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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제 2 장 성 령
(대 지)
一. 성령 강림(1-3)
二. 방언으로 전도함(4-13)
三. 베드로의 전도(14-41)
1. 성령을 증거함(14-21)
2.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함(22-35)
3. 책망(36)
4. 교훈(37-38)
5. 권면(39-41)
四. 교회의 부흥(42-47)
(본문 강해)
一. 성령 강림(1-3)
.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유월절부터 오십 일 째 되는 날이다. 정월(아빕월) 14일은 유월절이고 정월 14일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다. 레위기23:15-16에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 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라고 하였다. 여기서 안식일은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다음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49일)이 지난 그 이튿날이 오순절이다. 오순절을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한다(출34:22, 민28:26, 신16:9-10 참조). 오순절은 안식일 이튿날이니 이레 중 첫날 즉 주일날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후 첫번 주일날(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시고, 그 후 일곱 번째 주일인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날에 대하여 세 가지 학설이 있다. ①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유월절 다음날은 안식일이고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셨다는 설(說). ② 유월절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설(說). ③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유월절(유월절을 안식일로 봄)에는 무덤에 계시고 유월절 다음날 부활하셨다는 설(說)들이 있다.
③ 설이 옳다고 믿는다. 요한 18:28에는 예수님이 재판 받기 위하여 빌라도의 관정으로 들어갈 때에 유대인들이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재판 받은 그날 못 박혔으므로 유월절 전 날 못 박히신 것이 분명하다. 또 그 안식일이 큰 날이라고 하였다(요19:31 참조). 유월절이 큰 안식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월절 전 날 못 박혔다가 유월절(안식일)에는 무덤 속에 계시고 유월절 다음날 부활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첫번 오순절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 120명은 그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뜻이다. 즉 거룩하고 성결한 곳으로부터 성령님이 오셨다는 뜻이다. 물론 성령님이 그 전에도 세상에 계셨다. 시편 51:11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다윗이 말하였다.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하였으며(눅1:67 참조) 마리아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다고 하였다(눅1:35 참조). 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하였다(눅1:41 참조). 모든 성경이 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것도 성령으로 한 것이다(마16:16 참조).
⊙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어떤 성령이신가?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시다. 요한14:16에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요한16:7에도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보혜사라는 뜻은 "대언자" 혹은 "돕기 위하여 부름 받은 자" "변호사"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보혜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성령이시다. 오순절 전에 역사하시던 성령과 보혜사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지만 직분이 다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전부터 형님이 계셨으나 이번에는 그 형님이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을 받은 것과 같다. 동일한 형님이지만 그 직분을 받은 다음에는 하는 일이 다르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성령이나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이 같은 한 성령이신데 직분이 다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강림하신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전파하고 이루어 놓으신 진리를 가지고 일하신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도리를 적용시키려고 보혜사 성령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이 하시는 일은 구약시대에 성령이 하시던 일과는 다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과 못 박히신 후에 성령이 일하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제도와 의식에 가리워져서 희미하게 나타난 진리를 가지고 성령이 일하시었으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성령이 일하시기 때문에 더욱 큰 능력이 나타나고 더욱 큰 일을 하시게 되었다. 예수님이 완성하여 놓으신 이 진리를 대언하고 세워 나가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이 오신 것이다. 이 보혜사 성령은 한번 오신 다음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요14:16 참조).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신약시대에 계속해서 일하신다. 예수님의 탄생이 반복되지 않는 것과 같이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도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믿게 하시고 감동하셔서 순종케 하는 성령도 오순절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이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16:13 참조). 요일2:1에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다. 대언자라는 말이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한번 오신 성령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고 감사하며 순종하여야 한다. 성령은 천지에 충만하시고 안 계신 곳이 없다.
예레미야23:2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하였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므로 천지에 항상 충만하시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우주에 충만하신데 어떻게 왔다 갔다 하시겠는가! 아주 가셨다고 하면 그 곳에는 성령이 없는 곳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셔서 안 계신 곳이 없다. 고로 성령도 안 계시는 곳이 없고 안 계시는 시간이 없다.
그러면 "성령이 임했다" "가셨다" "거두어 가신다"는 뜻은 무엇인가?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임했다는 뜻이고, 가셨다, 거두어 가신다는 것은 감동과 역사를 거두어 가셨다는 말이다. 즉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성령은 항상 계시지마는 감동과 역사가 떠나기도 하고 임하기도 하는 것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바람, 불, 혀라고 했는데 바람과 불과 혀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본질과 성품과 사역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한 표상(表象)이다. 보이지 않는 성령이 어떤 신이시며 어떠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보여 주고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상들을 보여 준 것이다.
마태3:16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했으나 비둘기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표상(表象)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둘기가 온유하고 정결하여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성령으로 완전한 구속 제물이 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성령을 바람으로 상징한 것은
①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같이 성령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일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이 구한다고 하여 성령이 그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할 때 자기 욕심대로 구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해야 된다.
②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사물에 부딪친 결과를 보아서 강한지 약한지, 또 그 방향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여 일해 놓으신 결과를 보아 그 성령이 어떠한 신이신지 알 수 있다. 급하고 강하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강하고, 하시는 일을 급속히 진행하신다는 뜻이다.
.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성령의 역사가 불과 같이 뜨거운 것을 말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주신다는 뜻이다(눅24:32 참조).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② 선을 사모하는 뜨거운 마음.
③ 진리를 사모하는 뜨거운 마음.
④ 성경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⑥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
⑦ 천국을 앙모하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성령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2:17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고 하였다.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므로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이 뜨겁게 역사할 때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단마음으로 나아간다. 토마스 목사가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죽음을 각오하고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와서 순교하였다.
성령은 육신을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뜨겁게 한다. 성령을 받으면 육신이 뜨거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감정적으로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몸이 뜨거운 것처럼 잘못 느껴진 것이다.
불의 혀같이 혀는 맛을 아는 것과 말을 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①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맛을 알게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기도의 맛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그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신다.
② 성령은 하나님 말씀을 전도하는 힘과 능력을 주신다. 베드로와 요한이 불학 무식하지만 성령으로 기탄 없이 말하는 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혀같이 갈라졌다는 것은 성령이 모든 것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놓는다. 또 마귀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 죄와 의,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 영의 것과 육의 것, 진리와 비진리, 영적 감동과 육적 감동,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갈라놓는다.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확실히 구별하게 되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지 않는다.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위에 충만히 임하였다. 그 성령은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임하여 계신다. 만약 성령이 잠시라도 성도를 지켜 주지 않으면 마귀가 잡아 삼키고 멸망시킨다. 성령께서 항상 성도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마귀가 성도를 잡아 삼키지 못한다.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고전3:16 참조).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라고 하였다 (고후13:5 참조). 성령은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성령의 인도대로 순종하며 의지하는 자에게 성령은 더욱 충만케 역사하여 주신다.
二. 방언으로 전도함(4-13)
.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성령이 사람에게 가득 차 있으면 충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성령을 충만히 받기도 하고 조금 받기도 하는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성령 충만이란 양적인 의미가 아니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는 마음도 다 없어져서 온전히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일시적으로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 있다가도 마음속에 세상이 들어오고, 인간의 것이 들어오면 성령 충만이 못된다. 성령이 충만하려면 첫째, 제 생각 제 뜻, 자기 위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즉 자기가 완전히 죽어지고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야 한다. 둘째, 성경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요한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므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계속 인도하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다 순종하여야만 완전 충만이다. 성경 말씀을 조금만 어기거나 순종 못하면 성령 충만이 아니다. 성령이 늘 충만한 사람은 신구약 성경을 다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완전히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일생 동안 신구약 성경을 하나도 어김없이 전부 다 완전히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경에 성령 충만이라고 기록된 것은 그 시간에 성경을 아는 범위만큼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아는 진리를 다 순종하면 그 시간에는 성령이 충만하게 된다. 그 후에 성령이 다른 진리로 인도할 때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하면 성령 충만이 못된다. 베드로가 오순절에는 성령이 충만하였으나 안디옥에 가서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내려오므로 먹지 않는 척하고 외식하였다. 그때에는 베드로가 성령 충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계속적으로 받아나가야 한다(엡5:18 참조).
.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출애굽기23:14-16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매년 삼차(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절기를 지키라고 했다. 이 말씀대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천하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든 것이다.
. 2:6-12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성령의 큰 권능이 임하므로 모든 사람의 심령이 깨어나고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었다. 심령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말하는 것도 새로운 말이 나오게 된다.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심령이 새로워지면 그 사람이 하는 노래도 새 노래가 되고 말도 새 말이 나온다.
로마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방언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 말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한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 나라 말로 말하였으나 듣는 사람이 각기 저희 나라 말로 들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제자들이 자기 나라 말로 말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제자들이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았지만 성령께서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하도록 능력을 입혀 주었다. 성령님은 모든 나라 말을 들을 수 있고 말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다 갈릴리 사람이었지마는 메데와 메소보다미아와 애굽과, 구레네와, 로마말로 전도하게 되었다. 실로 성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이다.
둘째,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있다. 고전14:2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할 수도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통역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전14:28 참조).
통역이 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교회 안에서 하게 되면 말하는 자도 야만이 되고 듣는 자도 야만이 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①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전14:5). ② 유익이 안 된다(고전14:6). ③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고전14:7). ④ 나팔이 분명치 못하므로 전쟁을 준비할 수가 없다(고전14:8). ⑤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 된다(고전14:9). ⑥ 야만이 된다(고전14:11). ⑦ 마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전14:14). ⑧ 방언으로 기도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함으로 감사할 수 없다(고전14:16). ⑨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이 깨달은 성경을 다섯 마디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고전14:19). ⑩ 방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있는 표적이다(고전14:22). ⑪ 무식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보고 미쳤다고 한다(고전14:23). ⑫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닌데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된다(고전14:33).
⊙ 방언을 통역하는 일에 대하여
방언을 통역한다고하는 사람 중에 거짓 통역자가 많다. 그러므로 참 통역자인지 아닌지 시험을 해보아야 안다. 시험할 때에는 한 사람이 방언을 말하고 두 사람 이상이 통역을 하되 음성을 내지 말고 그 내용을 종이에 기록하도록 하고 그 기록들을 대조해 보아서 꼭 같지 않으면 참된 통역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방언을 금하지는 말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하였다(고전14:39).
셋째, 새방언이 있다(막16:17). 새방언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은 것은 처음 듣는 말이요 그 내용이 새로운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새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의 출처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있다. 둘째, 자기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방언이 있다. 자기 마음에서 방언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자꾸 연습을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방언을 해야 된다고 하고, 자기도 방언을 하려고 애를 쓰면서 며칠만 노력을 하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참 방언이 아니다. 셋째,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도 있다. 마귀가 허영심에 날뛰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하게 한다. 이러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고 마침내는 마귀의 일을 하게 되어 교회에 큰 타격과 손상을 입히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만 참 방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은 성경에 맞는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방언이 아니다. 성령은 진리의 신이시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다(요16:13 참조).
.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새 술이 취하였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을 조롱하여 한 말이다. 이렇게 조롱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데 너무 열광적이며 자기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 같이 보여지므로(신령한 역사를 알지 못하여서) 그렇게 비방하였다.
三. 베드로의 전도(14-41)
1. 성령을 증거함(14-21)
. 2:14-15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변증하여 주었다. 베드로가 변증한 내용은 첫째, 때가 제 삼 시니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 삼 시는 지금의 오전 9시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낮에는 술을 먹지 않고 밤에 술을 마셨다. 살전5:7에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하였다. 지금은 술 마실 시간이 아니므로 이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으면 그 오해한 것을 풀어서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 2:16-17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베드로가 변증한 내용의 둘째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하였다. 말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하나는 예수님의 초림때부터 재림때까지가 말세이다. 벧전1:20에 "그는(예수)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다. 선지자 요엘이 말한 말세는 예수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말세를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순절에 이미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베드로가 증거했기 때문이다. 그 오순절은 예수님 승천 후 10일 즉 초대교회시대였다.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말세에 모든 사람에게 다 부어 주시는 성령이시다. 또 하나는 세상의 마지막 끝을 말세라고도 하였다(마24:3-14).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준다는 말이다.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신다. 성령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붙드시고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예수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마9:13 참조). 하나님은 연약한 육체와 부패성이 있는 사람들을 성령으로 붙드시고 당신의 할 일을 해 나가신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자녀나 노인이나 젊은이들에게 꿈과 환상과 예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성경에 기록시키기로 예정하셨다. 성령이 어떤 특수한 계급의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과 젊은이와 노인에게 남녀 구별 없이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여 주신다. 오늘날에는 꿈이나 환상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사도시대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다 기록하여 완성시켜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옳다. 성경에서 예언적으로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여 영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한다.
.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남자나 여자나 구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종의 위치에 있어야만 성령이 붙잡고 사용하게 된다. 종의 특징은 세 가지가 있다.
① 자기의 소유권이 없다. 항상 주인의 것으로 사는 것이며 자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
②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하여 산다.
③ 제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하여야 한다. 종이 무슨 일을 제 뜻대로 하면 종이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빈 손 들고 왔다가 빈 손 들고 가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아야 한다. 성도는 주인되시는 예수님만 위하여 살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위하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붙들고 쓰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아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자기가 완전히 죽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자기를 인도하여 주는 빛이 된다. 그리하여 걸어갈 길이 밝히 보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많은 성도들이 입으로는 종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주인이 되어 있다. 종의 위치를 떠난 사람은 성령의 감동이 약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누구나 하나님의 종노릇만 잘하면 성령이 그 사람을 능력으로 붙잡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신다.
.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하늘에서는 기사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말하며 기사는 구원의 기사를 말한다. 신령한 세계에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기사가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다. 이리와 타조 같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 보좌에 앉게 된 것이 기사이다. 이것보다 더 큰 기사가 있겠는가!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땅은 신령한 세계와 대조된 불순종자들의 거처이다. 불순종자들에게는 심판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베드로에게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여 기사가 나타날 때에 아나니아 부부가 불신앙으로 나아가다가 심판을 받았다. 이것이 하늘에서는 기사요 땅에서는 징조를 베푼 것이다. 피와 불과 연기로다 땅에서 베풀어지는 심판의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이다. 피는 사망을 가리키고, 불은 환난과 고통, 연기는 흑암을 가리킨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땅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 몸은 땅에서 살지만 속 사람은 항상 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가지고 살면 피와 불과 연기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일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또 골로새3:2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다. 땅엣 것을 사랑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고 사망이 오게 된다. 그러나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힘써 찾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사가 일어나고 기이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을 말한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해는 진리를 상징한다. 말세에는 진리가 가리워지고 신령한 진리의 빛이 없어지므로 세상이 어두워지게 된다. 환난이 심하고 악의 세력이 강하여 진리가 가리워지므로 흑암의 세상이 된다.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달은 교회를 상징한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세상에 비치어 나간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대환난이 일어나 교회가 큰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다. 그 때에는 적기독이 일어나 기독교 박멸 정책을 쓰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하여 미혹시킨다. 또 거짓 선지자들은 적기독(敵基督)과 합하여 참 교회를 핍박하고 박멸해 나가므로 교회가 빛을 잃게 된다. "피가 되리라"는 생명이 죽는다는 뜻이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인데 말세에는 생명을 죽이는 곳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신신학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성경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이 많이 일어나 방언이나 묵시나 꿈이나 예언이나 환상을 위주하고 그것을 따라가게 만들므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또 현실주의자들은 이 세상을 위주하여 세상 것을 따르게 하므로 진리가 어두워지고 교회는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롬10:9,13 참조). 또 한 가지 뜻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는 때에도 말씀대로 믿고 그 신앙을 고백하고 신앙을 지켜 나아가면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함(22-35)
.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증거하였다.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 성령께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신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니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믿지 않으면 죄 값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우리도 밝히 전해 주어야 한다.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가 담대히 "너희가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성령의 권능으로 외쳤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가서 생명의 도를 전하여야 하겠다.
베드로가 전도한 내용은 ① 예수께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 ②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뜻이다. ③ 너희가 법 없는 자의 손을 빌어 예수를 죽였다. ④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주어 예수를 살리셨다는 것을 증거하며 믿으라고 권면했다.
. 2: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 말씀은 시편16:8이하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육신으로는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영으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主)가 된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가 뵈올 수 있는 분이시고 또 성도들을 요동치 않도록 지켜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편 여기서 우편은 요긴한 곳, 튼튼한 곳을 가리킨다.
. 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러므로"는 주께서 항상 내 우편에 계셔서 요동치 않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내가 항상 주 앞에 있을 때에 주님은 나를 요동치 않게 하여 주시고, 또 우편에서 나를 붙들어 주시므로 마음이 기쁘고 입술도 즐거워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된다. 나를 구속해 주신 주님께서 내 우편에 항상 계신 것을 믿으면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며 그때에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된다. 잠언4:22에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자에게는 그것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육체의 건강도 된다는 뜻이다. 성도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희망에 거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영혼도 살고, 육신도 살고 영원히 사는 희망에 거한다.
.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성도의 영혼은 음부(지옥)에 버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겠기 때문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천 여 년 전에 다윗을 통하여 예언해 놓았다. 그 예언이 성취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 2: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다. 이 생명의 길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충만하다. 성도가 날마다 이 생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며 영혼이 자라날 때에 기쁨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이 부활에 대하여 말한 것은 다윗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그 증거는 다윗의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기 때문이다.
.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다윗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았다. 다윗은 선지자로서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왕권을 영원히 계속할 것을 깨달았다. 삼하7:12-13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다.
.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다윗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미리 보고 그리스도의 육신이 썩음을 당치 아니하리라는 예언을 하였다. "음부"는 무덤을 가리킨다. 음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스올( )"이라고 하는데 무덤, 죽음의 상태, 불구렁텅이, 고기뱃속, 죽음 다음에 가는 고통의 자리 즉 지옥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본문에서는 무덤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다음에 무덤 속에서 썩음을 당하지 않고 부활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산 증인이었다.
.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하나님이 능력으로 예수님을 높여 놓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고 하였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도 나오시고 아들에게서도 나오시는데 영원히 나오신다.
. 2:34-35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시편110:1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주께서 내 주께 '주께서'는 '하나님께서'이고 '내 주께'는 '그리스도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성으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다 정복하게 될 것을 말한 것이다(고전15:24-26 참조). 그리스도의 원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정사와 권세와 모든 것들이다. 발등상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뜻한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나님의 우편은 요긴한 자리요 능력의 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3. 책망(36)
.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오 주장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었다는 뜻이며 히브리어의 메시야 곧 구속주,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4. 교훈(37-38)
.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도 하고 여러 가지로 증거하여 가르쳐 줄 때에 저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죽인 죄를 성령으로 깊이 깨닫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상태이다. 죄를 책망 받을 때에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스데반을 죽이던 사람들도 스데반이 성령으로 말할 때에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이를 갈고 살기가 등등하여 돌로 스데반을 때려 죽였다(행7:54-58 참조). 마음에 찔린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베드로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여 자기 죄를 깨닫고 원통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자기들의 할 바를 물었다.
큰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 죄를 깨달았을 때에 회개하며 이제는 어떻게 하여야 되겠는가 하고 앞으로 해야 할 대책과 걸어가야 할 길을 지도 받으려고 겸손히 물어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책망을 한 뒤에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었다. 책망만 하고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들이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한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하였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세례가 죄사함 받는 조건은 아니다. 그 때에 세례는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었으니 세례는 믿음의 대명사격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세례라는 말은 씻어 정결케 한다는 뜻인데 믿음으로 죄 씻음 받은 자에게 그 증표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의 감동과 위로와 기쁨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모든 역사(감동, 위로, 생명의 역사)를 받을 수가 있다.
5. 권면(39-41)
.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을 말한다(33절 참조).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감동과 위로와 모든 은사를 받게 된다. 너와 너희 자녀와 먼데 있는 이방인들까지 얼마든지 부르시며,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가 패역한 세대이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에는 평안과 생명과 위로가 없다. 모든 것이 다 괴로운 것뿐이고 또 위태한 것뿐이다. 그 세대는 종교지도자들이 패역한 행동을 하여 모든 사람으로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세대에서 용기를 내어 스스로 구원의 길을 걸으라고 권면한다. 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도 그 당시와 같이 패역하고 위급한 세대이다. 거기 잡히거나 방해를 받지 말고 힘써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 날에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나 되었다. 물을 뿌려서 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물 속에 잠그었다가 꺼내려면 밤낮 24시간 세례를 베풀어도 삼천 명에게 다 베풀 수가 없다. 하루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을 베드로가 성령으로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다. 성령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고자 하시면 하지 못할 것이 없고 많은 사람들을 일시에 구원하실 수 있다.
四. 교회의 부흥(42-47)
.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대 교회에 있어서 교회 부흥의 비결이 여기 몇 가지 나타나 있다.
첫째,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둘째, 교제하였다.
셋째, 떡을 떼었다.
넷째, 기도하기를 힘썼다.
다섯째,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여섯째,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가 이루어져 나가는데는 말씀이 제일 첫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도의 위치가 중요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깨달아야 한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3년 동안이나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하여 확실히 깨달은 진리를 성령과 능력으로 가르쳐 주었다. 사도들은 자기의 영이 먼저 그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전2:4 참조).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야 한다. 딤전1:18에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다.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그 말씀에 붙잡혀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복음을 전하고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행20:22 참조).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릴 때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눅5:5 참조).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말씀을 좇아갔다. 말씀을 좇아가는 생황이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말씀을 잘 가르쳐서 교인들로 하여금 그 말씀으로 영혼이 살고 생명을 얻게 해야 한다.
서로 교제하며 서로 교제하는데서 힘이 나왔다. 이 교제는 코이노니아( )라는 말인데 진정한 사랑의 교제이며, 영에 있어서 일치하고 마음이 일치하는 교제이다.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초대 교회는 참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생활을 하였다. 떡을 떼며 초대 교회에서는 애찬과 성찬을 겸하여 했다고 한다. 교인 전체가 모여서 교회의 재정으로 떡을 하여 나누어 먹고 이어 성찬식을 거행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교회 재정으로 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집에서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와서 애찬을 하고, 성찬식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점점 폐단이 되었으니 부자는 많이 가져와서 많이 먹고 취하나 가난한 자는 많이 가져오지 못하므로 주리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러므로 주후 412년 칼타고 회의에서 애찬을 폐지하기로 결의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하는 친목회는 일종의 애찬과 같은 것이다. 교회에서 친목회를 자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회에서 애찬을 그만두고 성찬 예식만 하여야 정당한 것이다. 성찬 예식은 성도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찬 예식의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피와 포도즙에 같이하는 것도 아니다. 목사가 기도한 다음에도 떡과 포도즙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떡과 포도즙이 다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한 것뿐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찬 예식에 참여하면 성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초대 교회에서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 "전혀"는 전문적이라는 뜻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은혜가 있고 부흥이 잘 된다. 기도할 시간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버린 줄 알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 서로 교제하는 것, 떡을 떼는 것,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것, 이 네 가지를 잘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나고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교역자의 권위가 올라가고, 교회에 생명의 역사가 있고, 마귀의 세력이 깨져 나가는 이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복음에 복종하게 된다.
.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초대 교회에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한 것(有無相通)은 공산당처럼 무자비한 투쟁을 하여 강제로 남의 재산을 빼앗아 분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유무상통은
①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으로 바친 것이다.
②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바친 것이다.
③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④ 사도들은 그 바친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였다.
⑤ 가난한 자를 많이 구제하게 되었다.
사도행전5:4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고 하였다. 성경에는 개인의 소유권과 임의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 것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나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는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쓰게 된다.
둘째, 믿음을 쓴 것이다.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생긴 다음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자연히 나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무엇이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나온다. 그러할 때 믿음을 써서 바친 것이다. 물질을 바치는 것은 믿음의 열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 받은 다음에는 연보를 하여야 한다. 바칠 마음이 생길 때에 힘써서 바쳐야 믿음이 자라나고 열매가 맺혀진다.
셋째, 하나님으로 살기 위하여서이다. 과거에는 물질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 한 분으로 살 결심을 한 것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니 사람이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사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만 있으면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 . 영적 생명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육적 생명도 살펴 주실 것을 믿는다. 초대 교회에서는 하나님으로 사는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물질을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바치게 되었다.
넷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겠다는 정신으로 한 것이다. 물질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려고 하였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여야 하되 물질부터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하고 사람에 대하여도 바로 하여야 한다. 윗사람에 대하여 바로하고 아랫사람에 대하여도 바로 하여야 된다.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지 못하면 다른 것도 바로 하지 못한다. 작은 것에 대하여 바로 충성하지 못하면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눅16:10 참조). 성도가 연보할 때에 하나님께 바로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인색한 마음이나 부득이해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충성되이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바로 되고 하나님께서 큰 것을 맡기신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부하려하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딤전6:9-10 참조). 성도는 돈을 모으려고만 힘쓰지 말고 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려고 힘써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바친 것은 의를 이루며 그 의는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있게 된다. 고후9:9에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였다.
.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같이 하려면 자기를 위하는 마음과 제 생각은 내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주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 중심 생활을 했다. 우리도 영적인 성전 중심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12세 때에 벌써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다(눅2:49 참조).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기쁨의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 바른 신앙생활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성도를 미워하여 큰 핍박을 하고 죽이려고 할 때가 있으나 그들의 양심은 성도를 옳다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시험과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한 후에는 백성들이 성도들을 칭찬하게 된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도 그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