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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조선학교>라는 곳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지요. 어떤 이는 징용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러 가기도하고, 또 어떤 이는 근로정신대로 가기도 하는 등 일제시대 백 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땅으로 갔다고 합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광복이 되었지만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았습니다. 돌아올 배 편을 구하지 못해 남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미 일본에 정착해서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가난 뿐인 고향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맨 손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던 이들도 있었고요, 또 패전 이후 자기네로 인해 식민지 유민이 되어버린 조선인들을 일본인과 똑같이 대우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남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든 고국에 돌아올 수 없었던 이들은,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을 그리며 그곳에서 학교를 세우고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조선학교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북이 분단되면서 동포들 사이에도 분단의 선이 그어졌습니다. 조선학교는 일본 내 북한으로 규정되었고, 냉전시대에 남쪽에 사는 우리는 이들과 접촉해서도 안되고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공동선언이 나오면서 평화교류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우리에게도 일본 내 조선학교와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조선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5년, 조선학교 어린이 청소년들이 매우 어려운 환경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우리말을 배우는데 책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린이책 활동을 하던 도서관 선생님들과 어린이책 작가들이 그림책을 들고 처음으로 조선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때 받았던 감동과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이미 재일동포 3세, 4세까지 이어졌고 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조국을 떠난지 80년에서 100 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이들에게 고향을 물으면 경상북도 청송, 밀양, 제주도...라고 이야기합니다. 백 년도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식민의 아픔을 안고 맨 몸으로 떠나온 땅, 그 후 한 번도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그 아들, 딸과 손주는 그 땅의 흙냄새 한 번 맡아보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고향은 여전히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인 것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반드시 그곳에 돌아갈 거라고, 그때 우리 말과 역사를 잊어버린 망국의 백성이 되어선 안된다고, 그들은 매일같이 이국 땅에서 조선말과 조선역사를 배우며 조선의 춤과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 정부는 지독했습니다. 일본에서 살며 일본 국가에 세금을 내는데도 이들은 자녀가 일본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정 보조를 받지 못해 온전히 학부모 스스로 운영비를 마련해 학교를 운영합니다. 다른 외국인 학교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재정지원을 해주고 신분보장도 해주는 일본 정부가 유독 조선학교에 대해서만은 핍박하고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북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일본 우익들은 이들 학교에 화염병을 던지는 테러를 하거나, 학교로 협박전화를 걸어 '조센징은 조선으로 돌아가라' 욕하고 죽여버리겠다 협박합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교하던 학생들이 지하철 안에서 테러를 당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체 왜?....우리나라는 일본에 강제 점령당해 그들 때문에 고통받았고, 전쟁에 이어 끝내는 분단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탄광을 파고, 철도를 놓기 위한 노역으로 조선인들을 강제로 일본 땅에 끌고 가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살 이유도 없었던 이들입니다. 무릎꿇고 사과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그들을 학대하고 차별하고 욕하고 탄압하고 있습니다.
설령 죄가 있더라도, 이념상의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어른들의 문제. 국가간의 문제.
어린 아이들의 교육과 배움의 기회를 특정 이념이나 적대관계에 놓인 상대라고 해서 탄압하고 빼앗는 것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권리를 인정하는 유네스코 인권선언에도 반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일본 정부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어린이 청소년과 그 부모들에게 말이죠.
더 무서운 건 이런 역사적인 배경과 사실을 일본 내에서조차 알고 있는 이들이 극히 드물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선학교에 가서, 그 아이들을 만나고, 학부모님들을 만나고, 이런 역사적 사실과 아픈 현실을 직접 보고 들으니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알지 못했던 그 이전의 삶. 우리나라 분단 비극의 현실과 희생양이 되어버린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던 2005년 이전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그날로부터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잘못된 어른들의 역사에 희생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그것이 어린이도서관, 어린이책 작가 선생님들과 함께 조선학교에 그림책 보내기 운동을 시작하고 일 년에 한 번은 그들을 찾아가 우리말로 책을 읽어주고 그들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 전통을 알려주는 <재일 민족학교 책교류 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것이 14년이 되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열심히 학교를 방문하고 교류하고 즐겁게 이런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이런저런 감시와 사찰로 어려움을 겪고 교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일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고 비 새는 학교, 그러나 50년, 60년, 70년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피와 땀으로 세우고, 주름진 손으로 일구었던 우리 학교. 뛰어놀 놀이터조차 변변히 없던 운동장을 마음 아파하며 힘과 돈을 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드넓은 운동장에 뛰어놀 학생이 점점 사라져가는 슬픈 학교.
일본 정부의 모진 탄압과 재정난, 학부모들의 경제난 속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점점 학교를 떠나고, 해방과 분단 직후 고향에 돌아갈 꿈을 키우며 한때 전국에 천 여개나 만들어졌던 학교는 이제 일본 전역에 겨우 40 여 곳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떤 학교는 겨우 학생 6명...내일이면 곧 학교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 여년째 책을 보내고 교류하고 있는 기후조선초중급학교도 1990년대에는 백 오십명 학생들이 꿈을 키우던 터전이었고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 2006년만 해도 70 여 명 학생들이 있었지만 2018년 올해 방문한 학교에는 20명 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러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교원 중에는 생활고로 학교를 떠나 노동 현장으로 가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과연 21세기 일본이라는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역사에서 지워진 나라 '조선'이라는 무국적 상태를 버리고 일본 국적으로 바꾸기만 하면 살만한 나라. 일본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수업료를 면제받으며 보통의 일본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그런 나라에서 왜 이들은 고집스럽게 국적도 바꾸지 않고 고통받으며 조선학교를 보내는 것일까요?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물음이었으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으로 부딪쳐왔던, 그 답을 찾아 나갔던 지난 날이 저의 긴 교류의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후조선초중급학교에는 특별한 분들이 계십니다.
<보람회>라고 하는, 기후학교를 지지지하고 응원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나란히 앉은 두 분은 부부입니다. 남편 분은 의사로 은퇴하셨고, 아내는 교원을 하다 정년퇴직하셨습니다. 이분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조선학교라는 곳이 있고, 이들이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는 걸 보면서 어린이들을 위해 나서주셨습니다. 자발적으로 학교에 와서 청소도 해주시고, 학교 수선도 해주시다가 이정도로는 안되겠다 해서 일본인이 중심된 후원조직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 조선학교 어린이들에 대해 알렸습니다. 역사 앞에 진 죄를 우리 스스로 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들을 돕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에 따끔한 목소리를 내는 분들입니다.
벌써 20년째 이분들은 기후현에서 조용히 학교를 후원하고 돕고 있습니다. 매달 후원회원을 통한 후원금을 모금하고, 바자회를 열어 모아진 후원금을 학교에 기부하기도 합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의 표본같은 분들입니다.
옆에 앉은 한 분은 이들의 정성에 감복해 후원회에 동참하게 되었고 더 많이 알기 위해 한국어 공부도 하고 계십니다. 서투르지만 한국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처음 조선학교에 와보고 너무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교원 한 명 한 명이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교원과 학생이 사랑과 믿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공부를 해나가는 이런 게 진정한 교육의 현장이라고, 이런 교육이 일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조선학교에 가서 처음 받은 감동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랑과 신뢰.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하나 되어 아이를 진심으로 교육하는 이런 믿음의 교육. 그렇게 자라난 아이는 잘못되거나 비뚤어진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학교는 우주가 되어 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보호합니다.
그러나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이 아이들은 소수자입니다.
일본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은 섬처럼 외롭게 떠있는 존재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일본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신기해서 물어봅니다. 어쩌면 그렇게 일본말을 잘 하지? 하고요...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까 당연히 잘하지...라고 대답하면, 어째서 너희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된 거야? 묻는답니다.
50만 명이 넘는 재일동포들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일본 사회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학교 안에서 무조건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나던 아이들은 세상에 한 발 나서는 순간, 거대한 쓰나미를 맞게 됩니다. 차별과 학대라는.
이런 이유로 사춘기에 들어서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합니다....나는 누구인가?
한국 땅에서 나고 자라 이런 민족적 역사적 갈등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우리 아이들도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갈등하는데 하물며 조국은 조선땅, 고향은 경상도, 교육의 뿌리는 북한이요, 감수성은 일본인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깊은 고민과 때론 상처가 되겠지요. 그것이 가슴 아픕니다.
다행히도...아주 다행히도...일본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이들은 단지 우리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아주 조금은 격려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일본인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직업도 늘어났습니다. 한국어를 한다는 이유로 때로 그들에게서 선망의 눈길을 받는 일도 가끔은 있습니다...
욘사마와 동방신기에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멀리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학부모님들이 손수 점심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김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김치를 담가 판매하는 것은 동포들의 큰 수입원입니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불고기 파티도 열어 주었습니다. 이분들이 하루 두 시간씩 어린 자녀를 버스에 태워 조선학교에 보내는 씩씩하고 굳센 엄마들입니다.
이제는 학교를 졸업해 멀리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싶어 학교로 왔습니다.
며칠 후, 여전히 일본에 머물고 있던 우리는 도쿄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기후조선초중급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초급부 3,4학년일 때 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들이 가져다주신 그림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며, 소중하게 책을 받아들던 아이들입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 쓴 것을 보내주기도 했지요. 학교에 갈 때면 종이와 펜을 들고 나타나 선생님, 사인해주세요...선생님 와주셔서 너무 좋아요...내년에도 또 와주실거죠? 몇 번이고 물어보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아이들입니다.
4년 여 세월을 못보던 사이, 대학생이 된 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혈육같은 정이 느껴집니다. 이들 중 한 친구는 올해 2년제 대학 보육학과를 졸업하고 내년에 자기 모교인 기후조선학교로 돌아가 교원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월급을 받을 수도 없는 가난한 우리학교에, 졸업생이 되어,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러, 내 후배들을 돌봐주기 위하여, 어린 새싹들에게 힘이 되기 위하여 그 친구는 우리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친구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남과 북, 분단과 이념...대체 그게 무엇이기에....우리는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을까요? 왜 남쪽에서 이들은 철저히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어야 했을까요? 왜 이들을 만나는데 허가와 승인이 필요하고,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사후 보고가 필요한 것일까요?
분단의 벽은 이처럼 잔인합니다.
이제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지고, 북미대화가 열리고, 평화가 우리 속으로 한 발 성큼 다가왔습니다. 전쟁과 냉전을 바라던 이들에게 보란듯이 우리들은 이 평화를 소중히 안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맑은 얼굴에서 영원히 웃음을 빼앗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아픈 날들을 살아온 재일동포들, 남과 북의 우리 모두에게 상처와 눈물은 씻겨지고 기쁨과 웃음의 노래만이 함께하는 그런 날을 기다립니다.
그때...우리들의 이야기는 정말 멋진 한 권의 그림책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겁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우리 아이들에게 읽혀질 것입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멀고 멀었던 그 어떤 날....이런 사람들이 있었다고요....
** 단체도,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닌 개인들의 모임일 뿐인 <재일민족학교 책교류모임 하나+>에 힘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날의 방문을 위하여 한 달 여 동안 한국에서 후원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 우리 그림책을 후원해주신 출판사와 작가님들, 그리고 소중한 그림책 원화를 기증하여 주신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 정성들을 모으고 또 모아 우리학교에 잘 다녀왔습니다. 시즈오카조선초중급학교, 도요하시초급학교, 기후조선초중급학교에 우리 그림책을 기증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분들의 감사와 기쁨의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아침에 눈을 깨면 정다운 목소리 세수하라 밥 먹어라 어머니 소리
사랑 깃든 곽밥을 가방 안에 넣고서 오늘도 기운차게 학교로 가요
와하하하하 와하하하하 웃음 많은 우리 학교 이런 학교 세상에 여기 밖에 없어요
훌륭한 조선사람 어서 되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부모님
따뜻한 그 사랑 가슴에 안고서 오늘도 기운차게 학교로 가요
사랑과 꿈 많은 우리의 학교 선생님 동무들 기다립니다
우리말 우리 글 어서어서 배워서 조선의 꽃으로 피어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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