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래, 괜찮아 ― 김지명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박동억

[사마난추]

•서평

그래, 괜찮아

― 김지명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박동억

1. 당신이 있기에

조금은 흔들려도 좋을 것이다. 삶을 뿌리째 휘청거리게 만드는 아픔이 아니라면, 모든 길을 막아서는 슬픔이 아니라면 견딜 수 있다. 벅찬 현실이 닥치더라도 저 모든 것을 시련이라고 발음하는 대신 우리 모두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해 본다면, 그렇게 길을 잃었던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중이라고 말해 본다면, 그래 견딜 수 있다.

얼마나 길을 벗어나도 괜찮은 것일까. 김지명 시인의 시는 내용으로든 형식으로든 그러한 물음과 우리를 마주하게 하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서시 「블루 플래닛」의 도입부는 언뜻 자연 풍경을 그리는 듯 보이지만, 차츰 그것을 따라 읽어 나가며 우리는 그 풍경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 가지 단계를 거쳐 풍경은 재구성된다. 먼저 시선의 측면에서 이 작품은 풍경 안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풍경 바깥에서 관조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수천 오리 떼가 바다를 점령”하고 “행성호가 난파와 애인 놀이”하는 행성 규모의 풍경을 조망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다음 시인은 그러한 풍경을 “장난 같아 보입니다”라고 진술하거나 “장난감” 오리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 이에 따라 묘사된 현실은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실체라기보다 유희의 대상으로 격하된다. 마지막으로 격하된 풍경은 “바다 꿈속”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인의 무의식적 반영으로 환원된다. 이에 비추어볼 때 “나는 내 이름에 닿지 않습니다”라는 실존적 진술로 이 작품이 마무리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언뜻 거대한 규모의 자연 풍경처럼 보였던 것은 근본적으로 시인의 실존에 대한 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블루 플래닛」이 외양상 풍경묘사로 이루어진 작품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존재에 대한 진술로 읽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지구와 동떨어진 채 지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위상, 난파된 행성이자 장난감 오리처럼 부유할 뿐인 존재의 자세를 이미지로 치환해 놓은 환상이다. 따라서 현실 논리에 따라서 이 시의 이미지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은 난해한 환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존재론적 관점에 따라서 이미지를 해독해 보면 비교적 선명한 주제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외로움에 대한 은밀한 고백이고 미적 승화다. “스노클링하는 사람들이 빵을 던져 주어 외로움은 산호 속에서 아름답다는 말로 빛날 것입니다”라는 진술처럼, 이 작품의 미적 형식을 이끄는 중핵은 외로움이고, 다채로운 비유들은 그 외로움의 산호 보석을 감싸는 보석함이다.

외로움은 무엇으로부터 비롯할까. 시편 전반에서 그는 “난민의 자세”와 “유배된 얼굴”(「자주색 가방」)로 세상과 마주하고, “복면으로 오랫동안 연기”(「황화식물」)하는 자세로 세상에 나아간다. 우리는 손쉽게 그러한 외로움의 자세가 “서류 대신 뒷담화 표정을 집어 넣”(「자주색 가방」)을 때 생겨나는 가식이고, “말할 줄 모르는 서류에게 말하고 나면”(「황화식물」) 확인하게 될 무력함이라는 사실을 읽어 낼 수 있다. 시인은 진실을 말하는 대신 표정을 감추고 세상에 맞서는 대신 “말할 줄 모르는 서류”에 토로하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 그렇게 자신을 억눌렀던 시간만큼 그는 외롭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외로운 마음을 조심스럽게 “왕정”(「황화식물」)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영토로 선언해 보기도 한다. 또한 “나는 왕으로 태어난 비참이었습니다”(「자주색 가방」)라고 말하며 자신의 ‘비참’을 들여다보면서도 가식과 외로움의 왕정을 벗어나야 한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 김지명 시인은 끈질기게 ‘외로운 자’로 남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독한 자가 세상에 비껴 놓인 자라면, 외로운 자는 자기 자신에게 비껴 놓인 자다. 여기서 우리는 김지명 시인의 시 전반에서 발견하는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다음의 물음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외로워도 괜찮은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해 그는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하지 않아도 좋은 것인지, 언제까지 세상을 장난감 다루듯 사소하게 생각해도 좋은 것인지 시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단한 세상만사를 사색하기보다 “궁리와 멀어져 궁리를 유기해 보는”(「사바나 주의보」) 것, 그렇게 “세계를 잠시 잊어버리는”(「허들링」) 춤추는 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흔히 진정성이라고 불리는 것, 누군가는 존재의 중핵이라고 믿을 그것들을 잠시 주변으로 밀어 두고 시인은 “미끌, 떨어지기에 안성맞춤”(「동백 나팔수」)인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외로움은 존재의 중심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로 ‘나’의 중심이 ‘나’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타인 앞에 설 때, 그리운 타인을 떠올릴 때,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과거를 떠올릴 때 우리의 혀끝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의 길을 벗어난 해찰이/ 너에게 가까워지는 방식”(「아마랜드」)일지 모른다고 시인은 말한다. 진정 타자 앞에 서는 순간에 혀끝은 굳는다. 혹은 본심은 말하지 못하고 애꿎은 해찰만 건넨다. 그렇게 타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 또는 말로 지칭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 「버진로드」에서 시인은 ‘어머니로서의’ 엄마가 아닌 “앳된 엄마”, 아직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순간 그는 자식에게 “엄마”는 함께 시간을 보낸 타인인 동시에 자식도 모르는 시간을 살았던 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자식은 어머니의 앳된 시절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가 살았던 삶을 따라서 “버진로드까지 따라가 보는” 방편을 택한다. 마찬가지로 “웅크린 추억까지 스무 살로 건져 내/ 만장일치로 수작을 부리는 봄, 만우절 같은”(「스프링」) 것이라는 문장처럼 웅크린 추억으로 가득 찬 봄은 만우절 농담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추억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빛나는 추억에 비해 현재의 ‘나’는 매번 빛바랜 것이다.

그러나 쥘 수 없는 것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텅 빈 마음을 짊어진 사람이 매 순간 기적을 바라듯, 시 「모과 생각」에서 시인은 “너는 뜬금없이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빼앗긴 이름과 놓쳐 버린 이름을 외우며/ 나쁘지 않아/ 체념이 두엄에 앉으면 고백이 시작될 거야”라고 진술할 때, 우리는 오래 체념을 견딘 이후에 탄생하는 고백의 무게를 가늠해 보게 된다. 이처럼 김지명 시인의 시는 오롯이 홀로 선 ‘나’, 확고부동한 ‘나’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외로운 자기 존재와 그러한 자신에게 불현듯 파고드는 절박한 타자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체념이 두엄이 된 이후에 고백이 시작된다는 표현처럼, 줄곧 그의 시는 당신을 향해 발음될 한 마디의 말을 예비한다. 이제 다시금 우리의 삶을 향해 ‘얼마나 길을 벗어나도 좋을까’라고 묻도록 하자. 이때 우리는 김지명 시인의 시에 기대어 다음과 같이 대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을 향하는 만큼 길을 잃어도 좋다. 당신을 향하는 한 외로워도 좋다.

2. 파란 조바심으로, 붉은 다정함으로

길을 잃고서야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체념 이후에 시작되는 언어가 있다. 김지명 시인의 시는 외로운 마음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외로움 곁에는 항상 뒤늦은 고백과 후회와 조바심이 맴돈다. 그렇게 “나이를 먹지 않는 생각이/ 앙상한 이야기를 둘둘 말고 있었다”(「반달의 화법」)라고 시인은 쓴다. 삶을 견디며 침묵하다 보면 “폐부에 맹독의 말을 건네며/ 귓바퀴를 걸어오는 입술도 있다”(「당분간 박쥐」)라고 말한다. 그러한 ‘앙상한 이야기’와 ‘맹독의 말’을 다독여 보듯 때론 농담이나 장난처럼 말해 보기도 하고, 때론 다정한 비유를 활용하면서 그의 시는 시작되는 것이다.

슬픔에 잠긴 사람을 가리는 커튼처럼, 이 시집에서 외로움은 색채 이미지로 승화되곤 한다. “너에게 달려가고 네 앞에서 작아지는 사이/ 다정과/ 외면이/ 나무에 매달린 푸른 사과 같았다”(「긴팔원숭이의 보고서」)라는 시구에서 우리는 ‘나’를 왜소하게 만드는 당신의 다정과 외면을 “푸른 사과”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을 확인한다. 이때 푸른 사과는 쥘 수 없는 당신 대신 허공을 쥘 뿐인 주먹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마찬가지로 “같이 노래 부르고 싶었다/ 돌아보면 독창이었다”(「파랑 리플리 씨」)라는 시구는 사랑의 실패를 가리키는 듯 보인다. 시의 제목처럼 ‘파랑’은 외로운 마음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이 시집에서 외로움은 파랑으로 채색된다. 그러한 채색은 외로움을 달래는 미적 승화의 한 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파랑’이라는 단어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단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좀 더 삶의 고통을 부각하고자 할 때 ‘파랑’이라는 단어는 거센 파도 물결을 가리키는 파랑波浪을 가리키고, 또 파란만장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는 뿔뿔이 혼자를 만듭니다”(「블루 플래닛」)라고 말할 때 산산이 흩어지는 파도의 움직임은 외로움의 비유가 된다. 또한 “마음 부칠 난민 신청이란다/ 내 어둠 속이 파랑이란다”(「굴뚝 청소부」)라는 진술에서 ‘파랑’은 난민처럼 세계와 동떨어진 자신의 마음을 가리킨다. “파란만장의 맨 마지막 표정이 고요하듯/ 빗방울은 여행하는 새를 품어 혼자를 낳았다.”(「나 홀로 공작소」)라는 문장에서는 어떤 파란만장한 시련 이후에 홀로 비 맞는 새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자신에게 비껴 놓인 순간조차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 본다면 어떨까. 본래 마음은 당신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사랑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이 세상에 맞서는 패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몸속이 다 보이는 유령 물고기로/ 몸을 팔았”(「누수」)고 “용기를 빌려 비겁하게”(「셀러」) ‘나’를 팔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따라서 “실패할 기회를 준 거지?”(「긴팔원숭이의 보고서」)라는 물음으로 나아가는 시적 태도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아야 한다.

하 몽하 몽 말끝이 잘려 나간 꿈 조각에는

한쪽 귀와 한쪽 코 한쪽 눈썹만으로

한쪽이 된 엄마

비통한 한 조각이었는데 눈을 감아

평온한 정지

종이질로 피어 있는 목화꽃 같아

손끝만 스쳐도 찢어질 듯

아스라이 하몽하몽

새끼를 데리고 리어카를 몰고

과일 좌판을 나서는

맹목과 맹모 사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하몽하몽 발음 속에 빠지면

공평한 석양이 지붕에 저녁을 짜 올려

유리벽도 금 간 시멘트벽도 멀리서 보면

작아서 좋은

세상이 반건조되어 말랑하였다

헤어지고 배신당해도

괜찮아

사랑, 그 정도 산책할 거리를 두면 안 되나

― 「혼자 노는 양」 부분

어머니의 존재는 항상 큰 것이다. 어머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꿈속에서조차 완성될 수 없다. 언제나 어머니를 향한 표현은 반쪽짜리이고 “꿈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손끝에 닿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의 존재, 너무나도 그립기에 “손끝만 스쳐도 찢어질 듯”한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 있다. 그 아픈 그리움을 지속해도 좋다고, “헤어지고 배신당해도” 괜찮다고, 어머니를 향하는 한 “그 정도 산책할 거리를” 두어도 괜찮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을 통해 확인했듯 더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시인은 외로운 파랑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외롭고 그립고 괴로울지라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는 다시 전진한다. 어떤 슬픔과 고통을 견뎌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더 큰 지평 속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반건조되어 말랑하였다”.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건조된 열매처럼, 오랜 시간을 거쳐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붉은빛을 발견한다. “공평한 석양”은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공평하게 끌어안을 것이다. 넉넉하게 받아 줄 것이다.

파랑과 빨강은 결국 체온이다. 당신의 손을 쥘 수 없는 마음이 파랑이고, 빈손을 괜찮다고 말하는 마음이 빨강이다. 이처럼 “긴팔원숭이의 퇴화 속도로” 당신에게서 손을 거두는 순간이 있다면(「긴팔원숭이의 보고서」), “공평한 석양”처럼 먼 풍경부터 밀려와 빈손을 잡아 주는 순간도 있다(「혼자 노는 양」). 시인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만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부메랑은 당신도 안아 줄 것이다(「누수」).” 당신이 자신을 내던졌던 절망의 속도로 당신에게 되돌아오는 포옹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김지명 시인이 줄곧 어린아이처럼 말하거나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위치에서 말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장난감’(「블루 플래닛」)과 ‘회전목마’(「아마랜드」)와 같은 어휘의 활용이나 유희적 상상력의 전개는 어린아이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모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벌거벗은 요리사」 「모모 시계」 등은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입장에서 현실을 그려내고, 「천사는 후회를 모른다」 「두근두근 수업」 「천사의 몫」 등의 작품에서는 ‘아이’가 주된 상징이 된다. 왜 그는 줄곧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까. 다시금 「블루 플랫닛」의 “장난감”이라는 비유로 되돌아오자. 세상은 장난감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실체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장난감 같은 것이기에 잃어도 아프지 않다.

비유에도 온도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김지명 시인의 시는 따스하다. “엄마는 엄마라서 얼만큼 대가를 치를까”(「벌거벗은 요리사」).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 아픈 말을 바꾸어 보자. 어머니의 대가로 인해서 아이는 얼마나 세상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대신 “삐끗해져, 잘못한 일을 애인처럼 팔짱 끼자”(「야말」)라고 말하는 것이 김지명 시인의 화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하는 대신 “사라지며 페이지는 늘어난다네”(「당신이 지나간 자리」)라고 쓰는 것이 그의 문법이다. 그렇게 더 많은 실수를 용서하고, 더 많은 상실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그는 외로움을 너그러움이라고 고쳐 쓰는 것이다.

박동억 |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