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열차
환갑이 되도록 물리적인 나의 방을 가졌던 해는 3년 남짓이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가족이 모두 광주로 이사했다. 언니 오빠들이 결혼과 직장으로 집을 떠나 대학생 때 2년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독립과 완전한 나만의 방을 가졌을 때는 1년이다. 광주에서 서울로 가족을 완전히 떠나 첫 직장 생활을 하여 외로움이 가득한 시기였다. 독서와 뜨개질로 저녁을 보냈었다.
어릴 적엔 아버지의 방과 같이 서가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과 과학 기구들, 연장들이 있는 방, 그런 방을 갖고 싶었다. 결혼한 후에는 나만의 방이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고 남편은 술자리를 즐겨 자주 늦게 왔다. 직장을 다니며 TV를 켜놓은 거실에서 밤늦게 독서했고, 고통과 불만의 시(詩)를 쓰곤 했다. 밤새워 공부하며 10개가 넘는 국가자격증을 얻었다. 서가에 꽂힌 책은 약 300권쯤 된다. 나머지 80%는 거실과 방 구석구석에 책 탑을 쌓았다. 늘어진 책으로 좁아진 거실 때문에 가족들은 불만이 많다. 나는 나대로 몰입해야 할 때 방해받는 것이 싫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와 글쓰기 재능이 있으면 무엇이건 써보라고 했다. 글쓰기 재능은 별로 없고 내 방도 없지만 경제적인 독립은 했다. 온전하게 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위한 내 방을 나는 항상 갖고 싶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리스본의 야간열차』에서 ‘상상력은 마지막 성소다.’라고 했다.
그래서 갖게 되었다. 내 머릿속의 환상 다락방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처럼 육각형의 방이 복도로 이어진 거대하고 무한한 구조이다. 말괄량이 삐삐의 뒤죽박죽 별장처럼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가득 찬 물건들, 오만 감정들이 들어있다. 빨간머리 앤의 다락방처럼 자연의 숲으로 난 창으로 구름과 새와 꽃들과 대화를 나눈다. 우산을 쓰고 날아다니는 메리 포핀스의 가방처럼 신기한 물건들이 쏟아지고 다락방에서 아이들과 놀며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웃음 가스도 새어 나온다. 바다에서 투명한 해파리가 너울너울 올라오듯이 다락방에서 끊임없이 상상이 올라와 기웃거린다.
독서하면 옷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 모험하는 루시처럼, 시계 토끼를 따라 굴속 모험을 하는 앨리스처럼 책 속으로 빨려 들어 모험하고 돌아온다. 시(詩)를 쓸 때는 산책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굴리고 굴리며 오감을 펼쳐놓고 마주치는 날씨와 나무와 화초와 새와 사람을 관찰하기도 한다. 세상은 모험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호기심이 가득 찬 영혼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오랫동안 굶주려왔다. 내가 쓴 시(詩)는 톡톡 튕기며 발랄한 느낌을 주지만 실은 오래 궁굴린 곰삭은 문장들이다.
좁은 거실에서 제동하는 가족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나는 환상의 독서실에서 매일 독서한다. 밥 먹듯이. 독서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직장 다녔을 땐 낮에 일을 열심히 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독서했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지인들이나 가족들은 나에게 자기 착취다, 강박장애다, 라고 한다. 10년이 넘도록 자격증 공부하다 글 쓰는 감각을 잃어버린 지금 난 힘겨워도 즐겁게 글을 쓰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할 뿐이라고 내게만 조용히 속삭인다.
실버가 된 지금도 환상 특급열차를 타고 모험 중이다. 데드라인에 걸린 신데렐라, 허둥지둥 벗겨진 유리구두 한 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다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변한다.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엄마, 밥 줘!” “하ㄱㄱㄱ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