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열하일기』(1972), 『삼남에 내리는 눈』(1975),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등과 산문집 <겨울 노래><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기
─ 황홀한, 어느 비 개인 날의 몰운대
1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막스 삐까르가 지은 《침묵의 세계》(박갑성 역, 성바오로출판사, 1980)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삐까르는 ‘침묵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만 무엇인가가 결핍된 것이 아니라 어떤 적극적인 것’이라고. 서로 대화를 할 때,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적 존재거나 기호적인 것의 한 변형인 공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여기서 삐까르는 ‘어떤 공간’을 ‘침묵’이라고 보고 있다.
침묵 스스로 그(침묵)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그대로 수용할까를 젖혀두고라도, 적어도 나는 이 간단치 않은 질문 방식이 황동규의 시세계에 대해 매우 유효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수다(말)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 침묵의 가치는 더욱 귀할 것이다. 침묵은 곧 명상과 통한다.
그는 여행한다, 끊임없이. 그럴 때, 그는 수다를 떨까, 침묵을 할까. 아닐 것이다. 그의 여행은 고행이 아니라, 쉬러 가는 일이기 때문에. 존재를 좀더 가볍게 ‘몸 만들기’를 위해, 비로소 침묵하기 위해 그는 여행을 떠난다. 끝닿을 여행을 계속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진실로 그는 상황과 현재를 잊기 위해 떠나는 걸까.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 방문객인 나에 대해 꼼꼼히 챙긴다. 목소리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나의 직장과 집 전화번호, 시간, 그리고 연락이 안 됐을 때를 대비한 각종 부탁의 말들. 혹시나 약속이 비껴갈까를 염려한 일종의 사전 포석이었지만, 그때 내겐 오랜 과객이나 여행자로서의 면모로 느껴졌다. 그는 마치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몰운대, 몰운대로 오라고. 거기서 은밀히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 <沒雲臺行> 부분
실상, 황동규 그가 머무르는 여행지는 대개 ‘구름이 아름다이 무너지는 언덕배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를 가까이 보면서 나는 묘한 볼우물을 발견한다. 남자의 보조개를 많이 보지 못한 나는 그의 옴푹 파이는 그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웃을 때, 그의 볼우물은 더욱 깊었다. 불현듯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진다. 그때 그의 심성은 어땠을까. 알 듯 모를 듯한 그리움 같은 걸 안에 엮으면서 어딘가로 즐거운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까. 그 스스로 ‘연애시’라고 명명한 시들을.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대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즐거운 편지> 전문
이러한 설레임은 그의 어린 시절 탓이리라.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어린 시절의 주요 시기를 아버지 황순원 선생과 풍치가 수려한 지금의 경희궁 터에서 살았다고 한다. 덜 세련된 듯한 그의 목소리에서,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몰운대의 풍광이 묻어오는 듯했다. 어눌한 말, …어눌한 풍치風致도 있는가.
2
빼곡한 서책들로 인해 비좁은 듯한 인문관 2동 313호 연구실(서울대 영문학과)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소릴 내는 구형 푸른 선풍기 뒤로, 컴퓨터 앞의 그가 엷고도 좋은 웃음을 주며 나와 기자를 맞이한다. 특이한 것은 벽면에 붙박힌 우리나라 대형 지도였다. 그는 연구실에서도 늘 여행을 꿈꾼다. 여행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그의 얼굴에 뜨거운 화색이 돈다. 이번 여름에도 서너 군데 다녀올 계획이 서있다는 그. 타고난 고질적인 것, 시(문학)와 여행 취미가 그랬다. 두 가지가 바로 그의 종교라고나 할까.
그의 시 정신사적 기록, 또는 시인의 내면 고백물인 《나의 시의 빛과 그늘》(중앙일보사, 1994)은 시인과 작품에 관한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답답한 독자들의 갈증을 덜어준다.
1958년 2월, 대학 1학년 끄트머리, 《현대문학》지에 그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시월> 등이 당선되어 등단한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시월> 부분
‘좀 더 낮은 곳으로, 더 낮아서 우리가 흔히 낮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의미를 가지게 되는 곳으로, 내리고 싶은 것’이라는 독백(해설)은 상당히 진실한 목소리로 들린다. 아주 낮아지기, 더 아래로 나를 낮추기. 그의 젊은 시절은 이렇게 은밀한 그늘을 찾았고 계속 헤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객으로, 떠돌이로, 아직도 꿈의 몰운대를 향하여 떠나는 것이다. 과연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 외출의 끝은 어디인가. 그 곳에 무엇이 있길래 한사코 신들린 것처럼 찾아가는 걸까. 그가 찾는 것은 단순히 사람 사는 곳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아니, 여행에 끝이 있다면 그 곳을 따라가겠는가. 도달할 길이 없으므로 현재 눈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다.
허나, 그는 여행은 반드시 종착지가 있다고 단언한다. 가 닿는 곳만을 일컬음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곳을 찾았을 때, 시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결론이 있다는 뜻일 게다. 황동규 행로의 귀결을 일부 찾았을 수도 있다. 그리움의 옛 사물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에서 그는 <즐거운 편지> 및 <어떤 개인 날> 등을 소개한다. 그는 이어서 친구 김정강의 죽음을 접한 뒤, 제2시집 《悲歌》(1965)를 출간한다. 당시의 절망에 가까운 시대 상황도 우울을 더했다. 시의 어조는 자연히 급박할 수밖에.
친구여, 죽음과 생시 둘 다 사랑할 수는 없노니,
허리 위의 잠
오늘도 거리엔 말없이 등불 켜지고
허리 위의 잠
내 그토록 잠든 사내를 사랑하므로
나는 때로 잠자는 법을 잊는다.
─ <十四行> 부분
그리고 4년 뒤, 표제인 《平均率 1》 시집에 속한 타이틀인 《太平歌》(마종기, 김영태와의 3인 합동시집, 1968)를 상재한다. 현대문학상이 주어진다. (이후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다.) 이때는 나라 근심이나 정치 상황 등에서 일부러 멀리 벗어나기를 시도했다. 무심無心, 이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그동안 아픈 시적 대상(사물)들도 친근하게 다가온 것이다. 에딘버러 대학 유학을 마치고 유럽 및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1970년,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창작계획>에 참가, 외국 작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에 대한 컴플렉스를 씻게 되다. 개인과 사회적인 사소些少와 일상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해석되지 말어라, 오래 오래
들판에 나가 한없이
작은 들꽃을 뽑을 때
그 끊어지는 뿌리에서
내게 아직 조금 남은 비린내를 맡는다.
─ <帝王의 깊은 그늘> 부분
이같은 감성의 섬세함을 지닌 작품은 초기 시의 주조를 이룬다. 뒤이어 <三南에 내리는 눈>은 또다른 감동을 준다. 이 시에 대한 시인 자신의 산문(《나의 시의 빛과 그늘》, 150쪽)에서 ‘역사나 현실적 주장을 내놓고 그리는 시는 대체로 감추어진 구조가 단순한 게 특징’, 그리고 ‘이 시의 주조(主調)는 그 무엇보다도 ‘시름’, 우리 민족의 한(恨)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걸 참작하면, 작품이 주는 비극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리라.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 <三南에 내리는 눈> 전문
뒤이어 《熱河日記》(1972)를 출간하다. 이른바 시월 유신을 겪으면서 정치적 배신 행위에 대한 불신과 그에 대해 깊이 탄식하는 새로운 황동규를 만나게 된다.
薄明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고통처럼 단순한 몇 포기 섬들이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소주처럼 쓴 물결을 휘젓는 바람소리가
아 바람이, 하늘에선 박명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웅크리고 박혀 있는 몇 포기 섬들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허리 구부릴 때 그네들에게 잡혀주는 몇 마리 게새끼가
매어달리는 이 풍경
아 바람이,
짧은 해안선을 짧게 달구는
풀뭇불빛 같은 이 풍경.
─ <겨울 바다> 전문
그리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를 상재하다. 여기서는 정치시와 함께 진정 고운 사랑의 노래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문학의 구체성은 그 허구의 몸짓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신조를 시인은 엄격히 갖는다. 시 안에서 관념론 등의 배제는 우선적인데, 그래서 시인 이문재와의 대담에서 ‘예술은 보여주는 것이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가.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조그만 사랑노래> 전문
그런가 하면, 이 시집 후반기에 다시 그는 시국의 아픔에 젖는다. 바로 시 <계엄령 속의 눈>은 그러한 시대가 낳은 작품이다. 당시는 <흙빛 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 시는 사회 문제를 차원 높게 끌어올린 가작으로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아아 병든 말(言)이다.
발바닥이 식었다.
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마른 바람이
하루종일 이리저리
눈을 몰고 다닐 때
저녁에는 눈마다 흙이 묻고
해 형상(形象)의 해가 구르듯 빨리 질 때
꿈판도 깨고
찬 땅에 엎드려
눈도 코도 입도 아조아조 비벼 버리고
내가 보아도 내가 겁나는
몰려다니며 거듭 밝히는
흙빛 눈이 될까 안 될까.
─ <계엄령 속의 눈> 전문
1975년, 시선집 《三南에 내리는 눈》을 발간. 이 순간부터 여행병이 생긴다. 김현, 김정웅, 홍신선 시인 등이 그 일원이었고 그 후, 평론가 김병익, 김주연 등도 함께 참여하다. 여행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3
1978년,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출간. 황동규를 언급할 때는 그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말한다. 극서정시란 시 안에서 화자나 시인의 통찰력, 인생관, 삶의 태도가 극처럼 변화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지 삶 자체(이야기, 혹은 과정)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라고. 점차 점차 그는 서정시에서 극적인 이야기를 동원하기를 즐겨 한다. 특히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의 후기를 보면, 극서정시에 관한 시인의 양심 선언(!)을 접할 수 있다. 보다 더 ‘극화(=인간화)시켜서 삶에 되돌려주는 장치’라는 자기 고백.
물론, 시 형식상 풀어지기 및 풀어내기의 인상을 좀체로 지우기 어렵다는 이의를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아무리 삶이 지닌 진실성을 무게나 엄숙성 대신에 가벼운 것으로 그린다고 하더라도 시가 운문인 이상, 언어의 절제와 다듬기를 공부해 온 내게는 많이 풀어진 시를 접할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그의 시 세계가 ‘가벼움→무거움→가벼움’으로 승화한 것일까.
그랬더니 마침, 이남호가 이걸 자기 평론집에서 애써 슬쩍 건드린다.
황동규의 이러한 시적 어법과 의미 조형 방법은 매우 세련되고 고급한 것이다. 그것은 삶과 시에 대하여 멀리까지 가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에 대한 이해도 삶과 시에 대한 세련되고 고급한 지성과 감성을 소유한 독자만이 가능한 것일 듯하다. 이 점은 황동규의 최근시가 보여주는 빛나는 특성이지만 동시에 한계요 약점일 수도 있다. 지나친 세련화와 고급화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의 영역을 벗어난다.
─ 《文學의 僞足》(민음사, 1990. 165쪽)
어지럽다. 대체 진정한 가벼움은 무엇인가. 나는 혼란 속에서 황동규 시인 특유의 ‘낯설게 하기와 가볍게 하기’라고 단정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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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모든 시인은 막스 삐까르의 말대로 ‘어떤 결핍’을 찾아나서는 영원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극적인가 적극적인가, 아니면 내외향적인 것인가는 순전히 시인 자신에게 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방식의 차이에 자연히 귀착하게 된다. 시인 황동규는 자신만이 느끼는 어떤 결핍을, 처음에는 연시로부터 출발하여 일부 정치적 참여시, 허무적 선시풍에서 다시 ‘극서정시’, 나아가 쉬임없는 여정에 ‘적극적’(삐까르의 ‘침묵의 개념’)으로 몰두해 있는 것이다.
그의 찬찬한 고백에 의하면, 그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여행을 하다가 풍장의 지경에 이를 것 같다. 대학 시절, 남해안과 선유도의 기행에서 풍장風葬이라는 죽음 방식을 처음 본 뒤의 충격을 이렇게 그린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 중략 …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풍장 1> 부분
그러는 사이, 숱한 죽음들이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개중에서도 특히 김현과 황인철의 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최근에 출간된 그의 연작 시집 《풍장》(문학과지성사, 1995) 자서自序 일부를 보도록 하자. (이 화제작은 14년간에 걸쳐 연작시 70편을 만들었다는 이야깃거리보다 그의 죽음관을 볼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가장 충격적인 죽음은 비평가 김현과 변호사 황인철의 죽음이었다. 그 죽음들은 모두 어느샌가 죽음 편에서 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해진 삶의 황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던 [풍장]의 흐름을 다시 죽음 쪽으로 되돌려놓곤 했다. 그러나 결국 죽음과 삶의 황홀은 한가지에 핀 꽃인 것이다. 죽음이 없이 삶의 황홀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죽지 않는 꽃은 가화(假花)인 것이다. 그리고 삶의 황홀이 없다면 죽음을 맞아 끝나는 삶, 그 삶의 끝남이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그리고 그는 외친다. ‘이제 새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나보다. 이번엔 뼈 여행이 될 것인가’라고. 지금까지는 살을 이야기했지만 이제부터는 뼈를 노래하겠다고. 나는 부끄러워진다. 그의 시력詩歷만큼한 이도 드물 텐데, 나를 포함한 많은 시인들이 너무도 쉽게 뼈를 이야기하고 있다…. 살도 발라내지도 않고 어줍잖게 뼈를 말하다니.
그는 일찌기 군인 시절,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친구 김정강의 죽음(혹은 자살)을 접하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 충격에서 비로소 깨어난 그에게는,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극히 일상적이다. 그의 인식이란 다름아닌 ‘몸 속 원자들 서로 자리 좀 바꿨을 뿐’(<풍장 35>)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풍장 70>은 아름답다. 죽음을 노래했으면서도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
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조으는가
꿈도 없이
─ <풍장 70> 전문
남진우는 시집 뒤에서 작품을 논하면서 ‘기도’ 및 ‘니르바나’의 경지라고 칭한다. ‘모든 욕망과 집착 번뇌에서 자유로워진 이 니르바나의 상태에선 주관과 객관의 대립도 삶과 죽음의 경계도 사라지고 만다’(128쪽)는 것이다.
거기에 나는 한 술 더 뜬다. 사고思考에 지친 물새 하나, 수척한 물새 한 마리 지속적으로 생각에 수척해지고 있다. 그러나 물새 하나, 그대로 조은다. 이내 곧 수장水葬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 수장이 풍장이고, 풍장이 곧 화장火葬일 것이다. 어느덧 이쯤에 가서 그는 죽음에 관해서만큼은 선적禪的인 세계에 젖는 듯 싶다.
문제의 힌트는 ‘꿈도 없이’이다. 흐르는 물을 보고 생각에 잠긴 물새 하나, 드디어 시간에 자신의 몸을 맡길 때가 됐다는 포근한 안도감(!) 그리고 초연한 조을음. 그렇다면 ‘꿈도 없이’ 조는 모습은 곧 황홀한 죽음으로 향하는 엄숙한(또는 가벼운) 마감법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무, 허무적 색채가 빛나는 무념 무상의 세계. 초월자의 의지가 서슬 푸르게 돋보인다.
그렇다면 황동규에게 죽음의 세계란 꿈도 없는 곳일까. ‘풍장 연작’은 이대로 종을 치지만, 그러나 조을음은 또 즐기는 술의 향내를 은근히 풍긴다. (술도 물이구나!) 연구실에서도 촬영을 하면서도 술자리를 논하고 술술 냄새를 풍기더니, 계속해서 그는 젖고 젖고 또 젖는 삶이 좋다고 화답한다.
급기야 또다른 작품에서 삶과 죽음의 틈을 나는 이렇게 묵시하고 있다.
바다는 젖어 있었다.
해당화
젖은 왕(王)보석
색(色)나라의 속이 열리는 색의 입술
입술이 젖어 있었다.
젖은 입술을 열면 눈부신 하얀 모래
위에
눈부신 바다.
─ <풍장 20> 부분
5
그러나, 황동규는 최근에 발간한 시집 《미시령 큰바람》(1993)에서 자신이 스스로 명명한 ‘극서정시’의 ‘조용한 변신’을 그린다. 부분이 아닌 전신全身이 온몸으로 하는 변신. 비로소 그의 역작 《풍장》은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시의 생애에 한 획을 그은 그는, 지금 또다른 여행 계획과 시집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처음에 우리는 황동규의 작품과 함께 막스 삐까르를 만났다. 삐까르는 또 다정하게 나를 감싸안으며 속삭인다. ‘인간의 본질은 언어이고, 신의 본질은 침묵이다. 그러나 신에게 있어서 침묵과 언어는 하나이다’(229쪽). 이를 접하면서 나는 아무래도 황동규 그가 침묵과 언어를 묵묵히 하나로 만들기 위한 영원한 여객이라는 생각을 한다.
종내는 그가 젖은 채로 삶을 마감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분에 넘친 ‘눈부신 바다’를 사뭇 그리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다는 외려 우리를 흥분케 하고 끝없는 울림과 떨림을 준다. 굳이 프로이트를 빌어오지 않더라도 ‘에로스적的으로 젖기’란 얼마나 싱그러운가. 그 에로스를, 시인의 원초적 욕망을 작품에서 읽게 된다. 물새와 조을음과 젖은 입술, 그리고 눈부신 물(바다). 교감交感의 극치다.
실제로 나는 젖은 입술, 젖은 가슴에 꽤 약한데, <풍장 20>이 발표될 당시에 얼마나 강렬한 에로티시즘에 젖어 몸을 떨었단 말인가. 시방도 한껏 젖어 있다.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아아, 이제 비로소 일상의 세계로 하산할 때가 되었나 보다. 황동규 시인의 관악산방의 ‘몰운대 탐방’을 끝내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의 여지를 바람으로 태운다.