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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위로와 격려
서 론
주님의 사자인 엘렌 G. 화잇 여사는 병고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의 유년 시절의 희망은 거의 생명을 앗아 갈 뻔한 아홉 살 때의 사고로 말미암아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는 또한 네 아이를 낳아서 기르던 중 두 아들을 여읠 수밖에 없었던 슬픈 경험도 맛보았다. 반평생의 공중 봉사의 생애를 살면서 과부의 몸으로 지내셨다. 그는 또한 오래 끄는 질병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병고로 신음하는 자들, 죽음에 직면한 자들, 나이가 많은 노인들 및 사별을 당한 자들에게 보낸 그의 격려의 기별들은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친히 느끼고 알고 있는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었다.
아무도 거룩한 섭리의 신비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으나 시련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들을 추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잇여사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으며 1892년에 가졌던 여행의 경험 중에서 매일 매일 간단한 일기의 형식으로 자기의 경험을 기록하였다. 그 일기의 내용을 보면 낯선 외국 땅에서 근 10개월 동안 자신이 병고로 신음하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기도하고 기름을 바른 것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이 치료되지 않았을 때 겪은 그의 실망과 생사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요지부동의 신앙이 그 일기 가운데 나타나 있다.
화잇 여사께서 여러 환경에 따라 보내신 개인적인 기별들은 고통을 당해야 할 자들에게 위로가 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째서 당신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동안 질병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왜 저들이 고통스러운 병상에서 고달픈 생활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 편에 묘사된 것과 같은 성질의 경험들을 겪고 있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이를 것이다. 비록 반복되는 점들이 다소 있으나 그것은 가급적 여러 경우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기별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한 것이다. ― 화잇 저서 출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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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보낸 말씀
오후의 햇빛은 무르익게 하고 생산력을 줌
그리스도의 참된 목사는 계속적인 발전을 해야 한다. 그의 생애에 비친 오후의 햇빛은 아침의 햇빛보다도 열매를 무르익게 하고 생산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 햇살은 서산에 넘어가기 이전까지 그 범위와 광도(光度)에 있어서 계속 증가할 뿐이다. 목회 사업에 종사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태함으로 녹이 슬어서 버림을 당하기보다는 국내(미국)에서나 외국 선교지에서 힘든 일을 하다가 죽는 편이 훨씬, 정말 훨씬 나을 것이다. 난관들에 봉착하여 당황하지 말라. 연구의 생활이 없이, 발전함이 없이 무위(無爲)로 만족감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탐구하여 무지한 자들에게 가르칠 문제들을 찾아낼 것이며 하나님의 양무리들에게 꼴을 먹이라. 충분한 자료들을 준비하여 그대들은 주님의 말씀의 창고에서 새 것과 옛 것들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경험은 10년, 20년 혹은 30년으로 국한될 것이 아니라, 매일 살아있는 경험으로써 때에 따라 알맞는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과거의 경험을 더듬기 위하여 회상에 잠기는 노예가 되지 말라. 그러한 과거의 경험들이 그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물론 지난날의 모든 선한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는 반면에 그대들이 지금의 삶에서 더욱 밝고 더욱 신선한 경험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그대들이 한 일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고 현재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나타내 보이라. 그대들의 말보다도 그대들의 행실이 그대들 자신을 찬양하게 하라.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3-15) 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라. 계속적인 활용에 의해서 마음과 정신을 젊게 가지도록 하라(리뷰 앤드 헤랄드, 1886. 4. 6).
자아 훈련의 정신을 해이하게 할 변명의 재료가 없음
나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여 온 자들이 과거에는 시련과 역경을 잘 견딜 수 있었으나 노약기(老弱期)가 이를 때에 자제력을 잃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이상 더 예수님을 그대들의 구세주로 모시지 않기로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늙어서 백발이 될 때에 얼마든지 더러운 정욕을 나타내 보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한번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모든 세속적인 일에 그렇게 하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이지적인 판단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대들은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대들의 첫째 의무로 삼아야 한다. 그대들의 평화를 침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용납하지 말 것이다. 침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과 계속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이 본 사닥다리로서 그 밑이 땅에 닿았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다. 그대들은 오르고 또 올라서 영원한 왕국에 닿을 때까지 계속 이 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사단처럼 닮아가고 인간의 본성처럼 타락해야 할 아무런 핑계거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적인 특권의 높은 표준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셨으며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권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엡 3:16-19)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9. 10. 1).
일어나 저들을 위하여 복을 빌라
오후 2시 반에 나는 뉴욕의 아담스 센터에 만장한 청중을 향하여 설교하였다. … 우리들은 이 기회에 하나님의 나이 많은 종들을 만나게 되어 무한히 기뻤다. 우리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하여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프레데릭 휠러 목사와 친숙히 지내왔으며 그는 지금 거의 80세에 가까와지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지난 40년 동안 H. H. 윌콕스 목사와 췌이스 O. 테일러 목사를 사귀어왔다.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노령의 기수들에 관하여 나이가 말해 주는 것이 있다. 만약 우리들이 끝날까지 충성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노령의 기수들을 무용지물로 여기고 한편으로 제쳐놓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존재들이다. 저들은 사도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은 사업의 일익(一翼)을 담당할 수 있다. 또한 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1-7).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거의 100세에 가까왔을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한바 기별의 정신이며 생명이다. 기수들은 저희 손에 든 깃발을 굳게 붙잡고 있다. 저들은 전신 갑주를 벗을 때까지 진리의 깃발을 저희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옛날 전사(戰士)들의 음성은 사라지고 있다. 저들이 서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우리들은 저들을 더 볼 수 없으며 비록 저들은 죽었으나 아직도 말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저희가 이루어 놓은 사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몇 사람 안 되는 남아 있는 노령의 순례자들을 부드럽게 대하며 저들이 이루어 놓은 사업을 인하여 저들을 높이 평가하자. 비록 저들의 능력은 쇠퇴해지고 약화되고 있으나 저들이 하는 말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다. 저들의 말들을 고귀한 증언처럼 다루어야 한다. 청년들이나 새로운 교역자들이 백발이 성성한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어떤 면으로든지 냉담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일어나서 저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들이 이러한 노장들의 일을 이어 받아 같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기별을 선포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 신자들의 마음 가운데 더욱 뜨거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란다(원고 33, 1890).
백발이 되기까지 교역한 이들에게 보내는 권면
S. N. 해스켈 목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
해스켈 목사여, 비록 그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부 이행하고자 열망하고 있기는 하겠으나 그대가 다년간 진리를 증거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게 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젊은 다른 사람들이 짊어질 수 있는 짐들을 그대 혼자서 짊어져서는 안 된다.
생활 습관을 형성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그대의 의무이다. 그대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및 영적 능력을 사용하는 일에 그대는 현명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들을 거친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능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위치에 서 있도록 허락하시는 한 주님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이 사업에는 노령의 교역자들 곧 하나님의 사업에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저들은 많은 사람들이 광신주의에 빠지고 거짓 교리에 미혹되며 참된 빛을 비추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하는 것을 친히 목격하였다. 참된 빛을 흑암 속에 비추어 침투해 들어오는 미신들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판단력을 혼란케 하거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에게 순결성 그대로 전해야 할 기별을 무력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련을 겪은 많은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잠들어 버렸다. 우리들은 지금 이 날까지 생존해 있는 자들의 도움을 크게 감사히 여기고 있다. 우리들은 저들의 증언을 귀중하게 여긴다. 요한일서 1장을 읽고 비록 그대들에게 많은 허물들이 있으나 당신을 위하여 아직도 증거할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
스미스 목사와 로프보로우 목사
우리들은 현재(1902년) 생존해 있는 초기의 교역자들을 쉽사리 손꼽아 헤아릴 수 있다. 우라이아 스미스 목사는 출판 사업의 시초부터 우리들과 같이 있었다. 그는 나의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우리들은 항상 그의 이름이 리뷰 앤드 헤랄드지 편집자들 명단 위의 맨 꼭대기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기 원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놓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전쟁이 한참 치열할 때에 사업을 시작하였고 용감하게 싸운 자들은 지금껏 저들이 굳게 붙잡아 온 것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저들은 가장 심한 궁핍이 지나간 후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나는 스미스 목사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출판 사업에 관여된 나의 필생의 과업은 그의 일생과 한데 묶여 있다. 그는 청년 시절에 우리들에게 왔으며 편집인으로 채용할 충분한 자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처럼 탁월하고 신령한 진리로 가득 찬 그의 글을 리뷰지에서 읽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글들을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스미스 목사에 대하여 강렬한 동정심을 느끼며 지도적인 편집인의 이름으로서 항상 그의 이름이 리뷰지에 기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몇 해 전에 그의 이름이 두 번째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의 마음이 몹시 상하였다. 또다시 그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울었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스미스 목사의 오른손에 펜대가 쥐어 있는 한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대로 그의 이름은 항상 맨 윗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의 오른손이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을 잃을 때에 그의 아들들이 그의 글을 받아 쓰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J. N. 로프보로우 목사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아직도 자기의 재능과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폭풍과 시련 속에서도 충실하게 일하였다. 스미스 목사, 나의 남편 그리고 나중에 우리들과 합세한 버틀러 형제와 그대 자신(S. N. 해스켈)과 더불어 로프보로우 목사는 태초부터 …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1-3)고 말할 수 있다.
가장 귀한 일꾼인 버틀러 목사
우리들은 G. I. 버틀러 목사가 또다시 적극적인 봉사 사업에 나선 것을 볼 때 하나님께 만족감과 고마운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은빛나는 백발은 인생에 따르는 시련들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우리들은 그가 다시 한 번 우리 대열에 참가하게 된 것을 환영하며 우리들은 그를 가장 귀한 일꾼들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주님께서 젊어서부터 기별을 증거하여 온 형제들이 신체와 정신과 영적 능력을 보존하는 일에 관하여 지혜롭게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이지력을 주셨다는 것과, 그대들이 몸의 건강에 미치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그 법칙들을 순종할 결심을 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는 것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이러한 건강 법칙들은 하나님의 법칙들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선구적인 교역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시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타락하여 가며 강한 악의 물결에 의해서 실망에 휩쓸려가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맡은 부분을 다하기를 바라신다. 나의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투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신 갑주를 입고 있기를 바라신다. 그렇다고 해서 경망한 행동을 하거나 과로하지 말 것이며 휴식 기간을 취할 것이다.
호전적인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시련을 겪은 당신의 종들이 생존하여 있는 한 절제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기를 바라신다. 절제의 깃발을 휘날리라. 모든 일에 있어서 엄격한 절제를 실천하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건강 법칙에 기꺼이 순종하는 챔피언이 되게 하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굳건히 서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라고 새겨진 깃발을 백성들 앞에 높이 들라. …
선구자들을 존경하고 우대하라
아직도 옛날의 기수들이 몇 사람 생존하고 있다. 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이러한 선구자들을 존경하고 우대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들은 시련들이 무엇임을 아는 인물로서 이 선구자들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바이다. 나는 모든 신자들이 기별의 초기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많은 시련과 역경과 심한 궁핍을 이겨낸 인물들을 존경하게 하라는 지시의 말씀을 받았다. 이러한 인물들은 백발이 되기까지 사업에 종사하였다. 오래지 않아 저들은 저희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
주님께서는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당신의 종들이 충성되고 진실하게 서서 율법을 지지하는 증언을 하기를 바라신다.
시련을 많이 겪은 하나님의 종들이 일하기 어려운 곳에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일하기 매우 어려울 때에 저희 주님을 섬겼고 궁핍을 견디었으며, 아직도 신자들의 수가 적을 때에 충실하게 남은 자들은 언제나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진리 가운데로 들어온 자들이 이러한 말들을 유의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이 이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신다(서신 47, 1902).
나이 많은 교역자들은 교사와 자문 위원이 되어야 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이 많은 종들이 자문 위원들로서 활약하기를 요구하시며 청년들에게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를 바라신다. 나이 많은 교역자들은 사도 요한이 행한 것처럼 실제적인 경험에 대한 산 증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된 교역자들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라는 말씀을 듣고 안식을 취할 때에 우리 학교들 가운데서 군기를 집어 들고 그것을 새로운 지역에 세울 수 있는 남녀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노령(老齡)의 기수들이 교역하는 동안 저희의 수고로 도움을 얻은 자들은 저들을 돌보고 존경해야 한다. 저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맡기지 말라. 저들의 충고와 권고의 말들을 감사히 여기라. 저들을 마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들처럼 대우하라. 과거에 사업의 필요성을 예측한 교역자들은 모든 책임을 저들 스스로 지는 대신에 젊은 남녀들의 어깨에 메워주며 엘리야가 엘리사를 교육한 것처럼 저들을 교육하라.
다윗은 그가 받은 바 신령한 교훈과 지도를 위해서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시 71:17)라고 감사의 찬사를 올렸다. 기별의 역사 가운데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곤란을 겪은 자들은 저희가 젊었을 때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저들을 초청하신 분이 같은 주님이시며 과거에 주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진리의 빛을 주시며 오늘날의 젊은 청년 남녀들에게도 기꺼이 가르치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남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들이 일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 쉬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충성된 교역자들은 모든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교육자들로서 저들이 할 수 있는 그 사업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주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저들의 노력에 협력하실 것이다. 저들은 씨름하는 일들을 젊은 교역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장래 사업은 든든한 청년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업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님의 지배 하에 있다. 주님께서는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할 자격을 주실 수 있으며 또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전쟁을 싸워 줄 수 있는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사업을 운수에 맡기시는 일이 없다. 이 사업은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이며 전진해야 할 사업이다.
주님의 사업에 몸을 바친 원로 교역자들이 무거운 책임들을 짐으로 남은 기력을 소모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젊은 일꾼들은 저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용감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 아무리 큰 관심을 보일지라도 당신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어떤 사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고 당신을 위하여 큰 장애물들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다소 사람 바울을 감동시키셨고 그는 천국의 계시로 나타난 진리를 위하여 자기에게 위탁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자기를 마땅히 지지했어야 할 배교자들을 대항해서 싸웠다. 오늘날의 하나님의 종들도 바울이 당면했던 것과 같은 동일한 난관들을 겪게 될 것이다. 과거에 이러한 경험을 가진 자들이 현대 진리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인물들이 진리를 방어할 수 있는 자들이다. 저들이 계속해서 배우는 자들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율법을 옹호하시기 위하여 저들을 사용하실 수 있다.
젊은 교역자들은 노련한 교역자들과 연합해야 함
나이 많은 교역자들은 저들 자신이 모든 책임과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 앞에는 계속적으로 새로운 선교 지역들이 열리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오랫동안 말씀을 행하여 오고 진리를 실제적인 생활로 옮겼으며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다니엘처럼 주님을 찾는 노련한 교역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의 탄원을 하나님께 올렸다. 그는 모략에 능하신 주님께서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심을 알았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 곧 좌우에 날선 성령의 검은 다니엘의 전쟁 무기였다.
하나님을 저들의 유일한 신뢰자로 삼은 사람들은 말과 정신과 원칙 면에서 저들과 관련된 청년들에게 모본을 보일 것이다. 이처럼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은 저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로 묶여 있기 때문에 청년들과 연결을 맺어 사랑의 줄로 묶어야 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0. 3. 20).
비록 몸은 늙어가나 계속하여 진리를 증거함
사랑하는 G. I. 버틀러 형제에게
… 나는 백발이 되기까지 주님을 섬기는 사업에 종사한 노병(老兵)들이 계속해서 진리를 밝히 증거함으로, 믿음 안에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과거에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기별이 매우 중대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과거 경험은 추호도 그 효력을 상실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인해서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들의 어려운 체험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능력 한도를 넘어서 일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장차 우리들의 경험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와 내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생애 가운데서 늙어가면서 주님의 뜻을 수행할 때에 가장 고상한 가치와 가장 열렬한 관심을 보일 수 있는 경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이 이 땅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적인 충성심으로 일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전진하게 하고 향상하게 하는 일을 돕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합시다. 머뭇거리는 자들과 지쳐 있는 자들에게 언제나 격려의 말을 해줄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에만 안전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대의 용기를 꺾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충성심을 가지고 일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접촉해 오는 자들을 도우십시오.
나는 장차 어떤 교회 집회가 있을 때에 그대를 만나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대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여 온 자들 중에서도 가장 연로한 축에 듭니다. 만약 우리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생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성화된 위신을 가지고 우리들의 전신 갑주를 벗을 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오랫동안 부지하게 해 주신 데 대하여 나의 마음은 감사의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의 오른손은 아직도 떨지 않고 성경 진리에 대한 문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화잇 자매의 손은 백성들에게 필요되는 교훈의 말씀을 찾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또 하나의 구약 성경 역사에 관한 책*을 거의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시고 소망과 용기 가운데서 그대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서신 130, 1910).
계속적으로 힘든 일 하는 것을 삼가라
사랑하는 S. N. 해스켈 형제에게
나는 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무리하게 일하지 않기를 그대에게 간곡히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계속적으로 힘든 일하는 것을 삼가야 하며 그대 자신을 안정된 상태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대는 낮에 잠자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처럼 휴식을 취할 때에 좀더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으며 그대가 하는 말들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할 때 그대의 전부를 틀림없이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지도를 따라 주님을 아는 지식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나아가며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의 능력을 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대나 나의 경우에 있어서 반드시 계속적인 긴장감에 싸여 있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바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우리들은 하나님의 신비 곧 하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다 깊은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룩한 아름다움에 싸이신 임금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남아 있는 안식이 우리 앞에 열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얼마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만드신 그 도성, 우리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말해 오던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서신 78, 1906).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
사랑하는 S. N. 해스켈 자매에게
그대가 더 이상 활동할 기력이 없고 몸에 쇠약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요구하시는 전부는 다만 당신을 신뢰하라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그대의 영혼을 보호해 주시도록 위탁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는 확실한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토록 진리를 보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의 소망을 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허락의 말씀들을 굳건히 붙잡고 놓지 마십시오. 만약 그대가 고귀한 허락의 말씀 가운데 있는 값진 보장을 쉽사리 기억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그 허락의 말씀들을 듣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입술로 말씀하신 이 허락들 가운데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사랑과 동정과 깊은 관심이 표명되어 있으며 그 허락들은 충만하고 사랑스러우며 든든한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출 34:6, 7)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기에 너무나 크다고 할 만한 죄들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무한하신 주님의 자비는 정죄하는 것보다도 용서하기를 더욱 서두르시고 더욱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셔서 우리들의 그릇된 점만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조를 알고 계시며 우리들이 진흙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무한하신 동정심과 자비를 가지시고 우리들의 모든 타락한 상태를 고쳐주시며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값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의 빛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나의 자매여, 그대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항상 신뢰하시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대에게 너그럽게 베푸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마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참는 성품과 진실한 성품을 주실 것이며 불안한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안정된 성품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감미로운 성령의 감동으로 그대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실 것이며 연약한 상태에 있는 그대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거쳐가는 순례자와 나그네로서 우리들은 더 좋은 나라, 저 하늘나라를 찾아가기 위하여 며칠만 더 묵으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영혼을 하나님께 완전히 신뢰하고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대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또 맡기십시오.
아, 얼마나 여러 번에 걸쳐서 그대의 마음이 구세주의 용모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받았으며 주님의 품성의 사랑스러움으로 매혹되었고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에 대한 생각으로 그대의 마음이 누그러지게 되었는가! 지금 주님께서는 그대가 전적으로 당신을 의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는 그대에게 항상 위로가 될 성경 몇 절을 여기에 적어 볼까 합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1-3) (서신 14b, 1891).
25
병고를 이겨내는 굳센 정신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1891년 말에 엘렌 G. 화잇 여사는 대총회의 요청에 호응해서 호주에 새로 시작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호주로 가게 되었다. 체류 기간은 9년간이라는 긴 세월이었다. 화잇 여사는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병은 오래도록 낫지 않았다. 다음의 내용은 그가 병고를 이겨낸 그의 굳센 정신을 보여 주는 글이다. 화잇 여사께서 이런 경험을 통하여 배우신 교훈들을 마음에 새겨둘 것이다. ― 편찬자
매번 편지를 쓸 때마다 내 손으로 1백 내지 2백 페이지를 썼으며 그 대부분이 침대 위에서 베개를 등에 괴고 절반은 누운 자세로, 절반은 앉은 자세로 썼거나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몸을 간신히 버틴 채 쓴 것이었다.
엉덩이 부분과 척추의 밑 부분에 심한 통증이 있었으므로 앉아 있기가 매우 고통스러웠다. 미국의 위생병원에 있는 것과 같은 안락 의자를 이 나라(호주)에서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30불을 주고라도 선뜻 샀을 것이다. 내가 바른 자세로 앉아서 머리를 들고 있기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의자 뒤에 푹신한 베개를 고이고 누운 듯한 자세로 기대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현재 상태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실망을 느끼지 않고 있다. 나는 그날 그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잠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길고 지루한 밤 시간을 나는 대부분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며 모든 신경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을 줄 때, 나 자신이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길 때, 그리스도의 화평하심이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와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또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날 밤에는 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였고 또 며칠 동안은 네 시간 그리고 대부분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였다. 그처럼 길고 어두운 호주의 밤 동안에도 모든 사물이 빛처럼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나는 하나님과 더불어 감미로운 교제를 즐겼다.
내가 처음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 나는 넓은 바다를 건너온 것을 깊이 후회하였다. 내가 왜 미국에 있지 않았던가? 내가 왜 비싼 댓가를 지불하며 이 곳에 와 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여러 번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 실컷 울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호사스러운 눈물 속에서 오랫동안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엘렌 G. 화잇, 그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대총회가 가라고 결정한 곳으로 가는 것을 그대를 위한 최선의 길로 알고 그 명령에 따르는 것을 그대의 의무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호주로 온 것이 아닌가! 과거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라고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그런데 왜 그대는 거의 버림을 받고 실망한 자처럼 생각하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원수 마귀의 작용 때문이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즉시로 눈물을 닦으면서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이상 더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살거나 죽거나,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께 나의 영혼을 보존해 달라고 위탁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다.
그 때로부터 나는 주님께서 범사에 원만한 처리를 해줄 것을 믿었고 절망적인 8개월 동안 나는 추호도 낙담하는 마음이나 의혹을 품지 않았다. 지금 이 문제를 돌이켜볼 때에 그러한 경험이 이 나라와 미국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주님의 크신 계획의 일부였으며 또한 이것은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보배로운 경험이었다. 왜 혹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비록 병고 가운데서나마 행복하다. 나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나를 살펴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며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감사의 뜻이 흘러나오므로 나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서신 18a, 1892).
고통의 날 동안의 명상
기도하고 근신하였으나 즉시로 낫지 않았다.
1892년 5월 21일, 몹시 고통스럽고 거의 한잠도 이루지 못한 밤이 지나갔다. 어제 오후에 나의 부탁을 받고 A. G. 다니엘스 목사 부처, G. C. 테니 목사부처, 스톡튼 형제 및 스미스 형제가 우리 집에 왔으며 주님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우리들은 열렬한 기도회를 가졌으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 통증은 매우 완화되었으나 나는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따르는 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나를 고쳐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주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나의 믿음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라는 허락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다.
나는 주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었다. 나는 병고에 사로잡힌 이 고통에서 즉시 풀려나기를 바랐으며 나의 제한된 판단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리들의 기도회 시간에 나는 큰 축복을 받았으며 나는 너의 구속자라, 내가 너를 고쳐주리라고 나에게 주신 보증의 말씀을 꼭 붙잡을 것이다.
나는 자제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1892년 6월 23일, 또 다른 밤을 지새웠다. 나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였다. 그 전처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으나 불안하고 신경 과민 상태에 있었다. 잠을 청해 보려고 애썼으나 정신이 더욱 또랑또랑해질 뿐 잠을 청하려던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으며 나의 모든 관심을 주님을 찾는 일에 집중시켰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는 허락의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보배로웠는지 모른다. 나는 오직 주 예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위로와 화평을 얻기 위하여 가장 열렬하게 주님께 기도하였다. 나는 주님의 축복을 얻음으로 비록 고통 중에서나마 자제력을 잃지 않게 되기를 원하였다. 나는 단 한순간도 감히 자기 자신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자기의 눈을 그리스도에게서 떼는 그 순간이 그가 바로 물에 잠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가 자신의 위기를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구하소서 내가 죽겠나이다라고 예수님께 외쳤을 때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항상 준비하고 계신 거룩한 손은 그를 붙잡았으며 그는 구원함을 받았다. …
나는 집안에서 매일 화평을 구하고 그 길을 따라야 한다. 비록 몸은 고통스러우며 신경 조직은 약화되었을지라도, 우리들은 마음대로 짜증내는 말을 하거나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조급한 성격을 용납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을 우리들의 마음에서 몰아내게 되며 사단의 속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들이 이기심, 악한 생각 및 악한 말을 위한 변명거리를 구상할 때에 우리들은 악으로 영혼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며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계속한다면 시험에 넘어가는 습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우리가 사단의 터전 위에 서게 되고 정복을 당하며 허약하게 되며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신뢰한다면 우리들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들이란 어떤 것들인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내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깊이 명상할 때에 나는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보존시키는 일에 등한히 한 죄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협력이 없이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을 때 주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가운데서 우리들 자신을 보전하는 일을 태만히 해도 좋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와의 산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가 됨으로써 우리들은 허락의 말씀들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계속적으로 보다 큰 능력을 얻어야 한다. 구세주를 바라봄으로써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함을 입는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신뢰심을 흔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한 자들이 사소한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될 것인가? 그의 상상력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집중해서 될 것인가? 작은 일들로 인해서 자기의 마음의 화평이 깨지도록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거하시는 자는 기꺼이 즐거워 할 것이다. 그는 악한 것을 생각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위하여 죽으신 모든 영혼들을 알고 계시며 올바르게 평가하신다는 보증으로 만족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며 우리들로 조심하고 경계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선뜻 용서해 주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참된 예의를 실천하는 그 능력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행복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찬란한 재능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매일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친절한 표정, 겸손한 정신, 만족한 기질, 흔들리지 않는 심지(心志), 다른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 성실한 관심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찬다면 이 사랑은 생애를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거나 완고하고 이기적인 억지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무모한 결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육체적인 건강은 정신적인 건전성에 달려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자격에 비하여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가상적인 희생자로 만들게 된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만 결국 누구를 원망해야 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친절과 우호적인 성품이 비정한 성품의 저주를 지닌 어떤 훌륭한 기민성보다도 그를 더욱 높일 것이다(원고 19, 189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아심
1892년 6월 26일, 길고 지루한 밤 시간이 지나고 새벽 동이 틀 때에 나는 기뻐하였다. 내가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결코 조는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영원토록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에는 감사한 뜻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주님께서도 당하셨다. 우리 친구들 중에 더러는 인간적인 비애와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저들은 병을 앓아보지 않았으므로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에 대한 기분을 친히 느끼실 수 있다. 그분은 위대한 의료선교사이시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인성을 쓰셨으며 공의와 자비를 조화시키시기 위하여 자신을 새로운 신의 섭리의 선두에 두셨다(원고 19, 1892).
저를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열매 맺는 가지가 되게 하여 주소서
1892년 6월 29일.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예수님, 오늘도 당신의 어린 이 자식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보호하시는 날개 아래 저를 품어 주소서, 저를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산 포도나무의 열매 맺는 가지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천사들의 존경을 받고 하늘 합창대의 음악을 들은 자는 이 지상에 살고 있을 때에 어린이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언제나 연민의 정을 느꼈으며 그들의 슬픈 이야기를 항상 들어주려고 하였다. 그는 때때로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주님의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으로 저들을 격려해 주었을 때 어린이들의 슬픔은 가라앉는 듯하였고 저들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게 해주는 듯하였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에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 위에 임한 것으로 표상된 성령은 주님의 품성의 온화하심을 나타낸 것이었다(원고 19, 1892).
나에게서 불친절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해 주소서
1892년 6월 30일. 몹시 괴로웠던 밤을 간신히 지새웠다. 비록 나는 계속해서 큰 고통을 느꼈으나 나의 구세주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 저를 도와주셔서 제 입술로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하여 주옵소서. 나에게서 불친절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해주소서(원고 19, 1892).
나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1892년 7월 6일. 나는 나의 모든 두려워하는 것들과 당황하는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는 주님의 날개 밑에서 든든한 보호를 받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번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청년에게 그대가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그 때에 그 청년은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너무나 크셔서 광대 무변한 우주에 가득 차시고 한편 너무나도 작으셔서 인간의 모든 성화된 마음 속에도 거하신다고 대답하였다.
오, 보배로우신 구세주시여 저는 당신의 구원을 바라나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나는 예수님에 대하여 보다 밝은 계시를 갈망하고 있다. 나는 주님의 흠없는 생애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즐기며 주님의 교훈에 대하여 명상하기를 좋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씀을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하여 읊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내 몸은 통증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고역스런 환경에서 계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피할 수 있게 하는 경고의 수단으로써 고통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확증을 나는 얻었다 (원고 19, 1892).
주님께서 나에게 기력을 주심
1892년 7월 7일.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통해서 중요한 서신들을 쓰게 하시기 위하여 나에게 기력을 주신다. 때때로 형제들이 권고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나를 찾아온다. 나는 이 지루한 병고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밤에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사야 51장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보배로운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짐들을 짊어지신다. 나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이사야 51장을 읽는다(원고 19, 1892).
패배의 후퇴를 할 생각은 없음
1892년 7월 10일. 나는 새벽 5시에 에밀리(에밀리 캠벨은 화잇 여사의 여행 동반자겸 비서였다)를 깨워서 난로에 불을 지피게 하였고 옷을 입혀주도록 부탁하였다. 나는 다른 날 밤보다도 한결 편히 잠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였다. 내가 자지 않고 있는 시간 동안에는 기도와 명상을 하였다. 왜 나는 건강 회복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가? 내가 호주에 온 사실이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사게 된 원인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에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나는 결정적으로 아니다. 이런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였다. 미국을 떠나기 이전에 나는 때때로 생각하기를 지금 내 나이에 이처럼 과로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먼 나라로 여행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나에게 요구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나 자신이 받은 분명한 빛이 없을 때에 그렇게 하기로 노력하여 온 것처럼 대총회의 결정에 순종하였다. 내가 호주에 와서보니 이 곳에 있는 신자들의 상태가 나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 곳에 도착한 이후로 여러 주일 동안 과거에 비할 수 없는 열심을 기울여 일하였다. 개인적인 경건의 필요성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말씀을 받았다. …
나는 현재 호주에 있으며 주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 바로 이곳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고통이 심하다는 핑계로 패배의 후퇴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는 주님의 자녀라는 복된 보장을 주셨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밝은 광선에 의해서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친히 겪으신 주님 외에 내가 당하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누굴까?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시험당한 자를 구원하는 방법을 아시는 주님 말고 내가 누구에게 나의 사정을 호소할 수 있을까?
내가 병 회복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시지 않는 듯하였고 나의 정신은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마다 사랑스런 구세주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임재하심을 기억하게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대는 자기 자신의 피로 그대를 사신 주님을 신뢰할 수 없는가? 나는 내 손바닥에 그대의 이름을 새겼노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의 영혼은 주님의 거룩하신 임재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나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웠다(원고 19, 1982).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아심
1892년 7월 14일. 여러 달에 걸쳐서 고통을 당하는 병고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을 때에 기도의 응답으로 즉시 병이 회복되지 않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는 허락의 말씀은 나의 경우에 있어서 성취되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통증이 나를 엄습하는 시간들은 내가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나는 내 슬픔을 호소할 분이 누구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무한한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나의 연약한 힘을 보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밤낮으로 하나님의 허락의 견고한 반석 위에 서게 되었다.
나의 심령은 사랑스러운 신뢰의 정신으로 예수님께 향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알고 계신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라고 하신 이 허락의 말씀을 내가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괴로웠던 밤들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밤들이었을 것이다(원고 19, 1892).
고통 기간 동안에 배운 교훈들
나는 고통과 신음과 절망 속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었으나 이러한 모든 시련 속에서도 나는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처음에 내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해야겠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미국을 떠나 먼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과연 나의 의무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은 매우 통렬한 것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던 그 많은 밤 시간 동안에 우리가 미국을 향해서 유럽을 떠나게 된 이후로 겪은 모든 경험들을 거듭거듭 반복해서 회상해 보았으며 그것은 근심과 고통과 무거운 책임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 때에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역사와 주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업을 신중히 검토해 보았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었고 때때로 주님께서는 뚜렷한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보이셨으며 과거의 경험에서 내가 불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나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귀중한 일들이 황금의 실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치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께 지시를 내리는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였다. 고통과 절망의 심정이 찾아든 시초에 나에게 불복종의 정신이 있었으나 오래되지 않아 나의 병고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반은 누운 자세로 또 반은 앉은 자세로 하여 불구가 된 손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심한 고통 속에서도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이 나라(호주)에 온 이래로 이만한 크기의 종이로 1, 6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 왔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지난 9개월 동안 허다한 밤들을 나는 두 시간 정도 잠을 이룰 수밖에 없었으며 때때로 어두운 절망 가운데 싸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감으로써 감미로운 깊은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 59:19)라고 하신 허락의 말씀이 나에게 성취되었다. 나는 주님 안에 있는 모든 빛 가운데 싸여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하게 접근하셨으며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 있었으므로 내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충만하였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딤후 1: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는 말씀을 벅찬 가슴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정복자로 나서게 되었고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나는 나의 병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밝히 파악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아시므로 나의 진실하신 창조주이신 주님께 나의 혼과 몸과 영을 맡길 것이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만약 우리들이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 더 큰 인내 및 하늘 아버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신뢰심을 갖도록 우리 영혼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다면 우리들이 이 생애의 투쟁 속에서 날마다 더욱 큰 화평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팔에 안기지 않고 떨어져서 우리들 스스로 애태우고 근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조용히 기다리며 살피는 그러한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들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무엇이 없는 한 바른길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리들은 경우에 알맞는 어떤 표징을 계속 찾는다. 그러나 심판의 표준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라
우리들이 최선의 지식에 따라서 기록된 말씀에 동의할 때 어떤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든 못 느끼든 믿음으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들의 희생 제물로 죽게 하시므로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 소망을 두며, 추호의 질문이나 의심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도록 그처럼 위대한 사랑의 놀라운 증거들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된다.
그대들에게 어떤 뚜렷한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조용한 기도를 올리고, 주님의 능력을 붙잡으라. 마치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고 결코 실패함이 없으신 약속의 주님께로부터 응답을 받는 것처럼 즉각 전진하라. 비록 어떤 무거운 감정과 슬픔에 억압된 순간이라도 그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운율(韻律)에 맞추어 노래하며 행진하라. 분명히 빛이 이르게 되고 기쁨을 맛보게 되며 안개와 구름이 깨끗이 거두어질 때가 올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암영(暗影)과 흑암의 압도적인 세력에서 벗어나 주님의 임재에 따르는 밝은 태양 광선을 쪼이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더욱 많은 표현들을 한다면 우리들이 분명히 누리고 있는 축복들 곧 하나님의 크신 자비, 관용 및 사랑 가운데서 더욱 기뻐하게 되며 우리들은 매일 더욱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세상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것보다 더욱 기꺼이 성령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황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확신과 권능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전해 주시지 않았던가?
우리들은 매일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에 부합되는 다소의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지 않으시고 희생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감정과 신앙은 완전히 구분되어야 한다. 신앙은 감정에 의존하여 있지 않다. 우리들은 어떤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믿음으로 열렬히 하나님께 호소하고 우리들의 기도에 일치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보장과 확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우리가 구한 후에는 의심이 없이 믿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을 찬미하고 또 찬양하나이다. 당신께서는 말씀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저를 실망케 하신 적이 없나이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저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당신의 것이 되었나이다.
아브라함이 살핀 것처럼 충실하게 살피지 않을 때 까마귀들이나 먹이를 구하는 어떤 새들이 하나님께 드릴 그대들의 희생 제물과 헌물 위에 내려앉게 된다. 의심을 일으키는 모든 생각을 경계함으로써 어떤 언사로 말미암아 그날의 빛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흑암의 권세들을 떠받드는 모든 말들은 항상 빛을 쫓아버린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매일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늘로 가는 문은 좁고 불편함
하늘로 가는 우리들의 길은 어떠한가? 모든 유혹적인 편의가 제공되는 그러한 길인가? 아니다. 그 길은 분명히 좁고 불편한 길이다. 그 길은 투쟁과 시련의 길이며 환란과 고통의 길이다. 우리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싸워야 할 전쟁에 관하여 아무것도 숨겨놓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지도를 펴 놓으시고 가는 길을 보여 주신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고 말씀하셨다. 또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요 16:33)고 말씀하셨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호응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씀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실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모든 허락의 말씀들을 모으라
모든 은혜의 생명, 모든 약속의 생명, 모든 의식(儀式)의 생명 그리고 모든 축복의 생명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실체이시며 영광과 향기가 되시고 생명 자체가 되신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구속 받은 자들이 걷도록 펴놓인 지름길은 절망적인 흑암 속에 싸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순례는 실로 외롭고 쓰라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든 기록된 허락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우리들은 해가 있을 때에 그 말씀들을 반복하고 밤에는 그 말씀들을 명상해야 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그날에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 12:1-6).
이 길이야말로 우리들이 여행하고 있고 여호와의 구속 받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지름길이 아닌가? 이보다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한 길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받은 바 교훈을 실천해 나아가자. 우리들은 피난처로서, 사단의 화살에서 우리들을 막아주는 오른손에 방패처럼 구세주를 바라보자.
유혹들은 엄습해 올 것이며 온갖 염려와 암담한 실망이 우리들을 억압할 것이다. 마음과 육신이 실패하려 할 때에 누가 우리들을 영원하신 팔로 껴안아 줄 것인가? 누가 우리들에게 보장과 소망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실 것인가? 성실과 진실로 구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분이 누구인가? 우리를 당신의 의로 입혀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 누구이신가? 누구의 빛이 안개와 짙은 구름을 거두어가고 우리들을 당신의 임재의 태양 광선으로 인도할 것인가? 아, 그렇게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과연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살아 계신 구세주이신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생명이 되신다. 우리들은 주님의 은혜로운 사랑을 힘입어 택함을 입었으며 양자가 되었고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호와를 존귀하게 받들자(서신 7,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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