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나나리보와 서울/220906/박찬석
안타나나리보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이다. 면적은 95㎢이지만, 마다가스카르 역사의 90%가 수도에서 일어났다. 600년 역사를 지닌 한반도의 수도 서울도 다르지 않다. 안타나나리보는 타나(Tana/Antananarivo 약칭)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의 이름이다. 1,270m 고원지대에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열대지방이다. 해안 도시와는 평균기온이 8°C 가량 차이가 난다. 해안이 섭씨 30°C이면, 타나는 22°C이다. 쾌적하다. 열대지방에 있는 수도는 이런 곳이 여러 군데에 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2,240m,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1,795m에 있다.
수도(Capital city)를 정할 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지금이야 카톡으로 송금을 하는 세상이지만, 100년 전만 하더라도 많이 달랐다. 통치자는 외적을 방어하기 쉽고, 내란을 평정하기 쉽고, 세금을 거두기가 쉬운 곳에 거처를 정한다. 타냐는 그런 의미에서 수도의 입지조건이 좋다. 국토의 중앙에 있다. 메리나 왕국은 17세기부터 안타나나리보를 수도로 정했다. 그 후 프랑스가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도, 왕궁을 식민지 총독 관저로 사용했다. 일본도 총독부를 경복궁에 두었고 총독 관저는 경복궁 후원(청와대)에 두었다.
마다가스카르는 농업 국가이다. 원주민 말라가시는 약 1천 년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민족이다. 아프리카 대륙보다 먼 거리이지만, 남인도해류와 남동무역풍을 타고 들어왔다. 인도네시아 문화가 깊이 배여 있다. 쌀을 재배한다. 소도 등에 혹이 있는 인도 소(zebu)이다. 국민의 주식은 쌀이고 가장 중요한 농작물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은 중앙에 고원, 동쪽과 서쪽은 평야지대이다. 동사면은 급하고 서사면은 완만하다. 한반도 지형과 비슷하다. 인도양에서 부는 계절풍과 사이클론은 습한 공기를 품고 중앙고원을 맞으면서 많은 비를 내린다. 수도가 놓인 중앙 고원은 높지만, 주변은 벼를 재배하는 논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남북으로 뻗어있는 고원이 길이가 400km이고 폭이 50km이다. 마다가스카르 인구는 모두 2,300만 명이다. 인구에 비해 농지가 넓고,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주 마다가스카르 손용호 대사는 ‘인도양의 보물섬’이라 했다.
안타나나리보의 전통 가옥은 모두가 목재이다. 석조건물이나 벽돌건물을 없었다. 석물과 벽돌 구조물은 무덤뿐이다. 영국과 프랑스와 접촉하면서 왕의 칙령으로 가정집을 벽돌이나 석재로 짓도록 했다. 왕궁 주변 벽돌 이층집들은 부자 집이고 권력자들의 집이다. 목조와 초가집은 가난한 서민들의 집이다. 조선시대 건축물도 모두가 목조였다, 병자호란으로 문화유산은 모두 불타버렸다. 전쟁을 더 많이 치른 유럽 국가들은 가옥이 벽돌이나 석재로 되어 있어 그때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부럽다. 한국의 전통가옥 정원에는 잔디가 없다. 조선시대 잔디는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경복궁에도, 덕수궁에도, 도산서원에도 잔디 정원은 없다. 현대 잔디 정원은 서양의 영향이다.
후진 국가의 인구는 수도에 집중한다. 수도에 정치권력이 있다. 정치권력와 경제권력 결탁이 후진국가의 권력형이다. 프랑스의 지배(근대화)를 받으면서 수도 타나는 급격하게 인구가 불어났다. 1829년에 인구 8만 명에 불과했는데, 2018년에는 230만 명이 됐다. 우리나라 수도권(1/2)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수도권에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구의 유입은 계속 늘어난다. 2030년에는 400만 명이 될 것이라 한다.
마다가스카르는 힘에 의하여 개방이 되었다. 1897년 프랑스 침략군이 쏘는 대포를 맞아 왕궁 일부가 날아갔다. 라나발로나(Ranavalona) 3세 여왕은 싸우지도 않고 르 유니온(L‘Union)으로 도망을 갔다. 1897년부터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 1958년 식민지 행정부는 폐지하고, 1960년 말라가시 공화국(Malagasy Republic)으로 독립시켰지만, 1975년까지 간접통치를 했다. 프랑스는 강화도를 침략했고, 전쟁을 했다. 병인양요(1866)이다. 20년 뒤 조불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싸우지 않고 내어 준 땅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마다가스카르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이다. 교육 받은 상류 사회 언어이다. 민족 언어인 말라가시어가 있다. 지금도 프랑스의 영향은 막강하다. 식민지 시대 일본어를 생각하게 한다.
1960년대 소매치기, 들치기, 깡패. 창녀, 좀도둑이 도시 서울 문화였다. 도시의 범죄는 빈곤과 비례한다. 지금은 ATM에 현찰을 두고 가도, 열차에 모바일 폰과 카메라를 두고 가도, 손대지 않는다. 196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거짓말 같은 세상이다. 안타나나리보는 그때의 도시 서울을 연상케 한다. 포장된 도로도 적지만, 군데군데 구덩이가 파여 있다. 쇼핑은 길거리에서 한다. 타냐의 노천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이다. 시내를 다닐 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은 관광지 가이드가 늘 하는 말이다. 여성분들은 귀걸이를 떼어 간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처음 듣는 소리다. 도심 벽돌집을 제외하면, 서민 주택은 8집마다 공동화장실이 있고, 동네에 1개의 공동 수도가 있다. 전기가 들어오는 가정이 50%가 안 된다. 배수시설이 돼있지 않아 비만 오면 길바닥이 개천이 된다. 아이들은 맨발이다. 서울에도 사람 사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렇게 가난했던 한국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을까? 마다가스카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 안타나나리보 아소니(Asony)호수 주변 벽돌 주택, 멀리 산 아래 빈민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