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때가 되면 어김없이 외갓집에 갔었지요
할머니도 좋고, 개울가에서 노니는것도 좋고
단 하나 화장실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삐뚤빼뚤 잘라놓은 두꺼운 달력
금방 구멍이라도 날것같은 검은 신문조각
옛날 사람들은 똥을 누고 뒷처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베르사유궁전에도 없었던 왕궁화장실터
깔끔이 백제인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삼국 중 한강유역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운 백제 온조
위례성근처에선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석촌동고분을
문주왕때 천도한 웅진(공주)에선
공산성과 송산리고분, 무령왕릉을
성왕때 도읍을 옮긴 사비(부여)에선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을
그리고 백제의 미래를 꿈꾸며
무왕때의 왕궁터였을 것으로 짐작하는 익산에선
왕궁리유적지와 미륵사지를 통해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왕궁리유적은 1989년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백제말기 왕궁으로 사용되다가
건물을 헐고 그 자리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왜 변화되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무왕이 돌아가신 후 익산쌍릉에 모심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빌김위함이 아닐까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왕궁리유적에서는
귀중품인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터,
수도임을 알리는 '수부'가 찍힌 기와,
중국과 교류한 흔적인 정원석 등
왕궁이나 사찰에 관한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무엇보다 대규모 공중 화장실 유적이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1938년 일제에의해 발굴될 뻔한 왕궁리유적
당시8500원(현재 9억정도?)이 결재나지 않아 중단된게 오히려 다행이었죠
건물이 없고 터만 덩그라니 남은 유적을 보고
그 시대를 느끼기란 여간 어렵지만
그 터위에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왕궁리5층석탑을 보면
다시 한번 찬란한 백제를 일으켜 세우고자했던
백제인들의 기상이 느껴져옵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함께 관심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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