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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7-12절 주님을 위해서 삽시다
1. 전 시간에는, 음식 문제와 안식일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강한 자유자가 믿음이 약한 율법주의자를 잘 포용해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전에는 성도들에게 잘해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의 모든 삶이 오직 주님을 위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오늘은, <주님을 위해서 삽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not one of us lives for himself, and not one dies for himself;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Οὐδεὶς γὰρ ἡμῶν ἑαυτῷ ζῇ,
no one for of us for himself lives
직역하면 ‘우리 중에 아무도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는’(ζῇ)은 현재형입니다(lives).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καὶ οὐδεὶς ἑαυτῷ ἀποθνῄσκει·
and no one for himself dies
‘죽는’(ἀποθνῄσκει)도 현재형입니다(dies).
1.우리 성도들은 모두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고, 자식을 위해서는 깜빡 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 믿는 성도는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2.그런데, 율법주의와 자유주의 성도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가 <주님을 위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자나 자유주의자가 자기를 위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산다면, 모든 차이점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공통점만 있으면, 다른 모든 차이점들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생활을 하시면서, 자기와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오직 주님을 위한다는 마음 자세로 서로 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성도님들, 주님이 주관하시는 아름다운 교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69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or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therefore whether we live or die, we are the Lord's.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ἐάν τε γὰρ ζῶμεν, τῷ Κυρίῳ ζῶμεν,
if both for we should live, for the Lord we live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산다면, 주님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살아도’(ζῶ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이고(we should live), ‘살고’(ζῶμεν)은 현재형입니다(we live).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ἐάν τε ἀποθνήσκωμεν, τῷ Κυρίῳ ἀποθνήσκομεν.
if also we should die, for the Lord we die
직역하면 ‘또한 만일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가 주를 위해서 죽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죽어도’(ἀποθνήσκω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이고(we should die), ‘죽나니’(ἀποθνήσκο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die).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ἐάν τε οὖν ζῶμεν, ἐάν τε ἀποθνήσκωμεν,
if both therefore we should live, if also we should die
‘사나’(ζῶ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이고(we should live), ‘죽으나’(ἀποθνήσκωμεν)도 현재가정법 동사입니다(we should die).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τοῦ Κυρίου ἐσμέν.
the Lord’s we are
여기 동사(ἐσμέν)는 현재형입니다(we are).
1. 위대한 선언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예라는 것입니다.
2. 오늘날은 자유 시대이기 때문에, 노예가 없습니다.
그러나, 술의 노예도 있고, 노름의 노예도 있고, 성의 노예도 있고, 돈의 노예도 있고, 게임의 노예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잠이 오면 자야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인이 된 사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예수님, 성령님께 물으면서 행동합니다.
주님이 자라 하면 자고, 주님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주님이 쉬라 하면 쉽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된 삶입니다. 할렐루야!
4. 오늘날 교회 일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께 종노릇 하는 성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조지 뮬러>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멀리 있는 빵집 주인을 감동하셔서 빵과 우유를 고아원에 갖다주게 했습니다.
가난한 성도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집사님을 감동하셔서 돈을 갖다 줍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노릇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정이 화목하시고, 교회도 화평하고, 한 평생 평화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52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 주소서
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o this end Christ died and lived again, that He might be Lord both of the dead and of the living.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εἰς τοῦτο γὰρ, Χριστὸς ἀπέθανεν καὶ ἔζησεν,
to this for, Christ died and lived again,
‘죽었다가’(ἀπέθανεν)는 부정과거 동사로서(died),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확실히 죽으신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시 사셨으니’(ἔζησεν)도 부정과거 동사로서(lived again)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확실히 부활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ἵνα καὶ νεκρῶν καὶ ζώντων κυριεύσῃ.
that both dead and living He might be Lord
직역하면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그가 주장하시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주가 되려 하심이라’( κυριεύ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인데(He might be Lord) 원형(κυριεύω)은 ‘주관한다, 다스린다’(be lord of, rule over)는 뜻입니다.
‘산 자’에서 동사(ζώ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living) ‘살아 있는’이란 뜻입니다.
1. 이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즉, 예수님께서 목숨을 주시고, 나를 마귀와 죄와 지옥으로부터 건져주셔서, 좋으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마귀가 나의 주인 노릇을 할 때는, 언제나 죄를 짓게 만들고, 죄로 인한 저주와 사망을 당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니까, 언제나 생명을 주시고, 더욱 풍성히 주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10. 마귀는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예수님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렐루야!
2.이처럼, 9절에서 <예수님이 우리는 주님>이란 말씀은, 우리가 직장 선택이나, 결혼할 때나, 이사갈 때도, 자기중심이 아닌 <주님 중심>으로 선택하면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무당이었다가 예수님을 믿는 <김해경 씨> 말대로, 무당 점쟁이 한테 가서, 어느 직장, 어느 배우자, 어느 곳에 이사하는 것이 <나에게 줗을까> 물어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어느 길로 선택해야 <주님이 기뻐하실까> 생각하면서, 기도하시고, 성령님이 마음에 확신주신 대로 결정하십시오!
이기적 기도가 응답 안 되지, 주님 위한 기도를 하면, 성령님께서 쉽게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56장>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10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you, why do you judge your brother? Or you again, why do you regard your brother with contempt? For we wi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God.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Σὺ δὲ, τί κρίνεις τὸν ἀδελφόν σου;
you then, why judge you the brother of you?
직역하면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판단하느냐’(κρίνεις)는 현재형입니다(you judge).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ἢ καὶ σὺ, τί ἐξουθενεῖς τὸν ἀδελφόν σου;
or also you, why do you despise the brother of you
직역하면 ‘또한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멸시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업신여기느냐’(ἐξουθενεῖς)는 현재형입니다(you despise).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πάντες γὰρ παραστησόμεθα τῷ βήματι τοῦ Θεοῦ.
all for we wi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God
‘앞에 서리라’(παραστησόμεθα)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stand before), 원형(παρίστημι)은 ‘곁에’란 뜻의 전치사(παρά)와 ‘서 있다’라는 동사(ἵστημι)의 합성어로서, ‘곁에 서다, 나타나다, 앞에 선다’(stand by, appear, present before)란 뜻입니다.
1.로마 교회에는 형제를 판단하고 업신여긴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 성도는 자유주의 성도를 향해서, 판단과 업신여기는 말을 했습니다.
아무개 집사는 포도주를 맘대로 먹고 다녀...
아무개 집사는 고기도 마음대로 먹고 다녀...
아무개 집사는 거룩한 주일에도 자유롭게 살아...
반대로, 자유주의 성도는 율법주의 성도를 향해서, 판단과 업신여기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집사는 고기도 마음대로 못 먹는 초신자야....
아무개 집사는 포도주도 마음대로 못 먹고 다녀...
아무개 집사는 주일날에 슈퍼에도 자유롭게 못가....
2.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판단과 업신여김이 없습니까?
아무개 집사는 술 먹고 다녀...
아무개 집사는 담배 피고 다녀...
아무개 권사는 새벽기도도 안 나와....
아무개는 헌금 명단에 한 달 내내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아...
3. 우리는 이런 신앙적 차이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1) 그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즉, <너>와 <나>가 방법적인 면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종 된 삶에는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2) 서로 간에 방법 면에서 다를 수 있다고 말씀할 때는, <너>라는 대명사를 썼고, 원리적인 면을 말씀하실 때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이 부분 <신앙 자유의 문제>에서 가장 강조되는 말씀은 <주님>이란 단어입니다.
6-9절에서 7회나 나오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란 말씀까지 합치면, 10회나 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확실히 섬기기만 하면, 사소한 차이점들은 모두 용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4.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얼마큼 <주님을 위해 살았고> 얼마나 <나를 위해 살았는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각자가 자백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형제를 감싸 안고, 얼마나 형제를 이해하고, 얼마나 형제를 사랑했는가에 대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를 위해서> 잘 살았는가를 물어보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주님에게 얼마나 형제를 사랑했는가 심판 받을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형제를 사랑하며, 감싸 안고 사시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69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11절.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t is written,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SHA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SHALL GIVE PRAISE TO GOD."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it is written: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wi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will give praise to God.
기록되었으되,
γέγραπται γάρ,
It has been written for,
직역하면 ‘왜냐하면—-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기록되었으되’(γέγραπται)는 현재 완료 수동태입니다(It has been written).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Ζῶ ἐγώ, λέγει Κύριος,
live I, says Lord
직역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아있나니’란 뜻입니다.
‘가라사대’(λέγει)는 현재형이고(says), ‘살아있나니’(Ζῶ)는 현재형으로서 ‘살아있다’는 뜻이고(live), 이 문장에서 ‘내가’(ἐγώ)가 강조되어 있어서 ‘바로 나는 (살아 있나니)’란 뜻입니다.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ὅτι ἐμοὶ κάμψει πᾶν γόνυ,
that to me will bow every knee
‘꿇을 것이요’(κάμψει)는 미래형입니다(will bow).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καὶ πᾶσα γλῶσσα ἐξομολογήσεται τῷ Θεῷ.
and every tongue will confess to the God
‘자백하리라’(ἐξομολογήσεται)는 미래형이고(will confess), 원형(ἐξομολογέω)은 ‘안으로부터’란 전치사(ἐξ)와 ‘동일한 것을 말하다, 고백하다’( speak the same thing, confess)란 동사’(ὁμολογέω)의 합성어입니다.
12절.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each one of us will give an account of himself to God.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
ἄρα οὖν, ἕκαστος ἡμῶν περὶ ἑαυτοῦ, λόγον δώσει τῷ Θεῷ.
So then, each of us concerning himself, account will give to the God
‘직고 하리라’(λόγον δώσει)란 말은 ‘어떤 개념을 구체화한 말’(word as embodying an idea)이란 명사(λόγον)와 ‘드릴 것이다’(will give)란 동사(δώσει)로 되어 있습니다.
1.모든 무릎이 예수님께 꿇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 그러므로, 자신의 주장대로 살지 마시고, 예수님의 뜻대로 형제를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교회에서는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마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성경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는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교회에서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굴욕감을 갖고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면 다 같이 귀한 존재로 보이고, 협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소한 문제들 가지고, 서로 싸우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정말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의 화평을 이루어 가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52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 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