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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17
⊙ 집권 4년차 선거라는 점에서 1996년 총선과 흡사
⊙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이 여당에 등 돌릴 가능성 높아
⊙ ‘이념전쟁’은 양날의 칼… 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 계기로 ‘진보’세력 결집 역풍 부를 수도
⊙ 형식상 ‘박근혜 없는 선거’지만 ‘박근혜가 지배하는 선거’가 될 수도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에 실시되는 만큼 필연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더 나아가 2017년 대선의 가늠자 역할을 할 전망이다.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여당은 총선 공천 룰을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겠다”던 오픈프라이머리와 야당 대표와 합의했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이제 새누리당 공천 갈등의 핵심은 전략공천 도입을 둘러싸고 본격화하고 있다. 전략공천이란 당 지도부가 경선 없이 지역구 공천을 주는 것을 말한다.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은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지만, 친박계에서는 당헌당규에 규정된 ‘우선추천 지역’을 전략공천으로 해석하고 있다.
새누리당 당헌은 ‘상향식’ 공천을 규정(제99조)하면서도 제103조에 우선추천 지역을 남겨 뒀다.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 공모에 신청한 후보자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참작해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이 이에 해당된다.
작년 2월 25일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에서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준다’는 명제를 담아 문제의 ‘전략지역’을 ‘우선추천 제도’로 바꿨다. 김 대표와 측근들은 전략공천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우선추천 지역에 대해 “특수한 경우에 한하며 여당강세 지역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강남과 TK는 ‘우선추천 지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전국 어디든 예외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최종 공천 룰은 ‘공천 특별 기구’에서 논의되겠지만 계파간 힘겨루기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에 공천을 둘러싸고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야당은 문재인 대표 퇴진론으로 계파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비주류 인사들은 문 대표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이유로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하거나 조기 선거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통합 전당대회 얘기가 너무 이르고 단합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뭉치기 위해서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야당이 힘을 합칠 방법은 통합 전당대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9월 28일 김무성(왼쪽)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에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선거는 과학이다!
이런 와중에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10월 12일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현행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현행 역사 교과서를 ‘친북 숙주(親北宿主)’라고 규정하고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정 체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야당은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 “대한민국 역사의 아우슈비츠”라고 규정하고 친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 내겠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야당은 교과서 문제를 내년도 예산안, 노동개혁과 연계할 것을 시사한 데 이어 원내외 병행 투쟁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선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계 구도를 결정짓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야당도 총선 결과에 따라 ‘문재인-안철수-박원순’으로 구성된 기존의 ‘3두(頭) 체제’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까?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기 위한 유권자의 회고적(retrospective) 투표가 과연 이뤄질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어느 정당에 유리하게 전개될까?
1988년 제13대 총선 이후 실시된 7번의 총선 결과를 면밀하게 고찰하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선거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경험적 근거를 통해 그 원인을 찾아내어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에서는 설명과 예측은 동일하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들을 찾아내면 그것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탐구의 기저에는 관찰을 통해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표1〉은 역대 총선들의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2004년 이후 집권당은 원내 과반수 승리
첫째, 7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3번 승리했고, 3번 패배했으며, 한 번은 선방했다. 특히, 2004년 총선부터 집권 여당은 원내 과반수 승리를 일궈 냈다. 노무현 정부 집권 3년차에 실시됐던 2004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야권이 주도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152석을 얻어 승리했다. 총선 전 47석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이 그야말로 대승을 거뒀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달 만에 실시된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 학살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지만 153석을 얻어 승리했다. 다만,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기점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인사들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친박연대’는 14석을 얻어 민노당을 제치고 제4당으로 부상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마지막 해인 2012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유력 대권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당 로고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변신을 통해 152석을 얻어 승리했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1년차에 실시한 제13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정당은 전체 299석 중에서 125석을 얻어 1당이 되었지만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패배했다. PK를 기반으로 한 YS의 통일민주당이 59석,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DJ의 평화민주당이 70석, 그리고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JP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 등 야당 의석이 164석을 차지했다.
집권 4년차 총선에서 승리한 YS
▲ 김영삼 집권 4년차에 실시된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승리했다.
노태우 정부 집권 5년차인 1992년에 치러진 총선은 3당 합당 이후 첫 선거였다. 대선이 있던 해에 치러졌다는 점에서 2012년 총선과 비슷했지만 결과는 다소 달랐다. 집권당인 민자당은 149석을 차지해 과반수에서 한 석이 모자랐다. 총선 전보다 의석이 64석 줄었다. 반면 DJ가 이끄는 민주당은 97석을 얻어 총선 전보다 22석을 더 얻었다. 총선 직전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도 31석을 차지해 제3정당으로 급부상했다.
김영삼 정부 집권 4년차에 실시된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집권 여당은 총선 전보다 26석이 적은 139석(46.5%)을 얻어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대로 선방했다. 득표율은 1992년 총선과 비교해 4.0%포인트 줄어든 34.5%였다. 〈표2〉에서 보듯이, 신한국당은 수도권 총 96석 중 54석(56.3%)을 획득해 과반수의 대승을 거두었다. 특히, 서울 47개 선거구에서 27석(57.4%)을 차지해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18석)와 통합민주당(1석)을 압도했다. 집권 여당이 서울 지역에서 승리한 것은 1988년 제13대 총선 이후 처음이었다. 인천에서도 9석(81.8%), 경기에서 18석(47.3%)을 차지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야권이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해 1995년 9월에 창당한 국민회의는 총선 전보다 14석이 많은 79석을 차지해 제1야당이 됐다. 지역구에서는 호남 전체 37석 중 36석을 차지하고, 수도권에서 30석을 얻어 총 66석을 얻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반면, 비례 의석은 25.6%의 득표로 13석을 차지했다.
1995년 1월 집권당인 민자당을 탈당해 김종필 총재가 만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1996년 총선에서 선전했다. 총선 전보다 24석이 많은 50석을 차지했다. 지역구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에서 28석 중 24석(92.3%)을 차지했고, 신한국당의 텃밭이었던 대구·경북에서도 10석을 차지했다. 경기 5석, 강원 2석 등 호남과 제주 지역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당선자를 냈다.
1996년 총선의 최대 피해자는 통합민주당이었다. 총선 전보다 무려 15석을 잃으면서 1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자신의 최대 정치적 기반이었던 수도권에서조차 단 4석(4.2%)을 얻는 데 그쳤다. 지역구 득표율도 18.0%포인트나 줄어 11.2%에 그쳤다.
내년 총선과 1996년 총선의 유사점
2016년 제20대 총선은 여러 면에서 1996년 총선과 닮은꼴이다.
우선, 대통령 집권 4년차에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둘째, 총선을 관통하는 이슈도 비슷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12월에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바로 세우기’를 제기했다.
셋째, 총선 전 정부는 예상치 못한 각종 사고로 곤경에 처했다. 김영삼 정부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각종 사고로 곤경에 빠졌고, 박근헤 정부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와 같은 사고로 큰 곤경에 처했다.
넷째, 집권당의 차기 대권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총선 두 달 전에 민자당을 해체하고 신한국당을 창당하면서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전 총리는 대통령이 낙점한 유력한 대권 후보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언론에서 차기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낙점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대권은 쟁취하는 것이지만 친박 쪽에서는 ‘반기문 대망론’을 흘리고 있다.
야당 분열할까?
▲ 1996년 총선 당시 국민회의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김대중 총재. 야당의 분열은 신한국당 승리의 한 원인이 됐다.
다섯째, 야당이 분열되었다. 1996년 선거를 앞두고 DJ가 정치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면서 제1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이 분열되었다. 양상은 좀 다르지만 제1야당인 새정연은 비주류 세력이 문재인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등이 주최한 ‘새정치연합, 뭐가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한목소리로 혁신위원회 활동을 비판하며 향후 총선·대선 승리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혁신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분열에 정면으로 맞서 답을 내야 총선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만약 비주류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혁신위가 내놓은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에서 20%를 컷오프하면서 다수의 비박 호남 인사들이 포함되면 새정연은 분당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
역대 총선에서 나타난 두 번째 패턴은 ‘분열은 필패한다’는 가설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여권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집권당이 승리했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 총 31곳의 지역구에서 25석을 차지한 반면, 민주당은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비록 노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호남 유권자들의 배신감이 컸지만 한나라당과 연대해서 대통령을 탄핵한 민주당을 철저하게 응징했다.
2000년 총선에서 제1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개혁 공천을 명분으로 김윤환, 이기택, 백남치 등 자신의 최측근 인사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김윤환이 중심이 돼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국당을 창당해 한나라당과 대결했지만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영남 지역 총 65석 중 한나라당이 64석을 차지했다.
이런 결과가 주는 함의는 지역주의 청산, 공천 개혁과 같은 확실한 명분을 갖고 밀어붙이면 분열이 됐어도 국민들이 손을 들어 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탄핵과 같은 초대형 돌발 변수는 분당과 같은 변수를 집어삼켜 버렸다.
셋째, 수도권에서 야권 분열이 이뤄지면 여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야권 연대가 이뤄지면 야당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
1996년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수도권 총 96석 중 54석(56.3%)을 획득해 과반수의 대승을 거두었다. 2012년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 수도권 총 112석 중 65석(58.0%)을 얻어 43석(38.45)을 얻는 데 그친 새누리당을 압도했다.
그 밖에 역대 총선 결과,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를 기반으로 하는 인물 경쟁력을 갖춘 정당이 승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도권 패배에도 불구하고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것은 인물 경쟁력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민주당 한명숙 대표를 압도하면서 영남 이외에 충청과 강원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빅텐트論
역대 총선 분석 결과와 현재의 정치 상황을 토대로 내년 총선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구도, 이슈, 인물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이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는 거의 결정된다. 만약 새정연이 쪼개지고 새누리당이 분열되지 않으면 선거는 싱겁게 끝날 것이다. 1996년 총선에서 야당이 분열되었어도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DJ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신한국당이 겨우 선방했다. 그런데 현재 새정연에서는 DJ와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호남 인사는 없다. 박지원 의원도 천정배 의원도 DJ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는 있지만 결코 DJ가 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통합전당대회를 통해 극적으로 통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연에서 큰 테두리 안에 무소속 천정배·박주선 의원 등 당 외곽의 인사들이 하나로 뭉치자는 이른바 ’빅텐트론’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이 혁신과 통합 등을 포괄하고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총선을 치른 것도 크게 보면 빅텐트로 볼 수 있다. 이런 빅텐트론이 가시화돼서 여당 대 야당의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지면 승부는 예측불허가 될 것이다.
더불어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 될 전망이다.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파편화한 진보 세력이 새정연을 지지할지 아니면 정의당을 지지할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수도권 박빙의 싸움에서는 1000표 정도 차이가 당락을 결정한다. 과거 통진당을 지지했던 진보층이 지역구 선거에서는 새정연, 비례대표에서는 정의당을 지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김무성의 선택
그런데 야권도 분열되고 여권도 분열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당이 분열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공천 룰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충돌할 때다. 국민공천제와 전략공천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기준으로 김무성 대표가 채택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네 가지이다.
① 자신의 대표직을 걸고 국민공천제를 관철시키고 동시에 전략공천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② 국민공천제를 관철시키면서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는 것.
③ 국민공천제를 포기하지만 전략공천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
④ 국민공천제도 포기하고 전략공천도 받아들이는 것.
①번 선택이 가시화하면 당은 깨질 수도 있다. 서청원-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 사퇴→ 김무성 지도체제 붕괴→ 비상대책위 구성으로 이어지면 친박 대 비박 간 골육상쟁의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비박 세력이 버티면 2004년 때와 같이 대통령 세력을 중심으로 신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TK를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 신당이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김무성 대표의 정치 기반인 PK 지역에서 역풍이 불 수 있고, 수도권에서 신당은 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TK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②번 선택은 일종의 절충안이다. 김 대표 체면도 살려 주고 청와대의 입장도 반영한 것이다. 당내 공천 특별 기구에서 이런 절충안이 도출되면 김 대표가 받아들일 개연성이 크다.
새누리당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전략공천이 꼭 의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쥐고 지역구 230곳에서 공천했다. 그중에 단수공천은 130곳, 전략공천은 52곳, 경선은 48곳에서 실시했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단수공천을 한 62곳 중에서 26곳, 전략공천을 한 27곳 중 11곳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됐다. 다시 말해 89개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을 한 수도권 지역구 중 37곳(41.5%)에서만 당선됐다. 반면 영남 지역에서 단수공천을 한 32곳 중에서 30곳, 전략공천을 한 18곳 중 11곳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됐다. 이런 결과가 주는 함의는 전략공천이 새누리당의 수도권 경쟁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③번 선택은 안심번호 100% 여론조사 대신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원과 국민의 비율을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50 대 50으로 되어 있지만 국민 여론의 반영 비율을 높여 30 대 70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 ④번 선택을 할 경우 김 대표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이 경우 야당이 분열되어도 꼭 여당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5번째 회군한 김무성 대표가 총선에서 임팩트를 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권이 통합된 상황에서 ④번 선택이 이뤄지면 여당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특정 정책이 불러오는 역풍
▲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공무원연금 개혁은 총선에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9월 4주(22~24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심판론이 안정론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 정부의 잘못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2%로 나타난 반면, ‘현 정권에 힘을 보태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 36%보다 6%포인트 많았다. 연령별로는 2040세대에서 심판론이 우세했다. 20대는 60% 대 16%, 30대는 64% 대 19%, 40대는 48% 대 26%로 심판론이 많았다. 반면 50대는 27% 대 52%, 60대 이상은 17% 대 62%로 안정론이 다수였다. 지역별로는 최대 승부처로 예상되는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심판론이 높았다. 서울에서는 40% 대 38%, 인천과 경기에서는 44% 대 36%로 심판론이 조금 우위였다.
총선은 본질적으로 심판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현 정부를 혼내 주고 응징할 수 있는 세력을 찾는다. 그런데 심판론이 안정론보다 높게 나왔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기대한 만큼의 경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81%는 열심히 노력해 봤자 계층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인식했다. 20대 청년들의 이런 부정적 인식이 2013년 70.5%에서 2015년에는 80.9%로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2030 청년 세대가 총선에서 현 정부를 향해 경제 응징 투표를 할 것이라는 전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특정 계층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 연금을 둘러싼 반감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자신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고 갔다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전, 세종, 충청에서는 심판론이 50%로 안정론 29%를 크게 앞서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강원 지역 9곳을 싹쓸이 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현 정부가 ‘해경 해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해경과 연고가 있는 강원도 동해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권 연대의 명분 준 국사 교과서 이슈
심판론 대 안정론’과 같은 전통적인 이슈 말고 내년 총선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프레임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선거의 성패는 프레임에서 갈린다. 프레임을 장악하는 쪽이 논쟁을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확대될 경우 새누리당이 다소 유리한 국면에서 총선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과연 그럴까. 이 이슈는 보수 결집만이 아니라 진보 결집도 가져올 수 있다. 기존의 25% 진보, 35% 중도, 40%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40% 진보, 20% 중도, 40% 보수의 ‘편편한 운동장’으로 바뀔 수 있다.
리얼미터가 10월 2일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검정 교과서’를 선호하는 응답이 43.1%로, ‘국정 교과서’를 선호하는 응답(42.8%)과 비교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층에서는 국정 62.2% 대 검정 25.0%, 진보층에서는 그 비율이 17.4% 대 68.0%로 나타났다. 그런데 중도층에서는 국정 46.6% 대 검정 46.1%로 오차범위 내에서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과거 굵직굵직한 이념 이슈마다 승부를 걸어 정치적 수확을 일궈 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나왔을 때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고 국가보안법은 결국 존치됐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는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보수층을 결집시켰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집권 후에는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종북의 길을 걸었던 통합진보당이 해산됐고, 전교조는 법외 노조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념 전쟁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나 분열로 번져 노동 개혁, 금융 개혁 등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 노동 개혁을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 벌써 야당은 교과서 문제를 예산 등과 연계 투쟁할 것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보수가 각종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보수가 강화돼서가 아니라 중도가 보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이념 전쟁으로 치달으면 치달을수록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국정화 이슈 이전에는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야권이 무기력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화 이슈로 선거 흐름이 바뀌는 것 같다. 선거 구도가 여당 대 야당,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로 전환되고 있다. 당장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문재인 대표,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 그리고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이런 3자 협의체가 총선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분명 국정화 이슈는 야권 연대의 명분을 주고 있다.
물갈이 욕구 높아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9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9대 국회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은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절반에 가까운 47%는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이 교체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시 당선되는 게 좋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현역의원 교체 지수(교체/재선)가 1.96으로 현역 의원에 대한 물갈이 욕구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여야의 텃밭 지역인 영호남에서 교체 지수가 상당히 높게 나왔다. 광주·전라에서 현역 의원 교체를 원하는 응답 비율이 58%로 가장 높았고 대구·경북은 53% 순이었다. 이런 수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텃밭인 호남과 TK에서 표심이 크게 출렁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느 정당이 국민의 변화 욕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인물을 공천하느냐가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다.
형식상 내년 총선은 지난 10년 이래 처음으로 ‘박근혜 없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라는 인물을 통해 각종 선거에서 승리했다. 박근혜 없는 선거에서는 결국 어느 정당이 경쟁력 있는 인물을 통해 공천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질 것이다.
한국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는 낡음과 새로움을 축으로 하는 구도(構圖)이다. 국민은 대세론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을 멀리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력을 지지한다. 새롭게 보이는 세력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한국미래전략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선에서 후보 지지를 결정할 때 ‘누가 대통령으로서 준비가 잘되어 있는지’(43.6%), ‘누가 새로운 인물이고 변화와 개혁을 하기에 적임자인지’(32.8%)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선택했다.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에서도 ‘어느 정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준비가 잘되어 있는지’, ‘어느 정당이 ‘변화와 개혁을 위한 새로운 인물을 공천하는지’가 중요하다.
박근혜, 퇴임 후 정치 욕구 버려야
▲제20대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날인 2012년 4월 12일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도덕성 경쟁에서 앞서는 정당이 승리할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9월 22~24일)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을 물은 결과 ‘도덕성’ 30%, ‘소통과 화합’ 27%, ‘능력과 경험’ 20%, ‘추진력’ 14%, ‘참신성’ 3% 순으로 나온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정과 능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애국의 방법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벌써 5명의 현역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새정연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현역 의원도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다.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이는 의원들이 많은 정당이 그렇지 않은 정당보다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
내년 총선은 ‘박근혜 없는 선거’로 치러질 것이다. 인물 경쟁력에서 허덕이는 새누리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박근혜는 보이지 않지만 박근혜가 지배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 당장 내년 총선의 최대 대립 쟁점으로 부상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의 최전선에 박 대통령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전략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 퇴임 후에도 친박그룹의 세력화로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착각이다. 과거 많은 대통령들이 재임 중에 자신의 퇴임 후 정치 기반을 유지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에서는 구도, 이슈, 인물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변수가 또 있다. 어느 정당이 시대정신을 잘 읽어서 그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하느냐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시대정신에 대해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당대 가장 긴박한 현안을 풀려는 문제의식과 고민이 담겨 있는 열린 성격의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는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시대과제와 분명 다르다. 따라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총선이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어느 정당이 승리할지 전망하는 것은 분명 지난한 일이다. 민심은 수시로 요동치기 때문이다. 바람이 언제 어떻게 불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선거 승리만을 위해 음모와 공학에만 빠지면 선거에 이겨도 질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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