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2 구텐베르크와 인쇄기술에 관한 수수께끼
LIFE지가 발표한 서기 2000년까지의 가장 중요한 사건과 인물의 100선 랭킹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에 선정된 것이 구텐베르크에 의한 1455년의 성서의 인쇄였다. 여기에는 활판인쇄술 그 자체의 기원은 중국, 한국이 빨랐는데, 성서의 보급은 특정계급의 것이었던 읽고 쓰는 능력이 대중의 레벨로 넓혀져 인류의 정보 혁명의 선구가 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텐베르크가 도대체 주체적인 무엇을 달성했는지는 잘 모르겠음”, “그가 현재의 인쇄술에 꽤 많은 것을 달성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종래의 기술로부터 일보 이상 전진하여 만들어 냈는지는 잘 모르겠음”, 등 구텐베르크와 인쇄 기술의 주위를 맴도는 “수수께끼” 라고 하는 말도 있다.
실제 “구텐베르크의 생존 중의 것으로 그의 이름으로 언급된 자료는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음”이라고 하고, “발명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수수께끼를 포함한 부분이 많음”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이것은 구텐베르크는 인쇄일지나 인쇄자의 이름을 글로써 넣는다는 발상이 없었다는 점, 구텐베르크는 인쇄사업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잊혀지게 되었다고 하는 점 등으로부터 과거에는 인쇄기술의 발명자가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을 둘러싼 다양한 설이 유포되었다. 특히 16세기부터 18세기경은 역사적 진실보다도 자국의 프라이드나 저자의 주장이 우선시되는 것이 많았었기 때문에 혼란에 박차를 가하여,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가 활판인쇄 발명의 땅이라고 하여 믿어지게 되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는 원래 네덜란드인 라우렌스 코스터가 1424년에 발명한 것으로써 마인츠의 요한이라고 하는 인물이 코스터로부터 그 기술을 훔쳤다”고 하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이름이 인쇄 기술과 결부되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472년의 개인적인 서적이고, 또한 1499년에 인쇄된 “케르 연대기”에서는 “인쇄술은 마인츠에서 발명되어, 1444년경 케르에게 전달되었다. 인쇄술의 발명자는 요한 구텐베르크라고 불린다” 라고 되어 있고, 또한 네덜란드설 그 이후 “후대에 이르러서의 것”이라고 확정되었는데, 그래도 지금에는, 구텐베르크와 인쇄의 관한 모든 것에 대해서의 논의는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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