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 역자는 서문에서 ‘한국사회에서 민족은 역사적․문화적 구성물이 아닌 단군 이래 내려오는 원초적인 혈연공동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문화적 구성물로서의 민족과 민족주의의 담론이 가진 허허실실에 대한 냉정하고 엄중한 분석과 성찰이다.’라고 언급하며 이 책의 의의를 서술하였다. 이 책은 단일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혈통에 기인한 독특한 한국 민족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게 해 주고 한국 혈통 민족주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인은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에 거의 본능적인 애착심을 보이기도 한다. 식민통치와 분단의 경험이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에 대한 한국인의 본능적인 애착심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원초적인 실재로 보는가, 아니면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가로 나뉜다.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로 보는 앤더슨은 후자에 속한다. 앤더슨은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앤더슨의 관점에는 사회적 실재는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적인 명제를 깔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꾸민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이다.
저자는 민족의 발생의 시작을 문화적 필요성에서 찾는다. 이 필요성이란, 모든 불행의 마지막인 죽음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다. 종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의문을 해결해고자 한다. 곧 종교는 인간이 품는 불확실함과 사실은 우연에 가까운 불행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면, 민족이라는 개념은 더 크게 우연을 의미있는 일로 전환시킨다. 요즈음의 민족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 확실히 이때의 국가들이 민족의 구성을 위해 구성한 종교과 왕조는 적절한 문화체계였다.
하지만 인간이 민족을 더 생각하게 만든 것은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의 변화에 있다. 민족의 개념이 크게 발달 하기 시작한것은 18세기 이후인데, 저자는 인쇄매체의 발달이 여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인쇄술의 발달은 곧 많은 지방어를 통합해 민족어를 형성하게 하였고, 사람들의 생각을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급속히 발달한 민족의 개념은 많은 지배 세력에 의해 이용되어, 지난 2세기간 수많은 죽음을 부르기도 했다. 지배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관주도 민족주의는 민족을 강요, 확장하는데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는 제국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에 희생양이었다고 할 수있다.
종교적 공동체와 언어 공동체로 양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묶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근대적 의미의 ‘국가’의 성립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을 토대로 국가와 민족은 하나가 되었으며 단일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문화적, 언어적 공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애국심과 인종주의는 ‘문화적 조형물’로 이루어진 역사적 공동체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기원과 함께 민족주의의 개념이 기원이 밝혀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안고 있는 파시즘의 성격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파시즘적 민족주의가 내포하는 있는 불온한 의도는 다중의 의도와 신념을 빌미로 숨겨진 의도에 복무하고 있다. 숨겨진 의도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소수 기득권층과 배타적 이기주의자들의 검은 속내에 감추어져 있기 마련이다.
개념과 정의
민족은 상상된 정치 공동체, 다시 말해 본래부터 제한적이면서 동시에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된 정치 공동체이다.
*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조차 대부분의 자기 동료 구성원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할 것이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상상된다.’
* 민족은 ‘제한적인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이 신이 정한 위계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그 개념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민족들은 어떤 보편적인 종교의 가장 신앙심 깊은 추종자조차도 그러한 종교들의 생생한 ‘다원성(복수성)’ 그리고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한계 사이의 동질 이형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인간 역사의 단계에 성숙해지기 때문에, 자유롭기를 꿈꾸며 신의 지배 하에서라도 곧장 그렇게 되기를 꿈꾼다.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이 주권 국가이다.(번역 오류)
*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남을 죽이기보다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
→ 이러한 죽음은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핵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무엇이 근대 역사의 축소된 상상체들로 하여금 그렇게 대량의 희생을 낳게 하는가? 대답의 시발은 민족주의의 문화적 근원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