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세대 전쟁』
얼마 전 텔레비전 노동개혁 공영광고에서 한 젊은이가 나와 취업이 안 되고 임시직을 전전하는 상황을 한탄하면서 ‘문제를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일자리를 중장년충이 차지하고 있어 청년층의 취업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하여 장년층의 퇴출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청년층의 취업을 늘릴 수 있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의 위험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이런 광고를 기획했다는 사실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세계는 세대 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점차 둔화되는 경제성장과 고령화는 부의 배분을 위협하고 있으며 빈곤해져가는 나라 살림은 줄어든 수입을 갖고 경쟁하게 만드는 대립적 구도를 만들고 있다. KBS 경제기자 박종훈은 『세대 전쟁』에서 전 세계에 걸친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현재의 경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강조점은 소홀하게 시행되고 있는 청년 및 가족 복지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청년과 노인 복지 사이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건실하게 경제 성장을 하는 국가와 경제침체의 위기에 빠진 국가를 결정지은 요소가 바로 복지 정책의 적절함과 형평성이었다.
현재 가장 큰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남유럽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과도할 정도로 노인 관련 복지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반면에 청년 복지 및 가족 복지 비중은 적다는 점이다. 청년 대부분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노인연금 지원이나 노인 의료지원에 재정의 대부분이 지출되고 있어 국가의 회생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더구나 증세를 통한 복지비용 조달에 현세대가 반대하자 채권 발행을 통하여 비용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러한 빚은 결국 후대가 지불해야 할 엄청난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국가의 미래가 어두워지자 청년들은 취업을 포기하거나 외국에서 취업함으로써 국가가 필요한 인재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국가경쟁력은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상황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정책이나 경제 정책을 살펴보면 대부분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금개혁을 통하여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와 세액공제를 통한 증세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증여세와 상속세 그리고 주식투자와 같은 불로소득에 대한 증세를 포기함으로써 자산 보유자에게 유리한 세금구조를 만들었다. 더구나 국가의 부를 재분배하지 못한 채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또한 청년층에게 더 많은 부담이 가게 구성되어 청년층의 경제적 부담은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더라도 소득이 충분하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잘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경제를 만드는데 공헌한 노인세대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층의 고용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취업의 질은 낮아지고 있으며 출산과 양육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추가되는 경제적 부담은 청년들의 생애설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 장년층의 자산은 대부분 주택에 매어있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됨으로써 청년층의 주택 구입은 어려워지고 있는데 2015년 주택매매 활성화를 위해 시행된 정책도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손쉬운 대출을 허용함으로써 가계대출의 위험성을 증가시켰다.
저자는 한국의 세대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모델로 독일과 북유럽 국가의 사례를 들고 있다. 독일 또한 2008년 금융위기 때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하였지만 기성세대의 자발적 일자리 나누기와 국가의 지원을 통하여 오히려 취업률과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독일은 청년층이 국가의 자산임을 인식하고 청년층의 도전을 돕기 위해 다양한 청년 및 가족복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교 등록금이 무상이며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거주할 주택과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 또한 출산 및 자녀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양육과 교육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들 또한 노인복지에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지만 청년복지 또한 소홀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국의 노인과 청년의 공존을 위해서는 노인들에 대한 복지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복지에도 투자되어야 한다. 한국의 전반적인 복지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노인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라는 주장은 사실 설득력이 없다. 노인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민연금과 노인연금도 최근 실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본격적인 노인 복지도 실시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계획대로 복지정책이 실시된다면 노인복지에 과중한 비용이 집중되고 청년복지는 빈약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복지기금이 부족하다면 과감한 증세를 통하여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금 정책이 자산과 불로소득을 보호해서는 충분한 복지비용을 확보할 수 없다. 고소득층 뿐 아니라 높은 자산과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바탕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청년층의 도전적인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세대전쟁>을 읽으면서 ‘세대전쟁’ 개념이 대한민국 사회에는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남유럽이나 일본의 노인들처럼 한국의 노인들은 충분한 연금이나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하고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 국가의 노인들과는 다르게 한국의 노인들은 여전히 취업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자산규모는 매우 열악하다. 한국의 전쟁은 세대의 갈등이 아니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부의 전쟁에 가깝다. 노인들이 부유한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 중에 상대적으로 노인층이 많기 때문에 세대갈등으로 오인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복지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가 필수적이다. 고소득층과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을 증세와 징세를 통하여 세원으로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인층과 청년층에 대한 복지를 실행하여야 한다. 현재 정부는 ‘증세없는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복지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가령 20만원씩 지급되는 ‘노인연금’을 비롯한 복지 비용을 증세를 통해 확보하지 못하고 간접세와 채권발행을 통해서 확보하려 한다면 이러한 비용은 결국 청년세대의 빚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들은 자신들의 부담에 대한 불만을 노인세대에게 표출하게 될 수도 있다. 청년들에 대한 충분한 복지나 지원이 이루어지는 않는 상태에서 노인들에 대한 복지만을 강조한다면 열악한 생존조건에 내몰리는 청년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복지의 구조가 표면상으로 노인복지가 청년복지보다 상대적으로 과도한 것이지만 복지에서 노인세대의 비중이 높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복지비용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복지에 대한 부유층의 정당한 부담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청년층도 자신들의 정당한 복지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높은 교육비와 양육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요구해야 하며 부의 편중과 부의 무책임에 대하여 저항해야할 것이다. 독일이나 북유럽의 청년복지도 국가가 알아서 해준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시위와 요구에 대하여 기성세대가 응답한 것이다. 요구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복지도 우리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다.
이제 처음 이야기 한 공영광고의 문제점을 이야기해보자. 장년층도 현재의 일자리에서 퇴출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의 복지는 모든 분야에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년층을 퇴출시켜 청년층의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의 속내는 결국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편중된 부를 보호하기 위한 방향에 지나지 않는다. 손쉬운 해고를 통해서 정규직을 쫓아내고 청년층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여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확대하려는 기업의 꼼수를 허용하는 ‘노동개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먼저 필요한 것은 세대 간의 형평성과 균형에 앞서 부의 형평성과 균형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시도는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요구하고 행동하고 연대하여야 한다. 부의 형평성을 위하여 노인과 청년 세대는 연대할 수 있으며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첫댓글 "부유한 사람들 중에 상대적으로 노인층이 많기 때문에 세대갈등으로 오인될 수... 먼저 필요한 것은 세대 간의 형평성과 균형에 앞서 부의 형평성과 균형을 시도..." 빈부 격차 줄이기!!!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점점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정치적 결단에 대한 압력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자꾸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정치적 힘, 결론은 선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