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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urlgung.tistory.com/66
가수 한영애의 삶과 노래
주간한국 , 자유기고가 정영주
아무리 이쪽에서 마음을 열어도, 좀처럼 교신이 쉽지 않은 사람이 세상엔 한둘 쯤 있기 마 련이다. 뭔가 특별한 주파수를 갖고 있어서, 그의 성(城)은 너무나 견고해서, 어쩐지 엉거주춤 선 채로 대화를 나누는, 그런 느낌같은 거다. 이번 만남은 그런 잠깐의 관찰일지에 불과하다.
지난 12월14일. 가수 한영애를 만났다. 장소는 KBS 본관. 지난 11월부터 그녀가 진행을 맡 고 있는 KBS 제2FM '뮤직 스테이션'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이다. 음악얘기를 들으러 간 것은 아 니었다.
그것을 원한다면 직접 음반을 들어보거나 인터넷에서 '한영애'란 검색어로 자료를 찾아 읽 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거창하게도, 시도는 그랬다.
그 모호한 이미지는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건지, 그녀 안의 무엇이 그처럼 독특한 노래를 쏟 아내게 만드는지, 노래 바깥에서 그녀를 찾고 싶었다. 적어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 랬다.
보편적 사회생활은 처음
-라디오 진행을 맡은지 한달여 지났는데, 적성에 잘 맞는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주로 음악과 관련된 특정 부류의 사람들과만 대화를 해온 것 같아 다 른 많은 이들과 1대1로 접할 방법을 찾던 차에 이 기회가 생겼다.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퇴근하 는 일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이것도 재미있다."
-원래 방송 출연 자체도 잘 하지 않았던 편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더 적극적인 방송 진행자 로 나섰다니 의외다.
"주위 사람이 많이 놀랐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과연 한영애가 말을 많이 할 수 있을까' 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엔 두려 움이 있었다. MC를 하려면 아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들을 많이 알아야하고, 또 사용해야 하지 않나. 그동안 나는 좀 다른 세계에 살았던 사람이라,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이 내 겐 처음으로 소위 '보편적인 사회생활'을 해보는 셈이다."
-진행 중 실수는 없었나?
"20~30년 베테랑도 가끔 실수한다는데 나같이 처음 이 일을 해보는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 나. 이 음악을 틀어야되는데 저 음악을 틀고, 시간을 잘 못 맞춰 음악이 도중에 잘린다든지, 그런 것들이다. 그럴 땐 떨리고 당황되지만 서서히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전까진 주로 어디에서 뭘 하며 지냈나?
"콘서트로 바빴다. 많으면 한달에 20번 넘게 지방까지 공연을 다니기도 하고, 없을 땐 두달 동안 공연 한번 하지않고 지내기도 했다. 정해진 게 없다. 들쑥날쑥이다.
비는 시간에도 노는 건 아니다. 미술관도 가고, 연극도 보고, 책도 읽고, 연습도 하고.. 가수 가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아는가? 아주 많은 관찰 속에서 피어난 정서가 노래 한곡으로 담겨질까 말까다. 늘 음악에 모든 감각이 열려있다."
-여기에 오기전 최근 몇 년간 당신에 관해 쓴 신문 기사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 많 은 인터뷰 내용들이 모두 앨범에 대한 얘기들 뿐, 사적인 얘기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음악 외엔 말하고 싶지 않은건가?
"질문을 막아서가 아니라, 얘기해 봐도 별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일거다. 난 별다른 사생활이 랄것도 없고, 특별히 내보일 꺼리도 없다."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는 학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를 바랬다. 워낙 말을 안하는 애라서 내 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친구들은 전혀 모르고 지냈 다. 나는 그것을 원했다."
-그 대신 뭘 좋아했나?
"나무, 하늘, 나비, 꽃, 공상하는 것. 그런 것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외롭지 않던가?
"외로울 이유가 없다. 가끔씩 기분이 이상할 때면 가만히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럼 뭔가 우울하거나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거나 그런거다. 아, 내가 지금 화가 나있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다시 괜찮아지는거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 들이 종종 튀어나왔다. '명상법을 배우거나 하고 있진 않는가'를 묻자 '그렇다', '아니다' 란 대답 은 건너뛴 채 "얘기가 복잡해진다. 잘못하면 과장될 것이 싫어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 한다.)
"나는 외로울 이유가 없다"
-학교 다닐때도 노래로 눈에 띄었던 학생인가?
"전혀 아니다. 노래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고, 언젠가 고2때 동창을 만났더니 내가 소풍때 기 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었다고 해서 내가 의아해했던 일이 있다.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랬다면 그게 유일할 것이다. 음악시간 때도 별 다를게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됐는가?
"우연과 우연이 겹친 일이 많다. 옛날 명동 해바라기홀에서 아는 오빠가 3년째 음악회를 하 고 있었는데 아는 언니를 따라갔다가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노래했더니 이상한 소리를 가졌다고 난리들이었다. 그렇게해서 그 오빠와 함께 노래를 하게 된 뒤 이정선씨를 만났고, 나중에 이정선 씨가 그룹 '해바라기'를 결성하면서 그 멤버가 됐다."
-본인도 자신의 노래가 뭔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도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불렀을뿐이다. 다만 나이는 어리지 만 나름대로 내가 자연에 대해 갖는 느낌같은 것, 감수성 등을 노래 속에 어떤 빛깔로 채색해야될 까,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다."
(1970년대 말 이정선, 이광조, 김영미와 함께 '해바라기'로 활동한 후 그녀는 극단 '자유극 장'에서 7~8년 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연극배우 한영애는 어떠했을까.)
-노래를 하다말고 갑자기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
"내가 노래하던 걸 지켜보던 연출가가 어느날 나를 찾아와 '당신같은 여자가 연극해야 된 다'고 했다. 그렇게 연극을 시작했다. 나중엔 무섭게 빠져들었다."
-어떤 작품, 어떤 역할들이었나?
"'초혼', '무엇이 될꼬하니' 등 대부분 주연을 맡았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 대사처리가 어설 프니까 첫 작품땐 대본에 없는 역할을 일부러 만들어서 내게 맡기고는 감을 익히도록 배려해줬 다. 한마디로 적극적으로 키워준거다. 노래든 연극이든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언제나 그 처음을 좋은 선생님, 좋은 집단과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정식교육을 받고 들어간 게 아니라서 아주 혹독하게 배웠다. 새벽 6~7시엔 전단지를 뿌리 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거리에 나가 포스터를 붙이고, 오후 다섯시면 연습을 시작하는, 그런 생 활을 수년동안 했다. 요즘도 벽보판만 보면 이건 30분짜리다, 이건 2시간짜리다 대번 알 수 있 다. (30분 또는 2시간 간격으로 벽보가 뜯기는 것을 말함.)
-그렇게 좋아한 연극을 왜 그만뒀나?
"한마디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그만둔 후 떠돌듯이 외국도 이리저리 다니고, 많이 방황했다. 그러다가 다시 노래하게 만든 게 이정선씨였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내가 연극을 할 때 이정선씨가 연출가와 만나 '노래해야 할 애를 왜 들쑤시냐'고 했다고 한다.
아무튼 다시 만난 이정선씨가 내게 그랬다. '너는 노래할 사람이다. 연극은 그만치 했으면 됐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아, 내게 노래가 있었구나. 그리고 다 시 노래를 하게 된 거다."
-방황하면서 무엇이 가장 고민스러웠나? 얻은 결론이 있나?
"아무 것도 없다. 딱히 뭘 정리하러 떠난 여행도 방황도 아니었다. 그냥 혼란스러웠을뿐이 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가 꼭 무엇이 돼야겠다는 목표나 욕심이 없다. 그냥 내게 주어진 것만 을 가질 뿐이다.
가수면서도 언젠가 꼭 10대 가수왕이 돼야겠다는 욕심을 품어본 일도 없고, 남들이 말하는 승부욕, 성취, 사회의 기본적인 잣대 그 어느 것도 내겐 상관이 없다. 어리석거나 미련해 보일지 도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 것 없이도 행복할 수 있나?
"물론!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많다. 살아있다는 것, 나는 아직 죽지 않 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자신이 가수란 걸 느끼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첫 솔로 앨범을 낼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들국화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 가면서 아, 이제 내가 가수가 되는구나, 음악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됐구나, 느꼈 다. 그때부턴 마음가짐도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 본격적인 콘서트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한영애는 첫 솔로앨범 '한영애'(86년)를 시작으로 '바라본다'(88년), '한영애 1992'(92년), '불어오라 바람아'(95년), '난다 난다 난다'(99년) 등 약 20년간 다섯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중 2집의 수록곡 '누구없소', '루씰' 등에선 흑인 소울창법을 독특하게 구사, '블루스의 여 왕',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과 함께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했다.
최근 5집 앨범에서는 기존의 록과 블루스에 테크노, 레게, 트로트 등을 접목시키는 또다른 음악적 모험을 시도, 반향을 불러온 바 있다.)
-10여년전 TV에서 처음 '누구없소'를 부르는 모습을 봤을 때의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 래 자체만 아니라 창법이나 분위기가 워낙 독특해 한참이나 쳐다보게 만드는 가수였다.
계산된 연출인가?
"지금껏 한번도 무대 위 모습을 위해 거울을 본 적이 없다. 제스추어도 따로 연구한 것이 아 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다. 머리도 내가 원래 긴 머리를 좋아해서 학창시절 이후 계속 이 머리 그대로다. 한번도 안 잘랐다. 조금도 안 지겹다. 치장엔 원래 관심이 없으니.."
-창작하는 사람이 갖는 가장 큰 고민은 자기 색깔대로 지킬 것인가, 변신할 것인가 그 딜레 마가 아닌가 싶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기로 했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귀기울여보면 답은 절로 나오게 돼있다. 어떤 필요 나 시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르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해왔다. 건방지게 말하자면 단한 번도 나는 음악을 두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당신은 어떤가? 세금 납부기한도 꼬박꼬박 잘 지키는, 그런 사람인가?
"그렇다. 자잘한 납기일도 잘 안 놓치고, 아주 철저하게 리듬을 지키며 살려고 애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도 오르고, 하루 세끼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서 먹는다.
주먹밥이나 김밥을 좋아하는 것도 식사시간을 안 어기기 위해서다. 공연이나 녹음작업 때를 제외하고는 잠도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잔다. 매 순간순간 나를 정리해가며 살려고 노력한다."
"언제 물어도 내 나인 스물여덟 딸기띠"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특별히 설명할 만한 이유란게 없다."
-혹시 동물을 키우나?
"안 키운다. 동물은 물론이고 우리 집엔 아주 기본적인 것 외에 가구도 별로 없다. 집에 오 는 사람마다 '어디 이사가느냐'고 묻는다. 하도 썰렁해서. 혼자 하는 일엔 아주 익숙하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영화보러 가는 것, 전혀 불편이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의식되지는 않나?
"의식될 게 없다. 내 나이는 스물여덟. 딸기띠다. 언제 물어도 내 나이는 그거다. 물론 몇몇 자료만 뒤져보면 내 진짜나이를 다 알겠지만, 내 스스로 말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너무나 나이 에 예민해서, 아직도 큰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공연히 나이만 보고 '이미 한물 갔다'고들 쉽게 말한다. 그게 싫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대하기가 어려운 상대일 것 같다. 사람을 가리는 성격인가?
"그렇게들 느끼는 것 같아 가능하면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원래 사 람을 가리진 않는다. 다만 인연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다시 만나도 그녀는 그 색깔일 듯
방송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녀는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야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내 것과 색깔만 똑같은 남의 우산을 들고 어딘가 헤매는 꿈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난 날 정말 주인에게 빨리 돌려줘야 할 남의 우산을 들고 거리 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말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가수와 말을 기다리는 취재노트. 필요하다면 방송이 끝난 뒤 '스토킹'을 해서라도 더 취재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건 시간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아니라 내일, 모레 다시 찾아가더라 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사람. 미련을 접기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첫댓글 남자 '선생'들은 지구상에 넘쳐나지만, 여자 '인간'은 어쩐 일인지 찾기도 만나기도 힘들다. 여자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소리없이 늙어가고 있는걸까. 용감한 여자, 여자 '인간'이 그립다. 그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여자 '선생'도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