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를 이해하기(특히 현대미술)
1. 인터넷 강의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분야는 아마도 ‘미술 강의’일 듯싶다. 대부분의 미술강의는 다양한 그림을 크로즈업한 상태로 보여주고 설명을 곁들인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그림의 특징과 기법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서양미술사의 고전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독했다. 책으로 읽은 미술사의 흐름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이연식이 진행하는 인터넷 강의 <서양미술사>를 집중해서 들었다.
2. 이연식의 강의의 장점은 군더기없는 간결한 설명과 재치있는 유머가 곁들인 화가와 그림에 대한 촌평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헛소리를 떠드는 꼰대 강의꾼들의 방식에 조금을 짜증난 상황(최근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강의에서 발견)에서 이연식의 강의는 핵심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까지 8강에 걸쳐 진행된 강의의 핵심은 미술은 끝없이 과거가 만들어낸 성취와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자연을 완벽하게 모사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미학적으로는 이미 17세기에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의 미술사는 과거의 형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감각의 형태와 색채를 개발하는 것에 몰두하였다. ‘시각’이라는 감각은 어떤 감각보다도 새로운 것에 민감하다. 청각과 미각이 익숙한 것에 더 끌리는 반면, 시각은 익숙한 것에 오히려 쉽게 싫증을 낸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현대미술은 ‘새로움’에 집착하여 대중과는 괴리된 형태로 특정한 집단의 놀이로 변모한 것이다.
3. 이번 강의에서 수확은 현대미술의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실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19세기 사진의 등장으로 더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미술은 다른 방식의 표현을 찾아야 했다. 기술의 변화는 예술의 변화를 추동한다. 미술사에서 물감의 형태나 그리는 곳의 변화가 미술기법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중요한 전환의 계기였다. 사진은 미술 자체의 토대를 흔들었다. 빛의 실험을 시도한 인상주의가 등장하고 강렬한 내면의 느낌을 전달하는 표현주의가 나타난 것은 미술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4. 현대미술의 시작을 대표하는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의 풍경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수많은 조각으로 분리되면서도 하나로 통일되는 입체적인 표현양식이었다. 이어 블라크와 피카소에서 이러한 입체파적 기법은 완성된다. 인간의 다양한 시선을 하나의 화면에 담는 표현은 새로운 미술을 확장시켰다. 이어 뭉크의 표현주의가 강렬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달리와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가 철학적 해석을 곁들이여 미술사를 주도하였다. 새로움의 추구는 더욱 극단의 방식으로 치달렸다. 앞에서 기술한 새로운 미술은 어찌됐든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이제 그 대상은 기묘하게 어그러지며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변기를 전시하며 <샘>이라고 명칭한 뒤상의 시도와 함께 추상주의 미술의 등장한 것이다. 물감을 흩뿌리는 기법을 우연하게 발견한 잭슨 폴락의 미술도 추상주의를 대표한다.
5. 표현 대상의 변화 뿐 아니라 기법의 변화에서도 현대 미술의 특징이 나타난다.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은 현대 사회의 소비적 상품 모습을 콜라쥬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있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명 ‘팝 아트’의 시작이다. 대중적인 만화를 그대로 표현한 ‘리히텐 스타인’의 그림, 유명 인물들의 모습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앤디 워홀의 기법 등 미술은 과거와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만들었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다.
6. 결국 현대미술은 자신의 사적인 과거를 텐트에 기록하는 트레이시 예민의 실험,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재현하는 마크 퀸의 방법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자신의 똥을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는 피에르 만초니가 나타났다. 로만 오팔카는 <1에서 무한>이라는 이름으로 1에서부터 숫자를 끊임없이 쓰는 완결할 수 없는 작업에 몰두했으며, 온 카와르는 현재의 시간을 기록하는 비슷한 성격의 작업을 시도했다. 이들의 작품은 작품 그 자체의 표현보다는 그것에 대한 의미와 설명을 통해 표현되는 예술이었다. 예술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했기 때문에 예술이고 얼마나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7. 미술의 개성추구는 결국 넓은 들판에 쇠기둥을 세워 번개를 유도하면서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낸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치는 들판>이나 세계의 유명 조각이나 건축물, 심지어는 섬에 헝겊으로 일정기간 포장을 씌워 전시하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설치미술로까지 확장되었다. 특히 크리스토 등의 ‘포장미술’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주문을 받은 명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과 상업적인 이익이 미술의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8. 하지만 이렇듯 상업적이고 자본주의적 관계가 지배하는 미술계를 조롱하는 도전적인 방식도 등장하였다. 일명 거리의 미술 ‘그래피티’이다. 그래피티의 시작은 프랑스의 블레크 르 라로서 그는 거리에 스텐실 기법을 이용하여 쥐의 모습을 그려 넣었던 것이고 처음에는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곧바로 거리의 명물로 인정되었다. 그래피티 예술의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뱅크시로 그는 자신의 얼굴이나 정보를 공개하기 않고 은밀하게 거리에 다양한 그림을 통해 자본주의적 현상을 비판하거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표현하였다. 때론 패러디한 그림을 유명 박물관에 몰래 전시하여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허영을 꼬집기도 하였다. 뱅크시는 그림을 판매하지 않고, 돈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미술을 비난하려는 시도로 작업하였지만 일단 유명세를 탄 그의 작품은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보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9. 현대의 미술은 어찌 보면 관객의 선택이 아닐지 모른다. 유명해진 예술가가 작업을 했고 의미를 부여했으며, 평론가들이 가치를 설명했을 때만, 그때야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 감탄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예술의 기준이 특정의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그들에 의해 가격이 책정되었을 때, 그때서야 미술의 가치는 결정되다. 어떤 예술보다도 ‘돈’과 ‘초과이윤’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이 미술의 세계이다. 최근 파주출판도시를 걷다보면 ‘예술딜러’라는 말이 보이고 미술 작품에 투자하라는 권고를 자주 볼 수 있다. 미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보다 금전적 가치 상승에 더 주목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음악 그 자체를 듣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의 위대함은 작품이 주는 감동과 메시지의 중요함에서 찾게 되지만, 미술의 가치는 감상보다는 소장의 가치성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위해서 끊임없이 작품과는 별도의 화제를 통해 작품의 가격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작품의 가치는 철저하게 경매장의 가격으로 결정되고 있음을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미술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미의 표현이 종결된 시점에서 미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끊임없는 새로움의 추구이고 ‘소장’할 수 있다는 미술의 특징을 통해 자본주의적 욕망을 부추기는 것에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미술은 철저하게 외부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 예술이고, 돈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예술이며, 개인들이 스스로 좋은 미술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상실한 분야일 것이다.
첫댓글 - "유명해진 예술가가 작업을 했고 의미를 부여했으며, 평론가들이 가치를 설명했을 때만, 그때야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 감탄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예술의 기준이 특정의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그들에 의해 가격이 책정되었을 때, 그때서야 미술의 가치는 결정되다."
- 최고의 가격(?) = 최고의 가치(?) = 자본의 권력(?) = 권력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