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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 논리 How to Write Logical Essays
---전문비평 시대를 대비하며--
한국미술 비평이 미술과 문학의 중간지대라는 특수한 무풍지대에 서식하였고 육성되어 온 사실은, 오늘의 미술비평이 기준 하나 설정 못하고 방법론에 있어서도 무원칙, 무정견하게 된 원인의 하나이다.
또한 표현 방식이나 미술사 또는 의식에 관한 구체적, 분석적 논평은 드물었다는 평가가 오늘날의 미술 평론의 양상을 그대로 지적하는 것이고 보면, 비평 부재, 방법론 부재 등 한국미술평단의 반성적 측면을 미술비평의 제3세대를 통하여 어제와 오늘을 진단해 보고, 평론의 철저한 논리를 앞세운 전문 비평시대를 열 수 있는 전망과 분석 등을 고찰하여 미술평론의 바람직한 진로를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한국 미술 비평의 제 3세대
미술비평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게는 미술비평가 자신들에서부터, 넓게는 화가나 문필가, 문화부기자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이 그들이다.
비평가들이 평문을 비평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평부재에 관한 것, 방법론 부재에 관한 것 등 반성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다.
이를테면 이경성은, "한국 미술 비평이 미술과 문학의 중간지대라는 특수한 무풍지대無風地帶에 서식하였고 육성되어온 사실은, 오늘의 미술비평이 기준이나 설정 못하고 방법론에 있어서도 무원칙無原則, 무정견無定見하게 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경성이 1956년에 발표한 글이므로 아마 그 이전의 미술비평을 평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이구열이, 근대에 있어서 전람회의 비평적 소개, 계몽적 시론, 새로운 회화론, 미술관美術觀의 피력 또는 주장으로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계몽주의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었던 데 반해 서양미술의 소개와 이해를 위한 글들이 참신한 미술론의 성격을 띠는 예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표현방식이나 미술사, 또는 의식에 관한 구체적, 분석적 논평은 드물었다"라고 지적한 것은 1987년 오늘의 미술 비평을 비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러한 지나간 날들의 평가가 오늘날 미술평론의 양상을 지적하는 듯이 느껴지는데 있다.
미술비평가들이 지적한 문제들은, 비평가 자신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화가인 노원희는,'스노비즘과 폐물정보로서의 비평'에서,"비평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이건 미술활동이 실제적 차원에서 ‘70년대와 같이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 비평할동은 한번도 비판을 받게 되는 일이 없는 무사안일의 게임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한갓 삶이 낳는 특수한 형태의 폐물정보로서 퇴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질타한다.
만약 이경성, 이구열 양씨의 의견이 오늘날에 설득력이 있고, 노원희의 비평이 근거를 가질 량이면, ’70년대까지의 미술 비평가들은,'한갓 삶이 낳은 특수한 형태의 폐물정보를 퇴적한 것'밖에는 없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이경성이'제 3세대 미술평론가'들의 결실작업에 걸었던 희망이 ‘70년대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이 경성이 분류한 미술비평가의 세대구분을 보기로 하자.
"지금 50대 이상의 평론가를 제 1대로 잡는다면, 그들은 원시림을 개척한 선각자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적이 없다. 40대의 평론가를 제 2대로 잡는다면 그들은 제 1대가 개척한 원시림의 길을 닦는 역할을 하고, 또는 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엄격히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미술평론은 이제 기다려지는 제 3세대들에 의해서 비로소 결실이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과 비평'에서 김인환이 인용한 이경성의 이 글은 언제 씌어졌는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책이 초판 인쇄된 1980년 12월을 기준으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집필자 약력을 보면, 제 1대는 이경성, 임영방, 제 2대는 이구열, 이일, 박래경, 박용숙, 김인환, 오광수가 되고, 제 3대는 윤우학에서부터 그 이후의 평론가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70년대 이후의 미술평론에서 이 경성이 이야기하는 결실이 맺어질 것인가? 아직도 이 경성이 애석해 하는 대로,"미술평론에 뜻을 두고 장차 훌륭한 미술평론가가 되고자하는 젊은이의 수가 지극히 적다. 그것이 문제이다" 라고 토론했던 바의 문제점이 비평계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평론전쟁
김 인환은 6.25전후의 격동기 비평풍토의 일관된 특색으로,"비판구사력 억제, 긍정적 찬사일변도"라고 적고 있다. 물론 이러한 양상이 비평의 올바른 길이 아니기에, 김인환은 다시 비평의 참다운 가치회복을 위해서 자성을 위한 건전한 논쟁풍토의 유치로서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 말은 매우 건전한 발상에서 비롯되겠지만, 김인환은 비평의 핵심을 '질타하는데' 있고, 우선 잘못 부터 따지고 보자는 나쁜 심보가 작용하며, 그래서 공격적으로 나타난다고 봄으로써, 논리상 건전한 논쟁풍토가 조성되기 어려운 현실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이를테면,‘60년대의'민족기록화전'에서 작가와 평론가의 대립, ’70년대 문명대의 필화사건, ‘80년대'일제 식민지 잔해청산'의 성명서 사건 등은 한국의 미술풍토,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의 한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나 TV에 특정집단을 객관화하여 다루었을 때도 그 소재가 되는 집단이 단체항의를 하는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비평이 설 수 없는 풍토를 탓하기 전에, 먼저 비평의 한 양상을 보도록 하자, "딸년 꼬라지를 보고 사윗감을 보라"는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을 먼저 새겨 듣는 게 좋겠다.
'시대적 양심을 표현하는 미술'이란 제하에 장석원은,"최근에 열린 에꼴 드 서울의 죽음을 의미 하고 있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 죽음의 이유로서 장석원은, 1. 현실의 기반 없이 공허하게 되뇌어지는 미술은 의미가 없다. 2. ‘70년대에 패배했던 토틀로지Tautology의 논리가 공허하게 계속되고 있다. 3. 환상을 깨는 일은 현실의 기반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세 가지 항목을 들고 있다.
그리고서,"에꼴드 서울의 종막은 슬프다"라고 만가輓歌까지 곁들이고 있다. 과연 위의 세 가지 항목의 이유가 그 유파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장석원의 진단대로 에꼴드 서울이 죽었는데 내년에 다시 전시회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쩌면 에꼴드 서울이 자체 해산하는 것이 또 하나의 죽음이라면, 그것은 두 번 죽은 것이며, 내년에 다시 전시회가 열리면, 그것은 에꼴뜨 서울의 부활을 의미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죽음'이란 성급한 진단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비평의 양상은 다분히 평론전쟁의 소지를 엿보이게 한다. 즉, 특정작가나 미술 그룹을 원색적인 용어로 매도하고, 작가나 그룹의 인신공격 내지는 각목공격을 유발하면, 매스컴이 비로소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때 늦게 떠들고, 그리고 미술비평가들의 반성칼럼에, 한국미술비평의, 그리고 미술계의 척박한 풍토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서 젊은이들이 미술비평을 기피하는 이상기류를 유발한다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보이는 듯 하다는 것이다.
평론은 공격일 수도 있지만, 방어이기도 하다. 때로는 배수진을 치기도 할 것이며, 상대의 뼈를 베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이도록하는 고육지계苦肉之計도 써야할 필요가 있는 험난한 길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봐 주건 사회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혀를 내밀 때도, 평론가는 글자하나 마침표, 쉼표 하나에 예상되는 공격을 대비하는 포석을 깔아야한다.
비평은 흠 찾기가 아니다 라는 말은 비평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좋은 표현이다. 인신공격이나 개인예찬이라는 양 극단의 태도를 지양하고 중도中道를 지향하는 필요성이 어찌 비평에만 있을까마는 예술가라는 특이체질의 개인들이 모인 예술대에서의 비평은 자칫 휴유증으로서 또 다른 비평, 즉 말하자면 인신공격이나 활자로 기록되는 사료史料에의 무서운 악영향을 낳게 될 소지를 안고 있다.
비평가는 언제나 불청객이며, 달갑지 않은 동네 시어머니이며, 그러면서도 없을 수 없는 위치에서 용케 중도를 지켜나가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미술평론에 대단한 철학을 내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고전미학내지 철학에서, 사회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현상학이나 분석철학, 언어철학, 기호논리학, 또는 구조주의 이론과 용어들이 놀랄만한 기억력과 감탄할만한 범위를 자랑하면서 미술평론의 한 방법으로서 등장하는 경우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혹은 철학자의 이름이, 혹은 어느 이론의 핵심이 평문에 인용되어지기도 한다. 진정 이들이 미술평론의 영역을 나름대로 학문적 깊이로 외연 하려는 시도는 경탄할만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한 글을 접하는 순간, 숨이 막히는 압도감을 느끼게 된 경험이 아마 이런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종종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사람에 따라서는 그 글이 인용 되었던바 철학자의 견해를 좀 더 알고자 관계서적을 뒤질 수도 있고, 그 인용부분이 평론의 논지와, 또는 해석하고자 하는 작품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찾아내려고 미간을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평론은 적어도 철학자나 철학도, 미술평론을 전문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특수층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비교적 문장 독해력이 요구되지 않는 창작에 몰두하느라 평론가가 인용한 철학자의 글을 읽어본 일이 없는 화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대중, 혹은 우연히 들린 전시회에 손에 쥐어진 전시회서문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미술평론은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림이나 미술현상에서도 골머리를 싸매는 일반대중에게, 평론 을 통해서 이에 비슷한 인식에로 접근하겠다는 사람들에게도 그 이해의 길을 열어주는 데는, 사실상 미술자체의 이야기 만으로서도 그들에게 부담스러울 수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의 이야기에 그림의 이야기가 아닌 딴 이야기가 나올 때 오는 혼란도 평론가라면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돌을 든 사람의 경우처럼 전투적인 형식을 띤 작업에서조차 '그의 그림이' 매몰차게 투쟁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 보편성을 간직한 강인함을 보인다. 좀처럼 분위기나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만한 튼튼한 체질적 의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 글은, 장석원의 '시대적 양심을 표현하는 예술'에서 김진렬의 그림에 대한 평을 발췌한 것이다. '' 안에서'그의 그림이'라는 말이 있어야 원문이 되는데, 예를 들기 위해서 생략해 보았다. 생략된 대로의 윗글만을 읽고 평자評者가 누구의 어떤 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어떤 특수한 감관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아마 평자가 그림과 맞닥뜨리지 않고 스스로가 만든 대명제, 즉 시대양심이라는 것에 그림을 비추어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즉,'형상성을 축약해서 정의한다면, 시대적 양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장석원은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형상성이란 어떤 것인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것인가, 어떤 미술사조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장석원이 이끌어 들인'시대양심'은 1930년대의 시대정신이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박래경이 여기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한 시대의 정신이나, 또는 시대정신이니 하는 말로서 구체적인 미술작품을 해석하려들 때만큼 허망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알고 쓴 것도 읽는 사람이 모를 때가 있다. 하물며 자신이 모르는 말, 자신이 인용하면서도 뜻을 모르는 말을 썼다면,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될 까닭이 없다. 또한 논리의 비약이 심한 글의 진술내용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거나, 정의된 단어나 구문이 다른 해석을 가질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글이 애매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에 아마도 작문의 능력이 있거나 문장을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김현처럼, "그림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자꾸만 작품 교사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은 학설도 이론도 논리도 아니다. 더욱이 이 시대의 미술은 그 자체의 특성을 깊이 공감해보지 않고서는 정의할 수 없는 긴요함을 가지고 있다."
장석원의 윗글에서, 미술이 학설도 이론도 논리도 아니라는 말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기로 하더라도, 그러하기 때문에 미술현상이나 미술작품을 다루는 글이 학설도 이론도 논리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결과로서 이 글이 나왔다면, 그것은 따져 볼만한 것이다.
먼저, 어느 시대의 미술인들 그 자체의 속성을 공감하지 않고서 정의가 될 수 있을까? 다음, 윗글의 '긴요함'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글이란 원래 긴요하다고 생각해서 기록으로 남겨놓으려는 방법의 하나일 때, 굳이 필요하다는 것을 긴요함이라는 말로써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평론은 논문이다
미술비평에서 방법론의 부재라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지만, 어떤 것이 미술비평을 있게 하는 방법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안 해온 것이 상례이었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인이 체질상 총체적이고 직관적이어서 이러한 대명제만 제시하면 그 나머지는, 즉 방법론에 따르는 번거로운 절차는 저절로 따라오는 연역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머리 좋은 한국인에게 그런 자질구레한 것을 제시한다는 것은 단군 할아버지의 혈통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해서 제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희귀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어느 고고학자처럼, 자신의 방법론이 희귀한 것이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방법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귀납적일 수밖에 없다. 방법론이라는 대명제를 향해서 평론가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평론가일지라도 그가 최종적으로 대하게 되는 작품의 앞에서 그 방법론을 수학의 공식처럼 대입하기에 작품이란, 더욱이 많은 작가의 헤아릴 수 없는 만큼 다양한 작품에서의 발언이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비록, 이 공식에 따라 평론이 씌어졌다고 하자, 그것은 바로 그 공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어떤 공식에 따른다는 것은 일회적일 수도 있는 것이, 대중은 의외로 획일화된 진술양식이나 소재에 쉽게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의례 미술 평론이라면 평론가마다 독특한 방법이 있고,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희귀한 시각을 가진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쓰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많은 미술평론이 그 방법을 딴 예술이나 미술외적인 방법에 의존해왔고, 현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진술 방법이나 어휘를 써왔기 때문에 이러한 대중의 오해는 깊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평론이라는 말은 그 이전에 평론이라는 말에서 시작하고, 평론은 논문이며, 논문은 글이라는 식으로 환원될 수 있고 보면, 평론은 글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이 바로 미술평론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글에도 국민학교 학생의 작문이 있고, 격식을 갖춘 논문이 있는 것이고 보면, 평론이, 더우기 전문평론이 어떠한 범주에서 글이라는 이름을 표방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논문이 논리를 앞세우게 되고, 논리의 전개방법으로는 글로 나타날 때 문장작법에 의존하게 된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나 서론, 본론, 결론, 또는 연역, 귀납 등 오랫동안 문장작법의 예로서 알려져 온 숱한 방법이 있지만, 이것이 미술평론에 들어서서 특히 전시회 서문에까지 가게 되면 개인 평론가의 문장수완이라는 입장에서 묵살되어버리고 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러므로, 서두에 "회고컨대 작가와 나와의 교류는 어언 10년이 흘러가고..."등으로 시작해서 결론으로서,"열심히 해보기 바란다.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따위로 얼버무리는 서문도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평론은 논문이다. 미술 평문은 미술에 관한 논문이다. 굳이 말뜻을 밝히자면, 비평적인 미술논문이 될 것이다. 논문은 논리적인 글이다. 즉, 논문에 논리를 빼버리면 거기에는 공허한 잡문이 남는다. 붓 가는대로 쓰여진 수필과 수필과 다른 점이 그것이다.
수필이라고 논리가 없으랴마는 논리를 먼저 앞세우는, 앞세워야하는 논문과는 그 착안점이 다르고, 나타난 바 결과로서의 글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수필인 것이다.
평론은 논문이다. 이 간단한 명제에서 시작하자.
미술을 표기하는 언어
일반적으로 논문에서 거론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미술평론의 구체적인 글들에서 살펴보는 것은 미술평론이 어떠한 범위에서 글로 나타나야하는지를 밝혀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 코토琴라는 현악기의 명인이 제자들에게 언제나 수업을 하기 전에 길 건너 엉터리 악사의 연주를 듣게 했다. 제자들이 항의를 하니까, 명인선생은, 제자들이 좋은 음과 나쁜 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그 악사의 연주를 듣지 않아도 좋다고 하더라는 이야기이다.
말잇기 장난 비슷한 말장난은 사실 어휘력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나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글을 분석한 것은, 앞으로의 세대에 하나의 판례判例를 제시함으로써 차원 높은 이념이나 해석의 문제로 논점을 겨룰 수 있는 미술평단이기를 원하는 작은 바램에서이다.
백기수가 쓴 미술비평사에서 원명이 제시되지 않은 A. 리샤르는 비평을 기술적 비평, 이념적 비평, 역사적 비평, 심리학적 비평, 형식적 비평으로 나누고 있다.
또, 바네트Sylvan Barnet는 평문의 종류를 다섯으로 나누고 있다.
1. 사회학적 연구Socialogical Study- 그림의 동기, 그림의 주제가 즐겨 다루어졌던 시대상황, 시대변천에 따른 경중의 차이, 작가가 속한 계급, 후원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등등을 연구한다.
2. 전기Bibliography- 작가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친 사람들, 정신분석학적 측면, 또는 작가와의 영향관계.
3. 도상집필Iconography-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이미지를 식별, 추구해나가는 것.
4. 도상연구Iconology- 작품의 의미나 내용을 연구함. 그림의 해석, 문화적, 철학적 내용을 밝혀냄, 어떤 이미지에 숨어 있는 당대사람들의 문화적 태도, 또는 그 결과를 연구함.
5. 형식적 비평Formal Analysis- 비교, 대조, 분석 등의 방법에 의해 주제와 내용을 밝혀냄,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서, 스타일이나 양식, 개인적 양식과 시대적 양식을 연구함.
이 분류와 그에 따른 특징이 미술평론의 모든 것이지는 않다. 시대에 따라서, 개인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미술평론에서 미술평론의 범주 외의 것을 도입하는 데서, 또는 그 언어를 미술의 용어로 즐겨 쓰거나, 반대로 미술이야기를 하면서 미술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방법론 시비가 생길 여지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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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부대의 용병傭兵들
비평가는 아무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싸움에 보수 없는 용역用役을 제공하는 자라고 세상은 비평가를 평가한다.
그러한 까닭에 비평가는 개밥에 도토리처럼 작가군 사이에서 따돌린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비평을 긁어 부스럼정도로 생각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의 한구석에 부당하게 작가자신을 구겨서 처박아 넣는 것이 비평가로 여기기 때문이다.
'엄마 없이 잘 노는 아이 때려 울리는 것이 비평가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의외로 많다. 더욱이 예술가는 굴레 벗은 말처럼, 구속받거나 평가되며 간섭받기 싫어 예술세계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고 보면, 비평가의 가시방석은 쉽게 짐작이 갈 일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도피의 수단으로 예술을 하건, 존재의 의미를 천명하는 방편으로 예술을 택했건, 이름을 얻으려 예술사를 기웃거리건, 그것은 예술가 개인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일 뿐, 한 발짝만 외출하여 예술가로 불리거나, 예술가이기 위하여 그의 작품을 선보일 때는 타인의 시각, 사회의 주시, 나아가 예술사의 냉혹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혹은 예찬을 받거나, 눈먼 비평가의'주례사'를 찬사로 받아들일 수가 있으리라, 혹은 부당하게 사이비 취급을 받거나 엉뚱한 부류의 한 분자로 오인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것이 설혹 대중에게 일시적으로 심어져서 몰이해를 낳더라도, 그것은 결코 항구적인 평가일 수는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예술가는 누에처럼 실을 뽑아낸다. 비평가는 이 실이 잘 풀리도록, 또한 단단하게 되도록 삶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명주실로 비단을 짜는 것은 후세사가들의 일이다.
섬약한 예술가들이 걱정하는바 대중이란 이 경우,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는 옆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번데기나 주워 먹는 어린아이에 비교할 수 있다. 번데기가 삶아지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물이 뜨겁지 않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고치의 실이 어떻건 상관하지 않는다.
비평부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평가 자신만이 아니고, 예술가들도, 나아가 대중들도 즐겨 쓰는 말이다. 대중은 신나는 활극을 기대하고, 예술가들은 자기를 뺀 나머지를 도매 값으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를 바라며, 비평가들을 자기류의 해석과 견해가 딴 평가들을 이기고 역사에서 건져지는 개념이기를 원한다.
이래저래 비평가란 자는 범 코침 주는 자요, 고래를 충동질해 스스로 등터져죽는 새우 꼴이다. 그러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 일명경인一鳴警人의 힘을 가진 것이 비평가이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 속에 관통하는 흐름의 가장 생생하고 믿을 수 있는 증인이기 때문이다.
전문비평가
비평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미술사학, 미학을 전공한 사람도 할 수 있고, 화가나 신문잡지의 문화부기자도 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평생에 전시장이라고는 처음가본 시골과부도 진짜처럼 잘 그려진 홍두깨를 보고,"오매, 좋은 거"하고 얼굴을 붉힐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비평이란 사물의 선악, 미추, 시비를 가린다는 의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미술 비평가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모든 곳에서 온다. 왜냐하면 각 시대, 각 상황에 따라 비평가라는 인간들을 충원하는 방식은 각기 특이하다.
중세에는 신학자와 전도자들로부터 비평가가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카데미시앙 비평가Academic-Critic가 출현했다. 그 뒤를 이어 미술애호가 비평가Amateur-Critic들의 시대가 왔다...19세기에는 저널리스트 비평가Journalist-Critic가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시인 비평가Poet-Critic가 나왔다."
그리고 최민이 번역한 이 글의 원저자 즉 M.포레브스키는 전문 비평가Expert-Critic의 출현을 예언했다. 그것은 어느 때라도 나설 수 있는 무소불능의 익명의 선수와 같은 비평가의 시대에 대한 예언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평이라는 활동에서, 전문비평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개념의 재정의가 필요하게 된다. 비평과 평론이라는 말이 그 중의 하나이다.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더라도 비평에 대해 평론은 사물의 선악, 미추 시비를 평가하되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논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아마도 이 논리적인 진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어감이 좋아 보이기에, 오늘날 미술비평의 글에 나타난 저자의 직함은 한결같이 '미술평론가' 일터이다.
이일李逸이 '한국현대미술 속의 미술평론'에서, "미술 비평은 새로운 가능성의 개발과 그 실험이라는 과제와 대결, 그러한 추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론적 지주로서, 작가와 함께 가능한 예술이념의 추구와 이론적 체계정립에 앞장서며, 한 시대 미술운동의 추진자로서 자신의 주장을 통해 그의 예술이념을 제안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이 전문비평의 영역에 관한 것일 터이다.
이 평론이 글로 나타나면 일반적으로 평문評文이라고 부른다. 일단 평론가가 되려면 술자리에서 입으로 비평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이 논리적인 글로 나타나야한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어쩌면 술자리에서 횡설수설 지껄인 말은 말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술 깨고 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 때문에도 글을 써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박한 논리에서부터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인 글을 써야한다는 일반론까지 미술평론가에게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이 영감靈感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일군의 평론가가 있다. 물론 좋은 글은, 그것을 위한 착상은 영감에서 온다. 또, 자료 정리가 평론가의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평론가도 있다. 의당, 자료정리가 철저하면 호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게 되기도 할 것이며, 영감에서 씌어지고 독자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모두가 고루 필요한 것이 글이라는 것이지만, 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나타난 결과로서의 문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기 쉬운 글이나 이해하기 쉬운 글은 쓰는 사람이 계속 고치고 바꾼 결과로서의 산물이다.
우리가 미술평론가라고 부를 때, 논리적인 비평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떠올린다면, 철저한 자료정리의 능력을 갖추고, 영감에 의해 떠오르는 사상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으며, 나타난 결과로서의 문장이 이해하기 쉬워야한다는 전제에서 전문 비평가를 규정해보자.
그런 바탕에서 최민이 이야기하는 비평가의'최소한의 윤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참다운 비평가는 미술의 창조와 수용이라는 실체를 관념적 차원에서 굽어보며 초월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명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하는 젊은 작가들과 더불어 문제를 제기하고, 미술의 활로를 개척해나가는데 있어서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한몫을 톡톡히 하려는 굳센 의지의 사람이다.
최민의 글은 다분히'비평가의 현실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비평가의 활동 중의 큰 하나이다. 최민이 부정하는 이른바, '명상의 비평가'를 지향하는 평론가도 있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미술평론가는, 인간의 감수성의 원천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른바 시각예술작품의 향상을 위해 예술가와 보조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그의 근원적인 기능을 예술가의 행위를 의미 있는 화론의 경지에까지 외연 하는 것이다"
이 전문비평가의 시대가, 이경성이 말하는 제3세대거나, 그 후속시대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평단을 재정비해야할 의무를 지닌다. 왜냐하면, 수요공급의 불균형에서, 또는 현실적인 필요에서 양산되어지는 미술평론가는 필연적으로 저질시비를 불러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 교포사회에는 자유언론이라는 이름아래 주간지들이 마치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스러지곤 한다. 공해에 준할 만큼의 광고쟁탈전에서 탈락하는 주간지는 자연스럽게 자연도태 한다.
그러나 미술평론계는 많은 미술평론가가 저절로 평가되어 지면을 얻지 못해 탈락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고층이 있다. 왜냐하면, 저질이건 고급이건 평론가의 평문은 후세사가의 손에서 일차자료로 채택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술평론과 미술평론가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할 것이다. 이를테면, 미술평론협회에서 발간하는 미술평론회보나, 미술잡지사에서 우수한 평문을 선별, 정기간행을 한다거나, 평론가의 자격을 부여한다거나하는 것은 미술인구의 저변확대뿐 아니라, 평론가의 자질향상, 또는 자격규정에도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극단적인 예로, 미술 잡지사에서 원고를 받고서 마땅한 직함이 없어서, 또는 잡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붙여줄 양이면, 미술평론계는 우리의 고전 노랫가락, '새타령'의 한 구절처럼 될 가능성이 짙다.
새타령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 중에는...."
다시 장석원이 홍순모의 작품을 평한 글을 보자.
"그의 작품은 포리코트에 모래와 점토를 섞어 독특하게 불에 구어진 듯한 질료를 형성하는데, 이로서 인간과 손, 십자가 등 단면적인 형상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야말로 묵시록적黙示錄的인 형상들이다.
먼저 독특하게 불에 구어진 듯한 질료가 무엇일까? 이 글대로 라면 홍순모는 아마도"문둥이 모닥불에 살찐다"라는 말처럼 적당히 모닥불근처에서 그의 질료를 구웠다는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포리코트, 영어식 발음으로는 폴리코트 Poly Coat이며, 원이름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도료Unsaturated Polyester Resin Paint는 경화제에 의해서 굳어지는 도료의 일종이고 불과는 상관이 없다.
다음 묵시록적 형상이란 뭔가...불에 탄 듯한 손이나 십자가 등의 보이기 때문이라면 지옥의 형상이라는 말이 좀 더 애매하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묵시록이란 천당과 지옥, 최후의 심판, 그리고 말세사상 등 많은 것을 포함한 말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박용숙의 글을 보기로 하자.
"벽화시대의 회화는 벽면자체가 하나의 회화였으며, 동시에 꼼짝없이 건축의 일부일수 밖에 없었다"
동굴벽화는 벽화이긴 하더라도, 건축의 일부가 아니라 주거공간의 일부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그런데 벽화의 시대란 어떤 시대를 지칭하는가? 구체적으로 동굴벽화에서 경찰에 의해 철거된 민중미술작가의 벽화까지를 벽화의 시대라 부를 량이면 그것은 세계미술사의 모든 시대를 포함하게 되고 시대구분이란 의미가 없어진다.
다시 장석원의 글을 보자.
"회화는 새로운 표현방법 그대로 새로운 방법론과 미학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며, 이 점이 끈끈이 전달될 수 있는 회화자체의 밀도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분석하면 끈끈이 전달될 수 있는 회화자체의 밀도를 지닌 회화가 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방법론과 미학을 지니는 것이다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더라도 끈끈이 전달될 수 있는 회화자체의 밀도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도로포장 공사 현장에서 코울 타르 통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의 온 몸에 끈끈이 묻혀 지는 타르를 새로운 공법에 의해 도로포장에 쓴다면 이 문장이 제시하는 회화자체의 밀도가 될 것인가.
내친김에 장석원의 글을 하나 더 인용하자.
"‘70년대로부터 빚어진 모노크롬의 논리를 그대로 밀고 가는 작가로는 정화정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등을 들 수 있으리라. 이들은 작화행위의 무위성이라든지 전화면의 균질화 이외에 표현의 표기 등 종래의 의도를 계속하고 있다. 아무런 반성 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면에서 참을성 있게 지속할 수 있다는 지구력은 참으로 경탄할 만하지만 텅 비워진 관념의 자리를 그토록 맴돌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나오는 작화 행위의 무위성, 전 화면의 균질화, 표현의 표기라는 말로서 정의될 수 있는 화풍이나 사조, 나아가서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유독 에꼴 드 서울만은 아니다.
특히 표현의 표기라는 말은 너무 범위가 넓어서 전체 미술현상, 나아가서는 창작 문예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문장 만으로서는 인용문의 세 가지 정의가 작가들의 발언인지 평자의 판단인지가 애매하다.
무엇보다도, 그래서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어째서 그러한 노력들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서 장석원의 같은 글의 딴 부분을 보자. 그는 "예술이 관념의 희롱에 따라 작위되는 노리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는 관념의 반추를 끊임없이 예고하는 작위에 대해 공허한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예술'이라는 말을'평론'으로 바꾸어 놓고서 장석원이 에꼴드 서울의 내일에 대해 거는 기대처럼 장석원의 다음 글을 기대해보는 것이 어떨까...
현학
평론가는 많은 방법 중 자신이 현재 알고 있는 것, 연구 중인 것, 또는 충분한 이해와 검토가 따른 자료들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혹은 문학에서, 혹은 철학에서, 또는 사회과학에서 이 평론의 잣대를 빌려오기도 하리라.
그리고 일반대중은 이 잣대로서 빌려온 개념이나 사상가, 철학자의 이름, 그들의 이론에 현혹되기도 하고 혹은 평론가란 작가들이나 또는 자신을 포함한 대중보다 유식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되기도 하리라.
잘 걸러진 철학이론, 그것이 아니고서는 어떤 미술상황이나 작품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철학자의 이론이라면 도입되어져서 평론가 자신에게 부족할 수도 있는 설명을 제공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용어해설 하나만으로 끝나도 모자랄만한 공간, 특히 전시회 서문 등에 자기 과시라고 볼 수밖에 없는 지식을 나열하는 것은 어쩌면 예상되는 화살을 막을 방패로-이왕 비난은 받게 되어있으니까-이들 외부적인 사상이나 철학 등을 이끌어 오는 것이 아닐까? 마치 술을 먹기 전에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기름 끼를 먹어두는 것처럼 말이다.
김 현은 "비평은 지식의 예술이지만 지식의 나열이 비평은 아니다. 모든 비평은 그것이 해명하려는 작품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의미를 이끌어 내려고 애를 쓰지만 실제로 그것들이 이끌어 내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의미이다. 그 의미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비평가가 그 작품에 부여한 의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모든 것을 완벽하고 의미 있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심이 현학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가 작품에 부여한 의미를 읽는 이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비평가는 독자의 한사람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독자들 중에서도 불특정 일반대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민의 지적대로 "미술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다시 말해 작가와 소통하고자하는 천진한 기대를 지닌 불특정 일반대중이 오히려 더 비평가의 전문적 식견과 적절한 해설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송미숙은'한국화랑협회제적?'이라는 글에서,"이 전시에서 관심을 끌었던 심정수의 작품에 대한 필자의 소견으로는 표현주의 경향의 Bourdelle, Barlach, Lembruck을 한국적 소재로 번안한 Pastiche같았다"
라고 적고 있다.
이 글은 풀어쓰면 아마도 여기에 인용된 글보다는 길어질 것이다. 정작 해야 할 딴 이야기는 줄이면서 꼭 '필자의 소견'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했을까...글 쓰는 사람이 쓰지 않고 또 글쓴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글이라는 게 있을까?
이렇게 축약이 된 글을 읽노라니 발령을 기다리는 어느 교사 후보생에게 한 점쟁이의 말이 생각난다."발령이...삼사오뉴월 아니면 구시월동지섣달에는 납니다"라 했다나? 범위를 넓게 잡으면 어느 꼬투리라도 걸려들게 마련이다.
이 글에서 송미숙이 세 조각가들의 어떤 작품에서 어떠한 표현주의적 경향과 심정수의 작품이 비슷하며 어떠한 양상이 번안으로 느껴지고 Pastiche모조품, 복제, 모방이라는 프랑스어 같다고 느낀'소견'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면, 문범의 다음 글은 사고의 재빠른 흐름을 따라 잡지 못하는, 이른바 글의 속성에서 빚어진 일반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사각형의 화면Support에 그려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올라가는 일에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따라 붙어야 한다. 그것들 중에는 원근지각Perception of perspective의 문제가 꼽힐 수 있다. 이것은 실재The Real에 대한 과학적 추인을 인정하는 방법론이며 따라서 웃첼로Uccello의 맹목성이나 뒤러Durer의 정밀성을 포용하게 된다"
이것은 논리가 1. 사각형화면의 역사적 추적을 위한 전제조건 중에 원근지각이 포함된다. 2. 원근지각은 실재에 관한 과학적 추인을 인정하는 방법론이다. 3. 실재에 관한 과학적 추인을 인정하는 방법론에는 웃첼로의 맹목성, 뒤러의 정밀성이 포용된다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전개 이전에 밝혀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즉 실재에 관한 과학적 추인은 무엇인가. 또, 이 추인에 따르는 방법론은 왜 원근지각과 동질시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과학적 추인을 인정하는 방법론이 원근지각과 동일시되더라도 왜 원근지각이 맹목성과 정밀성을 포용하게 되는가 등등이 그것이다.
또 웃첼로의 맹목성이라할때 웃첼로라는 인간이 맹목적이라는 것인가, 또는 나타난 바의 그림이 맹목적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범위를 줄여 웃첼로의 어느 작품에서 보이는 구도나 색채 등의 맹목성이라고 밝혀 주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경우일지라도 그 맹목성을 진단한 것이 자신인지 딴 누구인지를 명시 해주어야하지 않을까?
다시 송미숙의 글로 돌아가 보자.
"조각분야에 있어서 이미 중견으로 이번 전시에는 키네틱 아트 풍의 새로운 작품양식을 추구하고 있는 정관모에서부터 아직 연구과정에 있는 박부찬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서구양식의 De Ja Vu 현상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데자 뷔'라는 말은 아마도 합성어이기 때문이겠지만 시중에 나오는 프랑스어 사전, 이를테면 삼화, 민중 불어사전 Larousse Ketridge, Penguin 불영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아니하다.
혹시 이 데자 뷔라는 말과 롤랑 바르트Rolland Barthes가 후기 모더니즘의 제작 방식 중에서 창작을 팽개치고 복제에 매달리는 문화양상을 가리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De Javu-Deja vu이미 읽혀진, 이미 보여진 의 뜻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러하더라도 데자 뷔 현상이란 어떠한 현상일까, 태풍이나 지진처럼 우리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현상인가? 그러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었던 것일까...화제를 바뀌어, 우리기 현학이라고 할 때, 꼭 어려운 말을 쓰거나, 고증되지 않는 말을 깔아놓기 때문에 현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쉬운 말로 쓰는 현학도 있는 것이다.
"마르꾸제가 현대 사상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차원적 사유의 위험성을 예리하게 들추어낸 그는..."
임두빈의 서평은 마르꾸제가 현대사상의 어떠한 측면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밝혀주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한 위치인가, 하찮은 위치인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서두에 34자씩이나 강조하느니보다, 혹시 마르꾸제의 이름도 들어본 일이 없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니까 마르꾸제가 어떠한 위치와 평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주는 것이 친절한 글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현학은 평자가 독자의 위치에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독자로서는 현학적인 글을 읽어 골치가 아프니 보다는 그 글을 읽기를 포기한다.
김현은,"그림을 즐기기 위해 그림에 대한 글을 읽는 나에게, 그림에 대한 글들은 사고훈련장思考訓練場과도 같다. 사고 훈련이 괴로울 때 나를 구해주는 것은 도판이다"라고 말한다.
이 글은 일반대중의 말을 속 시원히 대변해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거니와, 그럴지라면 평론이건 비평문이건, 나아가 전시회 서문이건, 이들을 써 나가는 평자들이 무엇 때문에 필요해지는 것일까...
평론은 논리이다
평문들을 분석하는 마지막에서, 평문의 논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박용숙은 '회화의 현대적 구도와 시점'에서,
"접사Close Up는 시점과 대상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거기에 비합리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의 반영이며, 동시에 회화를 평면적인 질서로 바꾸어 가는 첫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접사적인 구도는 확대경일수 있으며, 일면 현미경일 수도 있다. 하나의 대상에서 비합리적인 시각을 체험하기 위해서 시점은 별수 없이 대상의 가까이에 가야한다"
라고 첫머리에 적고 있다.
여기서 Close up이라는 말이 정의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의미이고, 그것은 사진에서의 접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판단컨대, 사진에서 렌즈를 물체에 가까이 대고 찍는다는 사전적인 의미인 것 같은데, 이 문제는, 이 단어가 마치 도깨비방망이 처럼 금 나와라 은 나와라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마술방망이처럼 쓰이는 데 있다.
즉, 시점과 대상의 거리를 줄인다는 것이 접사는 아니다. 예를 들어, 꿀을 빠는 나비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주로 망원렌즈에 접사 링이나 접사렌즈를 장착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200mm 망원렌즈에 접사장치를 장착하면 피사체와 렌즈사이는 1미터이상의 거리를 가지게 되므로, 꼭 시점과 대상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사진에서 접사는 합리적인 어떤 것을 찾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접사는, 인화확대의 경우에 선예한 화상을 얻기 위해서 대상을 될수록 필름에 크게 찍히도록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음, 회화를 평면적인 질서로 바꾸어 가는 첫 시도라는 대목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먼저 회화에서의 정의가 되지 아니한 사진 용어로서 그것이 회화를 평면적인 질서로 바꾸어간다고 정의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접사가 회화를 평면적인 질서로 바꾸는 시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해답을 유보하고서 다음 구절을 보자, 접사적인 구도는 확대경일 수도 있으며, 일면 현미경일 수도 있다고 했으니, 접사나 접사적인 구도는 회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렌즈에 관한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현미경과 확대경은 렌즈에 의해 빛의 굴절 및 수렴을 유도하여 작은 물체나 먼 곳의 물체를 크게 본다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시점과 대상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하나의 대상에서 가까이 가야한다" 라는 말은 이 단락의 결론으로서, 앞의 진술을 모두 뒤엎고 만다. 왜냐하면, 대상에서 비합리적인 시각을 찾아내기에는 오히려 광각이나 어안렌즈, 또는 이중 초점, 연 초점등의 필터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모두 대상에 ‘별수 없이 가까이’에 가지 않고서도 가능한 방법들이다.
논리에 관한 문제를 하나 더 다루기 위해 서성록의 "낯설음의 힘"을 읽어보자.
"미술은 체질적으로 젊음을 요구한다.
이는 물론 작가의 나이가 젊어 겉도는 시기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작품을 창조하는 의식이 현실에의 새로운 인식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그리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묻혀 있었던 작품 의미의 매듭을 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Art, constitutionally, demands the young and fresh. Of course, it simply means artist's age to be young, but what is to be stressed here is that a creative thinking is able to embrace the new grasp for reality therefore, the appreciator is abl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work."
이 글을 미술론으로 보아야할지, 선언문으로, 또는 전시회 서문으로 보아야할지는 모르겠으되, 말미에 미술평론가 서성록이라고 직함을 밝히고 있는 만큼, 평론 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직함에 관한 한, 사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최민의 말을 빌리면, "비평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다고 해서 그의 글이 모두 비평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주례사 또는 장황한 선전문일 수도 있고, 기만적인 속임수일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각설, 미술이 체질적으로 젊음을 요구한다는 것은 미술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서성록은 작가의 나이가 젊어 겉도는 시기를 갖추어야한다는 뜻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미술 현상의 이야기가 아니고, 미술가의 나이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연륜에 의해 다져지고, 경험에 의해 넓어지는 시야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서성록이 생각하고 있는 젊음이 지난 예술가들은, 후원에 지는 복숭아 꽃을 한숨으로 지켜보면서 눈물짓는 퇴기退妓처럼 홀로 시들어 가야할지 모른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이 언제나 젊을 수 있다면, 이 정의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풀이에 부연설명하기를, "작품을 창조하는 의식이 현실에의 새로운 의식인식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과 다음 구절은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포용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젊어 겉도는 시기를 갖추어 감상자로 하여금 묻혀 있었던 작품의미의 매듭을 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말을 보충해주면 논리와 문맥이 연결되어질지 아닐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판정할 일이다.
또, 서성록은 '겉돌다'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겉돈다는 다른 것에 잘 섞이어 어울리지 않고 따로 돌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를 분석해보면, 젊은 작가가 딴 작가들이나 화단과 잘 섞이지를 않고 따로 도는 것이, 미술이 체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럴 수가 있을까? 고립되어 제작활동을 했던 몇몇 화가들이 몇몇 화가들이 미술사에 수록되어왔다고 해서, 미술자체가 겉도는 작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한글과 영문의 이중언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글은 똑같은 문장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말과 우리 글에서 논문이 요구하는 이른 바 기승전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 전개는 한국인, 또는 동양인의 문장논리이지, 영어의 전개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하물며 이렇게 선언문 형식으로 나타났으며, 원고에서 그러했건, 사진식자에서 그러했건 나타난 바의 문장으로 볼 때 단락이 나뉘지 않고 서사시처럼 독창적인 문장 형태일 때, 단어만 영어로 바꾼다고 해서 영어권의 사람들에게 영어가 되어 주어 그대로 읽혀주고 이해가 되어줄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를 영역하여 미국인 다섯 명에게 보여 주었더니, 네 명이 왜 그 글이 시가 되어야하는지를 되묻더라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미국인이 단순한 민족이거나, 단순화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제도 속에서 살거나의 분석을 떠나, 영어의 논리전개 방법이 우리 글과 다르고, 감정 내지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인 것이다.
세계무대에의 진출을 오늘날 한국화단의 과제로 볼 때 이러한 이중언어의 구사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영어로 쓸 때, 예상되는 독자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한국의 지식인이 아니라, 감정과 논리가 다른 딴 세계의 불특정대중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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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 논리,-전문비평가 시대를 대비하며,“1987.11. 243호, pp.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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