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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 6-8절. 성도에 대한 직극한 사랑.
1. 지난 시간에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을 중심으로 <역경 중에도 감사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1) 바울 사도는 빌립보 전도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수 많은 역경 중에서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면서 전도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다 했습니다.
(3) 바울 사도는 직분을 감당하면서 간사한 속임수나 탐심을 가지고 일하지 않았습니다.
2. 오늘은 데살로니가 전서 2장 6-8절을 중심으로 <성도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사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6절. 바울 사도는 사람에게 칭찬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충성한다고 말씀합니다.
7절. 바울 사도는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아서 기르는 영적인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8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으로만 젖을 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원한다고, 데살로니가 성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6절. 바울 사도는 사람에게 칭찬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충성한다고 말씀합니다.
6절.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r did we seek glory from men, either from you or from others, even though as apostles of Christ we might have asserted our authority.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이 부분이 Nestle Greek New Testament 1904와 Westcott and Hort 1881에는 한글성경처럼 7절에 기록되어 있으나, RP Byzantine Majority Text 2005나 Greek Orthodox Church 1904 등에는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οὔτε ζητοῦντες ἐξ ἀνθρώπων δόξαν,
nor seeking from men glory
‘구하지 아니 하였노라’에서 동사(ζητ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eeking) 부정어(οὔτε:nor)와 함께, 언제나 구하지 않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οὔτε ἀφ’ ὑμῶν, οὔτε ἀπ’ ἄλλων,
nor from you, nor from others
1.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바울 사도는 사도로서 능히 존중받고, 사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7절)란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서 또한 주님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용서하며, 사랑하는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섬겨갈 때, 마음 상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은혜받아 잘 감당해나갑니다.
어떤 목사님(박윤선)은 “교회 중직자들이 성도들 때문에 속 썩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기도로 잘 극복하면, 그것이 밑 거름이 되어서, 모든 교회 일이 잘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직자 되신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각부 회장님들이시여!
성도님들이 속상하게 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화풀이를 하지 마시고, 주님처럼, 바울처럼, 용서하고 섬기고 사랑하며, 중직을 감당해나가시기 바랍니다!
2.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바울 사도는 사람에게 영광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려고 했습니다.
(1) 바울 사도는 교회 성도들에게든지, 혹은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 칭찬받으려고 충성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6:15.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2) 요즘 젊은 이들의 꿈은 “연예계의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옷을 벌거벗고서라도 스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어떤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기 작전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인기를 모으려고 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 직분자들은 예수님처럼 진리를 말씀하므로, 거짓 종교인(유대교인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하고, 바울처럼 참된 복음을 전하므로 때로는 거짓 사도들(율법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6) 교회 직분자들은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사랑하는 제사장직을 감당하여야 하지만,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책망하셨듯이 죄악을 지적하는 선지자직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말씀 신앙에 올바로 서야 합니다.
한편으로 치우치는 신앙이란 말씀을 버리고 신비주의(mysticism)로 가는 것이고, 또는 예수님을 버리고 인본적 자율주의(humanistic autonomism), 세속주의(Secularism), 율법주의(legalism)로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직분자 여러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바울 사도는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아서 기르는 영적인 어머니라고 합니다.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proved to be gentle among you, as a nursing mother tenderly cares for her own children.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δυνάμενοι ἐν βάρει εἶναι, ὡς Χριστοῦ ἀπόστολοι·
[though] having authority with weight to be, as Christ’s apostles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사도들로서 무겁게 있는 것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란 뜻입니다.
‘권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에서 동사(δυνάμενοι)는 현재분사 중간태로서(having authority) 자기를 위해서 계속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있는 것으로’(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계속 무겁게 가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부분이 Nestle Greek New Testament 1904와 Westcott and Hort 1881에는 한글성경처럼 7절에 기록되어 있으나, RP Byzantine Majority Text 2005나 Greek Orthodox Church 1904 등에는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ἀλλὰ ἐγενήθημεν ἤπιοι ἐν μέσῳ ὑμῶν,
but we were gentile in midst of you
‘되어’(ἐγενήθ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were) 과거에 확실히 유순하게 된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ὡς ἐὰν τροφὸς θάλπῃ τὰ ἑαυτῆς τέκνα·
as if nursing mother would cherish the her own children
‘기름같이’에서 동사(θάλπῃ)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would cherish) 현재 기르고 있는 모습을 가정한 것이고, 원형(θάλπω)은 ‘따뜻하게 하다, 품다, 젖먹이다, 기르다, 위로하다’(cherish, nourish, foster, comfor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3장 37절(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을 생각하게 합니다.
1. 여기서 주의할 점은 “유모”라는 단어가 남의 아이를 젖 먹여주는 유모를 가리키지 않고, “자기가 낳아서 젖을 먹이는 젖먹이 엄마”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아서 말씀의 젖을 먹이는 영적 엄마로서, 애정과 정성으로써,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모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2. 그리고, “유순하다”는 뜻은 엄마가 젖먹이 아기를 위해서 사랑의 희생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자식을 낳아서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는 아기가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어떠한 희생도 아끼지 않고, 아기를 위해서 사랑의 헌신을 합니다.
3. 자식도 커서 독립생활을 하게 되면, 아무리 그동안 기른 엄마라도, 자식이 엄마의 지나친 간섭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은 지 일 년도 못 된 갓난아기 같은 상태였으므로, 바울 사도의 애정과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참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하여 유순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중직자들과 여러 직분자 여러분!>
우리 교회도 바울처럼, 새가족들이나 아직 신앙이 어린 성도들에게 가장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잘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분위기가 새 신자를 돌보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교회 대표기도도 중직자를 시키지 않고, 일부러 새신자들을 시켜서 성장시킨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까지는 못할지라도, 기성 교인들이 최우선으로 관심과 배려를 새 가족과 신앙이 어린 성도들에게 쏟아주시기를 바랍니다!
8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으로만 젖을 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원한다고, 데살로니가 성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8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aving so fond an affection for you, we were well-pleased to impart to you not only the gospel of God but also our own lives, because you had become very dear to us.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οὕτως ὁμειρόμενοι ὑμῶν
so yearning over you
‘사모하여’(ὁμειρ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yearning over) 현재 계속 사모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εὐδοκοῦμεν μεταδοῦναι ὑμῖν οὐ μόνον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οῦ Θεοῦ
we were pleasing to have imparted to you not only the gospel of the God
‘주기를’(μεταδοῦν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imparted) 단호하게 나누어주는 것을 가리키며, 원형(μεταδίδωμι)은 ‘한 몫을 나누어주다’(give a share of)는 뜻입니다.
‘즐겨하다’(εὐδοκοῦμεν)는 미완료과거로서(we were pleasing)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 목숨까지
ἀλλὰ καὶ τὰς ἑαυτῶν ψυχάς,
but also the our own lives
직역하면 ‘우리들의 목숨들까지도’(주기를 즐거워한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διότι ἀγαπητοὶ ἡμῖν ἐγενήθητε.
because beloved to us you were become
직역하면 ‘너희가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됨이니라’는 동사(ἐγενή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were become) 과거에 확실히 사랑하는 자가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는 젖 먹이는 것만이 아니라, 아기를 위해서 목숨도 주기를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는 어느 때보다도 아기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중직자들과 직분자 여러분!>
어리고 힘든 성도들을 사모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제 경험상 목회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을 주십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마치 젖먹이 엄마가 젖먹이 아기를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중직자들께서는 어린 신자들을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교회 생활을 오래 하신 어떤 분들은 처음 사랑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장점이 보이지 않고, 자꾸 책잡을 것만 보여서, 책망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친부모가 사랑하는 딸 집에 가보면 도와줄 것이 2백 가지가 보이지만,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에 가보면 책잡을 것이 2백 가지가 보인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을 많이 하고, 소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어머니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4.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중직자 여러분>
신앙이 아직 어린 성도들을 자녀같이 사랑으로 잘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은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데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남에게 대접받고, 존경받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수님을 모신 성도들은 부모와 같이 성도들을 자녀들같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데서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모든 직분자들께서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셔서 행복한 우리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5:1-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골로새서 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3. 우리 예수님께서 직분자에게 사명을 주실 때,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1)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의 대표자인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실 때,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아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느냐?”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느냐?”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신 것은 “네 마음 속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구제를 받고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얻어먹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저 사람이 구제물 주어놓고, 나를 무시하고, 내 위에 군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초라해지고, 더욱 행복감이 없어집니다.
(2) 그렇다고 사랑은 “방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가는 사람에게는 그 길로 가면, 망한다고 일깨워 주어야 사랑입니다.
잘못 가고 있는 사람이 그 길로 가다가 가정과 인생이 파멸당할 것을 내다보면서도, 그대로 방임하는 것은 마치 “자살 방조죄”와 같습니다.
이번에도 젊은 남녀가 사랑에 실패하여 여자가 죽겠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남자가 가만두었다가 “자살 방조죄”로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9절에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으로 젖을 먹였고, 목숨까지 주기를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교회에 직분을 맡으신 중직자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 바울 사도의 마음을 본받아서, 믿음이 어린 성도들과 교회의 새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관심을 갖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행복한 우리 교회가 되고, 부흥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