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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의 내륙 산청과 함양으로 가다
-일시 : 2013년 7월 20일(토)-7월 21일(일), 1박 2일
♣.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 사고가 일어난 것은 경남의 함양읍에서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출발하는데 뒤에서 ‘꽝‘하고 굉음이 울리면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차 3대가 추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간밤의 숙취로 식당에서 마련한 아침을 느지막하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 있는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정여립 고가(古家) 등을 관광하고 함양읍을 거쳐 함양군 마천면 쪽 지리산 계곡으로 가려고 하는 중에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수습을 마치고 계획대로 마천면으로 여행을 떠나려는데, 교통사고를 당한 일행들이 교통사고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이상의 여행 일정은 포기하고 산청휴게소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후 함께 산청휴게소로 향했다.
♣. 오랜만의 만남에 우정의 악수로….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 날인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날 우리들은 09:30에 진주로 가는 상행선 함안휴게소에서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으로 반가웠다. ‘이런 것이 정(情)이로구나!’ 하고 느껴질 정도로 반가웠다. 아메리카노 커피로 정담(情談)을 나누며 계획한 대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25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산청 동의보감촌(한의학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대개의 모임이 학연 또는 지연 아니면 직장 동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모임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 동료들 중 마음에 맞는 몇 사람이 1980년대 중반에 모임을 결성하여 끈끈한 정(情)으로 뭉쳐 활기차게 활동을 했는데, 그 후 직장을 그만 두고 떠나는 회원들이 생기게 되고 그 열기도 식어 한 때는 서로의 소식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에 와서 겨울과 여름에 이렇게 1년에 두 번씩 1박 2일로 모여 옛정을 나눈다. 이제는 회원의 대부분이 명예퇴직 또는 정년퇴직을 하여 7명의 회원 중, 현직에 있는 회원은 2명뿐이다.
참으로 세월이 무상(無常)하기도 하다. 엊그제 직장(職場) 신임으로 햇병아리로 있었던 것 같은데 세월의 흐름이 빠르기도 하다. 유수(流水)가 아무리 빠르다 할지라도 그 빠르기가 세월(歲月)의 흐름에는 당하지 못 하는 것 같다.
♣. 산청의 명소를 찾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산청나들목(IC)에서 우회전해 금서면 화계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니 바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25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산청 동의보감촌(한의학박물관)에 닿을 수가 있었다. 그 때의 시각이 10시 30분이었다.
산청군은 ‘동의보감촌’ 만들기에 아직도 분주했다. 동의보감촌은 올해(2013년) 9월에 있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주무대이다. 동의보감촌은 배후산인 왕산의 천왕봉에서 시작된 능선이 동북단 방향으로 내려오다 끝나는, 한국 등뼈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비한 기운이 휘감아 도는 명당으로 느껴졌다. 그 명당에 한방과 약초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동의보감촌을 꾸미고 있었다. 동의보감촌에는 한방테마공원과 한의학박물관, 약초둘레길, 한의원, 탕제원 등을 갖추고 산약초타운, 한방휴양림 등도 조성하고 있었다. 완공되는 올 9월경에는 산청군이 약초의 본고장이라고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했다.
521년 왕위에 오른 구형왕은 막강한 군사 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신라와 전쟁을 피하고 화친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신라의 생각은 달랐다. 신라의 침입으로 인해 여러 차례 싸움을 겪은 가야의 구형왕(김유신의 할아버지)은 전쟁으로 인해 죽고 피해를 입는 백성을 위해 즉위 11년만인 서기 532년에 국운이 다한 나라를 신라의 법흥왕에게 넘겨줬다.
가야 10대왕 구형왕의 돌무덤. 사적 제214호
당시 구형왕은 죽어가며 “나라를 잃은 죄인이기에 돌로 무덤을 만들어 달라”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구형왕릉은 돌을 쌓아 만든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전구형 왕릉의 특징은 이집트의 스핑크스처럼 돌로 쌓은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 왕릉 중에서 유일한 돌무덤이다. 일반 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 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라 하기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조선 정조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전해 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구형왕릉에 내려오는 전설은 이 왕릉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조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왕릉의 돌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뇌성벽력이 몰아쳐 왜구가 도망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또 깊은 산속임에도 칡넝쿨이 능 근처까지는 뻗어 오다가도 능역 바로 앞에서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뻗어나가며, 새들이 능위에 앉지 않고 낙엽 또한 능 밖으로 날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연 전설처럼 무덤에 칡넝쿨을 찾을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전(傳)구형왕릉을 찾아가는 길목의 왼쪽에 허준의 스승 류의태의 약수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약수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무더위로 찾기를 포기했다. 다만 ‘류의태는 물을 서른 세 종류로 나누고, 그가 나눈 서른 세 가지 물 중에 가장 좋은 물은 정화수이며, 그 다음이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듯한 ‘한천수’인데 장복하면 반위(위암)을 다스린다는 이야기와 왕산의 루의태약수터의 물이 한천수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약수터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산청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생초 민물매운탕이다. 그 옛날 오래 전부터 산청을 지날 때면 반드시 들린 곳이 생초 민물고기 식당이다. 전(傳)구형왕릉을 관람한 후 바로 생초민물매운탕식당으로 달려갔다.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은어튀김으로 시원한 맥주 한잔을 걸치니 생기가 돋는다. 12시 30분경 민물 매운탕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선사 시대에 만들어진 생초고분군과 어외산성에 연접한 생초국제조각공원은 최근에 발굴한 가야 시대 고분군 2기와 국내외 현대조각품 20여 점이 어울려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특색 있는 문화예술공원으로 꾸며 두었다. 이곳에 설치된 조각품들은 1999년, 2003년, 2005년 산청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에 참여한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이라 했다.
장마 뒤 끝이라 그런지 너무 더웠다. 그리고 조각공원 관리사 겸 전시실에 들렸더니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등 어디 잠시 쉴만한 공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눈요기만 하고 내려오니 공원 입구에 커다란 한옥이 멋있게 서 있으면서 우리를 유혹하지 않은가. 알고 보니 이는 산청 출신 인간문화재 000을 위해 지어진 목아박물관으로 그의 작품을 전시해두기도 하고 목조각 연수생들이 목조각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나도 퇴임 후에 이곳에서 목조각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으니 대환영이란다. 그런데 수강비가 꽤 비싸니 각오하란다. ㅎㅎ
산청에는 이밖에도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대원사 및 내원사계곡, 거림계곡, 중산리계곡, 고운동계곡, 선유동계곡 등 가볼 만한 곳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황매산, 정취암, 목면시배유지, 성철스님 생가 등이 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곧 바로 함양으로 향했다.
14시 30분경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상림숲 및 연꽃 단지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타고온 차들로 그 큰 주차장이 만차(滿車)로 주차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겨우 주차한 후에 상림숲을 찾으니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 그들은 정자에서 시원함을 만끽(滿喫)하며 편히 쉬고 있었다.
한편, 상림숲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초임지 진해에서 같이 근무하다가 지금은 함양의 00중학교에 근무하는 친구 하00 선생과의 약속이다. 그 동안 서로 살기가 바빠서 그랬는지 20여 년만의 만남이다. 그 친구가 약속한 대로 정확하게 찾아왔고, 우리는 오랫동안 포옹 후 함양 병곡에 있는 묏골 농원으로 함께 찾아들었다.
♣ 묏골관광농원에서 여장을 풀다
이번 여행의 여장을 어디서 풀어야 할지 처음 준비할 때 무척 고심했다. 사실 늘 여행이란 여수(旅愁)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숙소만은 비싸지 않으면서도 경치 좋은 곳, 편안한 곳을 선택하고 싶고 늘 그런 숙소를 선택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깊은 산골짜기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이번 숙소가 마련되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정00님이 소개했다. 그런데 정00님은 우리 회의 회원이지만 숙소만 정해 주고 결국 참석 못해 안타까웠다.
농원 가까이 오니 농원 바로 아래의 계곡을 막고 있어서 무슨 공사를 하나하고 궁금해 했더니,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할 물을 가두어 둘 땜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 공사 현장에서 조금 차를 몰고 올라가니 여러 채의 펜션이 있고 큰 식당도 있었다. 드디어 함양군 병곡면 묏골관광농원에 도착했다. 그 때의 시각이 17:00경이었다. 그런데 이 농원은 함양서 만난 친구 하00 선생의 초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집이라 했다. 예약할 때는 몰랐는데 친구 하00 선생을 만나 그의 친구집이라 하니 더욱 정이 갔다. 아를 두고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는가 보다.
묏골관광농원은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에 찾아온 어느 귀농인이 조성한 곳이었다. 그는 이곳 골짜기에 수 만평의 산과 계곡을 사 들여 식당도 짓고 펜션도 지어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관광농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는 몸 바쳐 일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났다. 함께 온 함양 친구 하00 선생은 얼굴에 나타난 고생의 흔적을 보면 옛날에는 그가 귀족이었고 그래서 서울 공부도 했지만 지금은 하00 선생 자기가 귀족이라 했다. 그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찾아오도록 시설을 만들고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도록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산보했다. 벌써 가을 김장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갈아 둔 곳도 있었다. 골짜기가 깊어 물이 좋으며 공기도 좋아 시골의 상큼함을 풍부하게 체험했다. 또한 높은 산으로 인해 수시로 소나기가 오며, 그래서 웬만한 가뭄이 와도 농작물 가꾸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내가 이른 아침에 나왔음에도 농부들은 더 일찍 나와 콩잎을 따고 있기도 하고 제초 작업을 하고 있어, 그들의 부지런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 여행을 마치며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즐거워야 할 여행이 근심, 걱정을 싣고 왔으니 그 안타까움이야 말해서 무엇하리요. 다행히 병원 치료로 다친 부위도 완치되고 차량도 수리했으니 큰일에 비유하며 위로할 수밖에.
함양에는 명승지가 많다. 앞서 본 함양읍의 상림숲, 개평의 정여림의 고가(古家) 등, 이밖에도 우리가 가기로 계획했던 용추폭포, 농월정을 비롯한 많은 정자, 박지원의 유적지가 있다.
이번 여행길에 모두 들리려고 한 우리들에게 다시 시간 내어 오라는 메시지가 ‘교통사고’의 발생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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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을 포함한 원본은 용량이 초과랍니다. 오는 9월 모임에 의논해 봅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