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6 로고스서원
발설(發說)하기 (부제: 나도 건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고. 27기 장현진
건강한 아기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그리고 잘 눈다.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한 몸이란 원활하게
배출이 잘 되어 노폐물을 걸러내 듯, 건강한 자아 또한 내면의 쓴 뿌리들을 제거하여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Image of God)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몸과 영혼을 빚으신 위대한 예술가이신 창조주께서 디자인하신 원래의 의도를 되 찾아 주시려고 골고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종교적인 구원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회복으로서의 예술적 승화랄까.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예술적 승화란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 박미라 식으로 말하면 ‘발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설의 한자어는 發[피다]의
뜻과 說[말씀, 이야기하다,
진술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치유하는
글쓰기의 핵심을 ‘잘 발설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읽었다. 건강한 자아로 거듭나기 위한 걸음으로서 발설의 세 가지 측면의 화두를 만나게 된다고 보았다. 너무 단순한 논리를 전개 시켜 저자의 의도를 벗어났다면 양해해 주기 바란다.
재차 읽어 내려 가면서 더욱 이 프레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나만의 고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요소 요소에 깔려 있는 핵심이라 여겨져 일견 살펴 보려 한다. 먼저 나를 발설하는 것이며, 나와 관련된 너를 발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발설하라는 것이다.
하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향하여 발설하기. 저자는 ‘직면이 곧 치유’라고
했다. 저자가 나에게 던져 준 화두는 ‘나를 성찰하고 발설하는
것’이다. ‘나’라는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도 있다. 과거에
상처받았거나 실패한 경험들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에 발목 잡혀 미움, 좌절, 원망, 불평, 두려움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어둠의 그림자처럼 억압과 투사라는 이름의 자기 방어기제가 끈질기게 따라 다니며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힌다. 그 고통으로 개인의 미래 역시, 부정적이고
비판적일 수 밖에 없는 불행함으로 흘러간다. 이런 고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위선과 불의에 익숙한 자아와 직면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자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발설한다. 과거의 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를 적다 보면 지금까지 나의 삶이 스캔되고, 나를 인터뷰하듯 자기
성찰의 글을 쓸 수도 있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듯 나를 향하여 말을 건 내 듯 발설하라.
둘. 나와 관련된
가족이나 애인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만난 <너>를
향하여 발설하기. ‘편견 없이 해석 없이 나를 돌아보라.’ 나를
잘 보는 능력은 주관적인 명상만으로 부족하다. 선입견 없이 잡념을 내려 놓고 세밀하게 자신을 지켜 보려면
결국 나를 둘러 싼 환경 안에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나의 가족,
나의 가까운 친구들, 직장 동료나 상사, 동호회, 종교단체 등에서 맺은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응어리들이 있다면 그것을 풀기 위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한 존 카밧진 박사의 말처럼 ‘우리 자신과 우주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전체성(wholeness)을 자각하게 되며, 그것이야말로
온전한 치유의 길’이기 때문이다. 소위 나만 잘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부분만을 보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 부분을 보아야 자신을 보다 더 잘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엡1:23)을 경험하는 것이다.
셋. 온 몸으로 쏟아 붓고 심장이 뛰도록 <진심으로> 발설하기. 세 번째 나에게 던져준 것은 글쓰기의 ‘진정성’이라는 화두이다. 나는
진심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 ‘온 몸으로 글쓰기’와
‘심장으로 글쓰기’는 결국 글 쓰는 이의 열정과 태도를 웅변해주는
것이다. 내 안에 숨어 있던 ‘미친 놈’을 숨쉬게 하며… 연약한 자아로 이 험준한 세계를 살아내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의 언어를 다양하게 써 내려간다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되리라. 저자는 계속해서 독자에게 도전한다. “가슴
에너지는 언제든 내 심장 언저리에서 되살릴 수 있다. 두뇌를 통해서가 아닌 어느 정도는 자율적으로 심장을
통해서 감정과 정서를 느낀다”고 말이다. 말을 건 내 듯
나에게 말을 걸고, 주변 환경과 나아가 하나님과의 대화에 이르기 까지 <삶과 자연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글감도 제공해주지만
글 쓰는 자의 태도도 가르쳐 준다.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서툰 관계를 다시 풀어 가길 원한다면 치유하는 글을 쓰라. 부모와의 서운했던 감정들을 풀기 원한다면
치유하는 글을 쓰라. 직장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안들이 있다면 치유하는 글을 써라. 이렇게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생각들을 담아 글을 써다 보면 어느덧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시나브로 별 것 아닌 일상이 되어 가고, 한
뜸 두 뜸 글 짓는 사이에 나와 너는 치유된다. 건강한 자아들로 회복하게 된다. 세상을 변혁하는 작업이 된다. 이 책을 닫으며 몇 가지 명제들이
떠 오른다. 글쓰기에 있어서 ‘발설하기’를 누구나 알아 먹도록 정의를 내려 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다. 즉, 발설이란 허물과 약점을 밝히기 만 하는 폭로가 아니며, 단순히 개인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차원적인 배설도 아니다. ‘발설하기’란 관계의 회복이며, 나의 삶과의 화해이다. ‘과거의 나’에 묶여 밝은 ‘미래의
나’ 에게로 가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재의 나’와 화해를 시도하며, 반대로 좋았던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 밝은 미래와
조우하는 건강한 현재의 나를 찾기도 한다. 글 쓰기의 세계에 무한한 가능성 ‘치유’…, 그것은 우주를 디자인 하신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게다.
첫댓글 약간 보완하여 다시 올렸습니다. 댓글 주신 오!걍님께는 죄송하네요. ^^ 그리고 감사 ~
글 하나로 한 권의 책을 또 한번 읽은 듯 합니다! 정말 너무 글을 잘 쓰시네요!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때 이 글을 두고두고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힘을 내어 더 재미지게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 보완해도 수정해서 올리시면 되는데... 귀한 글 다시 잘 읽었습니다. 발설은 과거와의 솔직한 만남을 통해 밝은 미래와 만나고 건강한 현재의 나를 찾는다는 표현에 공감입니다. 그 발설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도. 아멘입니다~
논리적으로 글이 너무 잘 진행되어서 감탄을 하였습니다. 마치 책을 한눈에 보는 듯 했습니다.
저도 나의 삶과 화해하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
읽으면서 책 내용이 다시금 정리가 됩니다.
글쓰기와 치유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글쓰기학교를 만나면서는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넘 늦게 깨달았네요 ㅎ 글도 통찰을 잘 하시고 삶도 통찰을 잘 하십니다. ^^
저두요~~^^
책 한 권의 내용이 쑥 정리가 되어 들어오네요~~
현진님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 정말 대단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