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송동 자등1리 신벌 사곡리 마일리~~)
엄옹년할머니 89세, 김화 생창리가 고향
할아버지는 7년전에 사망, 현충원에 오라했는데 고향 선산에 묻음
6.25당시 중사까지 달고 전투참여, 수당을 받고 살았음
처음 전쟁때는 뭔지도 모르고 났고 갑짜기 국군이 올라 온다고 피난가야 한다고 해서 오성산 계곡으로 들어갔는데 아니다 싶어서 나와서 생창리에 그대로 있었음
당시에 무고한 사람들 잡아다 많이 죽였단다
공산당들이 이렇게 저렇게 굴리어 죽인단다
그냥 땅파고 묻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더니 또 갑자기 중공군과 북한군이 내려와 일부는 남쪽으로 피난갔지만 안가고 집안이 산 속에 꼭 숨어 있었음
"더구나 여자라 보이면 안된다고 해서~~!"
그러다 북한군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옴
군에 갔다고 속이기도 하고 요리조리 계속 피해다녀 북한군으로 안끌려감
그러니까 오월 단오때쯤 되었는데 미군이 들어와 다 나오라고 해서 산속에서 나오니 차에 태워 포천 비석거리, 내촌에 갔다내려~
이때 할아버지는 아군으로 입대해서 중사까지 달고 제대했음
휴전이 되고 고향이라고 올라오니 아무것도 없고 군인들과 군인가족이 엄청 많이 있었음
고향을 못가고 이곳 하송동(자등1리)에 군인이 집을 지어주어서 지금까지 살고 있음
군인들이 고마움~~!
오성산에는 전쟁을 많이 했는데 비행기들이 어찌나 쏘아대는지 정말 무서웠음
그곳에 엄청 많이 군인들이 죽었다는 이야기!
최복진어르신(85세), 가평이 고향
전쟁나기전에 학도병으로 지역 치안대했음
전쟁이나서 모두 후퇴했지난 4~50명이 산속으로 숨어들어 공산군과 숨바꼭질 했음
그러다 북진해서 올라갈때 나와서 한 3개월 치안대를 조직 패잔병과 지역빨갱이간 전투
본인은 용수목 위 국망봉에서 중공군에 포위
17연대 수색대에 편성, 죽기살기로 빠져나와 밑으로 후퇴하여 상판리로 들어감
동네사람들이 밥을해서 주어 2끼를 굶고 정말 고맙게 배를 채웠는데 바로 다시 중공군 기습으로 하판리일대에서 다수 희생
중공군이 말을 타고 나타남
본인도 여기서 부상, 그런데 군번이 없으니~
그때는 무식할때라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않고 다 그런줄 알았는데~
그당시에 지역별로 많은 학도병들이 이름도 못남기고 군번도 없이 이슬처럼 사라졌다~!
나라위해서 당연하게 그렇게 해야했다고~!
국망봉에 많이 죽었고 화악산 어딘가에도 그리고 하판리일대에서 17연대 포위되어 죽었다고 한다, 산을 넘어 가평 북면 도대리 적목리에 들어가 다시 또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지금 남은 것은 상처 뿐이고 군번도 없으니 혜택도 못받고~
형수님이 고향이 가평 마일리란다
동네는 좌익이 많아서 옛날부터 편가르기가 있었는데 한 2km는 길게 동네가 되어있단다
전쟁이 나서 동네 청방대들이 숨어들고 좌익이 판을 친다
그러다 여기저기 일부 사람들이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벌어지니 상호 견제가~
그런데 국군이 들어왔다, 북진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치안대 판이다, 바로 형수 오빠되는 분이 이곳 대장으로 M1소총을 휴대하고 4~5군데 초소막을 지어 보초를 서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당시 인민위원장 하던 사람을 잡아서 족처 버렸는데 그 아들이 5명인데 그 중 한명이 인민군 되어 패잔병에 합류했단다
국군은 북으로 가고, 자체 치안 유지하는 가운데 1.4후퇴전에 패잔병이 기습을 했다
대낮에 100여명이 들이닥쳐 1개초소가 완전히 포로가 된 가운데 한 명이 그만 암구호를 알려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밤이 오고 10시에 일제히 그리고 유유히 들어오는 북한군, 총 한방 못쏘고 모두 죽었단다, 무려 38명이~~!!
그래서 한날에 제사가 되고 나중에 7~8명을 제외하고는 시신을 다 찾아갔다
4~50명이 되었는데 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여기저기 모여든 친인척중에 대원으로 들어와 있던 사람들, 혹은 그 친구들이 있어서 사실 다 찾아갈수가 없었다!
더구나 마일리에 유명한 금광이 있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돈벌러 와서 많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연고자도 모르니 연락도 못하고~~~ㅜㅜㅜ
그러니 이 사람들이 참전용사인지 그저 개죽음인지 누가 증명할것인가~~!
바로 형수님의 오빠도 그 중 한사람으로 동네가 온통 불바다 되어 호적도 다 타버린 상황에 형제 부모 다 죽고 고향을 떠나 와수리로 들어 와서 가호적을 만들다 보니 자연 오빠는 들어가지 않아서 증명자료가~
한국인이 아닌 것이다, 태어난 기록이 없다
이걸 나는 어떻게 비군인전사자로 할수 있을까~~!
벌써 2010년도에 이 문제로(인정못함)지역 군부대관계자가 저를 엉퉁한 이야기로
꽂꽂장수이야기를 꾸며서 기무사에 찔러서 곤욕을 치른 그 사연이 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국가배상이 따르는 문제로 증빙자료나 인후보증이 없으면 정말 전사자 안됩니다. 누가 있습니까?"
"형수님이 알고 있고 그 당시를 아는 분이 아무도 없다"고 하신다
모두 죽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2년전에 묘를 파서 화장해 선산에 모시려 했는데 군 소령이 본인이 육본에 알아서 조치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증빙 자료가 없어서 안된다고 했단다
그러니 형수님도 나이도 많은데 오빠를 어떻게 처리해야겠는데 이제 가평도 가기 힘들다고 한다
우우, 나는 소주 한병을 가져와 마루에서 잔을 올리고 꿇어 엎드렸다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밖에 못하는 저를 이해해 주세요~!"
"힘을 주십시요, 제가 거듭나는 날에는 한번 열심히 진실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토록 노력하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우셨다, "고맙소~!"
장병문아저씨,68세 지역 토백이다
"저기 길 아래 비닐하우스 옆 공동묘지인가 있지요, 누가 무명용사 묘지라고~~!"
"누가 그래요, 거기 동네 사곡리 사람들 공동묘지인데~~!"
"아니 그렇게 제보가 와서 조사~"
"거긴 정부 땅이고 옛날부터 어른 애들 다 갔다 묻었어요, 우리 할머니도 계신데~~!"
사실 두 배 크기인데 길 내면서 남쪽으로 반은 개장등 처리 되었고 지금 또 처리할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산을 밀고 있는데 여기도 격전지로 유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교통호등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흔적은 못봤다고 한다
공사기간등으로 신고 않고 그냥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하니 절대 그럴리 없단다
여기 전투는 오성산과 계웅산 천불산쪽에서 많이 하고 동네에서는 스쳐갔다고 어른들이 남긴 이야기란다
"사장님, 혹시 군관련 유품이나 뼈가 나오면 연락주세요~!"
비는 소리없이 구름 밑으로 내린다
멀리에 오성산이 그리고 계웅산이 살짝 머리를 내밀고 날 오라한다
저기 천불산은 천불은 보이지않고 큰 바위가
하얀가슴으로 날 안아준다
적어도 우리 2사단이 저곳을 오를 때 중공군 어린 병사가 발목에 쇠고랑차고 기관총을 쏘아 대다 죽었다고 한다(2사단 참전용사 증언)
우리 국군은 얼마나 많이 숨져갔을까~~!
대성산 밑 풍암리에 큰 저수지가 생겼다
김화읍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다
생창리 마을 서쪽 야산에 뚫어진 굴속에 당시에 학살된 원혼들의 메아리가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