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27
ㅡ '여섯가야' 건국과 '김수로왕' 설화 ㅡ
'여섯가야'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 하고 부족연맹체 수준에서 '신라' '백제'로 통합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여섯가야'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상당 시기를 같이 존재했지만 우리 역사는 그 시기를 '사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로 불리우고 있다.
'김부식'이나 '일연'이 쓴 역사서도 분명 '삼국'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보면 이러한 건 오래 된 견해일 것이다.
'여섯가야' 중에서 역사서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는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먼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를 중심으로 했던 가야계 고대국가인 '금관가야'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따르면 개국군주 '김수로왕'이 나라를 세우고 '구형왕' 대에 이르기까지 490년(~ 532년) 동안 유지되었으며 10대의 왕이 있었다. 대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10대 구형왕까지를 금관가야 왕조로 본다.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있었던 '대가야'는 후기 여섯가야 일대 정세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조는 이진아시로 <지리지>에 의하면 520년간 존속했었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는 없다. 전성기에는 지금의 영호남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후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치이다가 세력을 잃고 562년 신라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금관가야, 대가야가 두나라가 비록 형제국가 였지만 결속을 다졌거나 신라와 백제 공격에 공동전선을 펼쳤다는 등의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비록 형제국 이었지만 두 나라가 밀접한 관계가 아니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야 건국신화에는 두 가지가 전해져 온다.
먼저 '삼국유사'에 수로된
'구지가'와 얽힌 6개의 난생설화 로 유명한 '김수로왕 설화'이다
'김수로왕 설화'는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에 사람들이 모여 '구지가' 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알 6개가 내려왔고, 알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난 이가 김수로였다
나머지 알 5개에서 태어난 아이가 각자 나머지 가야의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다른 설화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 최치원이 썼다는 '석이정전'을 인용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천상신 '아비가지'와 지상신 '정견모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여섯가야의 왕이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김수로'는 '이비가지'의 아들로 '이진아시'와 형제였고, 이름이 '뇌질청예'였다. 대가야를 세운 '아진아시'가 형이고 '뇌질청예'인 수로왕이 둘째로 나온다.
이는 여섯가야 초기 김해에 위치한 '금관가야'와 후기에 더 강해진 고령 '대가야' 중심 설화로 보인다.
후에 금관가야 김수로왕 계열은 신라사회에 편입된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인 661년에 문무왕은 조서를 내려 외가시조인 김수로왕의 묘를 신라 종묘에 합해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는 문무왕의 모친인 문명왕후가 김유신 여동생이었으며,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 증손자였기 때문이다. 즉 문무왕 역시 신라 국왕이면서도 외가 쪽으로 김수로왕 직계후손
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번째 설화가 훨씬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가 훨씬 더 설화다워 보이고 난생설화의 정통을 잇고 있어 우리는 오늘 '난생설화'를 중점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신화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해져 내려 온다.
먼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 전문 일부를 살펴보자.
[변한의 구야국 왕들인 9명의 간(干)들에게 하늘에서부터 "너희들의 왕을 내려 보낸다"라는 계시를 주고 왕을 내려보내기 위해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계시를 들은 가락국 9명의 간들과 2백3명의 백성들이 김해의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말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고 구지가를 불렀다. 변한의 구야국 백성들이 모여들며 노랫소리가 커지자 하늘에서 빛이 나더니 곧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안에 둥근 여섯의 황금 알이 들어있었다. 12일 후 이들 금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알 속에서 나온 아기들이 6가야국의 왕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수로’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해 김씨의 시조이자 금관가야를 세우게 된인물이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온 공주 허황후(許黃后)와 결혼하였다. 허황후는 '아유타국'(오늘날 인도 지역) 출신의 공주로, 배를 타고 동행한 20여명 신하들과 함께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왔다.
둘 사이에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다. 큰아들은 거등왕이 되어 가락국의 왕업을 잇고 두째 셋째 왕자는 외가의 권력을 물려받아 김해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아들은 세상을 비관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한다. ]
ㅡ 삼국유사 가락국기 ㅡ
이처럼 가야 김수로왕 설화에는 고구려 신라 난생설화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김수로왕 설화가 고구려 신라 난생설화와 다른 점은 아래와 같다.
1. 여섯 개 금알에서 태어난 김수로가 금관가야 왕이 된 후 인도에서 온 공주 '허황후'랑 결혼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기록된 최초 국제결혼이라는 것이다.
2. 김수로왕 설화 내용을 보면 고구려 신라 설화와는 다르게 직접 그들이 모시는 신이 직접 김수로를 지도자로 정해서 백성들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3. 우리나라 최초 집단 노동요로 알려진 '구지가(龜旨歌)'라는 신맞이 행사인 축제노래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4. 가야와 일본과 관계가 긴밀해서 일본서기나 고서기에 가야 김수로왕 설화가 나온다는 것. 임나일본부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황들은 삼국유사에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있으니 기록을 토대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첫 번째인 김수로왕 탄생과 결혼은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개 금알(金卵)에서 태어난 왕자 중 첫째로 태어난 '수로'가 금관가야를 세우고 초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수로'는 탁월한 지도자로, 가야연맹 기초를 닦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둘 째, 김수로왕은 인도공주 허황후(許黃后)와 결혼하였다. 허황후는 '아유타국'(오늘날 인도 지역) 출신 공주로, 동행한 20여명 신하들과 함께 배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가야'에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배를 타고 가야국에 도착해 김수로왕과 결혼까지하는 과정이 정말 상세하게 삼국유사에 기록 되어 있다. 허황후와 김수로왕 결혼은 한반도와 인도 간의 고대 교류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당시 항해기술 이나 여러 상황을 보면 '인도'에서 '가야'까지 두 달만에 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삼국유사에만 최초로 나온 것으로 보아 '승 일연'이 불교 중심지인 인도를 흠모하여 가야주변 소국공주를 인도공주로 각색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허황후는 현재 김해허씨 시조가 된다.
셋 째,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것은 매년 삼월 계욕일에 즈음하여 구지봉에 수백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모인 구간(九干)은 직접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에 응답하였고, 그 결과 신의 내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늘의 전언 이라 할 수 있는 신의 목소리가 나타난 것을 문헌에서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김수로왕설화'가 유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설화는 한국설화가 지닌 기본적인 성격을 성문화(成文化)해서 전해주고 있다. 마치 성서의 '모세 일화'를 보는 것 같다.
넷 째, 사람들이 모여서 신맞이 행위를 하는 설화라는 것이다
신내림을 받드는 신맞이 설화 라는 성격은 축제 한마당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김수로왕설화'는 신이 하늘에서 소리하면서부터 지상에 출현하기까지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 과정이란 사람들이 공수를 받들어 노래하고 춤춘 부분이자 육체로 연행된 설화란 점에서, 이 설화는 '굿'과 짝지어져 있다. 설화가 말로써 하는 풀이라면, 그 풀이가 사실은 말에 담겨 표현되기 이전에 행동에 담겨 표현되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 '노동요' 탄생이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이나 역사시간에 많이 들어본 '구지가'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다섯 째, 김수로왕 설화는 국제적이다. 인도공주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과 외교관계이다.
금관가야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무역과 외교관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정설은 아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큰 이야기들이 김수로왕 설화에는 전해져 내려 온다.
일본 건국설화 중 하나인 '스사노오' 후손이 한국으로 건너와 김수로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화는 일본 역사와 가야국 역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시사한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 기초가 되는 설이다. 일본서기는 한참 후에 각색이 많이되어 진위는 많이 떨어진다.
특히, 일본의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의 문헌에서 김수로왕과 그의 동생들에 대한 기록도 나타난다.
'김수로왕'의 동생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김청수'(기록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함)는 일본에 건너가 나라를 세우고 일본의 초기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스가하라(菅原)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설화는 일본 일부 역사문헌에 "신라에서 온 왕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귀족이 되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김수로왕과 그 가족이 일본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과 맛 물려 '김수로왕' 설화와 일본국가 '기미가요' 사이의 연관성이 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이기도 하다,
어쨌든 가야와 일본 그리고 당시 백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은 확실한 거 같다.
이처럼 '김수로왕 설화' 이야기는 가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전설적인 출생과 통치 이야기는 한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