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아.
이번 산행에선 정말 오랜만에 눈밭을 걸었어.
숨이 콱, 차오르고 칼바람 속에서 줄줄 땀 흘리는 기분.
그 기쁨 같은 즐거움을 간만에 느꼈지.
산행공지 글을 그동안 예사로 보았었는데
산행 날이 다가오면서 버스 타는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괜스레 걱정이 되어 한 번 더 산행공지를 확인해봤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야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이르면
낮 시간대에 산행을 즐겨야 할 리듬이 깨지는 수가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난 달 첫 번째 참석했었던 산행 때의 시간과
이번에 내가 타야할 시간은 별 차이가 없었지.
버스가 저번에는 경산IC에서 출발했고(주왕산으로 가느라...)
이번에는 이쪽이 마지막으로 타는 시간(평소처럼)이라는 것에서
오는 갭이라 한 시간이 당겨졌어도 내게는 시간대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라.
시간이 당겨져서 타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나의 작은 우려는 다른 변수(?)가 생겨 마지막으로 타는 경산IC에서는
외려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국민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훈아 알지?
그의 모창가수인 나운도씨가 초청되어 온다고 하네.
그 소식에 따라붙는 이들이 많아 어쩌면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출발지까지 가서 타야한다는 어느 회원님 얘기에 잠시 고민했지.
에이, 여자가수도 아니고 나까지 그럴 필요야 뭐.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내가 탈 곳에서 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설사 그곳까지 가서 자리에 앉아 오더라도 다른 여성회원이 타게 되면
남자가 앉아가고 여자를 입석으로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아?
괜히 잠만 설치고 실속(?)은 없을 수 있다 싶었지.
경산IC 가까운 곳.
상행선쪽 일반 버스정류장에서 탄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일찌감치 건너편 골목에 차를 주차하고 배낭 챙겨 슬슬 걸었지.
(참, 이번에 걔 고장 나서 손 좀 봤어. 그 얘기는 나중에...)
주차하면서 남자 한 사람이 배낭 메고 내려오는 것을 봤는데
알고 보니 그 양반도 OO산악회원이라네.
또 한사람이 더 있었어. 그는 다른 산악회원인데,
서로 말을 섞다가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그럼 자기네 버스가 먼저 오니까 같이 타자는 얘기를 하더군.
그렇잖아도 강원도까지 가는데 서서 가는 게 은근히 걱정이 되긴 하던 참이라
친구하기로 했다는 ‘OO’이라는 회원에게 전화를 했지.
‘자리 맡아가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요.’
별다른 소리도 없이 그렇게 쉽게 통화하고 나서 희죽 웃으니
다른 이도 ‘그것참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반겨줬어.
다음에 인연이 되면 만나자 하고서 그는 먼저 버스를 탔고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기다렸지.
다행히도 자리는 약간 여유가 있었고
(아무래도 한 시간을 당긴 게 영향을 미쳤는가봐)
반가운 이들과 만나 인사하고 미리 잡아둔 자리에 앉았지.
저번에 못 본 카페지기 ‘OOO’님도 만났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의외로 동안이야.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친구로 잘 지내는 ‘OOO’에게 카톡을 날렸어.
충청도에서 근무하니까 함백산이 가깝다고 자기 차로
산행 출발지에서 합류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됐지.
운전하느라 피곤할건데 싶어.
스패츠하고 아이젠을 대신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어.
며칠 전에 이미 물건은 받아 두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 때문이라도
피곤을 무릅쓰고 올 수 밖에 없으니 그것도 사실 좀 미안하고,
위쪽 지방은 아무래도 눈과 얼음으로 운전하기도 힘들 테니.
몇 차례 카톡하다가 안동휴게소에서 아침 먹으며
또 다른 이에게 부탁한 보온도시락에 밥과 국을 담고
(다음에는 내가 서툰 요리라도 해서 담아와야지...^^)
뭐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오락시간.
나운도씨의 멋진 노래 두 곡에다
여러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신나게 불러주더군
그러던 중에 귀염둥이 OO님이 신청곡을 받기에
무심결에 한 곡했어. 또 신청받기에 다시 또 했는데....
자넨 알지? 음치에다 몸치인데다
분위기 안 맞는 노래 잘 부르는 나.
노는 분위기에는 전혀 안 어울리는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
아참, 앞에 부른 곡은 나훈아의 ‘사랑’이었어.
‘사랑타령의 무소가’답게 곡 선정은 맞았는데 분위기에는 영.....쩝.
11시 반이나 12시가 되어야 도착할거라 하더니
의외로 10시 50분에 출발지에 도착했어.
‘OOO’ 합류~~!!
산행코스는
적조암-> 적조암3거리-> 제3쉼터(전망대)->
함백산 정상-> 만항재....이렇게 해서 4시간 정도 된다고 하네.
과연 강원도답게 도로는 얼어있고, 산에는 눈에 덮여있어.
빽조(코스를 뒤에서부터)와 산행조를 나누는데
눈을 보니 기분이 한층 업되는 통에 허둥대기만 했어.
그러니 당연히 버스 안에서 챙겨야 할 스패츠, 워머, 장갑도
제대로 못 챙기고 산행조 끝에 붙었어.
몇 걸음 못가서 아이젠을 신는데
에구, 전에 쓰던 형태가 아니라 이 넘은 고무가 붙었네?
앞뒤를 살피다가 여튼 제대로 신었어.
어라?? 이 넘이 전에 것들보다 훨씬 편리하다?
운 좋게 ‘OOO’님,
아침에 처음 만났던 ‘정OO'씨하고 같이 가게 되었어.
오르고 내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교차에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더군.
아~~~ 드디어 눈밭이다.
좁지만 약간 가파른 눈길을 올라가는데
이런, 얼마 못가서 벌써 숨이 차기 시작하네.
이 시간이 지나면 숨도 풀리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이 적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짝 충격을 먹었지.
아마도 백여 미터를 겨우 올랐는데 벌써 그 현상이 오니....
얇은 장갑이라 손가락도 시렵기 시작하고
숨결은 거칠게 턱에 다다랐지.
심호흡 몇 번하고
숨을 배꼽까지 내리고는 그 숨을 잠시 멈췄어.
걸음은 조금 더 빨리해서 다른 이들 몇을 추월하고.
뱉고 마시고 멈추기를 몇 호흡 그리하니까 손가락도 따뜻해지면서
슬며시 몸이 풀리기 시작하네.
마땅한 등산모가 없어서.
예전에 자네에게 주기로 했던 모자를 쓰고 갔어.
그 모자 속으로 차지 않고 따스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지.
휴~~ 다행히 몸이 풀렸으니 이제 시작이라네.
한결 편하게 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길이 대략 구부능선쯤 되는가봐.
구비를 돌때마다 잠잠하거나 혹은 살짝 닥치는 작은 눈보라.
간만의 찬바람과 눈 산행에 입가에는 내내 웃음만 흘렸나봐
스치는 산객들이 아는 척하는가 싶어 쳐다보는 것이.
워머를 안했더니 볼따구는 얼어버렸어.
한참을 걷다보니 한사람은 어디간지 없고
OOO님과 나하고만 걷고 있더군. 자주 돌아봤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역시나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OOO님.
서로 찍어주기를 몇 번 하다가 그새 정상 바로 아래의 헬기장에 도착했는데
아이고, 칼바람이 볼을 꽁꽁 얼려 버렸네.
배낭을 내려 워머를 꺼내고 두꺼운 스키장갑도 덧끼었지.
워머를 목에 끼느라 잠시 벗어둔 모자에 그새 가는 눈발이 소복해.
눈을 털어 머리에 쓰는 순간.
아뿔싸.
바람에 날려 휭하니 도망가더구먼.
(그뒤로 정상에서도 한번 날렸어..........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추워서 그런지 아무도 주워주는 이가 없어.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 나뭇가지에 걸려 십여m밖에 도망가지 못한 것을
가까이 가선 스틱으로 겨우 당겨 다시 털고 끈을 조금 더 조였어.
그러는 사이에 OOO님은 정상으로 갔는지 안 보이더라.
하산해서 들으니 배낭 내리는 것도 못 보고 뒤따라오는가 싶었고
인증샷 찍으려고 정상에서 기다리느라 무려 30분이나 추위에 떨었다는 말씀.
정상에는 오르내리는 이들
사진 찍는 이들이 많아서 앞쪽 말고 뒤로 올라갔어.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즐기니(손가락도 시렵고....)
그저 앞뒤로 보다가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보는데
다들 얼굴을 감싸고 있어 누가누군지...
배는 고픈데 정상부근은 바람이 불어 마땅한 자리가 없어.
일단 내려오다가 만항재 가는 길을 물었는데 가리키는 방향이
올라오던 길이더군. 가다가 이정표가 있으니 찾기 쉬울 거라 하네.
그렇게 다시 온 길을 뒤돌아 가는데 아이구, 사람들 많어
군데군데 모인 곳을 두 곳이나 지나다 보니
좀 이상하데? 이정표가 없어. 또 묻기는 뭐해서
조금 더 갔더니 과연 ‘만항재 2km’라는 이정표가 있더군
어라? 얼마 안 되네.
그런데 말이야.
표지판은 분명히 그 길을 가리키는데
발자국이 없단 말씀이야?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도 설마.
윽, 발이 빠지는 깊이가
무릎을 훨씬 지나 허벅지까지 들어가더군.
그래도 열심히, 씩씩하게 걸어갔지.
산모롱이를 돌아갈 때까지 내내 그런 거야.
사람들 목소리가 안 들리는 순간에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어.
수락산 눈산행때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거든.
그때는
거진 두 시간을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았던 기억.
그게 마지막 눈 산행이었기도 했으니.
다시 되돌아 이정표까지 갔어.
오고가는 이들에게 물으니 잘 몰라.
잠시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 모인 곳을 유심히 보니까
그 중에 산대장이다 싶은 사람이 보이더군.
슬며시 가서 물으니 역시 길을 잘 알아서 가르쳐 주는데....
이런, 일단 다시 정상까지 가야한다는군.
가서 거기 임도를 따라 가면 된다네.
그럭저럭 다시 걸어 정상에 오르는데
직전에 보니 옆에 임도가 아닌 시멘트 포장길이 보이네.
저 길인가? 하면서 다시 정상에 가니 역시나 아는 얼굴은 없어.
그냥 내려오려는데 전화가 울려 받으려니 두터운 장갑이라 너무 무뎌.
스틱내리고 장갑 벗고 하는 사이에 전화가 끊기더군.
그래도 누군가 하고 열어보니 'OOO'님이야.
부재중 전화가 두 통 더 있고.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전화를 안 받네.
부재중 전화 중에 'OOO'에게 전화를 하니
빽조중에서 올라간 'OOO'님이 있으니 만나서 같이 내려오라고 하기에
다시 전화를 해도 안 받어.
잠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아
그냥 내려가기로 했는데, 이왕 전화기 꺼냈으니 사진이나 찍자 싶어서
가볍게 한 장만 찍었어. 첨부할게
배도 고프고 해서
바삐 걸어 내려가니 반겨주는 이들이 많아
오뎅과 라면까지 준비해주고, 소주도 한 잔.
고마워요.^^ 여러분들 다음에 잊지 않고 신세 갚지요.
음.......적다보니 너무 길다.
대충 정리가 다 된 것 같으니 그냥 마치자.
아~참~~!!
고속도로에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것도 나중에 다시....
무소가.
첫댓글 사랑타령의 무소가....님???
그렇게 되었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