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교실 지상강좌3: 자연농에서 보는 자급자족)
1.
먹거리 자급자족, 곧 자기 식구가 먹을 것을 제 손으로 길러 먹으려고 할 때 땅은 얼마나 있어야 할까?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그의 책 ‘자연농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집이 완전한 자연농법으로 자급체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면적은 불과 10아르, 곧 300평이면 된다. 그 안에 작은 집을 짓고, 곡물과 야채를 심고, 산양 한 마리와 토종닭 몇 마리, 그리고 꿀벌을 키울 수 있다.”
300평에서 산양과 닭 몇 마리를 키울 수 있을까? 300평이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의 밥까지 줄 수 있을까? 내 경험으로는 회의적이다. 사료를 사들이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서너 식구 먹을거리는 준다. 300평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다. 어떻게 아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씨앗이 있어야 한다. 곧 씨앗의 자급자족이다. 풀어 말하면,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자가 채종, 곧 내 논밭에서 내 손으로 씨앗을 받아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씨앗이 있어야 하나? 주곡인 볍씨를 비롯하여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작물의 씨앗이 있어야 한다.
잡곡)보리, 밀, 콩, 옥수수, 녹두, 수수, 팥, 호밀 등
뿌리 채소)감자, 고구마, 땅콩, 야콘, 토란. 당근. 생강, 우엉 등
잎줄기 채소)무, 배추, 양배추, 상추,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아욱, 갓 등
열매 채소)고추, 오이, 호박,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딸기, 오크라 등
양념 채소)마늘, 양파, 여러 가지 파, 부추, 달래 등
이밖에도 기름을 자급하려면 들깨나 참깨 씨앗도 확보해 두어야 하는데, 아무 씨앗이나 있으면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자식이 어미의 형질, 곧 모양은 물론 성질까지 그대로 이어받는 고정종이라야 한다. 종묘회사에서 구입한 씨앗은 교배종이기 때문에 거의 다 어미와 다른, 그것도 크게 다르거나 뒤떨어진 자식이 태어나는 일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열매를 맺지 않는 씨앗까지 있다. 재래종 씨앗이 좋은 것은 이 때문이다.
2.
식량의 자급자족과 아울러 그 방식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농법에 따라서는 자급자족의 정신에서 크게 벗어난 길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기계, 농약, 비료, 비늘 등 여러 농자재 사용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 길은 겉만 자급자족이지 속은 자급자족이라고 할 수 없다. 외부 의존 없이는 이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속까지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자연농에서 보는 자급자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째는 농약의 자급자족이다. 자연농에서는 농약을 일절 쓰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자연농의 논밭은 생태계가 건강하게 회복돼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먹이사슬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먹이사슬이 튼튼하면 병이 생기거나 어느 한 종이 크게 나타나 분란을 일으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먹이사슬/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경운, 곧 갈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첫째다. 땅을 간다는 것은 먹이사슬/생태계를 간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은 먹이사슬/생태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풀을 웬수로, 성가신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논밭에 풀이 많은 것이 좋다. 양도 그 종류도 말이다.
벌레마다 좋아하는 풀이 다르다. 풀의 종류나 양이 많으면 그러므로 그만큼 생태계/먹이사슬이 건강해진다. 그 위에서 무농약의 길이 열린다.
둘째는 비료의 자급자족이다. 자연농에서는 무비료, 곧 비료를 쓰지 않는다. 화학비료만이 아니다. 퇴비조차 쓰지 않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1) 땅을 갈지 않기 때문이다.
2) 김매기를 할 때 풀을 뽑지 않고 잘라 그 자리에 펴놓기 때문이다.
3) 수확 뒤에는 모든 짚을 그것이 난 곳으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4) 그것들로 논과 밭 어디에서 벌거숭이 땅이 없기 때문이다.
5) 부엌과 정원, 화장실에서 난 것들도 논밭으로 내기 때문이다.
무비료의 세계를 열려면 여기에 더해 자연농의 김매기 방법을 잘 배워 익혀야 한다. 농기구는 톱낫이다. 그것이 가장 좋다.
앞에서도 썼지만, 자연농 김매기는 뽑지 않고 자른다. 톱낫으로 숨은눈 아랫부분을 자른다. 숨은눈은 뿌리가 끝나고 줄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기 때문에 숨은눈 아랫부분이란 곧 뿌리 윗부분을 말한다. 그곳을 자르면 된다. 줄기 부분을 자르게 되면 줄기나 잎겨드랑이에 있는 숨은눈에서 새싹이 다시 나서 자라기 때문이다. 위가 잘린 뿌리는 죽는다. 죽으면 썪는다. 그렇게 뿌리는 땅속의 거름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풀은 웬수가 아니다. 풀은 작물의 가장 좋은 밥이다. 땅은 풀을 좋아한다. 화학비료나 퇴비는 그만 훨씬 못하다. 말하자면 그 둘은 패스트푸드다. 어떻게 아나? 그걸 먹은 땅은 병들고 허약해지기 때문인데, 이런 일이 전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연농을 빼고는 모두 같다. 작물이나 땅이나 풀을 먹여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
넷째는 보존 기술이다. 6월에 거두는 감자를 비롯하여 모든 씨앗이 다음 해 봄까지 탈 없이 겨울을 나도록 도와야 한다. 씨앗마다 적정온도, 곧 좋아하는 온도가 다르다. 주의하지 않으면 동해 등 탈이 생길 수 있다.
3
시야를 넓혀,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을 이루고 있는가? 아쉽게도 한국은 어느새 세계 10권의 부자 나라가 됐다고 하지만 농산물 자급률은 겨우 3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돈이 안 된다며 농사를 버리고, 돈 되는 산업에 힘을 쏟은 결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데, 그걸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해야 할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지혜라기보다는 꾀에 가깝고, 그 꾀가 언제까지 통할지 알 수 없다. 불안하다.
그 30%조차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은 농법 아래서 생산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수많은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농자재 등등. 농부는 농부대로 힘들고, 한국의 하늘과 땅과 물 또한 자꾸만 망가져 가고 있는데, 이것 또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요즘 나는 올해의 ‘자연농교실’ 참가자 중의 한 사람인 남궁선이 쓴 ‘불교로 바라본 생태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스코리모프스키라는 이의 ‘생태학은 우리 시대의 종교’라는 말을 소개하며 그 뜻을 이렇게 풀고 있다.
“생태학이 곧 종교(가 돼야 한다는 이 말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환상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며, 자연을 벗어나서 인간의 존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했음을 의미한다.”
동감이다. 우리에게는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 왜 그런가? 사찰이나 교회, 혹은 성당에 가서 그들의 텃밭을 보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제 밭이 300여평인데.. 나중에 거기다 집짓고 살아볼까는 생각도 드네요..
지난 토요일 자연농교실 수업에서 말씀해 주신 내용들을 다시 글로 옮겨 주셨네요. 자급자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된 계기가 되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