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뮤지컬과 어린이 날 ㅡ
오늘이 어린이 날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오늘 교회예배를 마치고 지난 세월의 글들을 지방출장을 가면서 정리해본다. 그래도 요즘 행사에 전형(심의 및 심사)위원으로 초청해 주심을 감사드린다.
현직에 있을 때는 참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활동하다가 오늘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옛생각에 젖어 작성한 글들을 회상하면서 fb친구들에게 과거의 글을 소개해 본다.
오늘이 보편적으로 어린이 날 공연행사가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7일 날 끝날 때도 있었다. 예전같으면 뒷정리와 마무리 작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왔다갔다 했을텐데 ㅡ 오늘은 지방 출장을 통해 여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행복한 것인가?
얼마전 코로나19시대에도 대면에서 비대면 강의 때문에 영상제작의 강의 준비관계로 바쁜 세월을 보내면서 여유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이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과거에 바쁜 오늘 5월5일 어린이 날이 생각이 난다.
어린이 날을 선포한 방정환선생은 일찍 소천하셨지만 건강한 아이들이 자라도록 저서를 남기셨다.
처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觀劇한 어린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 손주를 보면서 부모 할미 할배들이 남은 생애 보람있는 일을 찾아 가족 친지와 이웃들에게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셨으니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는가?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자녀와 손자를 주시고 꿈과 희망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날마다 모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 하루를 찬미하고 미래를 위해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희망과 힘과 용기를 주시니 스승과 가족 친지들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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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ㅡ 뮤지컬과 어린이 날{달} ㅡ
(매년 4.26 ~ 5.7)
뮤지컬하면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추억을 되세기며 메모를 해본다.
어린이 뮤지컬은 MBC 주관ㆍ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뮤지컬단(前 市立歌舞團)에서 공연할 때마다 매년 공연(4.26~5.5)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을 했다.
IMF 때 참으로 어려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어린이 뮤지컬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이상한 나라 엘리스. 머털도사 등 ~ 매년 세종문화회관 3895석을 만석을 3층까지 유료관객 공연으로 한 작품당 객석을 꽉 채워 뮤지컬을 활성화ㆍ대중화를 시킨 계기가 되었다.
본인은 기획 후에 관객동원을 위해 시내 유치원은 물론 서울근교 유치원을 순회하면서 전단지를 뿌리면서 공연 홍보를 했다. 다행히 당시 자가용 포니1을 끌고 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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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는 외부 스폰서가 없는~
우리 자체공연을 할 때에 외부 객원 연출자를 초빙했는데 그 연출자는 연출을 위해 "각색" 을 하시겠다고 호텔에 있다고 통보를 받고 ~ 찾아가
연출료도 작은데 무슨 돈으로 호텔료를 지불하려고 하십니까? 질문하니 왜? 시립市立인데 진행비가 없어?~ 부족해서 제 월급으로 충당한다고 답변을 드렸더니. 연출자는 황당해 하시면서 바로 다음날 호텔에서 나오셨다.
저는 기획할 시기에 공연을 할 때는 5개월 정도는 월급을 집에 못갔다주고 있었다. 다행인지 저는 기업체 및 연수원에서 초청강의가 있어 퇴근 후에 삼성, 대우, 현대, 포스코, LG 등 강의를 했기 때문에 당시 수입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초청강의가 없어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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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또 한 예로. 81년도에는 처음으로 MBC 마당놀이 공연을 할 때, 문화체육관에서 3천800여 만원의 제작 예산을 들여 MBC에서 기획ㆍ제작했는데ㅡ 공연이 끝내고 출연료를 조금 지급하면서
서울시 소속이기 때문에 단원들은 市월급을 받고 있으니 출연료를 세금으로 입금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다음 마당놀이 공연도 MBC와 함께 이미 계약되어 있는데 단원들이 市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출연료를 받지 못하기에 공연을 할 수가 없어 ~ 다음에는 다른 단체로 공연을 인수인계하여 물려주게 되었다.
이렇게 뮤지컬단(예그린악단ㆍ국ㆍ시립가무단)의 마당놀이는 물론 대한민국에서 뮤지컬을 활성화ㆍ대중화시킨 계기가 된 것입니다. 물론 예그린악단 때도 힘들게 공연했다. 그러나 국립극장으로 이관되었을 때는 예그린예술단(국립가무단)이 한 작품을 할 때에 국립소속단체가 의무적으로 찬초출연해 주었기 때문에 한 작품을 출연할 때는 출연자가 520여명씩 출연 공연할 때도 있었다.
때문에 북한의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의 작품을 비교도 하면서 제2차 남북문화동시교류를 재추진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2차 남북문화동시교류를 못하고 있다.
처음 예그린악단(원)이
국립극장에서 시민회관으로 이관 되었을 때, 시민회관의 화재로 인해 세종문화회관이 건설되었는데 첫 공연을 시도해야 했었는데 3895석을 어떻게 채우지? 고민을 많이 했다. 때문에 ㅡ
3895석×1회×3배수=12,000매의 티켓을 인쇄하여 관객동원으로 각 시내 동사무소를 순회하면서 배포를
했는데 시민들이 [뮤지컬]이 뭐냐?고 질문할 때인데 ㅡ
뮤지컬은 가무악극歌舞樂劇의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서 종합예술입니다. 설명하니까 또 가무악극이 뭐냐?고 질의응답하면서 열심히 손짓 발짓 할 때이다.
참으로 고민을 하다가 최창주는 총무에서 기획실장이 되어 열심히 뛰어 다녔다. 후원을 얻으려고 했으나 기업체는 시립市立이라 지원이 아니되고 방송국을 섭외했다.(지금은 모르겠다?)
다른 방송국은 거부했지만 MBC와 공동기흭(최창주)자가 되어 IMF 때 어린이 뮤지컬을
유료관객으로 3895석을 매년 꽉꽉 채워 뮤지컬을 활성화ㆍ대중화 시켰을 때 ㅡ
한예술종합학교가 설립되면서 한예종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초창기 연희학과장으로 임명을 받고 보니 학교에도 강의장과 실기 연습실 부족으로 고민하다가 장관을 찾아가 의견을 제안하니 장관께서는 5층 건물을 관계부서에 소통 후에 결정ㆍ지원해 주셨기 때문에 학생들이 연습공간이 확보되었고 공부할 수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고맙고 진심으로 感謝했다.
학교에서 뮤지컬과 연희극에 대해 비교 강의와 공연도 하면서 마케팅, 연희극과 뮤지컬, 마당과 무대, 풍물과 농악農樂, 가면극과 탈춤, 인문학 강의, 천자문, 기획이 무엇이냐? 등을 통해 대한민국 예술대학에 처음으로 설립 된 전통예술원 연희학과장으로서 뮤지컬 전공자가 탈춤과 한국전통문화에 대해 한국말로 연희극! 서양의 뮤지컬을 정리하면서 우리 것을 하면 먹고 살 수가 없는 것을 해결해 보려고 연구ㆍ노력했는데 ~ 시기가 되어
정년퇴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정년 후에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대행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자회견도 해보았지만, 학교나 사회생활의 삶에서 힘든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힘든 여정의 세월을 보냈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서양 것은 진행이 될 수 있었고, 우리 것은 우리 것인데도 불구하고 관심들이 부족했었다.
이제 뮤지컬 시대가 된 것 같다.
후배ㆍ제자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아 보이지만 한국적 뮤지컬을 외면하고 서양 뮤지컬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따까운 심정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크리스마스이브 때 앵콜 공연을 했지요.
그래도 청년들에게 우리 것을 통해 일거리창출을 위해 노력해 봅시다라고 건의하고 국ㆍ내외로 제시하고 제안해 하면서 연구ㆍ노력했다.
당시 한국가면극(탈춤)으로
77년도 30개 주립대학 순회 공연과 강의와 78년도 유럽일주와 아시아를 순회하면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소개하여 세계인들에게 인정 받았다.
아울러 당시 88올림픽 홍보를 위해 87년도 미국과 일본에 [뮤지컬 양반전]을 가지고 100여명을 인솔하여 순회 공연하였는데 MR로 공연을 했기 때문에 혹평酷評을 받았지만 ~
특히 85년도 "서울예술단" 을 창단하여 38선 死線을 넘어 경의선 철도를 타고 평양공연을 할 때도 평양대극장에서 MR로 했으나 풍물(農樂)로 휘나레 공연을 장식했기 때문에 초전박살을 시키고 내려 왔으며, 단원들도 긴장했지만 건강하게 효과적으로 공연을 잘 마치고 내려왔다.
이제 "벨칸토 창법"도 좋지만 "예그린 창법"을 통해 한국적 뮤지컬도 함께 활성화ㆍ대중화 시켜보고 싶다. 좋은 뮤지컬 연희 연기기자들은 많은데 기획ㆍ제작자와 함께 스태프들의 앙상블로 좋은 작품을 제작해 보고 싶을 뿐이다.
가제입니다. 창작 뮤지컬 통일기원 ~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이제부터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문화전쟁으로 두 민족이 한 민족으로 남북통일을 해봅시다. 祈禱하겠습니다.
제일의 富는 健康입니다.
건강이 있고 난 다음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