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파주 북소리> 축제 - 책의 몰락
1. 2022년 <파주 북소리> 축제가 열렸다. 토요일 주말임에도 축제가 열리는 ‘지혜의 숲’(아시아 정보센터) 주변은 평소 주말과 별다르지 않았다. 과거 ‘북소리’가 열렸을 때 수많은 차량이 출판도시 거리를 가득 채우고 많은 봉사요원들이 차량정리를 위해 곳곳에서 분주하던 때와 비교하면 너무도 한산한 장면다. 더욱 슬픈 장면은 ‘책 축제’임에도 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축제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잡다한 엑서세리와 같은 ‘벼룩시장’ 물품이었다. 그야말로 ‘책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2. 과거 <북소리> 축제가 열리면 주변 출판사나 음반사들은 책을 전시하고 건물을 개방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먹거리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며 그야말로 가을날 뜨거운 축제의 기쁨을 제공해주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점차 열기가 죽어갔으며 사람들이 오지 않자 출판사들의 동참도 사라졌다. 문을 개방한 출판사들은 찾을 수 없었다. 특히 <한길사> 건물을 보았을 때, 책의 몰락을 상징하는 시간적 변화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3. 출판사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출판도시’ 건설의 산파이자 오랫동안 출판도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 중심이 ‘한길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길사 공간이 닫혔고, 다른 업체에게 임대되었으며, 이제는 그 공간은 아무도 없이 쓰레기만 휘날리는 폐허같은 장소가 되어 버렸다. 한길사 건물을 장식했던 걸개그림은 이제 없다. 10년에 걸친 출판도시의 퇴락, 그리고 근본적인 ‘책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4.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문화의 중심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변환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퇴락을 가속시킨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도서정가제>의 시행이었다. 도서정가제가 동네서점의 경쟁력을 살려주고 나름 도시 시장의 정상화를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통로를 모두 막아버린 정책은 출판도시 도서 축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다.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품이나 장면을 보기위해 구태여 먼 ‘파주’까지 사람들이 찾아올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분명 과거의 분주함에는 도서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즐거움이 가장 큰 유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파주 <북소리> 축제에는 책이 없고 그림과 음악 그리고 상품이 책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5. <파주 북소리>의 떠들썩함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 뿐만 아니라 서글픈 장면이다. 책을 좋아했고, 책을 만드는 공간을 좋아해서 이곳으로 이사한 나에게 소중한 기억과 장소가 몰락하고 퇴락하고 있는 모습은 인간의 육체가 쇠락하면서 사라지는 과정을 연관시키는 슬픈 장면이었다. ‘종이책’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지금, 어쩌면 파주 <북소리> 축제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증명하는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첫댓글 - 책의 몰락은 문자의 몰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젊은층의 문해력 상실은 독서를 생활의 요소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결국 빈약한 영상매체에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 시간 속에 숙성되는 독서의 깊이를 상실한 세대는 현란한 화면 속에서 가쁜 숨만 쉬고 있을 뿐. 즉각적이고 빠른 시대의 감각적 흐름에 책의 몰락은 이제 익숙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독서의 깊이는 지성의 디딤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