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번역) - 668[4 ~ 69](240528)
< 전 체 번 역 >
한편 조조가 관도를 지키는데 팔월부터 시작하어 구월이 끝날 때에 이르자 군사력은 점점 약해지고 양초는 계속 공급이 되지 않았다. 속으로 관도를 버리고 허창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주저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편지를 써서 허창으로 사람을 시켜 순욱에게 보냈는데 순욱이 답장을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퇴 여부를 묻는 존명을 받았는데 어리석은 저의 소견으로는, 원소가 그의 군력을 관도에 총 집결시켜 명공과 승부를 결정 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께서는 지극히 약한 세력으로 지극히 강한 세력을 감당하고 있는데 만약 [원소가] 명공을 이기지 못하면 이는 오히려 우리가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으니 이는 천하의 큰 계기입니다. 원소 군이 비록 수자가 많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명공의 신무하고 명철함은 어떻게 형세가 바뀌더라도 어찌 성공치 못 하시겠습니까? 지금 비록 무기와 양식은 열악하지만 옛날 초 나라와 한 나라가 형양과 성고에서 다툴 때처럼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공께서는 지금 경계선을 그어놓고 지키고 있는데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적의 실상이 드러나고 세력이 고갈되면 반드시 어떤 변화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 때가 기이한 작전을 쓸 시기이오니 결단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명공께서 잘 살펴 결단하여 처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조조는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뻐하며 전 군에 힘을 다해 사수하라고 명했다. 이 때 원소 군이 약 삼십여 리를 물러감에 따라 조조는 장수를 영외로 내 보내 순찰을 돌게 했는데 서황의 부장 사환이 원소의 첩자를 잡아서 서황에게 다리고 왔다. 서황이 원소군의 내부 사정을 물었더니 “조만간 대장 한맹이 군량을 운반하여 군에 보급해 주게 돼 있는데 위선 우리들에게 길을 탐색해 보라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서황이 직시 이 소식을 조조에게 보고했다.
순유 : "한맹이란 자는 한 낱 필부의 용맹만 가진 자입니다. 한 사람이 경기 수천을
이끌고 가게 하여 중간에서 공격하여 양초의 공급을 끊어버리면 원소의 군은 저절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조조 :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순유 : “망설일 것 없습니다, 곧 바로 서황을 보내시지요.”
조조는 그리하여 서황으로 하여금 부장 사환과 소속 군사들을 거느리고 먼저 출동토록 하고 장료와 허저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뒤 따라 가서 구응토록 했다. 그날 밤 한맹은 양곡을 싫은 수레 수천 대를 호송하여 원소의 영채로 운반하고 있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산골짜기에서 서황과 사환이 군사를 인솔하고 나와 가는 길을 막아섰다. 한맹은 말을 달려 나와 전투를 벌렸다. 서황이 한맹을 맞아 싸움을 벌렸고 부장 사환은 수레를 운반하는 인부들을 쫓아 흩어버리고 양곡 싫은 수레에 불을 질렀다. 한맹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어 말을 돌려 도망치니 서황은 군사를 독려하여 적의 군량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원소의 군사들이 멀리 서북쪽을 바라보니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영문을 몰라 놀라고 있는데 패전해서 도망 온 군사들이 “양초를 빼앗겼습니다.”라고 보고를 드렸다.
원소는 급히 장합과 고람을 내 보내어 큰 길을 막아 저항토록 했는데 마침 양초를 태우고 돌아오든 서황과 마주쳤다. 장합등이 서황과 싸움을 하려는데 배후로부터 장료와 허저의 군사들이 도착해서 양 쪽에서 협공을 하여 원소 군을 쳐서 흩어버리고 조조의 네 장수가 한 곳으로 병력을 모아 관도로 회군했다. 조조는 너무 기뻐 후하게 상을 내려 위로하고, 영채 앞에 군대를 나누어 영채를 세워 의각지세를 이루었다.
< 原 文 >
却說曹操守官渡,自八月起,至九月終,軍力漸乏,糧草不繼,意欲棄官渡退回許昌;遲疑未決,乃作書遣人赴許昌問荀彧。彧以書報之。書略曰:
承尊命使決進退之疑,愚以袁紹悉衆聚於官渡,欲與明公決勝負,公以至弱當至強,若不能制,必爲所乘;是天下之大機也。紹軍雖衆,而不能用;以公之神武明哲,何向而不濟?今軍實雖少,未若楚、漢在滎陽、成皋也。公今畫地而守,扼其喉而使不能進,情見勢竭,必將有變。此用奇之時,斷不可失。惟明公裁察焉。
曹操得書大喜,令將士效力死守。紹軍約退三十餘里,操遣將出營巡哨。有徐晃部將史渙獲得袁軍細作,解見徐晃。晃問其軍中虛實。答曰:「早晚大將韓猛運糧至軍前接濟,先令我等探路。」徐晃便將此事報知曹操。荀攸曰:「韓猛匹夫之勇耳。若遣一人引輕騎數千,從半路擊之,斷其糧草,紹軍自亂。」操曰:「誰人可往?」攸曰:「即遣徐晃可也。」
操遂差徐晃帶將史渙并所部兵先出,後使張遼、許褚引兵救應。當夜韓猛押糧車數千輛,解赴紹寨。正走之間,山谷內徐晃、史渙引軍截住去路,韓猛飛馬來戰。徐晃接住廝殺,史渙便殺散人夫,放火焚燒糧車。韓猛抵當不住,撥馬回走。徐晃催軍燒盡輜重。袁紹軍中,望見西北上火起,正驚疑間,敗軍報來:「糧草被劫。」 紹急遣張郃、高覽去截大路,正遇徐晃燒糧而回。恰欲交鋒,背後張遼、許褚軍到。兩下夾攻,殺散袁軍,四將合兵一處,回官渡寨中。曹操大喜,重加賞勞;又分軍於寨前結營,爲犄角之勢。
< 文 段 解 說 >
(1)却說曹操守官渡,自八月起,至九月終,軍力漸乏,糧草不繼,意欲棄官渡退回許昌;遲疑未決,乃作書遣人赴許昌問荀彧。彧以書報之。書略曰:
承尊命使決進退之疑,愚以袁紹悉衆聚於官渡,欲與明公決勝負,公以至弱當至強,若不能制,必爲所乘;是天下之大機也。紹軍雖衆,而不能用;以公之神武明哲,何向而不濟?今軍實雖少,未若楚、漢在滎陽、成皋間也。公今畫地而守,扼其喉而使不能進,情見勢竭,必將有變。此用奇之時,斷不可失。惟明公裁察焉。
각설조조수관도,자팔월기,지구월종,군력점핍,양초불계,의욕기관도퇴회허창;지의미결,내작서견인부허창문순욱。욱이서보지。서략왈:
승존명사결진퇴지의,우이원소실중취어관도,욕여명공결승부,공이지약당지강,약불능제,필위소승;시천하지대기야。소군수중,이불능용;이공지신무명철,하향이불제?금군실수소,미약초、한재형양、성고간야。공금화지이수,액기후이사불능진,정현세갈,필장유변。차용기지시,단불가실。유명공재찰언。
乏 가난할 핍. 意欲 …하고 싶다. …하고자 하다. 遲疑 주저하다, 머뭇거리다. 承 받들 승. 愚 어리석을 우, 자기의 겸칭. 悉 다 실. 濟 건널 제. 軍實 무기와 양식. 未若 같지 않다. 滎 실개천 형. 楚、漢在滎陽、成皋間 한 나라가 형양, 성고에서 초 나라와 싸울 때의 상황.초와 한이 형양과 성고에서 싸웠는데 그때 한 나라의 유방의 세력이 초나라 항우의 세력보다 매우 약하여 항상 항우가 이겼다. 畵 그림 화, 그을 획. 扼 누를 액, 잡다, 움키다. 喉 목구멍 후. 見 나타날 현, 보일 현, 볼 견. 竭 다할 갈, 물이 마르다. 情見勢竭 실정이 드러나 세력이 바닥났다. 惟 생각할 유, 꾀할 유, 오로지, 생각건대, 어조를 고르거나 강조하는 어조사. 裁 마를 재, 판단하다, 결단하다. 察 살필 찰.
< 해 석 >
한편 조조가 관도를 지키는데 팔월부터 시작하어 구월이 끝날 때에 이르자 군사력은 점점 약해지고 양초는 계속 공급이 되지 않았다. 속으로 관도를 버리고 허창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주저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편지를 써서 허창으로 사람을 시켜 순욱에게 보냈는데 순욱이 답장을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퇴 여부를 묻는 존명을 받았는데 어리석은 저의 소견으로는, 원소가 그의 군력을 관도에 총 집결시켜 명공과 승부를 결정 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께서는 지극히 약한 세력으로 지극히 강한 세력을 감당하고 있는데 만약 [원소가] 명공을 이기지 못하면 이는 오히려 우리가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으니 이는 천하의 큰 계기입니다. 원소 군이 비록 수자가 많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명공의 신무하고 명철함은 어떻게 형세가 바뀌더라도 어찌 성공치 못 하시겠습니까? 지금 비록 무기와 양식은 열악하지만 옛날 초 나라와 한 나라가 형양과 성고에서 다툴 때처럼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공께서는 지금 경계선을 그어놓고 지키고 있는데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적의 실상이 드러나고 세력이 고갈되면 반드시 어떤 변화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 때가 기이한 작전을 쓸 시기이오니 결단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명공께서 잘 살펴 결단하여 처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2)曹操得書大喜,令將士效力死守。紹軍約退三十餘里,操遣將出營巡哨。有徐晃部將史渙獲得袁軍細作,解見徐晃。晃問其軍中虛實。答曰:「早晚大將韓猛運糧至軍前接濟,先令我等探路。」徐晃便將此事報知曹操。荀攸曰:「韓猛匹夫之勇耳。若遣一人引輕騎數千,從半路擊之,斷其糧草,紹軍自亂。」操曰:「誰人可往?」攸曰:「即遣徐晃可也。」
조조득서대희,영장사효력사수。소군약퇴삼십여리,조견장출영순초。유서황부장사환획득원군세작,해견서황。황문기군중허실。답왈:「조만대장한맹운량지군전접제,선령아등탐로。」서황편장차사보지조조。순유왈:「한맹필부지용이。약견일인인경기수천,종반로격지,단기량초,소군자란。」조왈:「수인가왕?」유왈:「즉견서황가야。」
效 본받을 효, 힘을다하다. 진력하다. (힘이나 생명을 다른 사람 혹은 집단을 위해) 바치다. 드리다. 공헌(貢獻)하다. 效力 힘을 다하다, 효과, 효능. 約 묶을 약, 대략, 대강.
巡 돌 순. 哨 망볼 초. 解 풀 해, 압송하다. 接 사귈 접. 接濟 원조하다, 보급하다. 從 좇을 종, ---부터.
< 해 석 >
조조는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뻐하며 전 군에 힘을 다해 사수하라고 명했다. 이 때 원소 군이 약 삼십여 리를 물러감에 따라 조조는 장수를 영외로 내 보내 순찰을 돌게 했는데 서황의 부장 사환이 원소의 첩자를 잡아서 서황에게 다리고 왔다. 서황이 원소군의 내부 사정을 물었더니 “조만간 대장 한맹이 군량을 운반하여 군에 보급해 주게 돼 있는데 위선 우리들에게 길을 탐색해 보라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서황이 직시 이 소식을 조조에게 보고했다.
순유 : "한맹이란 자는 한 낱 필부의 용맹만 가진 자입니다. 한 사람이 경기 수천을
이끌고 가게 하여 중간에서 공격하여 양초의 공급을 끊어버리면 원소의 군은 저절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조조 :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순유 : “직시 서황을 보내시지요.”
(3)操遂差徐晃帶將史渙并所部兵先出,後使張遼、許褚引兵救應。當夜韓猛押糧車數千輛,解赴紹寨。正走之間,山谷內徐晃、史渙引軍截住去路,韓猛飛馬來戰。徐晃接住廝殺,史渙便殺散人夫,放火焚燒糧車。韓猛抵當不住,撥馬回走。徐晃催軍燒盡輜重。袁紹軍中,望見西北上火起,正驚疑間,敗軍報來:「糧草被劫。」 紹急遣張郃、高覽去截大路,正遇徐晃燒糧而回。恰欲交鋒,背後張遼、許褚軍到。兩下夾攻,殺散袁軍,四將合兵一處,回官渡寨中。曹操大喜,重加賞勞;又分軍於寨前結營,爲犄角之勢。
조수차서황대장사환병소부병선출,후사장료、허저인병구응。당야한맹압량거수천량,해부소채。정주지간,산곡내서황、사환인군절주거로,한맹비마래전。서황접주시살,사환변쇄산인부,방화분소양거。한맹저당부주,발마회주。서황최군소진치중。원소군중,망견서북상화기,정경의간,패군보래:「양초피겁。」 소급견장합、고람거절대로,정우서황소량이회。흡욕교봉,배후장료、허저군도。양하협공,쇄산원군,사장합병일처,회관도채중。조조대희,중가상로;우분군어채전결영,위의각지세。
部 거느릴 부, 나눌 부. 押 누를 압, 호송하다. 解 풀 해, 압송하다, 호송하다. 截住 막다, 저지하다. 接住 받다, 잇다. 厮殺 서로 싸우고 죽이다, 싸우다, (시합에서) 우승을[승리를] 다투다. 焚 불사를 분. 燒 사를 소. 抵當不住 당해내지 못하다. 撥馬 말머리를 돌려. 輜 짐수레 치. 輜重 말이나 수레에 실은 짐, 군대의 군수품. 劫 위협할 것, 빼앗을 겁. 恰 마치 흡, 흡사, 마침, 알맞게, 바로, 꼭. 犄 거세한 소 의, 의지하다. 犄角之勢[의각지세] 양쪽에서 잡아당겨서 찢으려는 것과 같은 양면작전의 태세. 掎角之勢[기각지세] 사슴을 잡을 때 사슴의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는 뜻으로, 앞뒤에서 적과 맞서는 형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掎 끌 기, 뽑을 기.
< 해 석 >
조조는 그리하여 서황으로 하여금 부장 사환과 소속 군사들을 거느리고 먼저 출동토록 하고 장료와 허저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뒤 따라 가서 구응토록 했다. 그날 밤 한맹은 양곡을 싫은 수레 수천 대를 호송하여 원소의 영채로 운반하고 있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산골짜기에서 서황과 사환이 군사를 인솔하고 나와 가는 길을 막아섰다. 한맹은 말을 달려 나와 전투를 벌렸다. 서황이 한맹을 맞아 싸움을 벌렸고 부장 사환은 수레를 운반하는 인부들을 쫓아 흩어버리고 양곡 싫은 수레에 불을 질렀다. 한맹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어 말을 돌려 도망치니 서황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적의 군량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원소의 군사들이 멀리 서북쪽을 바라보니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영문을 몰라 놀라고 있는데 패전해서 도망 온 군사들이 “양초를 빼앗겼습니다.”라고 보고를 드렸다.
원소는 급히 장합과 고람을 내 보내어 큰 길을 막아서도록 했는데 마침 양초를 태우고 돌아오든 서황과 마주쳤다. 장합등이 서황과 싸움을 하려는데 배후로부터 장료와 허저의 군사들이 도착해서 양 쪽에서 협공을 하여 원소 군을 쳐서 흩어버리고 조조의 네 장수가 한 곳으로 병력을 모아 관도로 회군했다. 조조는 너무 기뻐 후하게 상을 내려 위로하고, 영채 앞에 군대를 나누어 영채를 세워 의각지세를 이루었다.
2024년 5월 28일
이 종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