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려서 자라 난 유학산은 해발이 800m나 아주 높은 산이고 산에서는 산새 소리가 우리를 즐겁게 노래를 불러주고 봄이면 온갖 산나물이 자라나서 우리에게는 식량이 되어주는 것이 산나물로서 저녁이면 죽을 끓여서 어른도 그릇 아이도 그릇 먹어가면 살아온 것을 잊을 수 없는 유학산이다. 산릉선으로 해서 경계선인데 고향 쪽으로는 가산면이고 반대쪽은 인도면 한다. 하발 치료는 석적면이고 앞산에서 조금 가면은 신동면이다 사개 면이 경계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고 나서 6.25사변에 아군들이 싸우려고 산꼭대기에 헬리콥터가 안는 조그마한 비행장이 생겼고 밑에는 미군 통신대가 있어서 골짝에 그래도 찻길이 있어서 모두가 나무하러 다니기 좋았다. 산골에 먹을 것이 없어서 첫닭이 들면은 모두가 유학산 넘어가서 나무를 베어서 집에 와서 아침밥을 먹고 또 산으로 가서 나무를 베에서 집으로 오면은 오후 4시 정도에 와서 해온 나무를 토막 내 서 햇빛에 말려야 하기에 널어놓고 나서 집으로 가는데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 두 번 하는데 한 번씩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도 힘들게 사는데도 다른 지방 사람들이 와서 며칠 동안 나무를 해가니까 산에 나무가 없어져 멀리가서 나무를 하게 되었다 유학산에서 나는 약초를 캐서 파는 사람도 있고 가을철이 오면은 골짝으로 돌들경 있는 곳으로 다니면서 산머루와 달래 더덕 같은 좋은 사람들을 팔아서 가정에 보태서 쓰고 기도 하고 학생들의 연필도 사고 과정에 쓴다. 저녁이 되면 할 일이 없으니, 그때는 겁도 없이 골짝에, 옛날에 신던 고무신을 작대기 끝에 묵어서 불을 붙어서 골짝 내가로 가면은 가재가 돌 밑에서 나와서 엉금엉금 그어 나온다. 지금 생각을 하면은 산골에 혹시나 불이 나면은 감당도 못 하는데 겁 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나와 같이 마음이 맞는 형이 매일 생활한다는데 하루는 유학산 한 모퉁이에 올가미를 놓으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가서 올가미를 놓고 꿩약도 같이 놓아놓고왔다. 이튿날 가니 노루 한 마리와 꿩 암놈과 슻놈 7마리를 잡았다. 그것을 팔아서 술도 한잔하고 재미가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산짐승을 잡으면은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하시면서 만류를 해서 그길로 다시는 하지 않았다. 고향에 친우가 있으면은 유학산에 이야기가 많을 텐데 친우들이 하늘나라로 가고 한 사람도 없다. 잊지 못할 고향에 유학산 산은 옛 산이로 데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