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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니한슈밍님 '
엄마...표지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막 화장하고 싶고 꾸미고 싶고 그렇슴돠....이 은혜로운 투샷 표지 어쩔건데요ㅠㅠㅠ 죽이려고 작정하셨죠ㅠㅠㅠㅠ 아니 표지도 뽀샤시해서 그런가 그냥 정말 말 그대로 후광이 비춰오는 것 같네요ㅋㅋㅋㅋㅋ 너무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빅스 - 대답은 너니까
지금 우리들에겐 예비 고3 이라는 사실보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 짧은 기말고사 하나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인생이 끝난 사람마냥 책상 위로 푹 퍼져 겨울잠을 자는 친구들도 있었고, 뭐가 그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건지 전 쉬는 시간에 나왔던 주제를 다시 되새김질 하며 꺼내고 또 꺼내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난, 굳이 예비 고3이란 걸 티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저들과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우연이라면 질긴 우연으로 짝꿍이 된 변백현과 내 사이에는 짧다면 짧고, 굵다면 굵은 형식적인 대화들만 오갈 뿐이었다. 그저 다소 어색하고 낯선 말들. 몇 번의 시간이 흐르니 이젠 그마저도 뜸해지고 멀어지기까지 했다. 종이 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키는 놈을 보던 내 가슴이 무언의 질문을 건넸다. 난 너랑 이렇게 돼버린 게 속상하고 답답한데, 그런 내가 이기적이고 못된 거냐고.
“야, ○○○.”
“……응? 김종인?”
“너 잠깐 시간 있냐.”
“응, 있는…….”
“할 말 있어, 잠깐 나와 봐.”
다소 뻣뻣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김종인이었다. 분명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김종인은 그랬다. 놈을 따라 학교 밖, 운동장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한 눈에 보기에도 싸한 바람이 내 머리칼을 스쳤다. 느릿하게 발을 떼고 서 있던 김종인이 그제야 하고 있던 휴대폰을 넣고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본 김종인이라는 놈은 그랬다. 친구를 위하는 일이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모든지 다 해주는, 어떻게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다 도맡아하는, 철없어 보이지만 네 사람 중 제일 심도 깊고 진지하며 고민이 많은. 교실에서 점차 멀어져 무작정 김종인의 뒤통수만 보고 따라온 곳은, 넓은 운동장 사이를 가로지르며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이 보이는 한적한 스탠드 한구석이었다. 마침내 천천히 몸을 돌려 무언가 건넬 말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그대로 꽂혀 들어왔다. 김종인이 나를 부르는 이유는 굳이 따지고 들어가지 않아도 쉬운 문제였다. 놈은 도경수와 변백현,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 가지 비밀들을 유일하게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 너……도경수가 너 좋아해?”
“…….”
“아니, 좋아하지?”
“…….”
“아, 그러니까……좋아하는 거 맞아?”
무언가 확실시하고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은 정확하게 어긋났다. 최대한 낮게 목소리를 깔고 누가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모양새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놈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내게 풀려하는 셈이었다. 도경수가 나를 좋아하냐. 당돌한 질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다물었다. 선명하게 핏줄이 서는 느낌에 그저 입만 굳게 다물 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경수가 날 좋아한다고 했고, 등신 같은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음으로. 그런 내 반응에 기가 찬 다는 듯, 김종인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운동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혹시 변백현이 너 좋아하는 것도 아냐.”
연속해서 두 방의 주먹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내가 대답할 말은 긍정이라도 긍정의 의미가 아닌 '응' 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그에 아랫입술을 꽉 깨문 놈의 애석한 표정이 그대로 눈에 밟혀 들어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대답했는데? 거절했어?”
“…….”
“아니, 이것부터 물어볼게. 넌 둘 중에 좋아하는 애가 있어?”
“김종인.”
“○○○, 내가 부탁 하나만 할게.”
“……응.”
“만약 있어도, 없는 척 해주면 안 될까.”
있어도 없는 척, 좋아도 아닌 척. 김종인이 내게 부탁한 말이었다.
“나랑 김종대랑 변백현이랑 도경수랑 친해진 게 벌써 6년이야. 김종대만 모른 채로 이렇게 멀어지게 된 게 벌써 일 년이라고.”
“…….”
“난 걔들이 아직도 왜 화해를 못하고 그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 내가 조금만 더 설득하고 희생하면 화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 네 문제로 또 사이 나빠지면…….”
“…….”
“그건……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운동장 정중앙에서 우악스러운 함성소리가 터졌다. 아마 골을 넣은 모양이었다. 이보다도 엇갈린 순간은 없을 듯싶었다. 한 쪽에선 장난스럽게 서로의 머리를 때려가며 골을 넣은 기쁨을 표출했고, 한 쪽에선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머리를 숙이고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비참한 순간이었다. 김종인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진심을 내뱉어버린 듯 연신 눈을 감은 채 낮은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미안해' 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거짓말처럼 내 앞에서 도망쳐버리는 김종인의 인영이었다. 벌써 두 명이나 내 곁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김종인도, 그리고 변백현도. 무거운 마음과는 상반되는 힘 빠진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고 천천히 스탠드에 엉덩이를 붙였다. 아마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무언가 뿌연 안개가 내 시야를 차고 올라왔다. 안개는 금세 비가 됐고, 비는 금세 폭우가 되었다. 누군가 내 속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콕콕 찔러내는 기분에 저절로 인상이 쓰였다. 이 비참하고 애연한 상황에서도 더 고통스러운 건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왜 아픈 건지 이유모를 답답함이라는 거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경수에게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게 고백한 경수의 말에 대답을 해야겠다는 이유였다.
아직 날씨가 안 풀린 탓인지 길바닥에는 녹지 않은 단단한 작은 얼음 조각들이 저들끼리 살아야겠다며 뭉쳐있는 듯 했다. 천천히 신발을 들어 얼음 덩어리 주변만을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저 모양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큰 덩어리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단단해 보였고, 강해보였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것처럼. 한참을 의미 없는 생각을 하다 이내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급하게 뛰어온 건지 사정없이 갈라진 앞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머쓱하게 웃는 경수를 따라 나도 무겁게 당기는 입꼬리를 올렸다.
“병원 들어갈래?”
“아니, 그게 아니라.”
“응?”
“……대답, 대답 하려고.”
“…….”
“대답 하려고 왔어.”
갑갑한 병원생활에 지친 환자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정화하려고 만든 듯 보이는 병원 뒤 작은 정원이었다. 한적한 공기 속에 나란히 벤치에 앉아 그저 쓴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사실, 말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았다. 내가 둘 사이를 방해하는 존재라면 기꺼이 도망치는 게 맞는 걸까. 어떻게 하면 두 놈들이 화해할 수 있을까. 자잘한 변명들은 참 구질구레하게 많았다. 씁쓸한 맛의 숨을 내쉬고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일종의 결심 같은 거였다.
“도경수……정말 솔직하게 말할게. 나 그날 병원에서 너랑 변백현이랑 하는 이야기 들었어.”
“…….”
“누가 들으면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화해를 하고 싶다면서 그렇게 말해버린 너도, 결국엔 병문안에 온 변백현도, 두 사람을 제일 잘 알면서 지금까지 화해를 시키지 못한 김종인도, 그리고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다 답답해 경수야.”
“…….”
“그래서 나는…….”
“…….”
“지금 그 고백을 받아도 여전히 답답할 거 같아서 내 감정에 충실할 수가 없어. 무턱대고 받을 수가 없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게 간절하듯 부탁을 하던 김종인의 말 때문에 이런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저 난 정말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싶었다. 김종인의 말대로 그 길에 내가 버티고 있다면 그건 송곳보다 더한 칼날이 내 가슴을 찌르는 것 아니겠냐.
“너 변백현이랑 나 화해시키려고 이러는 거 맞지, 내가 그때 병원에서 네 이야기를 하면서 걔한테 나쁘게 말했던 건……백현이 위해서 한 말이야.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야. 그냥 내가 보기에 그때 그 여자애처럼 같은 상황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랬어. 너를 위해서 한 말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한 말도 아니라 걔를 위해서 그런 거야. 사실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김종인도 너도 늦은 게 아니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면 노력해볼게.”
“…….”
“지금 그래서 답답하다는 거잖아, 너.”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경수를 보며 넌지시 질문을 건네고 싶었다. '나 정말 그것 때문에 답답한 게 맞을까? 너희 둘이 화해하면 내 속마음이 정리가 될까?' 하루 종일 꽉 막힌 돌덩이가 조금이나마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여유로운 바람이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 좋은 느낌에 아마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 꽉 막히고 답답한 상황은 곧 끝날 거라고. 조금만 지나면 혼란스러운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다 무던히 지나갈 거라고. 큰 메아리가 울리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다소 과장된 행동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수였다. 그에 나도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가방을 들고 일어나는데……갑작스럽게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리는 행동에 난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만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
“고마워.”
고된 시험기간을 겪은 탓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저도 모르게 잠이 드는 날이 잦아지곤 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이 고3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갖는 자유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친한 무리끼리 놀러갈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자유는 개뿔 공부에만 몰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난 그들과 조금 다른 무리였다. 나 또한 놀러갈 계획을 세우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지만 그와는 반강제적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 위로 널브러지는 유형이었다. 사실상 가장 한심하고도, 치밀하지도 못한 유형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거울부터 들이밀고 봤다. 보기 좋게 건조해진 얼굴에 수분크림이라도 들이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변백현.”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잠만 잤나. 지금 내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고서야 도경수의 목소리로 저 이름이 들릴 리가 없는데.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소리가 나는 원인 지점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설마 했던 기막힌 그림이 눈앞에 일어나고야 만 것이었다. 연신 휴대폰 게임을 하며 정신없이 기계를 흔들어대는 변백현 앞으로 다가가 메마른 음성으로 놈의 이름을 부르는 경수였다. 뒤에서 지켜보는 나조차 기도가 턱하고 막힐 듯 했다. 아마 김종인과 상의 하에 이뤄진 일이 아닌지, 그 옆에 서서 바보같이 눈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
“내 말 안 들리냐, 변백현?”
“…….”
“야.”
“들려.”
“…….”
“들린다고.
대답을 했으면 대화가 이어져야 하는데, 뒤이어 들려야 할 말은 뚝뚝 끊긴 채로 이어질 기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경수가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던 건지 가만히 바라만 보던 김종인이 황급히 도경수의 팔목을 잡고 끌고나가려는데…….
“병문안 와줘서 고맙다고.”
“뭐?”
“아, 시발…….”
“도경수.”
“간다.”
투박한 비속어와 함께 제 머리를 마구잡이 헝클이며 교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수였다. 이 상황의 원인을 아는 나를 뺀 김종인과 변백현의 넋 나간 표정은 단연 대상감이었다.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어 어울리지도 않게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데, 여전히 멍한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변백현과 꼼짝없이 눈이 마주치고 마는 나였다. 분명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을 냉담하게 내쳐내던 도경수가 뜬금없이 고맙다는 말을 툭 던지듯이 내뱉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지금 이 상황.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된 놈은 그저 마른 침만 삼키며 빠르게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그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왠지 모르게 생각보다 둘의 화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교무실 가면 선생님 책상에 오늘 나눠 줄 프린트 엄청 많이 쌓여있거든? 그거 좀 가져다줄래?”
“아, 네!”
단지 자리가 앞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프린트를 가지고 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돼버린 나였다. 재빨리 교무실로 들어가 선생님의 자리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의 프린트들의이 있는 것 아니겠냐. 애써 한숨을 내쉬며 방대한 양의 프린트를 들어 올리곤 위태위태한 걸음을 내딛으며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 때문에 몇 번 부딪힐 뻔한 아찔한 고비를 넘기며 교실로 향하는데.
“도와줄 친구 없냐?”
왠일인지 나를 피하기만 하던 변백현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는 것 아니겠냐.
“…….”
“됐다, 줘봐.”
“아, 괜찮…….”
“도와주는 거야, 그냥.”
우연은 참 더럽게도 신기했다. 그런 내 표정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거의 반 이상의 프린트를 가져가 버리는 놈이었다. 내가 힘들 때 마다 달려온 건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변백현과 내 사이에 알 수 없는 애매한 바람은 이전과 달라진 것 투성이었다. 제 마음대로 마구잡이로 가져가버려 순서가 뒤엉켜진 프린트가 신경 쓰이는 건지 발걸음을 멈춰 작은 창틀에 프린트를 놓고 정리하는 뒷모습에 무어라 입도 뻥끗 못하고 어색한 고개만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순서 왜이래.”
“…….”
“야, 이거 뭐가 처음이냐?”
“……저거.”
“저거가 뭔데, 내가 독심술사냐?”
“……아니, 네가 잡고 있는 거 옆에.”
“아니, 말을 하라고 말을.”
“아, 저기 있……!”
꽤나 불만이 섞인 말을 툭툭 내뱉으며, 순식간에 예전으로 돌아온 놈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욱하는 성질이 일어났다. 두 손으로 프린트를 들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거다 저거다 지적할 수 없었던 내가 연신 입으로 대답을 했지만, 더럽게도 쿵짝 한번 안 맞는 우리였다.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해진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프린트를 내려놓기 위해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는데……양손 가득 든 짐 탓에 시야확보가 어려워 그대로 스텝이 꼬여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에도 '아! 프린트!'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공포감으로 번져오눈 두 눈을 눈을 감는데…….
“아, 손목 잡으려다가…….”
“…….”
“급하잖아…….”
아마 손목을 잡으려다가 타이밍을 놓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듯, 내 목을 감싸고 백허그를 해버린 변백현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부터 숙였다. 그 순간에도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음성으로 속삭여주는 변백현이 그렇게나 낯설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가빠지는 호흡에 혼미해지는 감정을 배제할 수도 없었다. 나 못지않게 적잖이 당황한 듯,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다시 프린트가 있는 곳으로 등을 돌리는 거였다. 얼굴 전체가 벌겋게 변한 나도 다시 떨어진 프린트를 정리하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몸을 아래로 숙이는데.
“…….”
“…….”
도경수였다. 놈이란 걸 확인하자마자 놀란 가슴은 짜릿하게 쿵쿵 울려댔다. 반사적으로 벌어진 입술 사이에 허한 죄책감이 새어 들어갔다. 수업 종까지 친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우연으로 복도에 나온 건가 이 말이었다. 벙어리가 된 난 느릿하게 눈만 깜빡이며 조각난 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의 말도 오가지 않는 침묵 속 경수는 나를 바라봤고, 난 경수를 바라봤으며 변백현은 뒤로 돌아있었다. 이내 입을 열기도 전에 경수는 내게서 등을 돌렸고 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으며 변백현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교실 문을 닫고 그 뒷모습을 감췄을 때 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변백현에게로 시선을 옮겼고 놈 또한 나를 쳐다봤다. 언제부터 내 이야기가 이렇게 꼬여버린 건지, 그리고 자꾸만 어긋나 버리는 건지. 경수가 오해를 하고도 충분할 장면이었다. 난 다소 과장된 행동을 하며 이리저리 흩어진 프린트를 줍기 시작했다. 분명 그건 이상하리만큼 벅차 올라오는 감정 때문이었다. 가슴께가 고통스럽게 울렁거렸다. 돌덩이가 짓누르는 기분이 딱 그랬다. 또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까 전, 경수를 봤을 때도 그랬지만 놈이 내 목을 감쌌을 때가 문제였다. 마치 귀신의 집에서 느꼈던 그 날이 생각날 정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