있는가?
(대상 26:1) 고라 사람들의 문지기 반들은 이러하니라 아삽의 가문 중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라
(대상 26:2) 므셀레먀의 아들들인 맏아들 스가랴와 둘째 여디야엘과 셋째 스바댜와 넷째 야드니엘과
(대상 26:3) 다섯째 엘람과 여섯째 여호하난과 일곱째 엘여호에내이며
고라는 레위 지파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이었다. 그는 이미 거룩한 직분을 받았지만 자신의 직분에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지파 사람들과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한 것이다. 그는 제사장이 되기를 원했다. 모세와 아론이 형제라서 서로 다해먹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라의 주장에 무려 250인이 가담하였다.
(민 16: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민 16:24) 회중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 하라
(민 16:27)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
(민 16: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은 자신의 직분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반역이었다. 더 높은 자리, 더 높은 위치를 요구하며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지도력을 요구하다가 멸망의 길을 자초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과는 달리 고라 자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단과 아비람과 그 처자들과 유아들은 함께 멸망했는데 고라의 자손들은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 26:11)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대부분 부모가 반역에 가담하면 자식들은 그냥 따라가는데 고라의 자식들은 부모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연줄이라는 것은 정의와 원칙을 떠나서 더 강력한 결속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뻔히 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도 눈을 감아버리고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관계로 편이 나누어지는데 그 끈끈한 혈연까지라도 끊어내고 반역에서 돌아선 고라 자손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다윗 시대에 와서 그들은 맡은 직무를 실천함에 이렇게 노래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 높은 자리도 없고 더 낮은 자리도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자리를 상하 신분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다른 형제들을 지배하거나 저들의 마음을 제어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과 판단이며 하나님 나라의 사상과는 반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종이 되며 섬기는 자가 된다.
자신의 직분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고라 자손에게서 배우는 오늘 아침의 교훈이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 가진 영향력과 위치를 가지고 형제들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은 오히려 섬김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신 직분에 감사하며 맡긴 사명에 기뻐하게 하소서
사역을 감당할 때 누구도 더 잘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음에 감격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