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격리
홀로 있는 한 평 반의 공간에 침묵이 겹겹이 쌓여갔다.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이들 사이에 감염자, 혹은 감염대기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고독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체육인들이 잠시 머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보균자들이 하나씩 들어앉았다. 마치 벌집에 하나씩 들어있는 알 같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당연히 차단되었다. 철저히 혼자가 된 시간을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건 비단 그녀 한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활달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이런 시간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침대에 앉았다 일어 섰다를 반복한다. 걸어 다닐 만한 공간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좁은 방안을 둘러본다. 일인용 침대하나와 작은 테이블,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세상을 향한 창구라고는 휴대폰이 전부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리고 과거에 찍었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일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남편이 딸이 아들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
세월 참 빠르다. 이렇게 어린 아이였는데, 이젠 그들도 어른이 되었네.
그녀가 격리시설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려 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낼까하다가 그만둔다. 남편은 이미 알고 있다. 함께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고 그녀만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 백신도 맞았는데.
그녀는 억울했다. 남편은 백신을 맞지 않았다. 백신을 맞으면 그들이 조종하는 대로 하는 인간이 된다고 그는 백신 맞기를 거부했다. 그런데도 그녀만이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마스크도 잘 쓰고 손소독도 잘했건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소독제를 과하게 써서인지 군데군데 피부가 벗겨져있었다. 이제 그녀는 손소독제를 쓰지 않는다. 벗겨졌던 피부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 다 소용없어.
그녀는 마치 누군가 듣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한겨울에도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던 그녀였다. 몸살기운이 있으면 쌍화탕 한 병 마시고 자고 일어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평생을 쏘다니며 살았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엔 어른을 돕고 밭일을 하고 설거지를 비롯한 부엌일을 돕는 것은 당연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다. 일찍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남편은 어디에도 오래 일하지 못했고 살림은 늘 어려웠다. 그녀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원만한 인간관계로 여러 가지일을 꿰차며 일인분의 벌이를 평생 해왔다. 그런데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크고 나서 그녀에게 무덤덤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안부전화를 하지도 않았고 소식을 들려주지도 않았다. 어쩌다 전화를 하면 용건만 말하라며 바쁜척했다. 한가할 때 전화를 다시 하라고 하면 그럴 때는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 평생 동동거리며 일해서 키워놔도 지들 잘나서 큰 줄 알고, 에이그, 다 소용없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화면을 들여다봤다. 코로나 관리 공무원이었다.
- 숙소를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현관 앞에 식품이랑 약 뒀으니까 잘 드시고요.
저기요, 잠깐만요. 끊지 마세요. 된장찌개가 정말정말 먹고 싶은데요.
네네, 나중에 이 사태가 다 끝나면 많이많이 드세요. 전 바빠서 이만.
공무원들이 일이 많아 퇴근도 못하고 지쳐간다고 했다. 그러니 제발 지시에 잘 따라주고 쓸데없는 요구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비상시국이니만큼 이 정도라도 만족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놓여 진 상자를 안으로 들였다. 햇반과 3분 카레, 봉지 김이 들어있었다. 전자레인지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햇반과 카레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고독하면, 너무나 외로워지면 전자레인지 소리마저도 반가운 것인가. 카레를 햇반에 부었다. 그런데 카레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리면 후각이 마비된다더니, 진짜로 그랬다. 일회용 숟가락으로 햇반에 카레를 비벼 입에 한 숟갈 넣었다. 카레 맛이 너무나 이상했다. 겉봉에 찍힌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유통기한은 이상이 없었다. 미각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평생 입맛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무채 나물을 듬뿍 넣은 보리비빔밥에 된장 몇 숟갈 떠 넣어 쓱쓱 비벼먹고 싶었다. 그러면 집나간 입맛도 반드시 돌아오고 말 것 같았다. 낯선 휘발유 맛이 나는 카레 밥을 씹으며 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 꾹꾹 눌렀다.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 육십이 다되어가는, 머리카락이 희끗한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 어엉어엉엉, 엄마!
그녀는 밥을 먹다말고 휴대전화를 찾았다. 그리고 ‘사랑요양원’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여러 번 갔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